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갑작스레 밀어닥친 진한 혀끝에 정신이 흐려졌다. 그녀가 좋아하던 그의 스킨향이 입안 가득 밀려들어 왔다.
굳은 채 눈을 깜빡이던 재희가 몸을 물리려고 하자, 그의 단단한 팔뚝이 가느다란 허리를 휘감았다.
“……!”
입술이 빈틈없이 맞물렸다. 차현은 바동거리는 그녀를 단숨에 제압하고 그녀의 입안 곳곳을 탐했다.
그리고 여린 살을 빨아들이며 진득하게 혀를 휘감았다.
이곳이 엘리베이터라는 사실도 잊은 채.
“흡!”
재희의 목덜미를 그러쥐며 그는 조금 더 몸을 밀착했다. 그의 품 안에 완전히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녀가 겨우 고개를 비틀어 입술을 떼어 내자, 차현의 미간이 사납게 구겨졌다.
“하아, 하. 미, 미쳤어요?”
잔뜩 당황한 그녀와는 달리 차현의 눈동자는 평온하기만 하다.
아니, 무척 화가 난 것 같기도.
재희의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왜, 미친놈 같아?”
“…….”
“그렇게 버려졌는데, 미치지 않을 새끼가 어디 있겠어.”
원망 섞인 목소리에 재희는 급히 시선을 내렸다.
그는 지금 겨우 참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결혼이 하고 싶은 거라면.”
“…….”
“그 결혼, 내가 하지.”
무슨 말을…….
재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헤어졌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난 헤어진 적 없어. 5년 내내, 단 한 번도.”
“이차현 씨.”
“조금 전 그 꼴을 당하고도, 아직 자존심이 남았나 보네.”
그가 조소했다. 수치심에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차현이 엄지로 그녀의 입술을 느리게 문질렀다.
“5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계속 기다려.”
띵.
문이 열리고, 차현은 표정을 지웠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뚫어지게 응시하던 그가 먼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
벽에 기대어 서 있던 재희의 고개가 떨어졌다.
△ ▼ △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괜찮아, 이 정도는.”
이 회장은 인자하게 웃으며 답했다.
이른 새벽, 차현과 이 회장은 오랜만에 라운딩을 나갔다.
얼마 전, 신장 하나를 제거할 정도로 큰 수술을 했으나 형우는 나이에 비해 회복력이 제법 빠른 편이었다.
무리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도 무시한 채, 형우는 매일같이 운동을 하며 체력을 키워 나갔다.
“날씨가 제법 춥습니다.”
“요즘 들어 네가 잔소리가 많구나.”
“죄송합니다.”
차현이 고개를 숙였다.
형우는 그런 그를 흡족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빠릿빠릿하고 똑똑한 그는 자신의 아래에서 무서운 속도로 입지를 다져 갔다.
“차현아.”
“네, 회장님.”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아…….”
이미 혼기가 지났음에도 차현은 모든 선 자리를 한사코 마다했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 싶어 형우는 그런 그를 기다려 주었다.
벌써 서른다섯.
이제는 조금 늦은 것 같아 오랜만에 말을 꺼냈다.
“오늘 날씨가 좀 덥구나.”
형우가 차현에게 골프채를 건넨 후,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었다.
“마음에 드는 여자는 없는 거냐.”
웬일인지 말이 없다. 형우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옆에 서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있나 본데.”
“허락, 해 주실 겁니까.”
한참을 망설이던 차현이 겨우 입을 열었다. 형우의 아래에서 개처럼 일하며 한 번도 토 단 적 없던 그였다.
“그래서 네가 이제껏 여자를 안 만났나 보구나.”
차현이 입을 다물었다. 긍정의 답이었다.
차현은 옆에 앉은 여자 한 명도 건드리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게 어떤 자리일지라도.
형우는 그런 그가 기특했다.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5년 전, 갑자기 찾아온 차현은 형우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허무맹랑한 소리였으나 형우는 그를 내치지 않고 끝까지 말을 들어 주었다.
이 회장의 밑에서 일을 하던 그의 아버지가 형우를 대신해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때문에 차현은 홀로 남게 되었다.
재희와 헤어진 후, 차현은 몇 달을 고민하다 이 회장을 찾아갔다.
‘무엇이든 다 할 자신 있습니다. 시켜만 주십시오.’
‘겁도 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