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82화 (182/195)

[두번째 후일담 – 묵돌의 서역 원정 (2)]

묵돌은 자신을 앞에 두고 다투는 항적과 한신을 잠시 어이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문득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아장과 박사 따위가 감히 흉노의 우현왕 앞에서 이런 추태를 보인단 말이냐!’

그런데 묵돌이 두 사람을 꾸짖으려고 할 때,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온 갑옷을 입은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장수가 항적과 한신의 사이에 끼어들면서 두 사람을 말렸다.

“항 동생! 한 동생! 야 이 시부럴 것들아! 우현왕님 앞에서 이게 뭣들 하는 짓이냐?! 썩 그만두지 못해?!”

그러자 항적과 한신은 여전히 투덜거리면서도 다툼을 멈추었다.

“유 형! 한 박사가 또 별거 아닌 일로 또 트집을 잡지 뭐요?!”

“유 아장. 아무리 사석에선 형 동생 하는 사이라도 관직은 본인이 더 높은데 어찌 공석에서 아랫사람 취급하시오?”

한신이 따지자 장수는 능글맞은 표정을 짓더니 한신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한 동생 또 별거 아닌 문제로 따지고 드는구먼! 자네가 그렇게 까칠하게 구니까 키 크고 허우대가 좋은 데도 친구가 거의 없는 거 아닌가!”

“공석에서 예의를 논하는데 왜 본인의 교우 관계 얘기를 들먹이는 거요!”

묵돌은 그 촌극을 보고 마지막에 들어온 장수에게 물었다.

“자네가 왕검께서 말씀하신 유 아장인 모양이군. 두 사람을 꾸짖기 전에 본인에게 먼저 인사를 올리는 게 순서일 것 같은데?!”

“아이고! 죄송합니다! 우현왕님! 동생 놈들에게 정신이 팔려서 저도 그만 헛짓거리를 했네요! 소장의 본명은 유방이오나, 저희 셋처럼 초나라에서 태어난 자들은 이름보다 자를 더 자주 사용하니 유계라고 불러 주십시오. 이놈들아! 너희도 째려보고 우현왕님께 사죄드려라!”

항적과 한신은 그제야 묵돌의 눈치를 보면서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아장 항우. 우현왕님께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우현왕님.”

묵돌은 유방의 능청스러운 대꾸를 듣고 화낼 기분이 사라졌기에 초나라 출신 3인방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세 사람 다 다시 본인 앞에서 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그때는 흉노의 군법으로 다스리겠다. 그런데 유 아장.”

“네. 우현왕님.”

“자네 머리에 쓰고 있는 죽순처럼 생긴 건 뭐라고 부르는 물건인가? 그런 관을 쓴 본국 사람은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군.”

“죽피관이라고 부르는 물건입니다. 우현왕님. 정말로 죽순 껍질로 만든 관이지요.”

“요즘 본국에서는 하급 관리들이 그런 관을 쓰고 다니나?”

“아닙니다. 죽피관은 소장이 직접 만든 물건이라 저 말고는 쓰고 다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 왜 자네 혼자 그 괴상한 관을 머리에 얹고 다니는 건가?”

“멋있어서 쓰고 다닙니다.”

“그저 멋있어서?!”

“그거 말고 달리 이유가 있겠습니까?”

“허허허······”

묵돌은 유방의 대답을 들은 후 고민에 빠졌다.

‘가장 덩치 크고 젊은 놈은 왕족다운 기품이 느껴지지만, 성정이 꽤 흉포하군. 책사라는 놈은 얼마나 머리가 좋고 병법에 밝은지는 모르겠으나 언행이 까칠하고 재수 없고. 그리고 저 유계라는 놈. 붙임성은 좋을지 몰라도 뭔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정말 저놈들이 서역 원정에 도움이 되긴 할까?’

그는 세 사람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자네들이 내 밑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알고 있는가?”

묵돌의 질문에 항적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

“전령에게 흉노의 서역 원정에 참여하게 될 거라고 들었습니다.”“항 아장의 말대로다. 다만 이번에 물리쳐야 할 상대는 월지의 잔당이 아니라 막강한 박트리아 왕국의 대군이지. 그러니 너희가 이번 원정에서 활약할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먼저 시험해 보고 그에 걸맞은 흉노의 작위와 관직을 내리겠다. 항 아장.”

“네. 우현왕님.”

“네가 무예가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다. 본인과 함께 아사달에 온 초원의 전사와 대련하여 네 실력을 보이도록 하라.”

“흠······. 소장의 상대가 많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아주 자신만만한 대답이군. 과연 초원의 전사들을 눈앞에 두고도 그럴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 모두 본인을 따라오도록.”

묵돌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 밖으로 나갔고 유방과 항적, 그리고 한신은 그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묵돌이 그를 아사달까지 호위한 흉노의 기병대가 묵고 있는 병영에 도착한 다음 그곳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병사에게 물었다.

“좌대장 조도막고는 지금 어디 있느냐?”

“좌대장은 현재 연병장에서 무예를 연마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그쪽으로 안내해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우현왕 님.”

병사는 두 손을 모아 읍한 후 네 사람을 흉노의 좌대장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고 묵돌 일행이 연병장에 들어서자 네 사람의 눈에 마상무예 훈련을 하는 장수의 모습이 보였다

“흐업!”

흉노인 장수가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오른손에 든 편곤을 휘두를 때마다 쇠사슬에 매달린 쇳덩이가 허수아비의 머리에 정확히 명중하면서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유방은 그 모습을 보고 휘파람을 불면서 항적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항 동생. 저 흉노 장수 보통내기가 아닌데? 오늘 드디어 패배의 쓴맛을 볼 때가 된 거 아닌가?”

