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91화 (191/195)

[두번째 후일담 – 묵돌의 서역 원정 (11)]

기원전 210년 1월 말, 묵돌은 서고조선 전역에 전령을 보내 게르마니아 원정에 참여할 장수와 병사들을 소집했다.

어명을 받은 흉노와 스키타이의 기병들은 아직 매서운 겨울바람을 무릅쓰고 얼어붙은 초원을 지나 그리스인이 지은 요새 도시로 향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게르마니아 원정군 전원이 서고조선의 수도 페르가나에 모이자 묵돌은 연병장을 가득 채운 병사들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외쳤다.

“참으로 장관이로구나! 감히 누가 이렇게 강력한 초원의 전사들에게 대적할 생각을 하겠나!”

그가 모은 병력은 노련한 기병 10만 기에 보병 10만 명.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병에게는 병참 임무만을 맡기고 기병을 주력으로 삼은 극단적인 병력 구성이었다.

서고조선의 다른 장수들도 대부분 두정갑을 몸에 두른 기병대를 보고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한신은 양미간을 구기면서 묵돌에게 진언을 올렸다.

“폐하. 우리 기병대는 분명 고조선의 개마무사대와 자웅을 겨룰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하지만 이번 원정길에는 8척 장신의 야만인 부대가 매복해 있는 게르마니아의 우림을 지나야 함을 잊지 마시옵소서.”

“숲 속에서는 기병에 제 실력을 낼 수 없을 거다 이 말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숙련된 기수라도 무성한 나뭇가지를 모두 피하면서 길도 없는 숲 속을 달리긴 어려울 겁니다.”

“그렇겠지. 게르마니아의 숲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야.”

“설마 그 넓은 숲을 벌목하실 생각이십니까?! 폐하. 서역에 다녀온 무역상들이 말하길 게르만족의 숲은 옛 박트리아 왕국의 영토 전체와 맞먹을 정도로 광활하다고 합니다.”

“두고 보면 알 것이야. 두고 보면. 아무런 걱정할 것 없으니 이제 슬슬 출발하지.”

유방은 그 말을 듣고 앞으로 나서면서 젊은 왕에게 아부를 떨었다.

“폐하께서 어떤 계책을 준비하셨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번 원정을 마치면 분명 폐하의 무명은 흉노의 선우이시자 중원의 패자이신 왕검마저도 넘어서겠지요!”

“하하하하! 유 좌도대위는 나날이 혀가 매끄러워지는구나! 여전히 초원의 전사답지는 않은 친구로구먼!”

“대신 이 세 치 혀로 적잖은 스키타이의 부족장들을 꼬드기지 않았습니까?”

“네 공을 아직 잊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마라. 스키타이 부족과의 협상 건을 잘 이끌었으니 널 좌대장으로 임명하고 좋은 말을 한 필 하사하겠다.”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유방은 묵돌의 앞에 엎드려서 연거푸 절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면서 한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신은 그런 유방의 눈길을 피하면서 쌀쌀맞게 말했다.

“쳇. 그래도 내가 아직 상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라오. 유 좌대장.”

“한신 이놈아! 이번 원정에서 꼭 큰 공을 세워서 나로 좌록리왕 자리를 꿰차고 말겠다!”

묵돌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다시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유방에게 말했다.

“하하하하하하! 유 좌대장. 짐이 이번 원정에 자네를 데려가겠다고 한마디라도 한 적 있던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폐하!”

“아직 스키타이의 초원에는 아직 짐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자가 적지 않다. 지금은 그저 짐을 따르는 초원의 전사들이 두려워서 숨을 죽이고 있을 뿐이지. 넌 아골타 우록리왕과 함께 이곳에 남아서 스키타이의 부족장들을 달래고 그리스인의 반란을 진압해라.”

“네······? 그럼 전 더는 무공을 세울 기회가 없잖습니까?! 폐하!”

“네 재능이 전장보다는 술자리에 더 어울리는 것이 짐의 탓이더냐? 그래서 어명을 받들겠느냐? 받들지 않겠느냐?”

