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 (21/62)

21.

차마 입 밖으로도 내지 못한 이름이었다.

당장이라도 찾아가게 될 것 같아서.

입에 올리면 속도 없이 매달리게 될까 봐.

어떤 마음으로 은재희가 이별을 말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 그만 자요.”

재희가 다급히 그를 제지했다.

“침대, 써요. 내가 소파에서 자면 되니까.”

“따로 자게?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고 같이 손잡고 들어가서 잘 수도 없는 거 아닌가.

몸을 비틀어 겨우 품을 벗어난 재희가 후, 하며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결혼을 좀 서두르는 게 좋겠어.”

“어차피 곧 할 건데요.”

“참기가 좀 힘드네.”

“…….”

무엇을, 이라는 목적어가 빠졌지만 재희는 단번에 그 말을 이해했다. 눈매를 좁히며 치켜뜨자 차현이 재밌다는 듯 픽 웃음을 흘렸다.

그 작은 미소도 참 근사하다.

한심하네, 정말.

재희가 황급히 시선을 돌린 채 침실 쪽으로 걸어가 방문을 열어젖혔다.

“여기가 침실이에요.”

“그러지 말고 같이 자.”

“저는 따로…… 앗!”

따로 잔다고 말하는 찰나 그가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그녀를 먼저 눕힌 후 그 옆에 나란히 누웠다.

“혼자 자라니…….”

“샤워 못 해서 미안한데. 지금 나 너무 피곤하거든. 오늘은 그냥 좀 자자.”

“혼자 자래도?”

“…….”

뭐라 더 말할 새도 없이 차현이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 빤한 시선이 민망해 재희가 입술을 감쳐물며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네 표정을 모르나 본데.”

그가 괴로운 듯 미간을 구긴 채 잠시 숨을 골랐다.

“내가 지금 키스도 안 하는 이유.”

“…….”

“키스로 끝낼 자신이 없어서야.”

잔뜩 잠긴 목소리는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무거워진 분위기에 재희가 검은 눈동자를 도르르 굴리며 여린 잇속을 씹었다.

얼굴이 화끈거려 그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까, 그런 얼굴 하지 말고.”

“…….”

“와서 같이 누워.”

팡팡.

그가 옆자리를 손으로 두드렸다.

하지만 차현이 하라는 대로 곧장 눕기도 민망했다. 자존심 상해. 재희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참 난감할 노릇이었다.

“속도 없이 바로 눕긴 또 민망하지.”

그가 다 안다는 듯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

“앗!”

차현이 재희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어서 자자.”

그가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날숨이 뺨에 닿았다. 정말 피곤했는지 곧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하, 정말.”

심플해서 좋겠네. 이차현은.

나만 이렇게 마음이 복잡하지.

이 상황에서 잠이 오나.

재희는 눈을 깜빡이며 한참이나 뒤척여야 했다.

△ ▼ △

커다란 박스를 연 그녀는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 안에는 잘 개어 놓은 예쁜 아이보리 톤의 실크 원피스가 들어 있었다.

‘시간 맞춰서 오고. 그리고, 이거 가지고 들어와야 할 거야.’

‘이게 뭐예요?’

‘초대장. 비서 보낼 테니 타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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