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수공(水攻)과 진나라군의 분열
한부가 제안하자 신평군 염파가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면서 대답했다.
“수공이라! 그거 해볼 만 한 전술이로군요! 올여름에는 비가 자주 와서 위수의 수위도 많이 올라갔으니 수공이 제대로 성공한다면 적군은 물에 잠긴 곡식 창고에서 밀알 하나 건지지 못할 겁니다.”
장군 이목은 염파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팔짱을 끼면서 대답했다.
“전하와 신평군의 말씀에 일리가 있군요. 하지만 이제 계절은 가을에 접어들었고 앞으로 두어 달만 지나면 겨울이 찾아온다는 걸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위수의 물을 함양까지 끌어오기 전에 강물과 땅이 얼어붙기 시작하면 아까운 시간과 물자만 낭비하게 될 겁니다.”
이목이 말하자 한부가 그와 눈을 마주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목 장군, 경도 잘 알다시피 조선 반도 출신 병사들은 하나같이 건축기술이 뛰어나다오. 그리고 얼마 전에 합종군에 합류한 어우락 군까지 위수의 물길을 돌리는 작업에 참여하면 겨울이 오기 전에 수공을 시작할 수 있을 거요.”
“어우락의 병사들도 조선의 병사들처럼 토목공사에 능한 모양입니다.”
“그렇지는 않지만, 어우락군은 코끼리를 여러 마리 데리고 왔지 않소? 코끼리는 개나 말보다도 훨씬 머리가 좋은 동물이라 잘 길들이면 무거운 물건을 나를 때도 쓸 수 있다고 들었소. 완 장군. 본태자의 말이 맞지 않습니까?”
한부는 고개를 돌려 어우락의 장군 완옹중을 바라보면서 그에게 물었다.
그는 원 역사에서 어우락의 안양왕이 중원을 통일한 진시황에게 잘 보이려고 그에게 보낸 기골이 장대한 장수이다.
원 역사의 완종중은 진시황이 총애하는 장수 중 한 명이 되어 통일 진나라를 위협하는 북쪽의 흉노 세력을 몰아내는데 큰 공을 세웠지만, 공교롭게도 바뀐 역사에서는 진나라 정벌에 앞장서게 된 것이다.
완옹중은 한부의 말을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호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전하! 코끼리는 장정 수십 명이 간신히 옮길 수 있는 굵은 통나무도 혼자 코로 감아서 나를 수 있을 정도로 힘세고 똑똑한 짐승입니다. 우리나라의 코끼리 부대는 분명 물길을 가로막는 공사를 할 때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참으로 믿음직스럽군요. 이 자리에 수공에 반대하시는 분이 안 계신다면 바로 공사를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다. 혹시 수공에 반대하시는 분 계십니까?”
고조선의 태자가 묻자 여러 나라의 장군들은 모두 서로의 얼굴을 흘끗 바라보더니 대신 호기심이 묻어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면서 대답했다.
“크흠······. 어우락의 병사들이 정말로 그 거대한 짐승을 잘 부릴 수 있다면야 코끼리를 공사에 쓰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소장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전하. 어서 군사회의를 마치고 강물을 막을 둑을 짓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동안 준비해오던 화공 대신 수공을 쓰려면 하루라도 빨리 움직이는 편이 좋겠습니다. ”
한부는 그들의 어린 소년과 같은 표정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저 표정들 좀 봐. 다들 체통을 지키느라 말은 안 해도 코끼리가 코로 물건을 나르는 모습이 꼭 보고 싶은 모양이다. 이런 면에선 남자들은 어린 시절이나 나이 들어서나 별로 차이가 없지.’
그렇게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장수가 수공에 찬성하자 한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군사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럼 모두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가면 손재주와 체력이 좋은 병사를 선별해서 공사 진행에 힘을 보태주십시오.”
***
한부가 위왕 위기를 비롯한 합종군에서 고조선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의 장수들을 설득한 다음 날 아침, 드디어 함양 근처의 강가에서 합종군 병사 수십만 명과 힘 좋은 가축 수백 마리가 둑을 짓는데 투입됐다.
- 뿌우우우우!
