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92화 (192/195)

[두번째 후일담 – 묵돌의 서역 원정 (12)]

맹화유궤에서 뿜어져 나와 숲에 들러붙은 불길은 동풍을 등에 업고 게르마니아 지역 곳곳으로 번져나갔다.

묵돌과 서고조선의 20만 대군은 불길이 서쪽의 지평선 너머로 몰려가는 불길을 따라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잿더미를 지나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그 결과 조상 대대로 게르마니아의 숲속에서만 살아오던 부족민 수백만 명은 시뻘건 불길과 유목민 기병대의 추격을 피해 서쪽과 남쪽을 향해 물밀 듯이 몰려 내려갔다.

묵돌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원 역사보다 6세기나 이른 시기에 게르만 민족

대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 게르마니아 남쪽에 있는 이탈리아 반도 북부 리구리아 지역에는 얼굴에 주름살 하나 없는 젊은 로마인 장군이 로마군 2개 군단을 이끌고 해안선을 따라서 난 포장도로 위를 행군하고 있었다.

젊은 장군은 행렬의 중간지점에서 말을 몰며 남서쪽 바다를 바라보더니 입술을 깨물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바다 너머 히스파니아 땅에 바르카 가문의 근거지가 있다는 말이지······. 반드시 가증스러운 하스드루발을 물리치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

부친의 복수를 다짐하는 젊은 장군의 이름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원 역사에서 약관의 나이에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바르카와 그의 동생 하스드루발 바르카를 물리쳐서 조국을 망국의 위기에서 구한 로마 최고의 명장이다.

그는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이 된 터라 로마법에 따르면 군단 지휘권을 획득할 수 없다.

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장수가 명장 한니발과 싸우다 쓰러지는 바람에 로마는 지휘관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던 데다가 스키피오가 뛰어난 웅변으로 스스로 히스파니아의 전장에서 쓰러져간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싶다며 원로원 의원들을 설득한 덕에 특별히 장군이 된 것이다.

하지만 바뀐 역사에서의 스키피오는 아버지의 원수 하스드루발 바르카와 전장에서 마주칠 운명이 아니었다.

“사령관님! 스키피오 사령관님!”

스키피오가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의 눈에 입에 흰 거품을 물은 말을 타고 달려오는 전령의 모습이 보였다.

“에퀴테스(기사). 무슨 일로 그렇게 급하게 달려오는 거지? 한니발이 다시 북상하고 있기라도 한 건가?”

“남쪽이 아니라 북쪽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닷새 전에 로마에 도착한 전령이 말하길 북쪽에서 몰려온 게르만인 무리가 크레모나를 점령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갈리아인도 아니고 게르만의 군대가 쳐들어왔단 말이냐!”

“아이와 여자도 무리에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군대라기보다는 유민에 더 가까운 무리였다고 합니다. 이건 원로원이 스키피오 사령관님께 전달하는 명령서입니다.”

스키피오는 떨리는 손으로 전령이 건넨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펼쳐서 읽어보더니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소리쳤다.

“신이시여! 아버지를 잃는 것으로는 제게 내릴 시련이 부족하셨단 말입니까!”

로마 원로원이 내린 스키피오에게 내린 명령은 히스파니아 원정을 미루고 이탈리아 북부의 포 강을 넘어 로마의 영토를 약탈하려는 게르만족

유민들을 물리치라는 것이었다.

스키피오는 잠시 원로원의 명령을 무시하고 히스파니아 원정을 떠날지를 고민했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게르마니아와 로마의 영토 사이에는 적잖은 갈리아인 부족이 살고 있다. 그런데도 게르만족

야만인들이 포 강까지 도착했다는 건 백만 단위의 게르만족

유민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거겠지. 그놈들이 조국의 영토를 유린하고 병참선을 끊어버리면 어차피 히스파니아 원정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는 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면서 그의 옆에 있는 군단장들에게 명령했다.

“원로원의 명령에 따라 히스파니아 원정을 중지하고 포 강의 전장에서 게르만족을 막고 있는 아군을 지원하러 가겠다!”