묵돌이 사나운 표정을 지으면서 사납게 쏘아붙이자 유방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더 뻗댔다가는 나도 발석차에 장전돼서 하늘을 날게 될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목숨부터 부지해야겠구먼······.’

그는 다시 묵돌의 앞에 바짝 엎드려 절하며 사죄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폐하! 소장이 주제도 모르고 폐하께 크나큰 무례를 범했사옵니다!”

“지금까지 네가 세운 공적을 봐서 특별히 용서해 주겠다. 하지만 다시 한번 짐의 명에 토를 달았다가는 산채로 기름이 끓는 솥에 집어넣을 줄 알아라.”“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묵돌은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혀를 한번 차고는 기병대를 격려하기 위해 연병장으로 걸어갔다.

유방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이마에 솟아난 식은땀을 손으로 닦아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죽다 살았네. 하마터면 입을 잘못 놀려서 목이 달아날 뻔했구나.”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항적은 유방의 곁으로 다가가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유 형. 대왕의 말씀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오. 군주가 전장에 나면서도 신하에게 후방을 맡기는 건 그만큼 그 자를 신뢰한다는 뜻임을 알고 있지 않소?”

“항 동생. 말이라도 그렇게 해줘서 고마워. 인정머리 없고 잔머리만 잘 굴리는 누구랑은 달리 정말 정이 깊구먼. 그래.”

그 말을 듣고 한신이 유방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비아냥거렸다.

“푸하하하하! 주인이 사냥 나갔을 때 집 지키는 개라!”

“뭐가 어쩌고 저째!”

* * *

한신과 유방의 짧은 실랑이가 끝나자 서고조군의 20만 대군은 페르가나의 성문을 나서서 스키타이의 초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묵돌은 기병 10만 기 중 2만 기에게 수송대의 호위를 맡기면서 후방에 남겨두고 우선 기병 8만기를 이끌고 서쪽으로 말을 달렸다.

젊은 정복군주를 따르는 기병대는 최소한의 식량만 말 등에 싣고 바람같이 초원을 달리면서 적대적인 마을을 약탈하고 요새를 파괴했다.

그 덕에 서고조선의 수송부대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이동하면서 폐허가 된 적진을 이정표 삼아 묵돌의 기병대를 따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순조로운 행군이 약 두 달 동안 계속되자 서고조선의 20만 대군은 드디어 야만의 땅 게르마니아에 발을 들였다.

벌써 양력으로 오월인데도 아직은 조금 쌀쌀한 날씨와 초원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끝이 보이지 않은 시커먼 우림.

한신은 고조선에선 문명인의 무덤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게르마니아의 숲을 직접 보고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 폐하께서는 대체 저 숲을 어떻게 지나시려는지 모르겠구나.”

그 때, 그의 등 뒤에서 젊은 왕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좌록리왕. 넌 짐의 머릿속을 그렇게도 들여다보고 싶은가?”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폐하.”

“이런 재미없는 친구 같으니. 갑자기 뒤에서 말을 걸면 화들짝 놀라면서 허둥거릴 줄 알았는데 안색 하나 변하지 않는군.”

“저 숲속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를 보니 제 마음도 어두워져서 원하시는 반응을 보일 여유가 없었습니다. 소장이 저 숲에 사는 야만인 부족장이라면 저 나무 그림자와 덤불마다 도끼를 든 복병을 숨겨놨겠지요.”

“얼마 전에 짐의 앞길을 가로막는 숲을 치워버리겠다고 말했던 걸 벌써 잊었느냐? 자네는 내 신하 중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자라고 생각했는데 실망스럽구먼.”

“숲속에 숨은 복병을 제거하시겠다는 말씀을 돌려서 하신 것으로 알아들었었습니다.”“짐은 남방인처럼 말을 돌려서 하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 저길 봐라. 저 녀석들이 저 보기만 해도 숨 막히는 숲을 없애버릴 거야.”

“저······ 저건! 저건 맹화유궤가 아닙니까?!”

