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 (33/62)

33.

“그렇게 갑자기 헤어지자고 해서 기분 나쁜 거 아는데.”

그가 힘들었던 시간만큼, 그녀 역시 힘들었다.

그래서 사실 더 일에 매달리기도 했다.

다 잊고 싶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버틸 수가 없었으니까.

그녀가 원했던 일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늦었어.”

불과 몇 시간 전, 그녀와의 결혼 기사가 나갔다.

그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확인하고 또 확인했던 자료들이었다.

그것들을 준비하며 그가 무슨 마음이었는지, 재희는 모른다.

무릎이 아깝지 않을 만큼, 이 회장의 발에 납작 엎드려서라도 그녀를 잡아야 하는 이유.

혹시 그에게 해가 될까 봐, 그를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차현의 손을 놓았던 은재희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모든 결혼을 고사하고 아직까지 자신을 그리워했다는 것 역시 차현은 알고 있었다.

“내가 오늘 최홍수 회장님을 만났어.”

차현이 그녀를 보며 나직이 말을 꺼냈다.

최 회장은 시작이었을 것이다.

차현은 매일같이 이 회장에게 선 자리가 줄줄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언뜻 듣게 되었다.

재희가 빠지는 집안은 아니었지만 달가워하지 않는 이 회장이었기에 언제든 엎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결혼 전까지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

“너, 나한테 이러면 안 돼. 재희야.”

침잠하게 가라앉은 그의 눈빛에 왈칵 눈물이 나왔다.

“어디서 결혼 안 하겠단 말을 먼저 꺼내.”

하아. 숙취해소제가 문제였던 건가.

안 좋았던 속이 더 울렁거린다.

차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숨을 골랐다.

“……흡.”

“결혼식 날 보자.”

당분간은 잠시 떨어져 있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숨 섞인 말을 내뱉은 그가 휘청거리는 몸을 이끌고 구두를 벗을 때였다.

“…….”

그의 행동이 일순 멈췄다.

갑자기 뒤에서 끌어안는 재희 때문이었다.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은 채, 재희는 눈물을 삼켰다.

허리를 안은 그녀의 작은 손이 작게 떨렸다.

“하…….”

차현이 그녀의 손을 잡자, 재희가 맞잡은 손에 더 힘을 주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눈물을 참는지 끅끅거리면서도 그의 허리에 있는 손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재희야.”

차현은 잠시 눈을 감았다.

돌고 돌아 이제 겨우 마주 보는데도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한 건지.

차라리 속마음을 터놓고 말을 하는 게 나을 텐데도 타이밍을 놓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한참을 그대로 있던 차현이 겨우 그녀의 손을 떨어트리고는 뒤로 돌았다.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만 울어.”

그가 손을 들어 재희의 뺨에 흐른 눈물을 닦아 냈다. 한층 누그러진 그의 목소리에 그녀의 울음이 짙어졌다.

“흡.”

얼굴에 닿은 그의 손을 잡고 재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재희의 얼굴로 눈물이 쉼 없이 흘렀다.

차현은 그런 재희를 가만히 눈에 담았다.

“…….”

이 얼굴을 본 적이 있다.

잊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그 날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만해, 우리.’

터지려는 눈물을 꾹 누르며 겨우 꺼낸 한마디.

그때도 그녀는 이 얼굴이었다.

그런 재희를 보면서도 차마 잡을 수가 없었던.

차현이 고개를 기울여 입술을 진하게 머금었다.

입술을 씹으며 운 탓에 비릿한 맛이 혀끝에 느껴졌다.

“…….”

“흐읍.”

잠시 닿았던 입술이 떨어졌다. 재희가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차현은 조금 전, 서늘했던 그 눈빛이 아닌. 오래전 그녀가 사랑했던 그때의 그 눈빛을 하고 있었다.

“참 힘들다, 우린.”

지친 그의 목소리에 재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겨우 손을 들어 그의 뺨을 감싼 그녀가 눈을 감고 그에게 입을 맞췄다.

차현이 고개를 기울이고는 그녀의 턱을 슬쩍 잡아당겼다. 벌어진 입술 새로 혀를 밀어 넣자 재희가 몸을 더 바짝 밀착하며 안겨 왔다.

쿵.

현관 벽으로 몰아넣은 그가 그녀의 목덜미를 큰 손으로 감싸며 욕심 가득 입술을 빨았다.

“읍!”

숨이 막힐 만큼, 거침없는 키스가 이어졌다.

그 사이 그녀의 재킷과 옷들이 하나씩 바닥으로 떨어져 갔다.

“하아.”

잠시 떨어진 입술 새로 열기 어린 숨이 터져 나왔다. 금세 다시 입술을 겹친 그 때문에 다시금 숨이 삼켜졌다.

재희가 작은 손으로 그의 코트를 벗겨 내자 키스를 하던 차현이 단숨에 벗어던졌다.

