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90화 (190/195)

[두번째 후일담 – 묵돌의 서역 원정 (10)]

묵돌의 서역 원정군은 박트라 성을 점령한 후 힌두쿠시 산맥과 아무다리야 강 사이를 휩쓸고 다녔다.

그리고 그들의 입을 통해 에우튀데모스 왕이 최측근만 데리고 스키타이의 영토로 도망쳤다는 소식이 이미 소아시아 전역에 전해졌다.

지방 도시를 지키던 그리스-박트리아 왕국군은 수도가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 전의를 상실해버렸기에 뿔뿔이 흩어져 외국으로 도망치거나 바로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나무 가지를 망루 위에 걸고 성문을 열며 항복했다.

묵돌은 직접 기병대를 몰고 다니면서 화살 한 발 쏘지 않고 그리스인이 다스리는 성과 마을의 주민들에게 항복을 받아낼 때마다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감탄했다.

“그리스인은 큰 싸움에서 한번 지면 대부분 저항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 사실이었구나! 왕검께서는 대체 이 사실을 어떻게 아셨을까?”

원 역사에서 알렉산드로스 3세 제국에서 떨어져 나간 그리스계 왕국인 셀레우코스 왕국과 마케도니아가 로마와의 큰 전투에서 단 한 번 크게 패하고 항전 의지를 잃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미래의 역사 지식 중 일부를 묵돌에게 알려주어 서역의 여러 적대적인 나라나 민족의 특성에 맞춘 전략과 전술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그 덕에 흉노의 기병대는 젊은 사령관을 따라 과감한 공세를 이어 나갔고 그해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모든 영토를 점령했다.

그러나 묵돌은 전성기의 초나라 땅과 비슷한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도 바로 다음 원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음 목표는 에우튀데모스를 받아들인 스키타이의 유목민 부족

무리인가. 아무래도 박트리아 왕국의 나약한 농사꾼들과 비교하면 힘든 상대겠지.”

하나같이 거친 유목민 중에서도 스키타이인은 특히 흉포하고 잔인한 문화로 유명했다.

비록 스키타이의 전성기가 오래전에 지났다고는 하지만, 묵돌은 전쟁 포로의 가죽을 벗겨 망토를 만들고 사람의 해골로 만든 술잔이 집집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는 초원의 전사들이 단결하여 자기를 적대하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그놈들이 한 부족

아래에 뭉쳐서 힘을 합치면 아무래도 상대하기가 쉽지는 않겠지. 내년 봄이 오자마자 서역의 초원에서 가장 강력한 부족을 궤멸시키면 감히 이 몸에게 대적하려는 스키타이인은 없을 거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천막 밖으로 나오더니 입구를 지키는 병사에게 지시했다.

“지금 한 좌록리왕은 어디 있느냐?”

“연병장에서 고조선 출신 보병의 훈련을 참관하고 있습니다.”

“긴히 할 말이 있으니 당장 불러와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우현왕님.”

병사는 묵돌의 명령을 받자마자 연병장으로 달려가 한신을 불러왔다.

한신은 천막 안으로 들어서면서 호랑이 가죽을 씌운 의자에 앉아있는 묵돌에게 읍했다.

“부르셨습니까. 우현왕님.”

“한 좌록리왕. 지금 데리고 있는 병사들을 이끌고 페르가나로 이동하겠다. 그리고 다른 지역의 수비대에도 전령을 보내 최소한 페르가나로 모이라고 전해라.”

“박트리아 왕국 북동쪽 끝에 거의 모든 병력을 모으신다고 하면······ 계절이 바뀌자마자 스키타이 원정을 떠나실 생각이신지요?”

“그렇다. 도망친 에우튀데모스를 받아준 건방진 촌놈들을 살려둘 순 없으니까.”

“하오나 폐주 에우튀데모스를 받아들인 부족은 분명 스키타이에서 가장 큰 부족이지만, 모든 스키타이인의 의지를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전쟁을 벌이기 전에 반간계를 써서 스키타이 부족들 간의 사이를 벌려 놓으면 어떻겠습니까?”