한신은 한부 왕검이 묵돌에게 선물한 고대의 화염방사기 다섯 대가 우마차에 실린 채로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숲으로 다가가는 장면을 보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폐하! 설마하니 게르마니아의 숲을 불살라 버리실 생각이셨습니까?!”

“뭘 그렇게 놀라느냐? 남방인 중에서도 화전을 일구는 자들이 적지 않거늘. 마침 이 지역은 봄과 여름에 날씨가 건조하고 가을과 겨울이 오히려 습하다고 하니 불길이 금방 번져나갈 거야.”

“아무리 야만인이라도 저 숲속에는 수만 명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폐하!”

“그놈들 목숨이 초원의 전사들 목숨보다 귀하기라도 하다는 거냐?”

“그런 것은 아니옵니다만······.”

“이미 결심을 내렸으니 더는 이 일에 관해 왈가왈부하지 마라. 불을 지른다고 해도 어차피 언젠가는 비가 내릴 것이고 모든 숲을 다 태우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불바다에서 간신히 살아나갈 야만인들의 뇌리에는 상한 물건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장면을 봤을 때의 공포가 평생 사라지지 않을 거다.”

“그리고 그자들은 다른 게르만인 부족으로 퍼져나가서 미신이 섞인 공포스러운 소문을 퍼트리겠군요······.”

“그렇지! 야만인일 일수록 미신에 집착하는 걸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하······ 몇 번 윤회해야 오늘 폐하와 저희가 쌓을 업을 다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초원의 전사를 거느리는 자가 나약한 땡중이나 지껄일 법한 말을 입에 담지 마라! 왕검께서도 함곡관을 불바다로 만들고 진나라를 멸하시어 천하를 평안하게 하셨다! 짐도 그분을 본받아 철륜성왕의 길을 걷고자 하는 게 뭐가 잘못이라는 말이냐!”

“소장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폐하.”

한신이 목숨에 위협을 느끼고 한발 물러났고 묵돌은 맹화유궤를 운반하는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저 음침한 숲에 불꽃을 퍼부어라!”

젊은 폭군의 외침이 울려 퍼지자 흉노의 병사들은 숲을 조준한 다음 원 역사에선 송나라 시대에나 등장했던 화염방사기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잡고 펌프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숲속에서 우레같은 함성과 함께 아랫도리만 짐승 가죽으로 가린 게르만족

병사들이 손에든 도끼와 창을 휘드려면서 물밀 듯이 몰려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침략자들을 죽여라!”

묵돌은 적의 기습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침착하게 후방의 궁기병대에 사격 명령을 내렸다.

“궁기병대 1열 발사!”

큰 깃발을 든 기수가 어명을 전하자 말에서 내려와 있던 궁기병대는 튼튼한 각궁으로 화살을 발사했다.

- 퉁! 퉁! 투둥!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무지개처럼 큰 포물선을 그리면서 아군 병사들의 머리 위를 지나 적진에 비처럼 쏟아지자 수많은 게르만인이 온몸에 화살을 맞고 힘없이 쓰러졌다.

“으아아아악!”

“저렇게 멀리서 쏜 화살이 여기까지 날아오다니!”

그렇게 게르만족

복병의 진격이 잠시 주춤해진 사이 다섯 대의 맹화유궤가 소방차에서 물을 뿜듯 불줄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맹화유궤의 사로에 서 있던 게르만족

병사들은 온몸이 불이 붙은 채로 전우들 사이를 뛰어다녔고 순식간에 고요했던 숲에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누런 놈들이 사악한 마술을 부린다!”

덩치 큰 게르만족

전사들은 조금 전의 용맹이 무색할 정도로 숲속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맹화유궤의 사수들은 우마차를 숲에 더 가까이 대고는 다시 불을 뿜었다.

- 화아아아아아아악!

한신은 나무에 옮겨붙은 불꽃이 숲으로 번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참담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폐하. 게르마니아의 남쪽에는 로마라는 나라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겁먹은 야만인들이 떼를 지어 도망치면 그 나라는 존망의 기로에 서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래? 그거 안됐구나. 하지만 저런 야만인 따위에게 멸망할 나라 같으면 어차피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약소국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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