집채만 한 코끼리 수십 마리가 자기 목 위에 앉아있는 기수의 지시에 따라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면서 긴 코로 건축자재를 휘감아 들어 올린 다음 공사 현장으로 나르자 고대 로마의 건축기술을 익힌 고조선의 병사들이 그것으로 강물을 막을 둑을 쌓아올렸다.
합종군의 다른 나라 장수와 병사들은 고조선군 병사들의 활약 덕에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방향을 틀어가는 위수의 물줄기를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조선인 중에 손재주가 좋은 자가 많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왔지만, 설마 저 정도일 줄이야!”
“숙영지를 지을 때만 손이 빠른 게 아니었구나!”
반면 성벽과 망루위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진나라군 초병들은 적군이 개미 떼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거대한 강줄기를 함양성 쪽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소란을 피웠다.
“수······ 수공이다! 합종군이 도성을 침수시키려고 한다!”
“요괴같은 놈들! 전에는 기괴한 물건을 써서 함곡관을 불바다로 만들더니 이번엔 코끼리 떼를 부려서 함양을 물바다로 만들려고 하는구나!”
함야의 성벽을 지키고 있던 진나라군의 부장들은 즉시 성벽 아래로 달려 내려와 병영 안을 둘러보고 있던 왕전에게 달려가 보고 들은 것을 보고했다.
“왕 장군님! 큰일 났습니다! 적군이 위수의 흐름을 바꾸고 거대한 둑으로 강물을 막아서 수공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합종군이 수공을 시작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있을 것 같더냐?!”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지금 같은 속도로 둑이 올라가면 불과 며칠 안에 함양 시내 전체가 물에 잠길 겁니다!”
“이런······! 서둘러 군량과 군수품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밀가루가 보리가 흙탕물에 젖으면 병사와 백성이 함께 굶주리게 될 거야!”
“장군님. 군량도 중요하지만, 백성들을 서둘러 대피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도 그렇구나! 하······. 대체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왕전은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탄식하다가 뭔가를 결심하고는 몽무를 비롯한 휘하의 부장 중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자를 전부 자기 집무실로 불러모은 다음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지금쯤이면 소식을 들었겠지만, 합종군이 수공을 준비하고 있소. 지어지고 있는 둑과 수로의 크기로 미루어볼 때 며칠 후면 아마 이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길 거요.”
장군이 말을 마치자 집무실 안을 뒤덮는 무거운 침묵.
잠시 후 불편한 적막을 깨고 대답한 사람은 왕전의 최측근인 기병대장 몽무였다.
“왕 장군님.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죽기를 각오하고 성문을 열고 나가서 둑 공사를 방해해야 합니다!”
“몽 기병대장. 신병이 절반이나 섞인 병사 10만 명으로 평지에 숙영지를 짓고 기다리는 60만 대군을 공격해봐야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일 거요.”
“그럼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적장의 계책에 당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럴 수밖에 없겠소.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며칠 동안 무고한 백성의 목숨을 살릴 수는 있을 거요.”
“그 말씀은 백성들을 성벽 위나 고층 건물 위로 대피시키라는 말씀이신지요?”
“그리하면 백성들은 수난은 피할 수 있어도 물이 빠질 때까지 심한 굶주림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거요. 함양에는 2층에 부엌을 갖추고 있는 건물은 그리 많지 않은 데다 어차피 창고 안에 있는 군량을 성벽 위나 고층 건물로 나를 시간도 부족하니 말이오.”
“왕 장군님. 그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우리 병사들이 인질로 붙잡아둔 백성들을 풀어주고 군수 창고 안에 있는 식량을 줘서 성 밖으로 대피시킵시다.”
젊은 장군이 말하자 그 자리에 있는 진나라군 장수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말했다.
“왕 장군님······. 과연 폐하께서 그 일을 허락하시겠습니까?”
“도망치던 백성들을 붙잡아서 가둬둔 분이십니다. 폐하께 그런 말씀을 드렸다가는 참수당하실지도 모릅니다.”
