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94화 (194/195)

묵돌이 처음으로 갈리아인 마을을 접수하자 서고조선은 빠르게 갈리아 땅에 세력을 뻗쳐나갔다.

게르만족의 침략으로 존망의 갈림길에 선 여러 갈리아인 부족이 생존을 위해 묵돌을 섬기기로 맹세하고 지원군을 요청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민족답게 게르만족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서고조선과의 양면 전쟁을 선택하는 갈리아인 부족도 적지 않았고 묵돌은 복종을 거부한 자들에게는 반드시 피의 응징을 가했다.

그렇게 겨우 약 두 달이 흐르자 갈리아 땅에 침입했던 게르만족은 거의 궤멸당했고 서고조선의 신민이 되기를 거부한 수많은 갈리아인 부족은 서고조선군의 추격을 피해 피레네산맥을 넘어 남서쪽의 히스파니아 반도로 도망쳤다.

묵돌의 서역 원정이 유럽 대륙에서 게르만족

대이동에 이어 갈리아인 대이동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갈리아인 대이동은 히스파니아 원주민인 켈티베리아인과 그 지역에 세력기반을 마련한 카르타고의 바르카 가문에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바르카 가문의 근거지인 카르타헤나를 지키던 카르타고의 장수들은 즉시 이탈리아반도로 갤리선을 띄워 로마를 포위하고 있는 한니발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한니발은 전령이 가져온 서신을 읽고 깊이 탄식하면서 곁에 있는 동생에게 말했다.

“하스드루발······ 신들께서는 로마에만 시련을 내리신 게 아니었구나.”

“형! 그게 무슨 소리야?!”

“게르만족이 로마의 뒤를 쳐서 기뻐했더니 이젠 북쪽에서 몰려온 갈리아인들이 우리 가문의 은광과 농장을 넘보고 있다는구나.”

“그것들이 미쳤나? 땅 좋고 날씨 좋은 고향을 버리고 왜 산지밖에 없는 히스파니아에 쳐들어온 거지?!”

“도저히 모르겠구나. 아무래도 로마 원로원과 정전 협상을 맺고 이쯤에서 이번 전쟁을 끝내는 게 좋겠다.”

“형! 지금 정전을 맺으면 계획보다 유리한 조건을 얻어낼 수 없다고!”

“어쩔 수 없잖아. 아직도 제해권은 로마가 쥐고 있으니 히스파니아의 육상 보급로가 끊기면 우리도 공성전을 이어갈 수 없어.”

“하······ 이제 몇 달만 더 숨통을 조이면 되는 건데······. 그래도 시칠리아랑 사르데냐만큼은 꼭 얻어내자고.”

“당연하지. 지중해의 섬을 모두 되찾고 해군을 재건하면 서지중해는 다시 우리의 바다가 될 거다.”

[세번째 후일담 – 한부가 남긴 예언서 (마지막 편)]

기원전 209년 3월 초, 묵돌은 지난 몇 년 동안 이룬 정복사업의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 오르도스 고원에 있는 아버지와 아사달의 궁궐에 사절을 보냈다.

그로부터 약 석 달 후 한부 왕검은 처조카가 보낸 서신을 읽은 다음 탁자 위에 내려놓고 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음······ 묵돌 이 녀석, 박트리아 왕국 정복으로 만족하지 않을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갈리아까지 정복할 줄이야. 그나저나 이제 서양 역사도 원래의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겠구나.”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궁궐의 서재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내관을 불러들였다.

“정 내관은 안으로 들어오라.”

“부르셨습니까? 폐하.”

“서역의 사정을 알아보려 하니 암부의 수장 계를 이곳으로 불러오너라. 지금쯤이면 분명 자택에 있을 것이다.”

“삼가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내관은 늙은 왕검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서재 밖으로 나가서 암부의 수장 계를 데리고 왔다.

계는 나무 지팡이를 짚으면서 한 발짝씩 다가와 한부 왕검 앞에 선 다음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인사했다.

“암부의 수장 계가 흉노의 선우이시자 중원의 패자이신 왕건 폐하를 뵙습니다.”

“계야! 못 보던 사이에 다리를 다친 모양이구나! 왜 짐에게 그 사실을 바로 알리지 않았느냐?”

“폐하. 소신은 외상을 입은 적이 없습니다. 그저 나이를 먹고 기력이 나날이 쇠하다 보니 두 다리로만은 걷기 힘들어져서 얼마 전부터 지팡이를 쓰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허허······ 표범보다도 날쌔던 네가 벌써 그렇게 늙어버렸다니······ 아직 일흔도 되지 않았거늘······.”

“모든 사람이 과거의 신평군 염파처럼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소신도 아직 나이에 비하면 제법 정정한 편입니다. 폐하.”

한부는 소탈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하는 계의 주름진 얼굴을 보자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요즘 식사할 때 놋쇠로 만든 수저의 무게가 전보다 묵직하게 느껴지는구나. 역시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정보를 모아서 후손들이 참고할만한 조언집을 출간해야겠다.’

그는 그렇게 다짐하면서 다시 계에게 물었다.

“계야. 방금 서고조선의 사신이 가져온 서신을 읽어보니 짐의 처조카가 서역의 여러 나라와 부족을 정복하고 동방과 서역을 아우르는 대국을 세운 모양이더구나. 그게 어느 정도 허풍이 섞여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소신에게 정보를 물어다 주는 무역상들이 올린 보고에 따르는 목돌 왕은 서역 역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대제국을 세운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그런 판단을 내린 근거는 무엇이냐?”

