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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85화 (185/195)

[두번째 후일담 – 묵돌의 서역 원정 (5)]

한신은 휘하의 궁기병을 이끌고 페르가나 주변을 휩쓸고 다니면서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북동부 일대를 공격하면서 항적이 지휘하는 기병대가 남하할 시간을 벌었다.

이로 인해 적잖은 농장과 마을이 불탔지만, 이에 대한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대응은 굼뜨기만 했다.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적국인 스키타이계 유목민의 나라 파르티아나 셀레우코스 왕국의 군대가 침입할지도 모르는 왕국의 서쪽 국경지대와 수도 박트리아에 병력 대부분을 배치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항적은 실크로드의 가장 유명한 중간 기착지인 사마르칸트를 지나쳐서 박트라를 향해 뻗은 길을 따라 거침없이 진격하여 국경을 넘은 지 닷새 만에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남부에 흐르는 아무다리야 강의 북쪽 강변에 도착했다.

그는 강가에서 말을 멈추고 유유히 흐르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여기가 우현왕님께서 말씀하신 그 강인가. 과연 쉽게 건널 수 있는 곳은 아니겠구나. 그나저나 들었던 것과는 달리 서역인 놈들은 강을 건널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묵돌이 항적에게 내린 명령은 적 기병대가 아무다리야 강을 건너 서역 원정군의 병참선을 끊지 못하게 하는 것.

그러나 수도 박트라에서 출격한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중기병대는 오히려 항적이 이끄는 기병대의 도강을 방해하려는 듯 강 건너의 도강지점을 지키고 있었다.

항적은 그 모습을 유심히 살피다가 오직 직감만으로 박트리아 왕국의 전략을 파악한 다음 휘하의 장수들에게 말했다.

“우현왕께서는 적기병대가 북진하여 우리와 한 좌대도위가 이끄는 별동대를 요격하려 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적국의 왕은 아무래도 북부가 유린당하든 말든 수도 주변만 방어할 생각인 모양이다.”

그 말을 듣고 천인대장 중 한 명이 그에게 대답했다.

“확실히 그렇군요. 아무도 박트리아 왕국 남부의 군량 상황이 우현왕께서 예상하신 것보다 많은 모양입니다. 곡창지대인 북부를 저렇게 쉽게 포기하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자네 말대로다. 지금은 발 빠른 기병만 먼저 강 건너에 도착해서 모여있지만, 며칠만 지나도 십만에 가까운 보병대가 도강지점에 배치될 거고 그럼 우리군 본대가 강을 건너기 어려워져서 적국의 수도를 공격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강을 건너 적기병대의 옆구리를 찌르자!”

그러자 흉노 출신 부장들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입을 모아 젊은 우도대위를 말렸다.

“항 우도대위님! 불과 며칠 전에 우현왕께서 적 중기병대와의 전면전을 피하라고 명하신 것을 잊으셨습니까?!”

“사전에 입수한 정보가 정확하다면 적군의 수는 우리보다 최소한 두 배 정도 많을 겁니다! 게다가 강을 건너느라 말과 사람이 모두 지친 상태에서 적군을 공격해봐야 분명 적보다 우리 전사들이 더 많은 피를 흘릴 겁니다!”

“우대도위님! 부디 방금 내리신 명령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항적은 부장들의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호통쳤다.

“닥쳐라! 전황이 바뀌었으면 당연히 새로운 작전을 세워서 적을 물리칠 생각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초원의 전사라는 자들이 어찌 현장에 맞지 않는 낡은 작전을 운운하며 목숨을 아낄 생각만 한단 말이냐! 지금부터 이 일로 시끄럽게 구는 자는 항명죄로 다스리겠다!”

그는 말을 마치면서 오른손에 들고 있는 편곤의 추로 곁에 있는 부장들이 입고 있는 갑옷을 툭툭 치면서 위협하여 부하들의 입을 틀어막고는 강변에 숙영지를 짓고 정찰기병을 풀어서 수심이 얕아 배를 타지 않고도 강을 건널 수 있는 도강지점을 찾게 했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자 정찰 임무를 마치고 숙영지에 돌아온 기병이 항적에게 보고했다.

