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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68화 (168/195)

[168화] 중원을 분열시켜라. (1)

왕전은 한부가 함양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주지 않자 실망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대답했다.

“진나라의 백성들은 다른 나라에 끌려가 노비 신세로 전락하느니 최후의 한 명까지 외적과 맞서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고 싶어 할 겁니다.”

“미리 걱정할 것 없소. 본태자도 함양이 잿더미가 되는 걸 바라지 않으니 말이오. 다만 위, 조, 한 이 세 나라의 왕을 설득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하오.”

“음······. 삼진의 세 나라는 진나라와 오랫동안 전쟁을 벌여왔으니 악감정이 많을 수밖에 없겠지요. 알겠습니다. 전하. 부디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왕전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한부에게 인사한 다음 지휘관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부는 젊은 명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설마 왕전이 진나라 왕실을 끝장낼 줄 누가 알았겠어. 원 역사의 왕전은 호의호식하면서 늙어 죽을 때까지 진시황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은 수완가로 유명한데 말이지. 젊은 시절의 왕전은 제법 정의감 넘치는 성격이었던 모양이네.’

한부는 큰 전투를 치르지 않고 진나라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게 돼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상치 못한 왕전의 항복 덕에 고조선의 밝은 장래를 위해선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음을 깨달았다.

‘이제 앞으로 펼쳐질 동아시아의 역사는 전생에 배운 역사 지식만 가지고는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겠지. 조선도 원 역사의 통일 진나라처럼 금방 멸망하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이제 고조선은 진나라의 몰락과 함께 명실공히 동아시아의 패자가 되었고 전 세계를 기준으로도 아직 아소카 대왕이 다스리고 있는 인도 아대륙의 마우리아 제국 다음으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한부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활약한 덕에 이득을 본 동아시아의 나라나 부족은 고조선만이 아니었다.

원래대로라면 진나라 왕실에 매수된 간신 무리의 분탕질과 암군의 실정 때문에 자멸의 길을 걸었을 위나라와 조나라는 이제 명군 위무기와 명장 신평군 염파의 주도 아래 착실히 전화(戰火)의 상처를 치유해 나갈 것이었다.

또한 북쪽의 흉노는 최강의 라이벌이었던 동호족을 고조선군이 대신 물리쳐준 덕에 예정된 역사보다 수십 년은 이른 시기에 초원 통일을 앞두고 있어 한부가 제대로 선우의 자리를 이어받지 못한다면 장차 진나라를 능가하는 고조선의 숙적으로 돌아설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합종군의 진나라 원정에 참여해 적잖은 역할을 해내면서 자국의 국력을 확인한 대만 왕국과 고대 베트남 왕국 어우락의 왕실도 과거 조상이 살았던 중원 대륙에 세력을 넓히고 싶어 하는 상황.

고조선 왕실의 작은 외교 실책으로도 언제든 다시 동아시아에 제2의 전국시대가 열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말았지만, 한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 지금 상황을 잘 이용하면 중원을 유럽 대륙처럼 여러 나라가 난립하는 동네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한부는 그렇게 중얼거린 다음 막사 밖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병사를 불러 지시했다.

“곧 진나라의 처분을 결정할 회의를 열 것이니 다른 나라의 왕과 대표들에게 내 막사로 모이라고 전해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잠시 후 지휘관 막사에 위왕 위무기와 여불위, 신평군 염파, 그리고 제나라, 흉노, 어우락의 장군들이 모여서 자기 자리에 앉자 한부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조금 전 적장 왕전이 본태자를 찾아와서는 본인이 난을 일으켜 진왕 영정과 그를 따르는 무리를 물리쳤으며 우리 합종군에게 성문을 열고 항복할 뜻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위왕 위무기가 크게 기뻐하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병사들의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함양을 점령할 수 있게 됐군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왕전은 항복에 한가지 조건을 걸었습니다. 어느 나라가 함양을 지배하게 되어도 관계없으나 함양의 백성들이 외국에 끌려가지 않고 고향에서 그대로 살게 해주지 않으면 함양의 진나라인들은 마지막 한 명까지 합종군에게 저항할 거라고 말하더군요.”

