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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86화 (186/195)

[두번째 후일담 – 묵돌의 서역 원정 (6)]

갈색 한혈마를 탄 항적은 양손에 편곤과 방금 전사한 뺏은 창을 들고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장수들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나갔다.

그러자 세 그리스인 장수 중 한 명이 말의 고삐를 잡아당겨 속도를 줄이면서 좌우에서 말을 달리는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네메아의 사자처럼 흉포한 놈이군! 한 명씩 덤비면 승산이 없겠어! 내가 정면에서 공격을 받아 낼 테니까 자네들은 저놈을 좌우에서 둘러싸게!”

“알겠네! 부디 몸조심하게!”

“전쟁의 신 아레스께서 자네를 지켜주시길!”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세 장수는 서로 거리를 벌리면서 포위망을 짜려고 했지만, 항적은 그들이 진형을 짤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기합을 지르면서 왼손에 든 창을 힘껏 던졌다.

“흐업!”

고대 그리스의 마상창은 한 손으로 던지기에는 무겁고 길었지만, 항적의 손끝을 떠난 창은 번개처럼 날아가서 정면에서 달려오는 적장이 탄 말의 마갑으로 가려지지 않은 콧잔등 정 중앙에 명중했다.

- 히히히히히히힝!

코에 창이 박힌 말은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옆으로 넘어지면서 먼저 바닥에 떨어친 주인의 위로 쓰러졌다.

“안돼! 으아아아악!”

그리스인 장수는 흙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채로 옆으로 굴렀지만, 결국 마갑까지 걸친 묵직한 말의 몸뚱이에 깔려서 즉사하고 말았다.

좌우로 거리를 벌리고 있던 남은 그리스인 장수들은 다시 한번 전우가 어이없이 전사하는 장면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말의 고삐를 당기면서 주춤했다.

항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오른쪽으로 말머리를 돌린 다음 적장을 향해 돌진하면서 외쳤다.

“한심한 녀석들! 명색이 장수라는 자가 겨우 이 정도로 기세가 꺾였단 말이냐!”

그는 급히 머리 위로 창을 들어 올리는 적장의 얼굴에 편곤을 휘둘렀다.

- 퍼억!

철제 찰갑을 입은 그리스인 장수는 얼굴이 완전히 뭉개진 채로 몸이 뒤집히면서 낙마해버렸다.

그러자 하나 남은 그리스인 장수는 겁에 질린 나머지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고 항적은 그 뒤를 쫓으면서 후방에서 달려오는 부하들에게 외쳤다.

“봐라! 서역인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군 전속력으로 돌격하라!”

젊은 우도대위의 맹활약에 자극을 받는 흉노의 기병 5천 기는 쐐기 모양 진형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그리스-박트리아 왕국군의 초승달 모양 진형에서 가장 오목한 부분을 들이받았다.

- 퍼억! 콰과각!

유목민 기병대가 휘두른 편곤의 강철 추가 그리스인 기병의 머리와 어깨에 명중할 때마다 울려 퍼지는 둔탁한 타격음.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기병대도 튼튼한 찰갑을 입고 있었지만, 말과 기수의 체중까지 실린 묵직한 둔기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반면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그리스인 기병들이 휘두른 창은 흉노 기병의 두정갑에 번번이 막혔기에 그리스 박트리아 왕국 기병대의 초승달 모양 진형은 순식간에 반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항적은 앞길을 가로막는 적 기병 십여 기를 처치하면서 가장 먼저 적진을 관통한 다음 잽싸게 주변을 살피고는 불과 몇 초 만에 다음 전술을 떠올렸다.

‘반으로 갈라진 적진에서 왼쪽보다는 오른쪽의 적군들이 더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적장이 진형 중앙에서 왼편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지휘체계가 무너진 모양이군.’

그는 동물적인 직감으로 전황을 파악하자마자 다시 우레 같은 목소리로 외치면서 말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내 뒤를 따르라! 적진의 후방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적군의 머리를 두들겨 주자!”

흉노의 중기병대는 선두의 우도대위를 따라 그리스인 기병대에게 편곤을 휘두르면서 말을 달렸고 진형 우측의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기병대는 상관의 지휘를 받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적이 덤벼드는 바람에 큰 혼란에 빠졌다.

