50.
“오늘은 뭐 할 거야?”
“글쎄.”
재희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잠시 잠만 자고 가는 그가 아쉬웠지만 애써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었다.
벌써 현관 앞에서 10분째.
출근하기 싫어하는 그와 그런 그를 잡고 싶은 재희는 문 앞에서 대화 중이었다.
촉.
갑자기 입을 맞춘 그의 모습에 재희가 작게 웃었다.
“아직도 아쉬워?”
“응.”
아침을 먹은 후, 주방에서 시작된 진한 사랑 표현은 침실까지 이어졌다. 재희는 그의 품에서 몇 번이나 무너지며 눈물을 삼켰다.
지치지도 않는지, 몇 번이나 안던 그가 아쉬운 듯 그녀를 씻겨 주고 출근하는 길이었다.
그런데도 다시 뽀뽀라니.
하지만 이 작은 스킨십이 참 달다. 아쉽고.
“어서 가, 오빠.”
“말이 좀 그렇네. 어서 가라니.”
못마땅하다는 듯, 차현의 한쪽 눈썹이 슬쩍 위로 휘었다.
그러자 재희가 입꼬리를 당겨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잘, 다녀와.”
그제야 차현의 표정이 유해졌다. 재희는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빤히 바라보았다.
“쉬고 있어.”
끄덕끄덕.
“밥도 잘 먹고.”
끄덕.
재희가 입술을 말아 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아 차현은 몇 번이나 망설였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기울여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진득하게 머금은 그가 입술을 가르고 혀를 단숨에 휘감았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삼켰는데 여전히 갈증이 일었다.
갑작스러운 키스에도 재희는 눈을 감고 그가 넘기는 타액을 받았다.
너무 그리웠던, 그리고 앞으로도 그리울.
그의 짙은 향기에 눈가가 젖어갔다.
“하아.”
한참을 놓아주지 않던 그가 입술을 떼자 재희가 밭은 숨을 터트렸다.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해.”
차현이 초조한 눈빛으로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재희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그래서 그녀가 옆에 있다는 걸 확인하듯 안고 또 안았다.
가만히 바라보던 그가 미간을 좁히며 다시 입술을 찾았다.
“읍!”
키스를 너무 많이 한 탓에 입술에 찌르르한 고통이 느껴졌다.
재희가 그의 옷깃을 그러쥐며 고개를 젖혔다. 고개를 기울인 그 때문에 입술이 빈틈없이 맞물렸다.
고른 치열을 훑으며 아랫입술을 빨던 그가 시선을 내려 그녀를 살폈다.
“은재희.”
“…….”
“내가 했던 말, 기억하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재희는 차마 눈을 뜰 수 없었다.
여린 잇속을 씹으며 가만히 있자 차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약속, 한 거야.”
재희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불안한 마음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다녀올게. 금방 올 테니까 기다려. 저녁 같이 먹자.”
“……응.”
차현은 겨우 몸을 돌렸다.
현관을 나선 후,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재희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흐흡.”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재희는 양손에 얼굴을 묻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 ▼ △
온종일 신경이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일을 하면서도, 회의를 하면서도. 형우에게 보고를 하면서도.
이상하게 께름직한 기분에 차현은 종종 멍하게 있기를 반복했다.
그저 쓸데없는 걱정이겠지. 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해 봐도 불안감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많이 피곤해 보이십니다.”
운전을 하던 세민이 걱정 섞인 목소리를 냈다.
차현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마음과 다르게 야경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게.”
“몸 좀 신경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침에 내내 안 좋아 보이던 재희 때문일까. 그녀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그녀가 처한 상황이 힘들어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묘하게 다른 모습이 신경을 긁었다.
차현이 시선을 내려 손목에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늦었네.”
“……네?”
“차도 많이 막히고.”
저녁을 같이 먹자는 말이 무색하게 결국 9시를 넘기고 말았다.
마음도 조급한데 사고가 난 건지 도로는 주차장처럼 차들이 꽉 막힌 상태였다.
“최대한 빠르게 가 보겠습니다.”
세민이 답을 하고는 핸들을 더 꽉 그러쥐었다.
차현은 그런 세민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 쉬었다.
퇴근하면서 곧장 전화를 걸었는데 뭘 하고 있는 건지 재희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가 다시 핸드폰을 들어 발신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이내 못 받는다는 안내 멘트만 흘러나올 뿐.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아.”
그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급한 회의가 있어 어쩔 수 없었는데. 미룰걸, 후회가 밀려왔다.
빨리 집에 도착해서 그녀를 봐야 이 불안감이 사그라질 듯했다.
하지만 급한 제 마음과 달리 차는 여전히 기어가듯 가고 있었다.
참 여러모로 답답할 노릇이었다.
차현은 기우일 뿐이라며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기댄 채, 그는 눈을 감았다.
△ ▼ △
“재희야.”
급하게 집으로 들어간 그가 복도를 따라 거실로 향했다. 집의 불은 다 꺼진 채였다.
모든 등을 점등한 그는 빠르게 침실로 들어갔다.
“…….”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집안 공기에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은재희!”
쾅, 쾅.
방문을 하나씩 열어젖히던 그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주방의 불을 켠 그의 행동이 일순 멈췄다.
식탁 위에는 음식 덮개가 놓여 있었다.
“…….”
차현이 손을 뻗어 덮개를 들어 올리자 잘 차려 놓은 밥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작은 봉투 하나. 그것을 본 차현의 미간이 사납게 구겨졌다.
그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봉투를 집어 들었다.
그 안에는 종이 두 장이 반듯하게 접혀 들어있었다.
종이를 꺼내 펼친 차현의 눈빛이 차게 식었다.
한 장은 그녀의 필체가 가득한 편지. 그리고 다른 한 장은 다름 아닌 이혼 신고서였다.
[오빠- 놀라게 해서 미안해.]
“하아.”
차현이 눈을 질끈 감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화가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그는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약속은 못 지킬 것 같아서, 또 미안해. 생각해 보니 우리 오빠 밥 한 번 해 준 적이 없더라. 마주 보고 앉아서 같이 먹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도 못 했네. 잘 굽고 싶었는데 생선도 태우고, 김치찌개는 너무 짜게 됐어. 어설프지만 열심히 노력했으니 이해 좀 해 줘.]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보자 억장이 무너진다.
바빠도 조금 더 챙겼어야 했는데. 혼자 이 결정을 하기까지 무슨 마음이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후회해. 5년 전에도 지금도. 그렇게 상처를 주고 다시 오빠 손 잡은 거. 많이 후회돼. 그렇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두 번이나 상처를 주는 것 같아 내가 참 면목이 없어. 그래도 더 늦지 않게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걸 용서해.
수천 번, 수만 번 고민했거든. 근데 결론이 늘 하나였어. 내가 오빠 옆에 없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럼 이차현이 이만큼 힘들지 않을 텐데.
그냥, 처음에 다가가지 말걸. 다시 과거로 돌아간대도 오빠를 보고 반하겠지만, 혹시나 다시 그 순간이 된다면 꼭 지나쳐야겠다고 다짐해.
나에게 과분하고 착한 사람 괴롭힌 거, 평생 잊지 않고 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