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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63화 (163/195)

[163화] 압도적인 승리

- 뿌우우우우! 뿌우우우우!

총공격 명령을 알리는 뿔나팔 소리가 두 번 울려 퍼지자 최전방의 제나라군 부대와 조나라군 부대가 뒤로 물러나고 후방에서 체력을 온존하고 있던 고조선군의 보병 부대와 온몸을 갑주로 가린 위나라의 무졸 부대가 드디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합종군의 여러 장수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다른 나라의 지휘관들과 합의한 대로 휘하의 무장과 병사들을 움직였다.

“전 팽배수 부대는 전방의 적을 향해 돌격하라! 극병 부대는 팽배수 부대 바로 뒤에서 아군을 지원한다!”

상장군 무명이 외치자 고조선군 병사들이 우렁찬 함성을 지르면서 전열이 흐트러진 서융 보병대를 향해 달려가면서 투창을 던졌다.

“와아아아아아!”

그렇지 않아도 후방이 합종군 좌익의 기병대에게 습격당해 사기가 떨어져 있었던 서융 출신 보병들은 질긴 가죽 갑옷도 단번에 관통하는 강철 촉을 단 투창이 날아오자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후퇴하라! 전군 후퇴하라!”

“후방이 완전히 포위되기 전에 도망쳐!”

그렇게 고조선군 보병대가 전방의 적군을 몰아붙여 적진을 혼란에 빠트리는 동안 위왕 위무기가 이끄는 무졸 부대는 진나라군 기병대가 낙타 궁기병대에 패퇴하면서 비어버린 적군 본대의 우측으로 돌격했다.

“대왕 폐하를 위하여!”

“가증스러운 융적을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전신을 갑옷으로 가린 무졸들이 짧은 창 과를 앞으로 내밀고 옆구리를 찔러오자 실전경험이 풍부한 진나라의 정예병들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커다란 파도가 덮친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려갔다.

그러자 왕전은 그가 손 쓸 틈도 없이 쓸려나가는 진나라와 서융의 연합군 병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겨우 기괴한 짐승 몇백 마리 때문에 국운이 걸린 전투에서 힘도 못 써보고 지다니······. 후세의 역사가들이 이 왕전을 얼마나 비웃겠는가······.”

그런데 그때, 온몸에 검붉은 피를 뒤집어쓴 몽무가 서융과 왕전을 향해 말을 달려오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왕 장군님!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후회하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한시라도 빨리 전장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몽 기병대장! 서융 기병대의 지휘는 어쩌고 이곳에 온 거요!”

“어차피 본대와 좌익이 무너진 이상 우익에서 더 버텨봐야 승산이 없겠다 싶어 서융 기병대에 퇴각 명령을 내리고 끝까지 소장을 따르겠다는 자들만 데리고 왔습니다! 소장이 함양까지 호위할 터이니 어서 퇴각하시지요!”

“몽 기병대장······. 이제 우리 진나라 왕실의 멸망을 막을 길이 없는데 도망쳐봐야 무엇하겠소? 나는 이대로 적과 마지막까지 싸우다 부끄럽지 않게 전사하겠소.”

젊은 장군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하자 몽무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면서 버럭 고함을 질렀다.

“왕 동생! 이곳에 남아봤자 침략자를 몇 명이나 더 처치할 수 있겠나! 가증스러운 적장에게 대왕께 병부를 받은 진나라 장군의 목을 그리 쉽게 전리품으로 내줄 생각인가!”

왕전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허리춤에서 현산 전투에서 전리품으로 얻은 강철검을 뽑아들면서 몽무에게 대답했다.

“몽 형님의 말이 맞습니다. 지금 함양에 남아있는 수비병은 기껏해야 2만 명. 이 곳의 병사를 한 명이라도 더 살려서 함양에 보내야 저항다운 저항을 해볼 수 있겠지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멸망이라면 최후까지 장렬하게 싸우다 조국의 마지막을 지켜봅시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일세! 그럼 길을 뚫을 테니 아직 사지가 멀쩡한 병사들을 이끌고 내 뒤를 쫓아오게!”

몽무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몇 안 되는 휘하의 기병대와 함께 왕전을 잡으러 달려오는 위나라 기병대 수십 기를 향해 달려가면서 외쳤다.

“적군이 왕전 장군의 몸에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하라!”

“알겠습니다! 대장님!”

몽무는 선두에서 질주하며 커다란 철퇴를 한번 휘두를 때마다 거기에 얻어맞은 위나라 기병들이 말 둥위에서 굴러떨어졌다.

왕전은 그 모습을 보고 아직 곁에 남아있는 병사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전방의 부대를 전장에 남겨두고 함양성으로 퇴각한다!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자는 이 왕전을 따르라!”

* * *

왕전과 몽무가 전장에서 이탈하자 최전선에 남아있던 진나라와 서융의 병사들은 더욱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려갔고 이제 위수 강변의 싸움은 전투가 아닌 일방적인 살육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한부는 갑작스럽게 적군 부대의 움직임이 둔해진 것을 보고 기뻐하는 대신 조급한 목소리로 주변의 장수들에게 소리쳤다.

“아무리 우리가 밀어붙여도 벌써 포위망이 완성된 건 뭔가 이상한데? 설마 왕전이 벌써 전장에서 빠져나간 건가?”