“항 우도대위님. 여기서 동쪽으로 말을 타고 두 시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물살이 조금 빠르지만, 말을 타고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수심이 얕은 도강지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래? 그 근처에서 적군을 본 적 있느냐?”

“보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박트리아 왕국군은 우리군 숙영지 근처와 아무다리야 강 하류에 있는 나루터를 지키는 데만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기병 1만 기로 이렇게 긴 강의 모든 도강지점을 지키는 건 불가능하거든.”

“그렇지만 우리 군이 움직일 때 강 건너에 진을 치고 있는 적군이 따라붙으면 저희가 찾은 도강지점에서 강을 건너는 건 어려울 겁니다.”

“그럼 적군 몰래 움직이면 될 일이잖느냐? 오늘 해가 지면 숙영지를 철거하지 않고 횃불을 밝혀두고 은밀히 도강지점으로 이동하겠다. 전군에 내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든 출격할 준비를 하라고 전해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항 우도대위님.”

그 날밤 자정이 지나고 아무다리야 강변에 어둠이 깔리자 항적이 말을 탄 채로 숙영지 울타리 안에서 대기 중인 장수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지금부터 야간 도강작전을 시작한다. 모두 달빛을 반사하지 못하도록 두정갑의 징에 재를 바르고 사흘 치 식량을 챙겼나?”

“그렇습니다. 항 우도대위님.”

“그럼 지금부터 숙영지 밖으로 나가겠다. 강 건너의 적진과 멀어지기 전에는 말발굽 소리가 크게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진군해야 한다.”

항적은 그렇게 말하면서 먼저 타고 있는 말의 옆구리를 살짝 걷어차면서 천천히 숙영지 밖으로 나섰고 그 뒤를 다양한 흉노의 부장과 기병들이 따랐다.

그들은 강을 따라 천천히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말발굽 소리가 적진에 닿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벌어지자 전속력으로 말을 달렸고 약 네 시간 후에 정찰병이 찾아낸 도강지점에 도착했다.

항적은 병사와 말이 잠시 숨돌릴 틈을 준 다음 다시 엄한 목소리로 전군에 명령을 내렸다.

“동이 트면 적군은 우리군 숙영지가 빈 걸 알아채고 사방에 정찰대를 보내서 우리를 찾느라 우왕좌왕할 것이다. 그때를 노려 적진을 공격하려면 서둘러 강을 건너고 다시 행군을 시작해야 한다. 모두 일어나서 말 위에 올라라! 오늘 점심을 먹기 전에 위대한 승리를 거둬 역사에 이름을 남기자!”

젊은 우도대위가 말을 마치자 흉노의 장수와 병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읍하면서 다시 애마의 등에 올라 아무다리야 강을 건넌 다음 서쪽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항적의 기병대가 은밀히 적진을 향해 접근하는 동안 동이 텄고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기병대를 지휘하는 장군은 하루아침에 적군의 숙영지가 텅 비었다는 정찰병의 보고를 받고는 부하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바르바로이(야만인) 기병대는 급히 남하하느라 수레를 끌고 오지 못하는 바람에 군량이 넉넉지 않아서 인근 마을을 약탈하기 좋은 곳으로 움직인 모양이다. 아무다리야 강 너머에 정찰대를 보내서 적군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파악하라.”

“알겠습니다. 장군님.”

기원전 3세기의 그리스인 장수는 아직 힘과 지구력이 좋은 한혈마를 탄 기병대와 싸워본 적이 없었기에 적 기병대가 불과 하룻밤 사이에 아무다리야 강 상류의 도강지점으로 이동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항적의 전술을 읽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장군의 명을 받은 부장이 지휘관 막사를 막 나서려는 순간, 밖에서 우렁찬 뿔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 뿌우우우우우우우!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장군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막사 입구를 지키는 병사에게 물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적습을 알리는 뿔나팔 소리가 들려오다니!”

“장군님! 동쪽의 초원에서 흉노의 중기병대가 우리 숙영지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

그리스인 장군은 병사의 보고를 듣고는 숙영지의 동쪽 입구로 달려가서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먼발치에서 달려오는 항적의 기병대를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믿을 수가 없구나! 바르바로이 기병대가 하늘을 날아서 강을 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의 곁에 있던 몇몇 부장도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장군에게 말했다.