“기병대장님!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우선은 지금의 위치를 지켜라! 장군님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멋대로 이동했다간, 지금의 진형마저도 흐트러지고 만다!”

“하지만, 바르바로이 기병대가 최후방의 아군 곁을 지나가면서 아군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기병대장님! 어서 후방의 아군을 지원해야 합니다! 적 기병대가 도리깨처럼 생긴 둔기를 휘두를 때마다 아군 머리가 수박처럼 박살 나고 있단 말입니다!”

“큭······ 어쩔 수 없구나! 모두 나를 따르라!”

초승달 모양 진형 오른편의 그리스인 기병대장들이 장군의 명령을 전달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각자의 판단으로 휘하의 부대를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기병대의 진형은 완전히 뭉그러지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항적은 부하들과 함께 손쉽게 적진의 측면으로 돌아와서 다시 부하들에게 공격명령을 내리면서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이제 적에게 포위당할 염려는 없다! 서역인들이 진형을 정비하기 전에 눈앞의 적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처치해라!”

젊은 우도대위가 외침이 사방에 울려 퍼지자 흉노의 기병 5천 기는 편곤을 들고 혼란에 빠진 적에게 달려들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선우이신 왕검과 우현왕을 위하여!”

항적과 흉노의 기병대는 굶주린 늑대무리가 겁먹은 양을 사냥하든 어찌할 줄 모르는 적군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으아아악!”

“전쟁의 신 아레스시여! 저희를 지켜주소서!”

이렇다 할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둔기에 맞아 쓰러지는 그리스인 기병들.

하지만 흉노의 기병대가 적에게 포위당하지 않기 위해 두 적진 오른편으로 몰려가서 양분됐던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기병대가 다시 한 덩어리로 뭉쳤고 그리스인 장군은 간신히 다시 아직 살아남은 부하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급히 고개를 돌려 전장을 둘러본 다음 전장의 상황을 머릿속에 그렸다.

‘아직 상하지 않은 기병은 절반 정도인가······ 적장의 흉흉한 기세에 압도당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거의 절반이나 되는 병력을 잃었구나. 하지만 퇴각명령을 내리면 적군이 추격해와서 우리 병사와 말만 다치겠지······. 이렇게 된 이상 피로스의 승리를 거두는 한이 있더라도 난전을 벌이는 수밖에 없다.’

그리스인 장군은 허리춤에서 고대 그리스의 외날검 팔카타를 뽑아 높이 들면서 병사들을 독려했다.

“박트리아 왕국의 용사들이여! 바르바로이 마적 떼에게 겁먹지 마라! 적군은 강을 건너 이곳까지 달려오느라 많이 지친 데다 여전히 우리보다 수가 적다! 모두 내 뒤를 따르라! 야만스러운 유목민 무리에게 그리스인의 용기를 보여주자!”

그가 짧은 연설을 마치자마자 검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을 달리자 그리스인 기병들은 마음을 다잡고 검과 창을 들고 장군의 뒤를 따라서 전장에 뛰어들었다.

그 후에 펼쳐진 전투 양상은 치열한 난전.

전장 곳곳에서 함성과 비명, 병장기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고 그리스인과 흉노인이 흘린 피가 아무다리야강을 붉게 물들였다.

흉노의 기병대는 무기를 휘두르며 수적으로 우세한 적 기병대를 상대하면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지만, 새벽에 일어나서 강행군한 데다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사람과 말이 함께 지쳐갔다.

항적은 자기가 탄 명마조차 숨을 헐떡이기 시작하자 혀를 차면서 편곤의 자루를 움켜쥐었다.

“쯧! 서역인 야만인들이 예상보다 훨씬 끈질기구나! 이대로 소모적인 싸움을 계속하면 우리가 밀릴 텐데!”

그는 환도와 편곤을 양손에 들고 자유자재로 휘둘러 겁 없이 달려드는 적 기병을 처치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청동 흉갑을 입은 적장을 발견하고는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유난히 비싸 보이는 갑옷을 입고 있구나! 분명 저놈이 적장이렷다! 추야! 조금만 더 참아라! 저 녀석만 처치하면 푹 쉬게 해주마!”

