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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71화 (171/195)

[171화] 이사의 암약

어린 왕이 명하자 그 자리에 모인 제후와 대신들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모아 대답했다.

“삼가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조 태후는 근래에 기둥서방 노애와 아들인 폐주 영정을 연달아 잃는 바람에 제정신이 아니라 들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태후와 그 추종자들을 제거할 수 있겠지요.” “폐하! 소신에게 병사 5백 명만 맡겨주시면 동이 트기 전에 태후의 거처를 급습해 왕실의 법도를 바로 세우겠습니다!”

옹왕 영성기는 마지막으로 대답한 왕실 근위대장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참으로 믿음직스럽구려. 그런데 더 많은 병사를 동원해 한번에 조 태후의 거처를 몰아치는 편이 낫지 않겠소?”

“갑자기 더 많은 병사를 움직이면 조 태후 심복들이 폐하의 심중을 눈치챌 수도 있으니 그 정도 병사만 데리고 은밀하게 거사를 치르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좋소. 그럼 왕실 근위병 중 경이 가장 신뢰하는 자 5백 명을 선별해서 내일 밤에 조 태후의 목을 치시오.”

“결코 폐하를 실망케 하지 않겠습니다.”

옹왕 영성기는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심복들과의 밀담을 마쳤다.

그리고 옹나라의 왕실 근위대장은 자기가 신뢰하는 부하 장수 몇 명을 불러 어명을 전했다.

“충성심 강한 병사 몇 명에게 평복을 입혀서 조 태후의 저택 근처에 잠복시켜 동태를 살피게 하라. 조 태후의 침소에 불이 꺼지면 바로 작전을 시작할 테니 병사들이 언제든 출격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고.”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대장님.”

“절대로 외부로 기밀이 새어나가선 안 되니 병사들에게는 거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이 일을 알려선 안 된다.”

왕실 근위대의 장교들은 대장의 명에 대답 대신 절도있는 읍으로 답했다.

그렇게 옹왕 영성기는 은밀하게 양어머니인 조 태후를 시해할 준비를 착착 진행해 나갔지만, 뛰는 자 위에는 나는 자가 있는 법.

여불위는 이미 오래전에 옹나라 왕실 근위대 장교 중 특히 재물 욕심이 많은 자들을 눈여겨보고 남들이 모르게 많은 재물을 줘가면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뒀다.

그리고 그들 중 몇 명은 왕실 근위대장을 만나고 퇴궐한 후 곧바로 여불위의 심복 이사에게 찾아가 옹왕 영성기의 음모를 알렸다.

“큰일 났습니다! 이 장사님! 왕께서 조 태후를 시해하라는 명을 왕실 근위대장에게 내리셨다고 합니다!”

“음······. 불행하게도 옹성의 상황이 여 상방께서 예측하신 대로 돌아가는구나.”

“여 상방께서는 이미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는 말입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나? 평소 친왕파와 태후파는 자주 공공연히 충돌해 왔으니 말일세. 아무튼, 수고했네. 여 상방님의 사병들에게 언제든 조 태후의 거처로 출동하라고 알려 두지.” “이 장사님. 그러시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조 태후를 함양으로 대피시키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여 상방님께서 부재중이신데도 그분의 사병이 갑자기 거리에 나와 몰려다니오면 왕이 눈치챌 수도 있다. 그리고 조 태후도 조금은 목숨이 위험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구원받아야 더욱 여 상방님께 의지하려 들게야.”

병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대답을 듣고 말문이 막혔다.

이사는 그런 병사의 표정을 보고 그의 심중을 눈치채고는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허허허! 자네 여기까지 와서 순진한 척하는 건가? 중원에서 이런 일이 어디 한둘이 아니잖나. 따지고 보면 조, 위, 한 삼진의 세 나라도 진(晉)나라의 제후였던 자들이 조상이 수 백 년 동안 모셔온 주군을 몰아내고 나라를 갈라라 먹으면서 세운 나라가 아니던가? 얼빠진 표정 짓지 말고 이제 왕실 근위대장의 곁으로 돌아가게. 자리를 오래 비우면 의심을 살게야.”