“장군님!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아직 적군과의 거리가 있으니 우선 부대를 남쪽으로 물리고 사흘 전에 박트라에서 출발한 보병부대와 합류하는 게 어떨는지요?”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장군은 호들갑을 떠는 부하들의 말을 들으면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흉노의 기병대를 바라보다가 싱긋 웃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아무래도 승리의 여신께서 우리에게 미소 지으시는 것 같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흥분을 가라앉히고 전방을 잘 살펴봐라. 저 정도면 크기의 흙먼지라면 적 기병대의 규모는 아마 4,500기에서 5천 기, 아무리 많아 봐야 6천 기를 넘지 않겠지.”

“아!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적군의 수는 우리의 절반밖에 안 된다! 모두 무기를 들고 말 등에 올라라! 저 건방진 바르바로이 마적 떼에게 박트리아 왕국 기병대의 무서움을 보여주자!”

장군이 호기롭게 외치자 사기가 오른 그리스인 병사들은 마상용 창을 들고 말 위에 올라 숙영지 밖으로 달려나왔다.

그 모습을 본 흉노 중기병대의 장수와 병사들이 새까맣게 몰려오는 적군을 보고 바짝 긴장하자 항적이 선두에서 우레같은 목소리로 외치면서 손에 든 편곤을 높이 들었다.

“초원의 전사들이여! 겁먹지 마라! 한 사람이 서역인 두 명씩만 때려죽이면 우리가 이기는 싸움이다! 쐐기진형으로 아단번에 적진을 분쇄하라!”

항적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타고 있는 말의 옆구리를 세게 걷어차면서 더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고 용기를 되찾은 흉노의 기병들은 끝이 뾰족한 삼격형 모양 진형을 짜면서 그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을 본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기병대의 장군은 곁에 있는 부장에게 급히 명령했다.

“건방진 바르바로이들이 감히 우리군 진형을 반으로 갈라서 지휘체계를 흩트리려는 모양이다! 전군에 초승달 모양 진형으로 적을 삼면에서 포위하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장군님!”

장군이 전해지자 철로 만든 찰갑과 마갑을 입은 그리스인 중기병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오목한 초승달 모양의 진형을 짰다.

흉노기병대의 선두그룹이 초승달 모양 진형의 가장 깊숙한 곳을 공격하기 전에 보자기로 감싸듯이 포위하기 위한 방어적인 진형.

항적은 전진을 보자마자 적장의 전술을 알아챘음에도 코웃음을 치면서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하! 그렇게 굼뜬 움직임으로 이 몸을 포위할 수 있겠느냐! 이랴!”

그는 다시 한번 말의 옆구리를 걷어차서 전속력으로 말을 달려 뒤따라오는 기병대보다 조금씩 앞서나갔다.

그러자 그리스인 부장 중 몇 명이 부하들을 등 뒤에 남겨두고 홀로 달려오는 적장을 보고 비웃으면서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적장은 젊은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날뛰는 애송이다! 저놈의 목을 베서 바르바로이 마적 떼의 기세를 꺾어라!”

“박트리아 왕국에 영광을!”

두꺼운 찰갑을 입은 그리스인 장수 네 명 중 선두에선 자가 가장 먼저 항적을 향해 달려오더니 투구로 가려지지 않은 얼굴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흐업!”

그러자 항적은 속력을 줄이지도 않고 창날이 얼굴에 닿기 전에 잽싸고 왼손으로 창 자루를 낚아채서 힘차게 잡아당긴 다음 몸의 균형을 잃고 자기 쪽으로 끌려오는 적장의 뒤통수를 편곤으로 후려쳤다.

- 카앙!

강철 추에 얻어맞은 청동 투구가 종이처럼 구겨지면서 그리스인 장수는 비명을 질러보지도 못하고 말에서 떨어져 절명했다.

항적은 전사한 적장이 남긴 말의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전방의 적장 세 명을 향해 달려가면서 우레같은 고함을 질렀다.

“내가 바로 고조선 최강의 무장 항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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