* * *

스키피오는 분한 마음을 억누르면서 포 강의 전선으로 향한 지 딱 두 달이 지나던 날, 게르만족이 로마의 영토를 침입했다는 소식은 이베리아반도에서 병력을 모으고 있는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에게도 전해졌다.

하스드루발은 바르카 가문의 본거지 카르타헤나의 요새에서 본국에서 온 전령이 건네준 서신을 읽고 호탕하게 웃어댔다.

“으하하하! 정체불명의 야만인들이 이탈리아 북부에서 날뛰고 있다 이 말이렸다! 위대하신 바알 함몬께서 탐욕스러운 로마인들에게 큰 시련을 내리셨구나!”

그의 곁에 있던 카르타고의 동맹국 누미디아의 왕자 마시니사도 환하게 웃으면서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하스드루발! 드디어 한니발 형을 도우러 갈 수 있게 됐구나!”

“그러게 말이야! 마시니사! 이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모르겠다고! 스키피오 그 지독한 놈한테 몇 년이나 발목을 붙잡히는 바람에 얼마나 답답했는지!”

하스드루발이 말하는 스키피오는 현재 게르만족의 침략을 막아내고 있는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의 아버지이다.

아버지 스키피오는 아들을 로마 역사상 최고의 명장을 길러 낸 장군답게 형 한니발을 도와 이탈리아반도로 향하려는 하스드루발의 군대를 여러 번 물리치면서 그를 방해해왔다.

하지만, 로마의 히스파니아 원정군은 작년인 기원전 211년에 하스드루발과 마시니사에게 당한 단 한 번의 패배로 완전히 궤멸해 버렸고 아버지 스키피오도 전장에서 쓰러졌다.

그 후 하스드루발은 로마 원로원이 다시 히스파니아에 원정군을 보낼 것이라고 예상하고 북쪽으로부터의 침략에 대비하고 있던 차에 게르만족의 로마 침략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20대 후반의 두 젊은 장수는 서로 얼싸안으면서 기쁨을 나눈 다음 곁에 있는 부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들었겠지?! 한니발 장군님께서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신다! 전군에 출진 준비를 서두르라고 전해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그로부터 약 열흘이 지나 기원전 210년 5월 10일의 아침이 밝아오자 하스드루발과 마시니사는 보병 6만 명과 기병 8천 기, 그리고 전투 코끼리 열 마리를 이끌고 카르타헤나를 떠나 이탈리아반도를 향해 진군했다.

그동안 한니발은 로마군의 견제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이탈리아반도 중부로 거침없이 진군했지만, 나날이 늘어나는 게르만족의 남하를 막는 데도 급급했기에 성문을 굳게 걸어 잠글 뿐, 감히 카르타고군의 앞길을 막지 못했다.

덕분에 기원전 210년이 계절이 늦여름에 접어들 때쯤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현대의 제노바 근처에 있는 해변 도로에서 형제를 만났다.

한니발은 8년 만에 만난 동생을 단번에 알아보고는 하나밖에 없는 눈에서 굵은 눈물을 흘리면서 하스드루발을 얼싸안으면서 소리쳤다.

“하스드루발! 대체 이게 얼마 만이냐! 막 카르타헤나를 떠날 때만 해도 아직 앳되던 녀석이 이젠 의젓한 청년이 다됐구나!”

“형! 왜 못 보는 사이에 애꾸눈이 된 거야! 어떤 녀석이 우리 형 눈을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내 오른쪽 눈은 로마인이 아니라 위대하신 신들께서 거둬가셨다. 더러운 늪지대를 건널 때 그만 눈알이 썩어버렸지.”

“아······ 조국을 위해 알프스도 넘은 장군에게 그런 시련을 내리시다니. 좀 너무하신 거 아니야?”

“그런 말 마라. 하스드루발. 우리 형제를 다시 만나게 해주신 분들도 신들이시니 말이다. 오늘 하루는 제사를 지내고 연회를 베풀어서 신께 감사드리자.”

그 후 두 형제는 덩치 큰 소 한 마리를 잡아 카르타고의 신 바알 함몬에게 제사를 지내고 병사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밝자 한니발은 휘하의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와 함께 알프스를 넘은 역전의 용사들이! 내 자랑스러운 동생 하스드루발이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지원군과 공성 무기를 가져왔다! 드디어 가증스러운 로마놈들에게 다시 반격할 때가 된 것이다! 전군 남쪽으로 진격하라! 로마를 포위하고 적들이 성문에 올리브 나뭇가지를 걸 때까지 숨통을 조이는 거다!”