항적의 애마는 주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뜨거운 콧김을 한번 뿜어내고는 온 힘을 다해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장군에게 달려갔다.

- 두두두두두두두두!

그러자 장군의 곁을 지키던 그리스인 기병들은 적군의 피가 흥건하게 묻은 두정갑을 입은 8척 장신의 장수가 덩치 큰 갈색 말을 타고 돌진해오는 모습을 보고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놈을 막아라! 아까 기병대장 세 명을 혼자 처치했던 놈이야!”

“장군님께서 위험하시다! 장군님을 지켜라!”

순식간에 장군의 곁으로 모여든 그리스인 부장과 기병 열 기가 외날검과 창을 앞으로 내밀면서 차례대로 적장을 향해 달려왔다.

항적의 근처에서 싸우던 호위역의 부장 두 명이 홀로 적진 깊숙한 곳으로 돌격하는 우도대위를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그의 뒤를 따랐다.

“우도대위님! 그만두십시오! 너무 무모합니다!”

“안 들리시나 봐! 어서 따라가자고!”

그러나 젊은 맹장은 울상이 된 부하들의 다급한 외침을 듣고도 오히려 다시 말의 옆구리를 걷어차면서 속력을 올렸다.

“이럇!”

항적의 솥뚜껑처럼 커다란 손에 쥔 편곤과 환도가 허공에 궤적을 그릴 때마다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던 그리스인 기병들은 두개골이 박살 나거나 목이나 팔에 피를 흘리면서 볏짚처럼 쓰러졌다.

그리스인 장군은 자신을 호위하던 부하들이 차례로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방패와 외날검을 양손에 들고 고함을 지르면서 항적을 향해 돌진했다.

“짐승 같은 바르바로이 같으니! 네놈을 따돌릴 수 없다면 적어도 함께 저승의 강을 건너야겠구나!”

항적은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정면에서 부딪쳐오는 적장을 보고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하하하! 서역인 중에도 대장부라고 부를만한 녀석이 한 놈쯤은 있었구나! 네 도전을 받아주마!”

그는 그렇게 소리치면서 왼손에 든 환도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대신 양손으로 편곤의 자루를 쥐고 적장의 머리를 노리고 힘차게 휘둘렀다.

“흐업!”

그리스인 장군은 스스로 무기를 버리는 적장의 행동에 놀라는 찰나 왼쪽 측두부를 향해 쇳덩이가 날아들자 급히 왼손의 방패를 들어 편곤을 막았다.

- 퍼억!

항적의 일격에 작은 원형 나무 방패는 박살나 버렸고 그리스인 장군은 왼 팔뼈가 골절되면서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크으윽!”

그는 허벅지로 말의 허리를 꽉 조이면서 간신히 낙마하지 않고 몸을 뒤틀어 자기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젊은 적장의 뒷 을 향해 외날검을 휘둘렀다.

“이 건방진 녀석!”

항적은 그의 동작을 예측하고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 검을 피하더니 왼손으로 적장으로 검을 쥔 손목을 낚아챈 다음 힘껏 움켜쥐었다.

“끄아아아악!”

그리스인 장군은 오른손목 뼈가 산산조각나는 격통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항적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고통스러워 적장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내가 휘두른 편곤에 한 대 얻어맞고도 숨이 붙어있는 놈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네가 처음이다. 어지간하면 살려서 부하로 삼고 싶지만, 이 난전을 끝내려면 그럴수 없겠구나.”

그는 말에서 내린 다음 그리스인 장군이 떨어트린 날이 두꺼운 외날검을 오른손에 들고 기합을 넣으면서 적장의 목을 내리쳤다.

“흐읍!”

그리스인 장군의 머리가 목에서 떨어져나오자 항적은 적장의 머리를 오른손에 높이 들고 우레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스어를 할 줄 아는 자들은 저 끈질긴 서역인들에게 이 몸의 말을 전해라! 나 우도대위 항우가 적장의 목을 벴다! 지금이라도 항복하는 자는 목숨만은 살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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