“허! 유 형! 이 항우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시는 거요? 내 걱정하실 시간에 유 형이 시험 치를 걱정이나 하시죠.”

“걱정할게 뭐가 있나? 시험 떨어지면 아사달에서 계속 아장 노릇 하면서 번쾌랑 하후영하고 술이나 퍼마시지 뭐.”

“대장부가 그렇게 포부가 작아서야······. 아무튼, 저 장수는 내 상대가 못 되니 지켜보시오.”

항우가 그 말을 하는 순간, 좌대장 조도막고가 말에서 내려 묵돌의 곁으로 다가온 다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우현왕님. 훈련에 몰두하느라 인사가 늦었습니다. 부디 소장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괘념치 마라. 여기 있는 남방인들과 함께 경의 마상무예를 꽤 즐겁게 감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 이 덩치 큰 아장은 자네 실력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군.”

“소장도 방금 들었습니다. 소장은 남방의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말투와 표정을 보아하니 감탄하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남방인 아장. 방금 날 보고 뭐라고 말한 건가?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고조선 말로 한번 말해봐라.”

그러자 항적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좌대장에게 대답했다.

“좌대장께서는 무예로 제 상대가 못될 거라 말했습니다.”

“허! 아직 새파랗게 젊은 놈이 아직 상관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모양이구먼! 우현왕님! 부디 소장이 이 건방진 남방인에게 본때를 보여주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항 아장의 무예 실력을 확인해 보려고 경과 대련시킬 생각이다. 항 아장. 좌대장과 마상무예를 겨뤄봐라.”

“제가 탈 말 한 필과 편곤 한 자루만 빌려주시면 바로 대련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좌대장 조도막고가 코웃음 치면서 소리쳤다.

“체격이 좀 좋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잠시 후에도 그렇게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

잠시 후 두 장수는 말을 타고 손에 쇳조각 대신 나무로 만든 추가 달린 편곤을 한 손에 들고 서로 노려보았다.

묵돌은 항적과 좌대장이 준비를 마치자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대련을 시작하라!”

그와 동시에 두 장수는 말의 옆구리를 걷어차면서 상대방을 향해 전속력으로 말을 달려나갔고 좌대장이 먼저 기합을 지르며 항우의 얼굴을 노리고 편곤을 휘둘렀다.

“흐업!”

그러자 항우도 오른손에 든 편곤을 힘껏 휘둘러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냈다.

- 퍼억!

두 나무토막이 부딪치자 좌대장은 편곤을 든 오른팔이 뒤로 크게 젖혀지면서 중심을 잃고 몸을 휘청거렸다.

“크으윽!”

그가 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자세를 바로잡는 순간, 항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왼팔을 뻗어 좌대장의 멱살을 잡은 다음 힘껏 내동댕이쳤다.

“으아악!”

항적이 상대방의 멱살을 잡은 손을 놓자 좌대장은 거의 5m를 날아가 곤두박질치더니 모래가 가득한 연병장 바닥에 죽은 개구리처럼 엎드려서 중얼거렸다.

“무······ 무슨 사람 힘이······.”

묵돌은 그 장면을 보고 속으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좌대장은 초원의 장수 중에서도 무예가 출중한 편인데 저렇게 쉽게 제압하다니······. 저 항적이란 녀석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대련이 끝난 후 항적은 말에서 내려 묵돌에게 걸어와서 읍하며 말했다.

“숙소에서 말씀드린 데로 상대가 크게 다치지 않도록 손속에 사정을 뒀습니다.”

“과연 왕검께서 추천하실만한 용력이군. 다른 두 사람의 실력도 검증해 볼 테니 그동안 좌대장을 의원에게 데려다 주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우현왕님.”

묵돌은 항적의 무예 실력을 확인한 후 다음으로는 한신을 병영의 집무실로 데리고 들어가 병법을 논하면서 군사지휘관의 자질을 확인했다.

그렇게 두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한신은 묵돌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고 그리스-박트리아 왕국군의 정보를 듣자마자 적군을 격파할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적군의 중무장 기병이 1만기나 되고 보병은 장정 두세 명의 키와 맞먹는 긴 창을 들고 밀집대형을 이루고 있다면 지형이 험한 곳으로 유도해 전투를 벌여야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적군을 대파할 수 있을 겁니다.”

“초원의 전사들도 말을 타고 평야에서 싸워야 본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어찌 험한 지형에서 전투를 벌이라고 하는가?”

“기병이야 양군 모두 험한 지형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고조선군의 팽배수는 산지에서도 잘 싸우지만, 서역의 창병들은 조금만 경사가 진 곳에서도 대열을 유지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리고 흉노의 기병은 대부분 활을 잘 쏴서 평야에서도 활약할 수 있지만, 그리스계 색목인 중에는 활을 다룰 줄 아는 자가 드물다고 들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그 말이 맞는지는 전장에 서봐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흥미로운 분석이야. 경도 합격이네. 그럼 이제 유 아장은 뭘 할 수 있을지 알아볼까?”

“아마 지금쯤 유 아장에게 가보시면 그 사람의 장점을 확인할 수 있으실 겁니다. 전 그 사람의 그런 점이 좋지만은 않지만 말입니다.”

“그저 항 아장과 함께 연병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한 것 뿐인 데도? 아무튼, 그에게 가보세.”

묵돌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에서 나가 연병장에 도착하는 순간, 한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유방은 오늘 처음 만난 흉노의 장수와 부장들과 스스럼없이 잡담을 주고받으면서 그들의 환심을 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그날 대장장이네 막내딸을 어떻게 꼬셨냐면······.”

묵돌은 그 모습을 쓴웃음을 지으면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과연······. 저 친화력은 보통이 아니군. 장단점이 아주 확실한 녀석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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