“반간계?”

“다른 유목민족처럼 스키타이도 크고 작은 부족

수십 개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당연히 이 중에는 서로 나쁜 부족도 많이 있지요. 그러니 폐주 에우튀데모스를 받아들인 부족과 적대하는 부족에 고운 비단과 귀한 보석을 주면서 잘 구슬려 우현왕님의 대업을 돕도록 해보시면 어떨는지요?”

“흠······ 뇌물을 보내란 말이지. 남방인 출신다운 술수로구먼.”

“아사달에 계신 왕검께서도 막강했던 진나라를 상대하실 때 무력보다는 지략을 즐겨 사용하셨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 묵돌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있겠느냐? 당장 박트라의 왕실 보물창고에서 얻은 전리품 중 스키타이의 촌놈들이 보면 눈이 뒤집힐만한 것들을 골라 놔라. 올해 겨울이 끝나기 전에 우리 편을 들 부족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그리하겠습니다. 우현왕님.”

* * *

묵돌의 명을 받은 한신은 스키타이의 여러 부족에게 보낼 선물을 준비하고 유방에게 사절단장의 역할을 맡겼다.

유방은 한신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온갖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다른 사절 단원들과 함께 페르가나의 성벽을 나섰다.

하지만 막상 스키타이의 부족장들을 만나면 특유의 유들유들한 성격과 말투로 협상을 잘 이끌어 다음 해 겨울까지 전체 스키타이 부족

중 4분의 1과 동맹을 맺었고 나머지 4분의 1은 중립을 지키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반 묵돌파 스키타이 부족들은 친 묵돌파나 중립 부족들을 배신자로 간주해서 흉노의 기병대가 페르가나를 떠나기도 전에 동족의 부락과 목초지를 침공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묵돌은 손쉽게 현대의 남러시아 지역의 적대 부족들을 격파해 나가기 시작했고 약 반년 만에 드디어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왕 에우튀데모스를 붙잡아서 참수한 후 스스로 현대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남러시아를 아우르는 제국의 왕위에 올랐다.

묵돌이 페르가나의 관청을 개조한 궁궐에서 즉위식을 마치고 알현실에 늘어서 있는 장수들에게 선포했다.

“새 나라의 국호를 서고조선이라 명하겠다! 조정의 각 관청과 문관의 관직체계는 고조선의 제도를 따르되 작위와 군대의 편제는 흉노의 전통을 따르겠노라!”

흉노의 장수들은 함께 전장에서 말을 달리던 젊은 맹장이 왕위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기쁨의 눈물을 글썽이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대왕 폐하 만세! 대왕 폐하 만세!”

“서고조선이여 영원하라!”

그때, 유방이 만세를 부르는 흉노 장수들의 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가서 푸른 늑대와 용이 새겨진 옥좌에 앉아있는 묵돌에게 읍하면서 축하의 말을 건넸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원정을 시작한 지 두 해도 지나지 않아서 서역 원정을 마치고 새 나라를 세우시다니요! 후세의 역사가들은 폐하를 아사달에 계신 왕검 다음으로 위대한 정복 군주로 기록할 겁니다!”

유방은 묵돌에게 아부하기 위해 그 말을 했지만, 오히려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말았다.

“짐의 업적이 아직도 왕검 폐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말인가?”

“폐······ 폐하. 그런 말씀이 아니오라······.”

묵돌은 잠시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옥좌의 팔받침을 세게 내리쳤다.

- 쾅!

기뻐하던 흉노의 장수들이 그 소리를 듣고 입을 다물자 묵돌이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유 좌도대위.”

“폐······ 폐하······.”

“자네 말이 맞다.”

“제가 죽을 죄를 지었······ 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아사달에 계신 왕검께서는 흉노에서도 가장 약한 부족

정도의 병력밖에 없던 약소국 조선의 태자로 태어나셔서 겨우 30대 후반의 나이에 흉노의 선우이시자 중원의 패자가 되셨지.”

