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 (47/62)

47.

재희는 차현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극한의 상황에 맞닥뜨리자 눈물조차 나지 않았는데. 이제야 감정이 제 작동을 하는 모양이다.

너무 억울해서, 서러워서. 그리고 저 때문에 또 고생하는 그에게 미안해서.

눈물은 쉬이 그치지 않았다.

그래도 한바탕 울고 나니 꽉 막혔던 가슴이 조금은 탁 트인 기분이었다.

“어서 자. 한숨도 못 잤다며.”

이렇게 못 자다가 미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면제를 먹으면 그 몽롱한 기분이 싫어 되도록 먹지 않았었는데 결국 약까지 먹고 말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정신이 또렷해 결국 제대로 잠도 못 잔 상태였다.

“또 나가야 돼?”

결국 그의 마음이 불편할 말을 꺼내고 말았다.

같이 있고 싶은 제 욕심 때문에.

몹시 바쁜 걸 알면서도 그가 가는 게 참 두렵다.

재희는 차현의 허리를 조금 더 꽉 끌어안고 품에 파고들었다.

“응. 얼굴 좀 보고 가려고 잠시 들른 거야. ”

차현이 그녀의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샤워를 하고 나온 그는 그녀를 곧장 식탁에 앉혔다. 그리고 사 온 죽을 데워 주었다.

한 입도 못 먹겠다는 그녀에게 몇 숟가락만 먹자고 설득했는데, 한 수저 크게 뜨자마자 헛구역질을 하며 화장실로 뛰어가는 바람에 결국 죽은 하나도 먹지 못한 채였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김 교수님께 연락드려 볼게.”

“아니. 그냥 좀 지나면 낫겠지. 가끔 너무 스트레스받을 때도 비슷했어.”

워낙 예민한 성격의 그녀였기에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의 허리는 여전히 끌어안은 채, 재희가 슬쩍 고개를 젖혀 그를 바라보았다.

차현이 시선을 내리고는 눈을 맞췄다.

“많이 미안해.”

“네 잘못 아니야.”

과거에도 지금에도.

그에게 몹쓸 짓만 하는 것 같다.

제 잘못이 아니더라도 그런 아버지를 둔 그녀 때문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으므로.

“기사로 보긴 했는데……일은, 어떻게 됐어?”

“수습 중. 금방 마무리되긴 힘들어도 급한 건 얼추 해결했어.”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이상 수사는 피할 수 없었다. 다행히 깨끗하게 일 한 그 덕분에 발견된 건 없었다고.

태경이 말한 비리 자금 건 자료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애초에 없던 것이었으므로.

태경은 연루된 사건이 너무 많아 해결하려면 한참은 걸릴 듯했다. 본인이 자초한 일이니, 자업자득이었다.

“넌, 괜찮은 거 맞아?”

괜찮지 않다.

태경 덕에 금전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란 건 사실이긴 했다.

그런데 결국 그런 아버지 때문에 그토록 노력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꿈처럼.

입술을 달싹이던 재희가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너 이러다 정말 쓰러지겠어. 먹지도 않고.”

며칠 사이에 이렇게 안 좋아질 줄은.

툭 치면 부서질 것처럼, 재희의 모습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아니,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혼자 있는 것도 걱정이고.”

밥도 먹지 못하는 걸 보니 걱정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언제 갈 거야?”

잠깐도 노닥거릴 시간이 없기에 재희는 포기한 채 그에게 물었다.

차현이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언제 갈까.”

“그러다 가지 말라고 하면 어쩌려고 물어봐?”

“안 가지 뭐.”

치.

거짓인 걸 알면서도 그 한마디에 위로가 된다.

사실 진심은 정말 가지 말라고 붙잡고 싶었다. 하루만 꼭 안고 푹 자고 싶어서.

그런 마음은 꾹 누른 채 재희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나 잠들면…… 재워 주고 가.”

“어서 자.”

“으응.”

잠깐 잠이 들면 악몽에 시달리는 탓에 자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곁에 있다는 생각에 그간 못 잤던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재희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후…….”

규칙적으로 바뀐 숨소리에 그제야 차현의 잇새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넘겨 주던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작은 사모님께서는…….’

‘뭔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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