“그······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 장사님. 부디 오늘 밤 큰일을 잘 치르시길 바랍니다.”

“그래야지. 그래야 나도 진나라의 승상이 되고 자네도 왕실 근위대장이 노릇을 해보지 않겠나?”

* * *

옹나라의 왕실 근위대장과 이사가 각자 모시는 주군의 밀명에 따라 병사들을 무장시키는 동안 조 태후는 상복을 입은 채로 앞에 주저앉아서 노애의 신주 앞에 주저앉아서 흐느끼고 있었다.

“크흐흑! 낭군도 죽은지 얼마나 됐다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도 죽어버리다니! 이제 난 누굴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냐!”

그녀는 과거 영정의 육아를 유모에게 맡기고 여불위나 노애를 비롯한 다른 남자들과 불륜을 저지르느라 아들에게 그다지 정을 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노애가 전사하는 바람에 상심하던 차에 막상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 그녀의 가슴 속에 없던 모성애가 솟아나면서 매일 침실에 틀어박혀 눈물을 흘리며 보내고 있었다.

조 태후는 그렇게 그날 밤도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는데, 갑자기 침실 밖에서 대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비명이 그녀의 귓가에 스쳤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무······ 무엄하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강도 떼가 침입하느냐!”

그리고 이어지는 사나운 남자들의 고함.

“조 태후는 어디있느냐! 이실직고하지 않으면 너희도 주인과 함께 저잣거리에 목이 걸릴 줄 알아라!”

“선왕을 홀린 천한 무희를 잡아 죽여라!”

실의에 빠져 있던 조태후는 그제야 뭔가 잘못됐음을 깨닫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소리쳤다.

“설마 영성기 그 젖비린내 나는 놈이 여 상방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날 죽이려 드는 건가?! 그 배은망덕한 어린놈이! 제가 누구 덕에 옹 땅에 기반을 닦고 옥좌에 앉았는데!”

그러자 조태후의 악에 받친 고함을 들은 자객 무리가 그녀의 침실 위치를 알아내고 다시 외쳤다.

“대장님! 저쪽에서 조 태후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 얼른 가자!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한다!”

조태후는 그 소리를 듣고 겁에 질린 나머지 침상 위로 뛰어올라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초겨울에 비를 맞은 들짐승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데 그때, 이사가 지휘하는 여불위의 사병 약 1천 명이 드디어 부서진 조 태후의 저택 대문 안으로 들이닥치면서 우렁찬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역적 무리를 베어버리고 태후를 지켜라!”

옹나라 왕실 근위대장은 갑자기 수많은 적군이 몰려오자 허리춤에서 청동검을 뽑으면서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제기랄! 태후파의 제후들에게 기밀이 새나갔구나! 모두 검을 들고 응전하라! 여기서 밀리면 다 죽는다!”

순식간에 풀벌레 울음소리만 들려오던 저택의 안뜰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사투를 벌이는 병사들이 내지르는 함성과 비명으로 가득 차고 말았다.

전투 초반에는 옹나라 왕실 근위병들이 뛰어난 검술 실력을 발휘한 덕에 팽팽한 싸움이 이어졌다.

그러나 전투가 계속될수록 수가 많고 피갑을 챙겨입은 여불위의 사병들이 은밀하게 움직이느라 갑옷을 입지 않은 왕실 근위병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왕실 근위병들은 결국 점점 저택 안뜰의 한쪽 구석으로 몰리면서 적이 내지른 창에 찔리며 하나둘 쓰러져갔다.

“크아아악!”

“대······ 대장님! 이제 틀렸습니다! 더 싸우다가는 모두 개죽음을 면치 못할 겁니다!”

곁에 있던 장교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하자 옹나라의 왕실 근위대장은 입술을 깨물고 여불위의 사병들을 노려보다가 피가 묻은 검을 바닥에 던지면서 소리쳤다.

“항복하겠다! 항복할 테니까 죽이지 말아다오!”

