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 (42/62)

42.

“날씨 되게 좋다.”

저녁을 다 먹은 후, 그들은 조금 걷기로 했다.

차현은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자신의 재킷 주머니 속에 넣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뺨을 간질이자, 마음마저 간질거리는 기분이다.

“사실, 나 오빠랑 헤어지고 혼자 엄청 걸어 다녔거든.”

“왜?”

“낮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나게 공부만 했고 밤에는 자야 하는데 잠이 안 오더라고.”

눈을 감아도, 떠도 차현 생각이 나는 게 문제였다.

공부를 할 땐 조금은 잊을 수 있었지만 자려고만 하면 잡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찼다.

그래서 두 시간을 내내 걸어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몸을 혹사해야, 눕자마자 잠드니까. 그래서 두 시간씩 걸었어.”

걷는 건 누구보다 싫어하던 그녀였다.

데이트할 때도 잠깐씩 걷고, 카페 가서 쉬고 그랬는데.

혼자 두 시간을 걸으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차현은 고개를 돌려 옆에서 걷는 재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몇 년을 하니까 힘든 게 조금은 옅어지더라. 한 시간을 걸어도 잘 수 있을 만큼. 무뎌진다고 해야 하나. 근데 그 무뎌지는 게 참 슬펐어.”

재희가 고개를 젖혀 그를 보며 쓰게 웃었다.

그 이후로는 아나운서를 하게 되어 지금처럼 여유롭게 걸을 시간조차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눈가가 시큰거릴 만큼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

“혼자 고생 많았네.”

다독이는 말이었지만 재희는 그 역시 자신과 같은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짐작했다.

지금 그 자리에서 저렇게 버티고 있는 차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가 홀로 얼마나 외로웠을지.

재희가 잡은 손을 조금 더 꼭 그러쥐자 차현이 픽 웃음을 흘렸다.

“왜.”

“그냥. 좋아서 그런다 왜.”

틱틱대는 모습조차 귀여워 차현의 입꼬리가 길게 말렸다. 가만히 고민하던 그가 우습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잖아. 뉴스 진행하는 거 보면 조금 웃기다고.”

“뭐가?”

“되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데. 사실 은재희는 이런 모습이니까.”

“이차현 앞에서만 그러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치.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재희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렇게 손만 잡고 걸어도 좋다.

옆에 이차현만 있다면.

“좀 앉을까?”

“응.”

집 근처에 다다르자 빌라 앞에 있는 벤치가 보인다.

차현과 재희는 그곳에 나란히 앉았다. 너무 바빠 집 근처 조경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재희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중얼거렸다.

“오빠.”

“응?”

“정말 3년 후에 이혼하는 거 아니지?”

“왜, 이혼하고 싶어?”

“아니. 근데 너무 정색하면서 그 말 하길래.”

“그땐 무슨 말을 못 해.”

서로 날이 서 있을 때라, 막말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이 내내 마음에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정말 혹시나 다시 헤어지게 될까 봐. 혼자가 될까 봐.

그녀의 입술 새로 안도의 한숨이 새었다.

“너랑 결혼하려고 버틴 건데. 안 해, 이혼.”

단호한 그의 한마디에 불안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린다.

정 없는 아버지도, 하나뿐인 딸 이용만 하는 엄마도.

세상에 오로지 혼자인 기분이었다.

그 모든 자리를 채워 준 사람은 차현이었다. 가만히 있던 재희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차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응시했다.

“약속했어.”

“그래.”

“정말이지?”

“응.”

두 번이나 확답을 받은 그녀가 눈매를 접어 웃는다.

이 행복이 영원히 깨지지 않기를. 이제 겨우 잡은 손 놓지 말기를.

재희는 간절히 바랐다.

△ ▼ △

“흠.”

집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차현의 안색이 좋지 않다.

‘내일은 은태경 의원님 생신이십니다.’

스케줄 보고 끝에 세민이 다시 한번 더 언급했으나 차현도 알고 있던 부분이었다.

사실 일주일 전부터 내내 신경을 쓰고 있기도 했다.

톡, 톡.

책상 위를 규칙적으로 두드리던 그의 손가락이 허공에 멈췄다.

‘안 갈 거야.’

‘재희야.’

‘그러니까 오빠도 신경 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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