“폐하께서 이루신 업적도 그에 못지않게 위대합니다!”

“그렇지 않다. 분명 짐의 성과는 진나라와 초나라 정벌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아. 게다가 나는 처음부터 숙부이신 왕검과 아버지이신 좌현왕께서 물려주신 강력한 10만 대군을 이끌고 있었잖나? 역시 이 정도로 만족할 순 없어.”

그 말을 들은 항적이 들뜬 목소리로 묵돌에게 말했다.

“폐하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점령지의 내정이 안정되는 데로 또 원정을 떠나시지요!”

“항 우록리왕. 이 넓은 영토의 내정을 완전히 다지려면 대체 몇 년이 걸릴 거로 생각하는가?”

“음······ 소장은 정치에 문외한이지만, 적어도 열 해 정도는 걸리지 않겠습니까?”

“짐은 그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다. 내년 봄이 오면 바로 서쪽으로 원정을 떠나겠다. 왕검께서 말씀하셨던 대서양이라는 바다를 내 눈으로 볼 때까지 원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야.”

그 순간, 한신이 묵돌의 앞으로 나오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스키타이 영토 서쪽에는 원정을 마케도니아 등 세력이 강한 여러 그리스계 국가가 여럿 있습니다! 이 나라들이 동맹을 맺고 대항하면 아무리 서고조선군의 세력이 강력해도 큰 낭패를 면치 못할 겁니다!”

유방도 그 순간만큼은 한신의 의견에 찬성하면서 왕에게 진언을 올렸다.

“폐하! 지중해 주변에 나라 중에는 고조선과 교역을 하는 나라도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왕검께서도 폐하께 병사와 무기를 맡기시면서 고조선에 우호적인 나라는 공격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묵돌은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한신과 유방에게 대답했다.

“하하하하하! 아무리 내가 망나니라도 숙부의 아버지의 나라에 해가 될 일을 하겠는가? 고조선과 아무런 관계없는 야만인의 땅을 공격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

유방은 묵돌의 대답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한신은 오히려 더욱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여기서 서쪽에 있는 야만인의 영토라면 설마 서역인들이 게르마니아라고 부르는 지역을 정복하실 생각이신지요?!”

“역시 한 자록리왕은 짐의 뜻을 이미 짐작했군.”

“폐하! 듣자 하니 게르만 지역은 온통 우림과 늪지대이고 날씨가 추워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야만인들은 하나같이 8척 장신의 힘센 거인이라고 하더군요. 이런데도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척박하고 쓸모없는 땅을 정복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그 어떤 문명인도 게르만인의 영토를 지나고 무사한 적이 없다. 그곳을 지나 대서양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역사에 위대한 정복자이자 탐험가로서 이름을 남기겠지.”

“허허허······.”

“그뿐이랴? 게르만 지역 서쪽의 갈리아라고 부르는 땅은 역시 우림 천지이긴 하지만, 기후가 온난에 잘 개간하면 가축을 짓기에 농사를 짓기에 좋은 곳이라고 한다. 짐은 갈리아의 서쪽 해안에 도착할 때까지 원정을 멈출 생각이 없으니 더는 이 일에 반대하지 마라.”

기원전 3세기의 갈리아는 현대의 프랑스가 있는 지역으로 유럽 대륙의 서쪽 끝이었다.

한신은 젊은 왕의 말을 듣자마자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목이 달아날까 봐 감히 더는 반대할 수 없었다.

‘이 미친 전쟁광 같으니라고! 자기는 명령만 내리고 게르만의 우림을 무사히 지날 방법은 나한테 찾아내라고 할 것 아닌가! 이럴 바엔 그냥 아사달에서 박사 노릇이나 하면서 사는게 나을지도 몰랐겠구나!’

묵돌은 한신의 솔직한 표정을 보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하면서 미소지었다.

‘감히 짐 앞에서 저렇게 벌레 씹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다니. 장수로서는 일류라도 정치인으로서는 삼류로구먼. 그러니까 오히려 안심하고 곁에 둘 수 있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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