그 말에 신평군 염파가 두 눈을 부릅뜨면서 조금 언성을 높였다.

“진나라의 융적들은 마지막까지 염치를 모르는군요! 조건 없이 항복하며 목숨을 구걸해도 모자를 판에 그따위 요구를 해다니! 전하! 그따위 건방진 요구에 귀 기울이실 것 없습니다! 예정대로 둑 공사를 마무리하고 함양을 물바다로 만들어버리시지요!”

“신평군. 정말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함양 시내에는 과거 진나라군이 조나라의 접경지역을 공격할 때 노비로 끌려간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수공을 시작하기 전에 진나라인들이 폐주 영정처럼 도시를 불태우고 자결하기로 마음먹는다면 타지에서 고생하던 조나라인들도 고통스럽게 죽고 말 겁니다.”

“크흠······. 그럼 전하께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함양성과 그 주변 지역을 옹나라에게 넘기고 대신 조나라와 위나라는 옹나라의 북부를 대가로 받는 게 좋겠습니다. 그럼 옹나라는 함양을 차지하여 다시 국호를 진나라로 바꾸고 진나라 왕실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겠지요.”

한부의 말에 신평군 염파와 위왕 위무기, 그리고 여불위가 흥미를 보였다.

전국시대에는 나라끼리 영토를 교환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고 무엇보다 세 나라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옹나라 왕 영성기는 진나라 왕실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믿고 있기에 자기가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을 통치하면서 다시 국호를 진으로 바꾸고 싶어했다.

그리고 위나라와 조나라는 옹나라가 건국되면서 더는 진나라와 국경을 접하지 않고 있기에 진나라 원정에서 합종군이 승리해도 영토를 넓힐 수 없을 거로 여기고 있었는데, 옹나라가 자국과 국경을 접한 지역의 영토를 주면 두 나라도 영토를 넓힐 수 있을 것이었다.

위왕 위무기는 한부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찬성했다.

“흠······. 흥미로운 제안이오. 위나라로서는 그 의견에 반대할 이유가 없소.”

그러자 신평군 염파와 여불위도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한부의 의견에 찬성했다.

“한단에 계신 왕께 여쭤보고 결정해야 할 일이지만, 분명히 흔쾌히 찬성하실 겁니다.”

“옹나라 왕께서도 그 제안을 들으시면 크게 기뻐하겠군요. 어서 서로 어느 성을 주고받을지를 논의해보시지요.”

그러나 어우락의 장군 완옹중은 인상을 구기면서 한부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우리 어우락군은 적장 왕전과의 일전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함양에 오는 길에 파촉의 여러 성과 고을을 점령하여 진나라의 후방을 교란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어찌 중원의 나라들만 영토를 얻고 우리나라만 논공행상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까?”

“어우락만 홀대할 리가 있겠소? 어우락은 이번 전쟁에서 점령한 파촉의 땅을 전리품으로 삼으면 적당할 것 같군요. 모두 잘 아시다시피 어우락의 왕께서는 수십 년 전에 진나라에게 멸망한 촉나라 왕실의 후예이시니 파촉 땅을 통치하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부가 말하자 완옹중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다른 나라의 왕과 장군들도 그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파촉은 비옥한 농지가 펼쳐진 곡창지대이긴 하지만, 중원의 다른 지역에서 그곳에 가려면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지나야 하기에 과거의 진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행정력이 미칠 수 있는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우락이 차지할 영토를 정한 다음 이번 원정에서 활약이 거의 없었던 한나라와 제나라, 그리고 흉노는 영토 대신 전투 중 얻은 전리에서 자기 몫을 챙기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그렇게 회의가 원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위왕 위무기가 한부에게 물었다.

“조선의 태자여. 그러고 보니 아직 조선이 이번 전쟁에서 가져갈 몫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았구려. 따로 생각해둔 보상이 있소?”

