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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81화 (181/195)

[두번째 후일담 – 묵돌의 서역 원정 (1)]

한부가 왕검이 된 후 수십 년 동안 고조선은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나갔다.

과학과 기술도 크게 발전했지만, 경제 규모의 성장도 놀라웠는데, 이는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과의 무역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대만 왕국의 무역상들에게 동남아와 오세아니아, 인도 아대륙에서 생산된 특산품을 사서 중원의 나라에 팔아 많은 이윤을 남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왕실이 한반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도 4윤작법과 우경법, 시비법을 널리 전파하고 요동과 요서, 하북의 여러 지역에 저수지 등 치수시설을 건설한 덕에 고조선의 농업 생산력도 크게 향상되었다.

그리고 진나라 정벌이 끝난 후에도 고조선의 영토는 점차 서쪽과 북쪽으로 뻗어 나갔는데, 이는 고조선의 지방 정권이 된 흉노가 서역 정벌에 큰 성과를 거두었고 원 역사에서는 부여를 건국했던 여러 예맥족

부족이 스스로 고조선에 동화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기원전 213년의 봄이 되자 고조선은 국경선이 현대의 카자흐스탄 동부지역과 시베리아 동토에 닿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환갑이 넘은 노인이 된 한부 왕검은 젊은 시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대제국이 된 고조선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아사달 왕립 도서관의 왕검 전용 서재에서 홀로 한지에 그려진 세계지도를 바라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흉노에서 묵돌의 세력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는 말이지. 이 거친 녀석을 대체 어떻게 다루면 좋을꼬······.”

원 역사의 묵돌은 아버지인 다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아버지 두만 선우을 시해하고 스스로 선우가 된 야심가이자 동호와 월지를 정복해 실크로드를 독점했으며 한 고조 유방이 직접 이끄는 대군을 격파해 통일 한나라를 조공국으로 삼은 위대한 정복군주였다.

그리고 바뀐 역사에서도 두만은 아버지인 오윤 선우가 일찌감치 정해놓은 약혼자와 혼인하여 묵돌이라는 이름의 장남을 낳았는데, 그는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도 자타공인 흉노 최고의 명장으로 자라났다.

한부는 그가 원 역사의 묵돌 선우와 동일인물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자기가 아는 흉노 최고의 정복 군주에 필적하는 야심과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묵돌을 가만히 내버려 뒀다가는 내가 죽고 나서 선우는 물론이고 왕검의 자리까지 차지하려고 들지도 모르겠다. 고조선의 평화를 위해서 미리 묵돌을 숙청해야 하나? 하지만 중앙아시아의 영토를 넓히는데 큰 공을 세웠고 아직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처조카를 어찌 함부로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묵돌과 만나 대화를 나눠보고 야심만만한 처조카의 처우를 결정하기로 마음먹고 서재 밖으로 나가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내관에게 지시했다.

“이 내관. 서둘러 흉노에 전령을 보내 우현왕 묵돌에게 입궐하라고 전해라. 우현왕에게 친히 내릴 명이 있다.”

“삼가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그로부터 약 넉 달 후 묵돌은 흉노 서쪽 끝의 영토에서 밤낮으로 말을 달려 아사달에 도착했다.

그는 화려한 고조선의 궁궐 알현실에 들어선 후 옥좌에 앉아있는 한부 왕검의 앞으로 걸어가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우현왕 묵돌이 흉노의 탱리고도선우이시자 중원의 패자이시며 고조선의 군주이신 왕검 폐하를 뵙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 처조카를 만나는구나. 두만 처남은 잘 지내고 있는가?”

“폐하의 성은이 서역의 초원에서 조선 반도까지 두루 미친 덕에 좌현왕 두만은 무탈하게 흉노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 그나저나 짐이 처조카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언제였더라?”

“아홉 해 전이옵니다. 폐하.”

“벌써 그렇게 됐구먼. 그때는 처조카도 아직 풋풋한 소년이었지. 고개를 들고 짐과 눈을 마주치는 것을 허락하겠네. 오랜만에 자네 얼굴이 얼마나 변했는지 보고 싶어서 그러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폐하.”

왕검이 명하자 묵돌은 천천히 고개를 한부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태도는 정중했지만, 한부는 그의 짙은 갈색 눈동자에서 숨길 수 없는 야심과 야성을 느꼈다.

‘마치 왕년의 여불위와 처음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구나. 아니, 그보다도 훨씬 그릇이 크고 거친 군주의 상이야. 역시 우리 태자에게 왕검이 된 후에 나라가 평안하려면 야심만만한 처조카를 내 나라에서 내보내는 수밖에 없겠다.’

그러나 아직은 역모를 꾸미지 않은 데다 많은 흉노인에게 사랑받는 묵돌을 음해하면 흉노 전체가 고조선 왕실에 반기를 들고 독립해 버릴 수도 있는 상황.

그래서 한부는 묵돌의 야심과 모험심을 자극해 그가 스스로 고조선을 떠나도록 유도했다.

“처조카. 혹시 서역의 마케도니아라는 나라의 왕이었던 알렉산드로스 3세라는 자를 아는가?”

“물론입니다. 폐하. 초원과 사막을 건너 서역에 다녀온 무역상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이름입니다. 우리 고조선의 교역 상대인 거대한 셀레우코스 왕국의 시조도 사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한 땅의 일부만 차지하여 독립했을 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처조카는 그 서역의 왕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장수라면 누구나 흠모할만한 위대한 정복 군주입니다. 그 대장정이 그저 동쪽의 바다를 보고 싶어서 벌인 일이었다니!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그렇구먼. 혹시 처조카도 기회가 되면 알렉산드로스 3세처럼 서쪽의 바다를 보러 원정을 떠나볼 생각이 없는가?”

