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후일담 – 묵돌의 서역 원정 (13)]
서고조선의 10만 기병대는 전속력으로 말을 달린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두 무리의 부족민이 혈투를 벌이고 있는 전장에 도착했다.
자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창과 방패를 들고 울타리의 무너진 틈을 가로막고 있는 갈리아인 남녀와 그런 원주민들에게 식량을 빼앗으려고 덤벼드는 게르만족
장정들.
묵돌은 그 장면을 둘러보고는 등 뒤의 부하들에게 말했다.
“아주 난장판이 따로 없구나. 두 야만인 무리가 서로 싸우다 지치면 어부지리를 누려보자. 잠시 말에게 한숨 돌릴 틈을 주되 언제든 저놈들의 뒤통수를 후려칠 준비를 해둬라!”
대부분의 서고조선군 장수가 어명에 따라 손에 편곤과 활을 들면서 전투를 준비할 때, 한신은 전장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묵돌의 곁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폐하. 폐하께서는 갈리아의 땅만을 취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면 이 땅의 원주민들을 서고조선 백성으로 삼으실 생각이십니까?”
“이 땅의 부족들이 짐에게 먼저 고개를 숙이고 복종을 맹세하면 백성으로 삼지 못할 것도 없지.”
“그렇다면 저 두 야만인 무리 중 침략자 쪽을 쳐부수고 원주민의 환심을 사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합니다.”
“뭐라고? 서역에 다녀온 무역상들에게 갈리아의 야만인들은 외국인을 극심하게 경계한다고 들었다. 보답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호의를 베푸는 것보다는 차라리 저 마을을 지도에서 지워서 다른 부족에게도 짐을 경외하게 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폐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병법에서 적의 적은 동지로 간주합니다. 지금 저 마을을 공격하고 있는 야만인들은 분명 불길을 피해 이곳까지 도망쳐온 게르만족일 터인데, 갈리아 땅을 침략 중인 게르만족은 저자들 말고도 더 있겠지요.”
“음······ 스키타이를 정복했을 때처럼 회유할 수 있는 원주민 부족은 회유하라 이 말인가? 하지만 갈리아인들은 농사꾼들이라 스키타이 출신 초원의 전사들처럼 짐을 금방 따르지는 않을 것 같군.”
“갈리아인은 반농반목으로 먹고살긴 하지만, 천성이 용맹하고 강한 전사를 존경하는 문화가 뿌리 깊은 데다 말을 즐겨 탄다고 하니 초원의 전사들과 통하는 점이 있을 겁니다. 분명 아군으로 삼으면 큰 도움이 되겠지요.”
“흠······ 알겠다. 우리가 침략자들을 물리쳐 줬는데도 마을 주민들이 배은막덩하게 굴면 그때 가서 처치해도 늦지는 않겠지. 한 좌록리왕. 항 우록리왕에게 선봉에 서서 게르만족의 배후를 치라고 전해라.”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그 후 한신은 항적에게 묵돌의 명령을 전했다.
항적은 어명을 받자마자 전방의 적을 향해 달려나가면서 등 뒤의 부하들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편곤을 들고 적군의 뒤통수를 후려쳐라! 금발에 가죽옷을 입은 놈들은 적이고 빨간 머리에 벌거벗은 놈들은 아군이다!”
“알겠습니다! 우록리왕님!”
1만 기의 기병들은 젊은 장수를 따라 가로변이 긴 직사각형 모양의 진형을 유지하면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 두두두두두두두
편자를 박은 말발굽이 땅을 두드리면서 요란한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자 앞만 바라보면서 전투에 몰두하던 게르만족
전사들도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더니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고함을 질러댔다.
“저놈들 대체 뭐야?! 언제 우리 등 뒤에 나타난 거냐고!”
“적의 지원군이 도착했다! 창을 든 놈들을 이쪽으로 불러와!”
게르만인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서고조선 중기병대의 진로에 급히 창병을 배치했지만, 훈련받지 않은 병사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한혈마의 덩치에 압도되어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치다가 진형을 흩트리고 말았다.
그러자 항적은 적진의 빈틈을 편곤으로 가리키더니 우레같은 고함을 질렀다.
“봐라! 저 덩치만 큰 겁쟁이들은 진형을 짤 줄도 모르는구나! 적의 조잡한 창은 두려워할 것 없다! 이대로 적진을 들이받는 거다!”
서고조선의 중기병 1만기는 젊은 장군의 명대로 띄엄띄엄 서 있는 게르만족
병사들 사이를 스쳐 지나면서 적군의 머리를 향해 편곤을 휘둘렀다.
- 퍼억! 퍼억! 퍼버벅!
둔탁한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가죽옷을 입은 병사들의 머리가 망치로 내려친 수박처럼 박살 나면서 쓰러졌고, 전우가 요절하는 모습을 지척에서 지켜본 본 게르만족
병사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살려줘!”
“후방이 무너졌다! 다를 알아서 도망쳐!”
