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 (28/62)

28.

“아…….”

“어머.”

난감해하는 재희와 달리 민경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갑자기 불쑥 들어 온 차현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재희의 대기실이라고 하기에 그녀만 있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며 그가 먼저 민경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차현입니다.”

“아, 반, 갑습니다. 전에 뵈었었는데 기억 못 하시겠죠?”

언제 봤더라.

차현의 눈매가 슬쩍 기울었다.

그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단숨에 눈치챈 민경이 별일 아니라는 듯, 앞으로 손을 휘저으며 입을 열었다.

“전에 방송국에 오셨을 때, 제가 선배님 대기실에…….”

“아, 기억났어요. 제가 요새 정신이 없어서.”

“아니에요. 기억 못 하실 수도 있죠.”

참 근사한 남자였다.

잘 재단된 슈트를 입은 그는 그림처럼 완벽했다.

슬쩍 소매가 올라가자 드러나는 고가의 시계, 먼지 한 톨 없는 구두, 블랙 슈트와 잘 어울리는 와인 컬러의 행거치프.

시원하게 넘긴 헤어, 훤히 드러난 이마까지.

가끔 짓는 미소에 홀린 듯, 어느새 민경은 그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대, 대본 여기 있어요.”

“전화는 왜 안 받습니까, 재희 씨는.”

“…….”

하지 말라고 눈을 흘겼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눈매엔 짓궂은 기색이 가득했다.

재희는 포기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대본을 넘겼다.

“선배님, 저 이만 가 볼게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민경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제발 빨리 나가 줬으면.

차현에게 관심이 많은 건 알겠으나 계속 이곳에 있다가는 차현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응. 가 봐.”

“오늘 인터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반가웠어요.”

아직도 궁금한 게 많은 눈치였지만 민경은 어쩔 수 없이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쿵.

문이 닫히자마자 재희가 눈을 치켜뜨며 그를 노려보았다.

“꼭 그래야 해?”

“내가 뭘 했다고 그래? 그러게 왜 전화를 안 받아.”

“일부러 안 받은 거 아니고, 가방에 넣어 둬서 모른 거야. 방송 전에는 무음으로 해 놓는 거고.”

“그래서 며칠 내내 전화도 안 받았다?”

“…….”

차현의 한마디에 재희가 입을 꾹 다물었다.

드레스 숍에서 헤어지고 난 후, 사흘만이었다.

취임식 이후 출근한 차현은 무척이나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에게 밤에만 전화할 만큼.

아니, 늦게 퇴근하는 것은 물론 저녁 식사 스케줄도 꽉 차 있었기에 전화 한 통 하는 것도 여유롭지 않다고 했다.

그가 이런 상황이라는 건 문자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건…….”

일부러 안 받은 게 아니었다.

첫날은 뉴스가 끝나고도 무음으로 해 둔 핸드폰 때문에.

둘째 날은 배터리가 다 되어서. 그리고 지금 역시 무음인 핸드폰 때문이었다.

물론 부재중 전화를 보고 다시 전화를 걸 수는 있었겠지만, 그러기는 왠지 조금 머쓱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 그에게 프러포즈를 받고 많은 생각이 든 탓이었다.

이게 가장 큰 이유이긴 했지만.

“오늘 시청률 올릴 방법.”

어느새 의자에 앉은 그가 대본을 읽으며 입을 열었다.

“방송 전에 결혼 기사를 내보낸다.”

“뭐?”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뉴스는 생방송이었기에 그 자리에 있는 스태프들의 사심 섞인 시선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국장이 엄청 좋아할 것 같은데, 네 의견이 궁금해서.”

“싫어.”

“그러든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직업이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밝혀지는 건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가 쌓아 놓은 커리어마저 폄하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표정 풀어. 싫으면 안 할 거니까.”

“갑자기 왜 그런 소리를 해? 방송 끝나고 기사 내기로 한 거였잖아. 그리고 오늘 아니지 않아?”

차현이 시선을 들어 그녀를 응시했다.

썩 기분 나쁜 이야기였는지 재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그가 이곳에 도착하기 한 시간 전이었다.

‘안녕하세요! 부사장님, 김 국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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