애꾸눈 장군의 짧지만 힘찬 연설에 카르타고의 10만 대군은 우레같은 함성으로 답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한니발 장군 만세! 하스두루발 장군 만세!”

* * *

동생과의 합류로 세력을 불린 한니발의 10만 대군이 남하하기 시작하자 로마 시민들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로마는 스키피오의 분전에도 게르만족

유민들이 속속 포강을 넘어 북이탈리아에 침입했기에 로마는 한니발을 제대로 견제할 수가 없었다.

결국 로마 원로원은 도저히 이탈리아반도 안의 병력만으로는 카르타고군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서지중해의 큰 섬 시칠리아에 파견 나가 있던 맹장 마르켈루스와 그가 지휘하는 병력을 불러들였다.

로마 원로원은 그동안 마르켈루스가 로마군 장수 중 유일하게 한니발과 여러 번 전면전을 벌이고도 호각을 다퉈왔음을 잘 알고 있기에 곡창지대인 시칠리아를 포기하면서까지 최후의 카드를 꺼낸 것이다.

그러나 한니발이 마르켈루스를 상대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은 언제나 로마군이 수적 우위를 이용해 아군의 피해를 감수하고 난전을 벌여왔기 때문이었고 지금은 카르타고군이 앞길을 가로막은 로마군보다 거의 두 배쯤 더 많았다.

결국 마르켈루스는 그의 부하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분전하다가 전투 코끼리의 발에 밟혀서 전사했고 한니발은 그대로 남하하여 로마의 세르빌리우스 성벽을 겹겹이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서고조선의 서역 원정군은 인기척이 거의 사라진 게르마니아의 숲을 지나서 마침내 현대에는 프랑스의 영토인 갈리아 지역 동부에 발을 들였다.

묵돌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평원과 숲을 바라보면서 감탄했다.

“벌써 가을인데 이렇게 날씨가 따듯하다니! 지금쯤이면 흉노의 초원에는 벌써 칼바람이 불고 있겠지!”

다른 흉노와 스키타이의 전사들도 갈리아 땅의 온화한 기후가 마음에 들었는지 주변을 둘러보면서 묵돌의 말에 맞장구쳤다.

“폐하의 말씀대로 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이런 곳을 말하는 거겠지요!”

“숲이 여기저기 많이 보이긴 합니다만, 워낙 산지가 적으니 농사꾼 출신 노예 몇 명만 풀어놓으면 금방 개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 묵돌은 갑자기 서쪽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곁에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잠깐만. 모두 행군을 멈추고 입을 다물어 봐라.”

서고조선의 기병대가 명령대로 제자리에 멈추고 숨을 죽이자 묵돌이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잘못 본 게 아니었군. 희미하지만, 전방에서 두 야만인 무리가 전투를 벌이고 있다.”

항적은 젊은 왕의 말을 듣고 눈을 찌푸리면서 지평선 너머를 바라본 다음 의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폐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소장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자네는 도시 출신이니 그럴 수밖에. 초원의 전사들은 전부 독수리처럼 눈이 밝거든. 자, 그럼 어떻게 할까나······.”

묵돌의 눈에 띈 두 세력은 화재를 피해 도망쳐온 게르만족

유민 무리와 이 땅의 원주민인 갈리아인이었다.

갈리아인은 여러 문명국에 잔인한 야만인이라는 평을 듣는 민족이지만, 게르만족도 그에 못지않게 거친 민족이라 호전적인 원주민의 저항에도 물러서지 않고 맞선 것이다.

묵돌은 잠시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손뼉을 한번 치면서 부하들에게 외쳤다.

“이런 자잘한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건 패왕답지 못한 일이다! 서고조선의 전사들이여! 짐을 따르라! 두 야만인 무리를 모두 쓸어버리고 갈리아 전역을 정복하자!”

젊은 왕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면서 앞으로 달려나가자 서고조선의 10만 기병대가 그 뒤를 따르면서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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