그렇게 치열했던 두 부족
간의 전투는 서고조선군의 개입으로 수비 측의 승리로 끝났다.
마을을 지켜낸 갈리아인들은 게르만족
유민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마을을 향해 다가오는 묵돌과 서고조선 기병대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피부가 누런 놈들은 대체 어디 출신이지?”
“난들 아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저놈들이 우리 머리도 터뜨릴지 아닐지가 중요하지!”
“뭘 당연한 걸 가지고. 무기를 들고 남의 땅에 몰려온 놈들이 우리랑 친하게 지내자고 왔겠냐? 기왕에 죽을 거면 싸우다 죽자고.”
젊은 갈리아인 남녀가 결사항전을 다짐하며 다시 무기를 들려는 순간, 마을 안에서 흰 수염이 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더니 젊은이들을 말렸다.
“이놈들아! 당장 멈춰라!”
“장로님! 어서 마을 안쪽으로 피하십시오! 여긴 위험합니다!”
“이 멍청한 놈들아! 저 정체불명의 기병대가 우리를 죽일 생각이면 벌써 덤볐을 거다. 저놈들은 우리랑 뭔가 협상을 하려고 하는 게 분명해! 내가 말을 걸어볼 테니 잠깐 기다려봐라!”
갈리아인 청년들이 임전 태세를 거두면서 뒤로 물러서자 장로는 서고조선 기병대 곁으로 다가가면서 서툰 그리스어로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소?”
묵돌은 장로의 말을 듣고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곁에 있는 장수들에게 말했다.
“이것 참 흥미롭군! 야만인 무리 중에서 그리스어를 할 줄 아는 자가 있을 줄이야! 뭣들 하느냐! 어서 통역관을 불러와라!”
그후 묵돌은 그리스어 통역관을 통해 장로와 대화를 나누면서 갈리아인에 관한 정보를 하나둘 모아갔다.
“그러니까 넌 젊은 시절에 카르타고인에게 고용되어 용병 노릇을 하다가 그리스어를 배웠다 이 말이군.”
“그렇소. 초원의 왕이여.”
“지금 갈리아 땅을 다스리는 왕은 누구냐? 왜 백성이 공격받는데 왕국군이 나서지 않는 거지?”
“갈리아는 수십 개의 부족이 각자의 영토를 다스리고 부족마다 왕이 있소.”
“흠······ 그렇게 많은 부족이 난립해있으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부족끼리 전쟁을 벌이는 경우도 허다하겠군.”
“물론이오. 외지인들이 감히 이 땅을 지나는 일은 거의 없으니 오히려 갈라아인 부족끼리 전쟁을 벌이는 때가 많았소. 그것도 야만스러운 게르만족이 쳐들어오기 전의 일이지만 말이오.”
“그렇단 말이지······. 그럼 일이 훨씬 수월해지겠군.”
“이제 내 질문에도 대답해주시오. 그대는 왜 고향을 떠나 이 먼 곳에 와서 우리를 구원해 준거요?”
“뭘 그런 걸 묻나? 한 나라의 왕이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이 먼 곳까지 왔으면 당연히 정복사업을 벌이러 온 거지. 게르만족을 물리친 건 짐의 땅에 들러붙은 해충을 제거한 것뿐이다.”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 든다면 최후의 한 명까지 저항하다 명예롭게 죽을 것이오.”
“농사를 지어서 먹고사는 자들치고는 쓸만한 기개구나. 그 기개를 높이 사서 너희에게 짐의 신민이 될 기회를 주마. 부족이나 마을을 다스리고 있는 자들에게는 작위를 내려서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도록 배려해주지.”
“음······.”
“뭘 고민하는 거냐? 이 제안을 거절하면 너희 마을을 기다리는 운명은 파멸뿐이다. 짐이 너희에게 해코지하지 않아도 다른 게르만족
유민들이 몰려와 다시 마을을 약탈하려 들 테니 말이다.”
“부정할 수 없는 말이구려······. 잠시 시간을 주시오. 다른 장로들과 논의해보겠소.”
갈리아인 장로는 다시 마을로 돌아가서 동료들과 긴 논의를 거친 다음 묵돌에게 회의결과를 전했다.
“강력한 초원의 왕이여. 만약 그대가 우리 마을과 부족을 외적으로부터 지켜준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대를 왕으로서 섬기겠소.”
“참으로 현명한 선택이다. 하늘에 맹세코 너희를 외적에게 지켜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폐하.”
“그럼 너희의 왕으로서 첫 번째 명령을 내리겠다. 주변의 다른 갈리아인 부족의 부족장과 장로들을 짐의 신민이 되라고 설득하라.”
“폐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갈리아의 부족들은 말과 혈통만 비슷할 뿐 부족마다 문화나 외지인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다릅니다. 분명 아무리 좋은 말로 설득해도 절대 갈리아인이 아닌 왕의 통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족이 적지 않을 겁니다.”
묵돌은 장로의 말을 듣고 싸늘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감히 짐의 호의를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그에 걸맞은 벌을 내려 본보기로 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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