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 (27/62)

27.

벌써 여섯 벌째.

그의 반응은 참 한결같았다.

이건 이래서 별로고, 저건 저래서 별로고.

처음 한 두벌이야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젠 조금 화가 날 지경이었다.

커튼이 걷히자, 조금 전과 같은 표정으로 차현이 다가왔다. 재희의 미간은 잔뜩 찌푸려진 채였다.

“수고했어요.”

그가 한마디 하자 직원들이 피팅룸을 모조리 빠져나갔다. 졸지에 넓은 피팅룸에 둘만 남게 되었다.

“힘든가 보네.”

차현이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었다.

고양이 쥐 생각하네.

재희는 설핏 조소를 흘리며 이를 사리 물었다.

“그럼 그만 입든가.”

드레스를 갈아입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치렁치렁하고 무거운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것도 힘든데, 벌써 여섯 벌째라니.

재희가 그를 빤히 보자 차현이 픽 한 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왜 그런 표정이야.”

“다 별로라며. 아무거나 입어도 상관없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그만 입으라고.”

“이차현!”

결국 서러움에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말았다. 버럭 소리 질러도 차현의 표정은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이렇게 열 내면 지는 건데.

또 지고 말았다.

성격 급한 그녀와 달리 차현은 평소에도 느긋한 편이었으니까.

이렇게 다른 성격 탓에 가끔 싸우긴 했으나 늘 차현이 져 주었기에 금방 화해하곤 했었다.

“조금 더 예쁜 걸로 입는 게 낫지 않겠어?”

“예뻐? 예쁜 게 있긴 하니? 이러려고 데리고 왔어? 그냥 혼자 보러 가게 두지 왜…….”

그때였다.

차현이 갑자기 그녀의 왼손을 그러쥐었다.

재희가 뿌리치려 했지만, 단단히 잡고 당기는 그 때문에 오히려 그의 코앞까지 끌려가고 말았다.

“성격, 참 여전해.”

그가 그녀의 손에 들린 부케를 가져가 옆으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

그녀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끼워졌다. 생각도 못 한 상황에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프러포즈로 더 근사한 거 기대했다면, 미안한데.”

“…….”

“결혼 전까지 시간이 없어서. 이걸로 대신하려고.”

차현이 반지가 끼워진 그녀의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알고 있던 반지 사이즈로 제작했는데.

살이 빠진 건지, 반지는 살짝 큰 편이었다.

“드레스는 세 번째 걸로 해. 그게 제일 예쁘더라.”

“…….”

“그렇게 감동할 거 없어. 어차피 우린 계약 결혼이잖아.”

감동을 와장창 깰 작정인지, 그가 짓궂게 웃으며 한마디 내뱉었다.

그런 말을 하는 와중에도 명치 끝이 묵직하고 눈가가 시큰거려 재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드레스 입고 서 있는데 남자가 와서 딱! 반지 주면 정말 좋을 것 같아.’

‘프러포즈를 드레스 숍에서 받고 싶은 거야?’

‘그런 건 아닌데, 뭐 그러면 아주 로맨틱하겠다. 뭐 그런 거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