“물론입니다. 폐하. 우리 조선은 합종군의 맹주로서 진나라 원정을 승리로 이끌었으니 공식적으로 천하의 모든 나라에게 중원의 패자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그 일에 반대할 나라는 없을 거요. 하지만 조성 왕실은 정말 그것만으로 만족한단 말이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옹나라가 차지할 영토와 어우락이 차지할 영토 사이에 낀 진나라의 중부 지역은 우리 조선이 다스리겠습니다.”

“흠······. 짐이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조선 왕실이 하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서 지역을 다스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소만.”

“왕실이 직접 그 지역을 다스리겠다면 그렇겠지요. 그래서 과거 주나라 왕실이 그랬듯이 진나라 중부를 여러 제후국으로 나누고 조선 왕실에 충성을 맹세한 경과 대부를 그 땅에 봉할 생각입니다.”

“짐은 조선 왕실의 뜻을 존중하오.”

다른 나라의 여불위와 다른 나라의 장군들도 한부의 뜻에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산서 지역은 어우락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당장 탐내기 어려운 곳이고 고조선이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봉건제로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제후들을 제대로 관리 할 수 없을 거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부가 산서 지역을 전리품으로 삼은 건 그 지역을 당장 그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중원을 분열시키는 게 최우선이다. 특히 진나라 땅은 신성로마제국처럼 여러 소국으로 찢어 놔야 제2의 진시황이 안 나오겠지. 그래도 쓸모있는 관리인을 한 명 내세워서 새로 얻은 지역의 소국들이 조선 왕실에 제대로 공물을 바치게 할 필요는 있겠지.’

잠시 후 합종군 회의에 참석한 각 나라의 대표들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날 때 한부가 마지막으로 막사 밖으로 나가려는 여불위를 작은 목소리로 불러세웠다.

“여 상방님. 조금만 더 본태자에게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실지요?”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여 상방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럽니다.”

여불위는 직감적으로 한부가 자기에게 뭔가 은밀한 제안을 할 거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다시 탁자 앞에 앉으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어서 말씀하시지요.”

“본태자는 여 상방이 조선 왕실에 충성을 맹세한다면 경을 제후로 임명하고 경이 과거 진나라의 재상이던 시절에 진 소양왕에게 받았었던 비옥한 영지를 다시 하사할 뜻이 있습니다.”

“왜 제게 그런 제안을 하시는지요?”

“얼마 전 진나라 포로의 마음을 연설 한 번으로 돌린 공의 능력에 감탄해서 그럽니다.”

“흠······.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는 한 사람이 두 나라의 제상이나 제후가 되는 경우가 그리 드물지는 않지만, 옹성에 계신 왕께서는 그런 일을 허용하실 분이 아닙니다. 제안은 감사하오나 과거에 다스리던 영지가 그립기는 하지만, 일국의 상방 자리와 바꿔서는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공국(公國)의 군주가 될 수 있다고 해도 말입니까?”

“진나라 상방 시절에 다스리던 영지만으로는 공국을 세울 수 없습니다.”

“공이 옛 영지에 함양과 사방 5백 리의 땅까지 다스릴 수 있다면 얘기가 다르겠지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함양의 궁궐이 잿더미가 되었으니 옹왕 영성기는 옹나라가 합종군에게 함양 일대를 할양받으면 십중팔구 여 상방에게 궁궐 재건사업을 맡기겠지요.”

“그때 나라를 세우라는 말씀이십니까?!”

“여 상방은 마침 20만 명이나 되는 진나라군 포로의 목숨을 구하여 민심을 얻었으니 궁궐 재건을 핑계로 추종자들과 함께 함양으로 거처를 옮겨서 다시 위수 이남에 기반을 닦을 기회가 있을 겁니다. 만약 여 상방이 거사에 성공해 나라를 세운다면 조선은 공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흠······. 이 여불위를 사서 지역의 제후국을 관리하는 관리자로 삼고 싶으신 거군요.”

한부는 그의 대답을 듣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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