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왜, 웃어?”
씨익 웃는 그를 보며 재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웃는 모습조차 참 매력적이다, 그는.
“그냥.”
좋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 좋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뒷말을 속으로 삼키며 차현이 그녀의 바스로브 안으로 팔을 넣어 허리를 당겨 안았다.
“앗!”
재희의 동그란 이마가 설핏 일그러졌다.
차현 역시 샤워 후 바스로브 차림이었다. 앞섶이 풀어 헤쳐진 채 시선을 내린 그의 모습은 몹시 치명적이었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한 건지, 단단한 가슴팍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의 체향에 취한 건지, 아니면 막걸리를 너무 마신 건지.
순간 눈앞이 핑 돌았다. 다리가 휘청거려도 단단히 끌어안은 그 때문에 그녀는 미동조차 없었다.
“결혼, 얼마 안 남았네.”
차현의 묵직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정말 그와의 결혼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와 결혼할 줄은.
아니, 다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사람 앞일 모른다더니 정말인 듯했다.
재희가 까만 눈동자를 도르르 굴리며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합법적으로 은재희가 내 와이프가 되는 날.”
와이프.
그 단어가 심장에 콕 박혀 들었다. 차현의 눈빛이 한층 더 짙어졌다.
촉.
지그시 보던 그가 가볍게 입술을 부딪쳤다. 그 작은 스킨십에도 가슴이 간질거린다.
“전에 왔을 땐, 손만 잡고 자더니.”
재희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하자 차현이 우습다는 듯 눈매를 휘며 웃는다.
그녀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손만 잡고 다니던 시절. 키스 한 번 하고 심장이 터질 듯 뛰었던.
그때의 제 모습이 선연하다.
“그럼 손만 잡고 잘까.”
“응.”
“마음에도 없는 소리.”
곧장 답하는 그녀를 보며 차현이 못 믿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지그시 시선을 내려 그녀의 목을 손으로 감쌌다.
재희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재희야.”
다정한 목소리에 눈가가 시큰거린다. 한숨 같은 숨이 그의 입가에 흩어졌다.
잠시 숨을 고른 그가 눈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생기면 숨기지 말고.”
“…….”
“꼭 얘기해.”
마치 네가 뭘 숨긴지 안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재희가 입술을 꾹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다시는, 손 놓지 않겠다고 약속해.”
처음 듣는 차현의 진심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재희의 눈가가 젖어 갔다. 은미의 말대로 차현은 그녀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말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는 형우를 찾아간 듯했다. 아들이 되기 위해.
그때의 심정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굳이 듣지 않아도, 이 한마디로도 그의 마음이 눈에 보이는 기분이다.
“…….”
재희의 고개가 떨어졌다. 그의 바스로브를 꼭 쥔 그녀의 작은 손이 떨렸다.
차현이 그녀를 품에 안으며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너른 가슴에 안긴 작은 어깨가 들썩였다.
그녀를 다독이는 차현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 ▼ △
“읏!”
파고드는 감각이 지나치게 선명하다.
술에 취해 정신이 혼몽했는데, 이미 취기는 모조리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하윽.”
재희가 이불을 그러쥐며 신음을 삼켰다.
야근하겠다더니, 정말 진심이었던 건지.
차현은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곳에 오기 전보다 더 기운이 넘쳐 보인다.
기분 탓인가.
“후으.”
그의 짙은 숨이 그녀의 몸에 흩뿌려졌다. 얼굴 양옆에 짚은 그의 팔뚝은 잔뜩 성이 나 있었다.
“힘, 들어.”
“뭘 얼마나 했다고.”
짓궂은 음성이 귓가를 울린다.
재희가 억울한 듯 눈을 치켜뜨자 그가 상체를 내려 눈꼬리에 입술을 부딪쳤다. 이렇게 사랑한다는 눈빛을 하는 그를 보자 감정이 벅차올랐다.
“손만 잡고 자기에는.”
“읏!”
“아쉬워서 말이야.”
다시 침대가 사정없이 출렁였다. 발끝부터 올라오는 짙은 쾌감에 재희의 고개가 젖혀졌다.
하체를 관통하는 쾌락에 결국 가녀린 몸이 잘게 떨렸다.
“하아, 으.”
그럴수록 차현은 조금 더 집요하게 그녀를 괴롭혔다.
간질거리는 그 느낌을 참을 수 없어 몸을 비틀어 봐도 또다시 그의 품이었다.
그의 상태를 보아하니 아직도 참 먼 듯했다.
“제발…….”
“조금만 더.”
“하윽.”
나긋이 달래는 목소리도 참 치명적이다. 재희가 그의 단단한 팔뚝을 움켜쥐었다.
그의 얼굴에 맺힌 땀이 그녀의 몸에 떨어졌다.
