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4. (4/62)

04.

키스 한 번에 온몸에 힘이 풀렸다. 흐려지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꿈에서도 그리웠던.

그의 체향에 취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읏.”

차현이 혀끝으로 뭉근히 점막을 긁자 맞물린 입술 새로 옅은 탄성이 흘렀다. 낭창낭창한 척추를 타고 그의 커다란 손이 천천히 올라왔다.

“하아.”

아릿한 감각에 재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손이 가슴께로 올라오고 나서야, 그녀는 급히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그의 입술에 번진 저의 붉은 립스틱을 보자 그제야 정신이 차려졌다.

미쳤어, 은재희.

조금만 더 지체했다면 저도 모르게 그의 목에 팔을 감을 뻔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래요.”

그녀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차현이 시선을 들어 그녀와 눈을 맞췄다.

그는 여유롭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잔뜩 흔들리는 눈빛을 하고서는, 곧 죽어도 아닌 척이지.”

“여기까지 따라온 내가 미친 것 같네요.”

몸을 돌리려 하자 차현이 그녀의 목덜미를 감쌌다.

살갗에 닿은 그의 손은 델 듯 뜨거웠다. 그가 조금 더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숨을 내쉴 때마다 옅은 알코올 향이 풍겨 왔다.

“애초에 할 말은 없던 거죠. 갈게요.”

그때, 차현의 손끝에 그녀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닿았다. 재희가 사색이 되어 그의 손을 뿌리쳤다.

“미련, 없어?”

“미련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 있는 것 같은데.”

이를 사리물며 그녀가 쏘아붙였다. 그럼에도 차현은 무척 여유로웠다. 그가 눈썹 끝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미련이라…….”

“지난 과거 들먹이며 질척이지 말아요. 어차피 김민준이랑 결혼 안 해도, 당신과도 할 생각 없어요.”

아무리 독한 말을 퍼부어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옅은 미소만 지을 뿐. 동요하고 있는 건 재희였다.

“자존심 상해서 이러는 거라면 그 자존심, 내가 버리게 해 줄게.”

“무슨 말이에요, 그게.”

“그건 차차 알게 되겠지. 오랜만에 만나서 술이라도 한잔하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네.”

무슨 쿨한 사이라고 헤어진 연인과 술을 마신단 말인가.

황당함에 재희의 잇새로 헛웃음이 흘렀다.

갑작스레 나타나 다짜고짜 결혼하자는 그 때문에 그녀는 몇 날 며칠 제정신이 아니었다.

“김민준이 애가 있다고 하던데.”

그는 정말 모든 걸 알고 온 모양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재희의 낯이 차게 식었다.

“그 좋은 선 자리 다 마다하고, 망나니 새끼랑…….”

쯧.

차현이 타이를 느슨하게 당기며 혀를 찼다.

차라리 잘난 집 남자와 결혼을 했다면 이렇게 화가 나진 않을 텐데.

진심이 아닌 말을 쏟아 내며 이별을 고하던 그녀의 얼굴을 단 한 순간도 잊은 적 없다.

그는 그녀의 가슴 언저리로 시선을 내렸다.

그 사이에 불룩, 솟은 것이 무엇인지.

보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은재희.”

“이제 그만 찾아오세요.”

“…….”

“당신, 다 잊었어요. 미련 따위 없다고요. 내가 누구랑 결혼하든,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니에요.”

그녀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일렁였다. 차현은 무미건조한 얼굴로 가만히 바라보다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뜨끈뜨끈한 걸 보니 열이 나는 모양이다.

“뉴스 진행하는 내내, 컨디션 안 좋아 보이더니.”

“제발 그만……!.”

재희가 눈을 질끈 감은 채 소리를 질렀다.

앞에 있는 그를 밀어 보아도 단단한 바위처럼 미동조차 없었다.

겨우 참고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차현의 미간이 단박에 구겨졌다.

“보내 줘요. 할 말 없잖아요.”

“오히려 무슨 말이라도 듣고 싶어서 따라온 거 아냐?”

그의 직언에 말문이 막혔다.

무슨 말을 듣자고 따라왔을까.

재희의 얼굴에 낭패감이 어렸다.

정말 다른 이야기라도 듣고 싶어서 따라온 것처럼.

입술을 짓씹은 채 그녀는 시선을 내렸다. 그가 그제야 그녀에게 닿았던 몸을 떨어뜨렸다.

“언제까지 아니라고 부정할지 두고 보지.”

재희는 그를 지나쳐 급하게 집을 나갔다.

△ ▼ △

온더록스 잔을 허공에 돌리던 그가 단숨에 들이켰다.

호박색 액체가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마다 큰 목울대가 일렁였다.

차현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

‘오빠, 이제 그만 만나고 싶어.’

다짜고짜 찾아온 재희는 갑자기 이별을 고했다.

누구에게 쫓기는 듯 불안한 얼굴을 하고서.

‘재희야,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왜 이래.’

‘아니, 아무 일도 없어. 그냥 이제 좀 지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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