대장이 투항하는 모습을 본 근위병들도 침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하나둘 검을 바닥에 내려놓고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그러나 이사는 그들을 포로를 잡아둘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전투가 끝날 때까지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앞으로 나서 왕실 근위대장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너희를 풀어주면 곧 더 많은 왕실근위병이 이곳으로 달려오겠지. 그리고 너희를 포박할 시간도 부족하구나.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어서 참으로 유감이다.”

이사가 그렇게 말하면서 손짓하자 여불위의 사병들이 투항한 왕실 근위병들에게 다시 검과 창을 내질렀다.

“이런 금수 같은 놈들이!”

왕실 근위대장은 분통을 터뜨리면서 발밑에 떨어져 있는 청동검을 다시 주워들려고 했지만, 그전에 한 병사가 내지른 창이 그의 가슴에 박혔다.

“크허억!”

이사는 옹왕 영성기가 보낸 자객이 모두 쓰러지는 모습을 확인한 다음 건장한 병사 몇 명과 함께 조 태후의 침실로 향했다.

그가 침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자 안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여인의 고함.

“더러운 자객들아! 썩 물러가거라!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런 짓을 저지르는 게냐?”

“태후시여. 이제 마음 놓으시옵소서. 장사 이사가 여 상방님의 명을 받고 태후를 보호하려고 여 상방님의 사병들과 함께 급히 달려왔습니다.”

“그 목소리는 혹시 이 장사······?”

“소신의 목소리를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후시여. 상황이 워낙 급하니 허락 없이 침실 안으로 들어가는 무례를 용서하시옵소서.”

이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 태후를 달랜 후 침실 문을 열고 호위병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침상 위에서 하반신에 이불을 덮은 채 주저앉아 떨고 있던 조태후는 이사의 얼굴을 알아보고 안심한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단검을 떨어트리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쥐새끼 같은 콧수염! 정말로 이 장사가 맞구려! 여 상방께서 아직 날 버리지 않으셨어!”

몇몇 호위병이 태후의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지만, 이사는 그 소리를 듣고 미간을 조금 찌푸리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크흠······. 태후시여. 저택 안에 침입한 자객은 모두 처치했지만, 곧 더 많은 자객이 몰려올 겁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몸을 피하셔야 옥체를 보존하실 수 있습니다. 소신이 여 상방님의 사병과 함께 함양까지 호위할 테니 함께 가시지요.”

“고맙소! 이 장사! 여 상방과 이 장사가 베푼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소!”

조 태후는 기쁨의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 후 자리에서 일어나 호위병들과 함께 저택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이사는 준비해둔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에 그녀를 태우고 여불위의 사병들과 함께 옹성의 남문으로 향했다.

남문을 지키는 장수와 병사들은 이미 여불위에게 매수된 자들이었기에 성문을 열어주면서 조 태후를 호위하는 무리에 합류해 남쪽으로 향했다.

그 후 조 태후가 탈출했다는 소식이 미리 축배를 들고 있는 옹왕 영성기의 귀에 들어갔을 때는 그녀가 옹성을 탈출하고 약 십 리를 도망치고 난 뒤였다.

“폐······ 폐하! 태후파 제후들에게 기밀이 새나가는 바람에 거사가 실패했습니다! 남문 근처에 사는 백성들이 말하길 조 태후는 이미 몇 시진 전에 수많은 장정의 호위를 받으며 마차를 타고 성을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어린 왕은 내관이 전혀 예상치 못한 최악의 보고를 올리자 손에 든 술잔을 내던지면서 신경질적인 고함을 질렀다.

“근위대장 그 멍청한 놈이 거사를 그르쳤구나! 그렇게 호언장담하더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이냐!”

그러자 그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한 제후가 긴장한 목소리로 옹왕 영성기에게 조언했다.

“폐하! 지금이라도 추격대를 보내소서! 조 태후가 살아서 다른 나라에 도망치면 패륜을 저지르려 한 폭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실 겁니다!”

“이런 빌어먹을! 당장 성 안에 있는 기병을 출동시켜라! 절대 조희가 다른 나라에 도망치지 못하게 하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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