숨이 뒤엉켰다. 조금이라도 떨어질 수 없다는 듯. 둘은 필사적으로 입술을 빨며 서로를 탐했다.

“아…….”

차현이 키스를 하며 그녀를 앞으로 안았다.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은 재희가 차현의 목을 감아 당기며 넘어오는 타액을 삼켰다.

잠시 후, 그녀를 소파에 눕힌 후 그가 그 위로 체중을 실었다.

재희가 손으로 차현의 뺨을 어루만지자 그의 눈동자가 낮게 가라앉았다.

“…….”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의 손끝이 그의 짙은 눈썹을 덧그리듯 지나갔다.

매서운 콧대를 지나 휘어진 눈꼬리. 그리고 붉은 입술을 지분거리던 재희가 중얼거렸다.

“다른 여자, 보는 거 싫어.”

그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 일 때문에 만났을 뿐. 사심은 단 하나도 없었다.

사실 취임식 이후 내내 기자가 따라붙는 바람에 사진이 찍히는 걸 알고 있었지만 별 수 없었다.

바로 반박 기사를 냈는데 그걸 또 본 듯했다.

“싫으면, 어쩔 건데.”

일부러 비딱하게 묻자 눈빛에 원망이 가득하다.

아닌 척, 모르는척하더니. 어지간히 신경이 쓰인 모양이다.

“그 여자한테는 차 문도 열어 주던데.”

“비즈니스.”

비즈니스라는 것도 안다. 원래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던 그였다.

그녀와 사귈 때도 이차현은 늘 그랬으니까.

여자들이 숱하게 다가와도 차현은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해하는 건 재희의 몫이었다.

“비즈니스인데, 그렇게 다정할 것까진 없잖아.”

근데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그와 그 여자가 함께 있던 그 장면이, 근사한 미소로 차 문을 열던 그 얼굴이.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다.

차현이 그녀의 입술을 지분거리며 나직이 속삭였다.

“이번 프로젝트, 성과 내야 해.”

“…….”

“내가 아직 그 정도 능력밖에 안 돼서. 그래서 그랬어.”

사람 할 말 없게 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는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재희가 머쓱한 듯 입술을 감쳐 물었다.

“또 해 봐.”

뭐를.

눈빛으로 그렇게 묻자 차현이 그녀의 입꼬리를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은재희 질투, 오랜만이라 듣기 좋네.”

그 한마디에 다시 무언가가 울컥 치밀었다. 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차현이 말을 덧붙였다.

“재희야.”

불러도 답 없던, 사진만 보며 마음을 삭여야 했던 지난 시간이 눈앞을 스쳤다.

“이제 내가 부르면, 꼭 대답해.”

곁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으니.

“대답, 해야지.”

어르듯, 다정한 목소리에 재희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때와 다름없는, 그녀를 부르는 그 목소리를 듣자 다시금 눈물이 차올랐다.

정말 이차현이 돌아온 것 같아서.

“하읏.”

그가 곧장 그녀의 쇄골에 입술을 내렸다. 굴곡진 라인을 타고 내려가는 그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몸은 빠르게 달아올랐다. 그의 손이 지난 자리마다 불에 덴 듯, 열 꽃이 피어오른다.

“으응.”

전신을 관통하는 아찔한 감각에 재희가 눈을 질끈 감으며 신음을 삼켰다. 비좁은 소파였지만 전혀 비좁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와 몸이 바짝 밀착되었다.

“읏! 오, 빠!”

다급한 목소리에도 차현은 멈추지 않았다. 뜨거운 입술이 새하얀 살갗을 붉게 물들였다.

조금은 굳은 그녀의 몸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차현은 다시금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타액과 숨이 한데 뒤엉켰다.

이렇게 맞붙어 있어도 마치 달아날 것처럼 불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으읍!”

그 순간, 뜨거운 감각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키스하던 재희의 턱이 젖혀져도 곧장 따라붙는 그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밭게 차오르는 숨에 재희가 고개를 비틀어 봤지만 그럴수록 차현은 더 목 끝까지 혀를 옭아매며 빨았다.

그의 어깨를 쥔 그녀의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천장이 뒤집히듯, 눈앞이 어지러이 흔들렸다.

“읏!”

눈을 꾹 감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가만히 내려다보던 차현이 그 눈물을 핥으며 귓불을 입에 물었다.

뜨거운 숨이 훅 끼치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키, 키스…….”

키스를 해 달라는 다급한 부름에 차현의 입꼬리가 길게 말렸다.

가만히 보고만 있자 재희가 눈꺼풀을 천천히 밀어 올리며 제 위에 있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해 줘.”

“…….”

해 달라는 말에도 그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후으.”

잠시 움직임을 멈춘 채, 차현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결국 참지 못한 재희가 그의 목에 팔을 감아 끌어당겼다.

애써 못 이기는 척, 입술을 내리며 차현은 으스러질 듯 그녀를 품에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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