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94년 가을, 한부 왕검은 86세의 나이로 천수를 다하고 아사달 외곽의 거대한 왕릉에 안치되었다.
또 그 이듬해에는 묵돌이 풍토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직 젊은 나이에 병사했다.
아직 젊은 폭군이 사라지자 서고조선의 여러 장수는 스스로 왕위에 오르겠다며 아귀다툼을 벌였고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제국은 한신의 갈리아 고조선, 항적의 게르만 고조선, 유방의 박트리아 고조선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묵돌의 부하들이 세운 왕조는 모두 2백 년을 버티지 못하고 갈리아인이나 게르만인 등 원주민 세력이 반란에 사라져버렸지만, 나라를 차지한 새 왕들도 ‘고조선’이라는 국호를 버리지 않았다.
한편 로마와 카르타고는 각각 게르만족과 갈리아인의 침략을 잘 막아내고 망국의 위기를 피했다.
두 나라는 비록 대제국으로 성장할 기회를 놓쳤지만, 여전히 지역의 강자로 남았으며 특유의 공화정을 유지하면서 오랜 번영을 누렸다.
그리고 고조선은 사회제도, 문화, 과학, 경제를 발전시켜 나갔고 그 덕에 기원전이 끝나기 전에 훗카이도를 제외한 일본 열도 전역을 영토로 삼으며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해 명실공히 세계 제일의 제국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큰 번영을 이룬 나라도 예정된 천재지변을 막을 수 없는 법.
한부가 사망한 지 약 1,140년이 지난 서기 946년 10월 초, 입헌군주국 고조선의 함경남도와 연변 전역에 요란한 재난경보가 울려 퍼졌다.
- 주민 여러분! 올해 10월에서 12월 사이는 왕검비결에 예견된 백두산 폭발 시기입니다! 아직 대피하지 못하신 분은 속히 가까운 재난 대피소로 이동해 주십시오!
겁에 질린 수백만 명의 사람이 등에 생필품이 들어 있는 배낭을 메고 가족과 함께 아파트와 주택에서 달려 나와 전기 자동차를 타고 재난 대피소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 중에도 정부의 지시를 믿지 못해 애꿎은 가족들에게 짜증을 부렸다.
“엄마! 꼭 이래야 해요? 몇백 년 동안이나 멀쩡한 백두산이 설마 폭발하겠어요?”
“은성아! 또 그 소리니?! 그럼 다른 사람들은 다 바보라서 지금 이 난리를 피우는 줄 알아?”
“아니, 말이 안 되잖아요! 옛날 책에 백두산이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적혀있어서 이 난리를 친다는 게 도무지 납득이 안 돼요!”
“아직도 그 소리냐?! 잔말 말고 빨리 차에나 타!”
올해 중학교 2학년인 김은성은 엄마의 손바닥에 등짝을 한 대 얻어맞고 차 뒷좌석에 탄 다음에도 여전히 툴툴거렸다.
“10세기에 미신을 믿고 온 나라가 난리 치는 게 말이나 되냐고!”
김은성의 가족
네 명은 약 30분을 달려 재난 대피소에 도착한 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안내요원들의 지시에 따라 승강기를 타고 지하 대피 시설로 향했다.
잠시 후 승강기 문이 열리고 수많은 천막이 마련되어 있는 커다란 강당과 먼저 도착한 피난민들이 보이자 김은성은 한숨을 푹 쉬었다.
“후······ 앞으로 며칠을 이런 곳에서 자야 한다는 말이지. 심심해서 어떻게 하면 좋냐.”
김은성의 어머니 박현정은 그런 아들을 피곤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기 강당 벽에 활동 영상기 걸려있네. 심심하면 저거라도 보고 있어.”
“어차피 아저씨들 재미없는 것밖에 안 틀어 둘 텐데······.”
김은성은 어머니에게 대꾸하면서 TV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말을 멈췄다.
“은성아? 갑자기 왜 그래?”
“엄마! 저기 좀 보세요! 백두산에서 연기가 나와요!”
그 말 대피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TV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TV에선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로 생중계 중인 흰 연기를 내뿜는 백두산의 모습과 함께 당황한 남자 뉴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시청자 여러분! 보시다시피 조금 전 오후 두 시부터 백두산 분화구에서 많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다행히 함경남도와 연변 주민 대피는 대부분 마친······
그런데 그때, 고막을 찢을 듯한 폭발음이 아나운서의 말을 끊었다.
- 콰아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TV 화면에 백두산 대신 뉴스 아나운서가 나타나더니 방송을 계속했다.
- 시청자 여러분! 방금 백두산이 폭발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백두산이 폭발했습니다! 왕검비결이 기원전 89년 로마 공화국의 베수비오 화산 폭발에 이어 이후 두 번째 화산 폭발을 적중시켰습니다!
대피소 안의 사람들은 방송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기도를 올렸다.
“고조선의 수호신 한부 왕검이시여! 나라와 가족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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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modified date: 2022.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