왕전은 그 말을 듣고 비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몽무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왕께서는 이 일을 허락하지 않으시겠지요. 그러니 오늘 밤에 몰래 일을 벌입시다. 몽 기병대장이 함양 수비대의 병사 중 가장 충직한 자 5천 명을 선별해서 백성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왕실 근위대를 제압해 주시오.”
“백성을 굶겨 죽이지 않으려면 반역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까······.”
“나도 많이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오. 진나라의 수명은 앞으로 길어야 1년에서 2년이지만, 함양의 백성들은 앞으로도 수십 년을 살 수 있지 않소? 백성이 죽어도 나라를 지킬 수 없다면 죄 없는 백성이라도 살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오.”
“듣고 보니 왕 장군님의 말씀이 맞는듯합니다. 그럼 오늘 밤에 소장이 인질로 잡혀있는 백성들을 구출하겠습니다.”
“내 뜻을 알아주서 고맙소. 몽 기병대장. 다른 사람들은 어찌하겠소? 나와 뜻을 함께하겠소? 아니면 내 목을 베서 궁궐 안에 계신 왕께 바치겠소?”
왕전이 말하자 몽무가 도끼눈을 뜨고 허리춤의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대면서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정말로 이 자리에 그런 놈이 있다면 먼저 이 몽무와 한바탕 칼부림을 벌일 각오를 해라.”
다른 진나라군 장수들은 그런 몽무를 보고 미소 지으면서 대답했다.
“몽 기병대장님. 여기 모인 장수 중에서 왕 장군님을 배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연한 일 아닙니까? 화살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고향에 있는 가족을 지키려고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소장과 함께 싸운 사람은 어린 왕이 아니라 왕전 장군님이십니다.”
왕전은 부장들의 대답을 듣고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두 참으로 고맙소! 그럼 몽 기병대장이 인질로 잡혀있는 백성들을 구출할 때 다른 장수들은 나와 함께 군수 창고를 점거합시다.”
“알겠습니다. 왕 장군님. 어차피 흙탕물에 젖어서 못 쓰게 될 식량이라면 차라리 일이 터지기 전에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눠 주는 게 도리일 겁니다.”
* * *
합종군이 수공을 위한 둑 공사를 시작한 날의 밤의 깊어지자 몽무가 이끄는 별동대 5천 명은 여러 무리로 나뉘어서 진나라 왕실 근위대가 쓰고 있는 큰 병영을 향해 다가갔다.
그곳의 연병장에는 최근 함양 수비대에 강제로 징집된 병사들의 가족들이 붙잡혀 있었다.
몽무를 따르는 병사 중 상당수는 가족이 그곳에 붙잡혀 있었기에 속으로 이를 갈면서 차가운 달빛이 비치는 밤거리를 조용히 걸어갔다.
마침내 반란군 5천 명이 겨우 보초 몇 명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왕실 근위대 병영 앞에 도착하자 몽무의 우레같은 외침이 고요한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돌격하라! 지원군이 오기 전에 병영을 점거하라!”
그와 동시에 함양의 복잡한 골목 곳곳에서 수천 명의 병사가 손에 검과 철퇴를 들고 벌떼처럼 몰려나오면서 우렁찬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폭군을 몰아내고 가족을 구하자!”
그러자 졸린 눈을 뜨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진나라 왕실 근위대 병사들은 조금도 예측하지 못한 습격을 당하자 크게 당황하면서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동료들에게 달려갔다.
“합종군의 습격이다! 합종군이 성안에 들이닥쳤다!”
“적군이 담장을 넘어오고 있잖아! 가서 자는 놈들 깨워!”
몽무는 본래 함양 수비대가 쓰던 병영의 내부구조를 잘 알고 있기에 아직 잠에서 덜 깬 왕실 근위대 병사들이 침실에서 몰려나와 무장하기도 전에 무기고를 먼저 점거하고 몇 명 안 되는 무장한 초병들을 제압한 다음 잡혀있던 백성들을 풀어주면서 말했다.
“며칠 후에 함양은 물바다가 될 거다! 그 전에 가족들과 함께 이 도시를 떠나거라! 지금 군수 창고에 가면 왕 장군께서 며칠 먹을 식량을 나눠주실 터이니 그곳에 꼭 들렀다가 함양을 떠나도록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