“서고조선의 세력 팽창을 견제하느라 서로 죽일 듯이 전쟁을 일삼던 로마와 카르타고가 작년 가을에 갑자기 휴전협정을 맺더니 올해 초에는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은 게 그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뭐라고?! 로마와 카르타고가 앞으로 전쟁을 안 하겠다는 약조를 맺었단 말이냐?! 서고조선의 세력을 견제하려고 그런 수를 쓴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폐하. 카르타고는 본래 이탈리아반도 내 점령지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로마는 서지중해의 세 섬 시칠리아와 사르데냐, 그리고 코르시카를 카르타고에 넘겨주는 조건으로 겉으로나마 다시 원수에서 이웃이 됐습니다.”

“놀라운 일이군. 그 두 나라가 그렇게까지 할 정도면 묵돌 왕은 이미 로마와 카르타고의 영토도 노리고 있는 모양이야.”

“서고조선은 이미 점령한 영토가 워낙 넓고 이제 막 나라 전체의 통치체계를 잡아나가는 중이라 적어도 올해가 가기 전에는 로마와 카르타고를 침략하진 않을 겁니다.”

“그렇긴 하겠지. 묵돌 왕은 군주로서의 재능도 상당히 출중한 편이지만, 그래도 그 넓은 영토를 혼자서 다스릴 수는 없을 테니까. 아마 개국공신 무리 중 총독직에 어울릴만한 자들을 추려내서 각 지역 통치를 맡기겠지.”

“폐하의 말씀대로입니다. 묵돌 왕은 원정을 마친 후 수도 페르가나로 돌아가면서 좌록리왕 한신에게는 갈리아의 통치를 맡겼고 항적에게는 게르마니아 지역의 평정을 맡겼다고 합니다.”

“한신과 항적에게 총독 노릇을 맡겼다고? 흠······ 아무래도 내 처조카가 천수를 다하고 나면 서고조선은 여러 갈래로 찢어지겠구나.”

“소신의 생각도 그러합니다. 폐하.”

묵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복사업을 펼친 덕에 불과 3년 만에 대제국을 세웠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정복민의 원한을 샀다.

그렇기에 한부는 서고조선은 한 세기 전 명성을 떨쳤던 알렉산드로스 3세 대왕이 세웠던 헬레니즘 제국이 그러했듯이 왕이 죽고 나면 여러 개국공신이 권력과 영토를 나눠 갖고 각자 새 나라를 세울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미래가 내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로마는 이탈리아반도 밖으로 뻗어 나가기 어려울 거다. 그리고 이집트나 마케도니아 같은 디아도코이 제국들은 카르타고를 잡아먹고 세력을 불린 로마에게 정복당할 일도 없어지겠지. 그렇게 되면 전 세계에 제국이라고 불릴만한 나라는 고조선 하나만 남을지도 모르겠네. 이런 내용도 조언집에 적는 편이 좋겠군.’

그 후 한부 왕검은 태자 한준, 그리고 여러 문관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미래 세대에 남기는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한부는 전생에 익힌 인류 역사에 관한 지식은 이미 너무나 많이 바뀌어버린 역사 속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지만, 역사학자로서의 그의 예측이나 미래에 발생할 큰 자연재해에 관한 경고, 그리고 현재의 기술로는 만들기 어려운 다양한 발명품에 관한 기록은 인류 문명 발전에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다.

그로부터 약 5년 후, 70대 중반이 된 한부는 총 2백 권의 책을 편찬한 후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그동안 자기를 도운 신하들의 공을 치하했다.

“다들 그동안 수고 많았소! 늘 천신과 단군왕검께서 꿈속에서 보여주신 모든 장면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웠었는데, 경들이 애써준 덕분에 이젠 언제 열반에 들어도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구려!”

그 말에 태자 한준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폐하. 경사스러운 날에 어찌 그런 슬픈 말씀을 하십니까?”

“하하하하! 그런 표정 짓지 마라. 태자야. 그저 내 심정이 그만큼 후련하다는 것뿐이지 삶의 의욕을 잃었다는 게 아니니 말이다.”

“그러시다면 안심입니다. 폐하. 그런데 이번에 편찬하신 책의 제목을 정말 ‘조언집’이라고만 지으시렵니까?”

“달리 무슨 제목을 붙이겠느냐?”

“많은 선비가 5년 동안이나 고생하며 편찬한 책이니 기왕이면 더 근사한 이름을 붙여도 좋을 듯합니다. 보통은 책 제목에 저자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으나 감히 왕검의 휘를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으니 ‘왕검비결’이라 부르심은 어떠십니까?”

“왕검비결이라! 확실히 조언집 따위보다는 훨씬 듣기 좋은 이름이구나! 그래 왕검비결로 하자꾸나!”

한부 왕검의 옆에서 두 부자의 대화를 들은 상장군 석은 갑자기 술잔을 오른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후손들은 천년 뒤에도 왕검비결을 읽으면서 폐하의 영험함과 깊은 지혜에 감탄할 겁니다! 모두 왕검 폐하의 안녕과 고조선의 번영을 위해 건배합시다! 왕검 폐하 만세! 고조선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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