차현은 이미 땀에 흠뻑 젖은 채였다. 빠르게 속도를 높이던 차현이 이내 그녀의 품에 무너졌다.
“하,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가 재희의 입술을 찾았다. 버석하게 마른 입술을 타액으로 적시며 부드럽게 입술을 빨았다.
짧은 키스가 끝나고 차현이 그녀의 옆으로 몸을 뉘었다.
“아…….”
손 하나 까딱할 기운조차 없었다. 몸을 늘어트린 채 멍하니 있자 차현이 그녀의 머리 쪽으로 팔을 뻗었다.
와서 안기라는 뜻인 걸 알면서도 재희는 움직일 수 없었다.
“정말.”
그가 낮게 혀를 차며 재희의 머리에 팔베개를 해 줬다. 그리고 허리를 감아 그쪽으로 마주 보도록 몸을 돌렸다.
“힘들어.”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었다. 이젠 그만했으면.
서로 마음을 확인한 결과가 이토록 혹독할 줄이야.
마치 못했던 것을 다 하고 말겠다는 듯, 차현은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싫지는 않았지만 저질 체력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런 것 치곤 너무 좋아하던데.”
“아아!”
그가 그녀의 동그란 콧방울을 손으로 슬쩍 쥐였다. 그러자 재희가 눈을 흘기며 원망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왜, 사실이잖아.”
“변했어.”
참나.
갑자기 불쑥 말한 그녀의 말에 차현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응. 엄청.”
“적응해, 그럼.”
예전 같았으면 뭐가 서운하냐, 뭐 때문이냐 다정하게 물어봐 줬을 텐데.
적응하라니.
재희가 황당한 얼굴로 쳐다보자 차현이 왜 그러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봐. 변했다니까?”
“그러는 너는. 안 변했어?”
“응. 난 그대로야.”
재희가 단호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인다. 제대로 건수를 잡았다는 듯, 차현이 눈매를 가늘게 뜨며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그래서 아직까지 내가 그렇게 좋은 거고.”
“…….”
“그대로라고 하니까. 맞겠네.”
말렸다.
이차현에게 말리고 말았다. 입술을 앙다문 채 재희는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의 은재희는 날 몹시 좋아했었으니까.”
쐐기를 박는 한마디였다.
그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은재희는 이차현을 참 좋아한다는 것을.
“얄미워.”
이를 사리물며 재희가 눈썹을 치켜뜨자 차현이 상체를 일으켜 그녀의 위로 다가왔다.
그러자 재희가 흠칫 놀라며 곧장 고개를 내저었다.
야릇해진 분위기에 척추가 저릿한 기분이다.
“안 할 거야.”
“내가 뭘 할 줄 알고.”
“아무것도, 안 한다니까?”
“그니까. 그게 뭔데.”
이미 다시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벌써 체력충전이 다 되었다는 것이었다.
또렷한 그의 눈동자가 그리 말하고 있었다.
하, 정말.
그 와중에 그의 잘생긴 얼굴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전보다 조금은 선이 굵어진 탓에 남성스러움은 배가 되었다.
“오빠아, 나 진짜 힘들어.”
도저히 먹힐 것 같지 않자 애교를 부리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도도한 그녀가 애교를 보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차현이 예뻐 죽겠다는 눈빛으로 그런 그녀를 눈에 담았다.
“더 해 봐.”
“뭐를?”
“애교 보고, 들어줄지 고민해 볼게.”
재희가 눈을 부릅뜨자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조금 더 커졌다.
그러다 이내 눈썹을 아래로 늘어트리며 입술을 뾰족이 내밀었다. 한껏 내려간 눈썹도 참 사랑스럽다.
차현이 엄지로 그녀의 눈썹 끝을 지분거렸다.
“미치겠네.”
“그러니까아 그만해.”
“허.”
“으응?”
콧소리 가득한 애교에 차현의 입술이 작게 벌어졌다.
이렇게까지 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재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어깨에 슬쩍 손을 얹었다.
“안아 줘. 나 너무 졸려.”
“아…….”
그가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다. 그러던 차현이 그녀의 입술로 시선을 내린 채 입을 열었다.
“키스.”
“어?”
“진하게 하면.”
“오, 그럼 그만해?”
“글쎄.”
“치. 안 해.”
정말 내가 없던 애교까지 끌어모았는데.
재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는다.
“아우 간지러워!!”
차현이 불쑥 손을 올려 살결을 그러쥐었다. 재희가 질색하며 몸을 비틀어도 그의 손은 거침없었다.
“내가 해 줄게. 키스.”
“아으. 오빠!”
“이차현 씨, 보다 훨씬 좋네. 그 오빠 소리.”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차현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다시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