“그게 무슨 말씀이시온지······.”

“현재 우리 고조선과 주 교역대상국인 셀레우코스 왕국 사이에는 박트리아 왕국이라는 나라가 가로막고 있지.”

“그렇습니다. 셀레우코스 왕국으로 향하는 길에 세관을 세워놓고는 우리 흉노 출신 상인들에게 통행료를 뜯어내는 얄미운 족속들입니다.”

“박트리아 왕국의 왕은 원래 셀레우코스 왕국의 지방관이었지만, 불과 40여 년 전에 모시던 왕에게 반기를 들어서 나라를 세운 반역자다. 게다가 짐이 부리는 요원들의 첩보에 의하면 그자는 마우리아를 침략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더군.”

“탐욕스러운 반역자가 세력을 키우더니 주제를 모르고 날뛰고 있군요!”

“아무리 마우리아가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한들 은인의 나라의 위기를 못 본채 할 수는 없지. 그래서 처조카에게 박트리아 왕국 정벌의 임무를 맡기고자 아사달에 불렀다.”

“소장에게 맡겨주십시오. 폐하. 박트리아 왕국을 반드시 정벌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아니. 돌아올 필요없네.”

“폐하!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박트리아 왕국을 정복하면 그 땅에 처조카에 나라를 세우라는 말일세. 자네가 데리고 간 장수와 책사도 모두 자네가 세울 왕조의 신하로 삼아도 무방하네. 시실 짐은 늘 묵돌이라는 사내의 그릇에는 우현왕의 자리가 너무 작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네.”

왕검이 말을 마치자 묵돌이 사냥감을 눈앞에 둔 야수처럼 두 눈을 반짝였다.

현재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은 현대의 아프가니스탄 북부를 차지하고 있는 그리스계 인도-동방 제국으로 지금까지는 셀레우코스 제국과의 분쟁에서 연전연승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약 7년 후인 기원전 205년에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은 국력이 쇠약해진 마우리아 제국의 북부를 침략하여 한때 인도 역사상 최강의 제국이 멸망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한부는 자기 후손을 왕위에서 몰아낼지도 모르는 야심가를 나라 밖으로 내보내면서 미래의 외적을 제거하고 마우리아 제국의 멸망을 막을 생각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묵돌은 장차 고조선 왕실 휘하의 지방 정권 수장 정도로는 만족할 생각이 없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한부의 명령을 받들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장차 소장이 일국의 왕이 되더라도 중원의 다른 나라들처럼 고조선을 패자로 섬길 것을 맹세합니다.”

“그 맹약 부처님과 천신께 맹세코 지키길 바라네.”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곧 흉노로 돌아가 가증스러운 박트리아 왕국을 칠 준비를 하겠습니다.”

“기다리게. 박트리아 왕국은 농업 국가인 데도 1만기의 중무장 기병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로 세력이 강하다고 들었네. 흉노의 광활한 영토와 서쪽과 동쪽을 오가는 상단을 지킬 병력을 차출하고 나면 처조카가 원정에 데리고 갈 수 있는 흉노의 병력으로 적국의 대군을 무찌르기 어려울 걸세.”

“농사꾼 나라가 기병을 1만이나 부릴 수 있다니······. 그럼 보병은 그 열 배는 동원할 수 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고조선 왕실을 섬기는 뛰어난 장수와 책사, 그리고 정예병 5만 명을 맡길 터이니 그들을 잘 부려서 반역자가 세운 나라를 정복하고 그 땅에 자네 나라를 세우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자네를 따를 장수는 무력이라면 당할 자가 없는 초나라 출신 아장 항적, 젊은 나이에 박사의 자리에 오른 병법 연구가 한신, 그리고 초나라 출신 아장 유방일세. 분명 박트리아군을 물리치는 데 큰 활약을 할 걸세.”

“항적과 한신은 소장보다 젊은 데도 천하의 용장이자 천재 병법가라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유방이라는 이름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군요.”

“그럴 테지.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자기 고향에서 협객 노릇을 하던 자를 짐이 발굴해서 아사달에 데리고 왔으니 말일세.”

“폐하. 협객은 남방인이 건달을 미화할 때 부르는 단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과연 그런 자가 서역 원정에 도움이 될는지요?”

“항적은 한신은 둘 다 능력이 출중하지만, 성정이 아주 괴팍한 젊은이들이네. 반면 유방은 두 사람에 비하면 뭐하나 특출난 점은 없어도 담력과 배포가 크고 붙임성이 좋은 장수지. 데리고 가면 분명 쓸모가 있을 걸세. 언행이 아주 조금 천박한 편이긴 하지만.”

“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분명 보통인물은 아니겠지요.”

그후 묵돌은 왕검과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눈 후 알현실 밖으로 나갔고 한부는 건장한 처조카의 등을 바라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반골 기질이 넘치는 놈들은 싹 다 모아서 서쪽으로 보내면 나도 좀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겠지.’

* * *

묵돌은 왕검을 알현한 후 궁궐의 귀빈 숙소에서 묵으면서 한부가 맡긴 장수들이 자기를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항적이 한신이 먼저 묵돌을 찾아와 절도있는 자세로 읍하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올렸다.

“아장 항우가 우현왕을 뵙습니다!”

그러자 한신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귀를 틀어막더니 항우를 흘겨보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항우 이 무식한 놈아! 우현왕께서 귀먹은 팔순 노인도 아니신데 왜 또 소리를 지르고 난리냐!”

“한 박사! 조금 높은 관직에 앉았다고 감히 초나라 왕족이 날 하대하는 거요!”

묵돌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왕검께서 꽤 피곤한 녀석들을 내게 떠넘기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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