한부는 급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다가 전방에서 병사를 지휘하는 상장군 무명에게 달려가서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장군!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소!”

“전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시다시피 승기는 우리 합종군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포위된 적을 섬멸하는 일만 남았는데 느낌이 좋지 않으시다니요?”

“적군이 예상보다 너무 빨리 무너진 걸 보니 적장 왕전이 이미 도망쳤을 확률이 높은 듯하오. 서둘러 추격대를 최대한 많이 풀어서 적장이 함양으로 도망치기 전에 잡아들입시다!”

“하지만 전하. 합종군 병사 대부분이 전장에 남은 적군을 포위하는데 동원된 상태라 아직은 적장을 쫓는 데 쓸 병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음······. 그럼 당장 쓸 수 있는 병사만이라도 왕전을 추격하게 해주시오.”

“전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무명은 곧 휘하의 하급 무관을 시켜서 기병 2백 기를 이끌고 전장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도망치는 왕전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고조선군 기병대는 곧 도망치는 왕전과 진나라군 패잔병 무리를 발견했지만, 수적열세 때문에 바로 덤비지는 못하고 본진으로 돌아와서 무명에게 보고했다.

“상장군님! 적장 왕전은 위나라 기병대의 추격을 물리치고 진나라군 패잔병 약 3만 명을 수습하여 함양으로 난 길을 따라서 도망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태자 전하의 예상이 맞았군! 하지만 이곳의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그 많은 패잔병을 쫓기는 어렵겠어.”

현재 합종군이 포위하고 있는 진나라와 서융의 병사 수는 약 22만 명. 아무리 왕전이 위험한 적장이라도 진나라군 전 병력 중 대부분을 궤멸시킬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작전에 차질을 빚을만한 일은 할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몇십 분이 더 흐르자 둥그런 포위망에 둘러싸여 사투를 벌이던 진나라군과 서융의 병사 전원이 마침내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함으로써 마침내 전투가 끝났다.

합종군의 장수와 병사들은 하나같이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가 끝나자마자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다.

“왕검 폐하 만세! 태자 전하 만세!”

“드디어! 드디어 진나라놈들에게 복수했다!”

특히 진나라에 장편대전 이후로 이어져 온 원한을 품고 있던 조나라의 장수와 병사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병사들의 흥분이 가라앉은 후 한부는 휘하의 장수들에게 전장을 정리하라고 명하면서 병사를 보내 기병대장 석을 불렀다.

잠시 후 석은 몸에 걸친 갑옷이 땀과 적군의 피에 젖은 채로 태자 앞에 나타나 두 손을 모아 읍하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이제 전하께서는 이제 단군 이래 가장 위대한 전투의 승장으로 역사에 기록되시겠군요! 진심으로 감축드립니다! 전하!”

“고맙다. 석아. 너도 이번 전투에서 열 명이 넘는 적장을 물리쳤으니 조선 최고의 맹장으로서 후세에 무명(武名)을 남길 거다.”

“후방에서 전군을 지휘하시면서도 소장의 활약을 지켜봐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전하.”

“곧 네게 큰 상을 내리고 왕검성에 계신 폐하께 네 작위를 두 단계 높여달라고 부탁드리겠다. 하지만 논공행상을 하기 전에 할 일은 다 해놓아야 하겠지.”

“소장에게 우리 군과 적군이 이번 전투에서 입은 손실을 조사하라는 명을 내리실 생각이시군요.”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왔더니 이제 척하면 척이구나.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느냐?”

“워낙에 대규모 전투였었던지라 앞으로 사나흘은 걸릴 듯하옵니다.”

“그렇겠지. 그럼 전군에 전사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포로의 수를 헤아리라고 전해다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합종군의 병사들은 전투가 끝난 후에도 바쁘게 움직이면서 생포한 포로를 포박하고 전장 여기저기에 쓰러져있는 전사자의 시신을 한데 모아 물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땅을 파서 매장하거나 불을 붙여 화장했다.

수만 구나 되는 전사자의 시신을 방치하면 머지않아 군영과 인근 지역의 민가에 전염병이 돌기 때문이다.

전투가 끝나고 나서 딱 사흘이 지나던 날 저녁, 기병대장 석은 양군의 사상자 수를 취합한 후 지휘관 막사에 찾아가 한부에게 보고했다.

“기병대장 석이 태자 전하께 보고드립니다. 이번 전투에서 우리 합종군의 사상자는 보병 약 1만 명에 기병 약 2천 기입니다. 반면 적군은 보병 약 5만 명과 기병 약 1만 5천 기가 전사했고 보병과 기병을 합한 약 20만 명이 포로가 됐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전투가 벌어지던 도중 탈영하거나 적장 왕전과 함께 함양으로 퇴각한 듯합니다.”

석이 보고를 마치자 신평군 염파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한부에게 말했다.

“하하하하하! 전하! 참으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군요! 40만과 30만이 평야에서 맞붙은 큰 싸움에 아군은 겨우 1만 2천의 병사만 죽거나 다치고 적군은 거의 전멸하다니! 한가지 한이 있다면 이 염파가 이번 전투에서 활약할 기회를 낙타라는 못생긴 동물에게 빼앗겼다는 것 정도로군요!”

“그런 말씀 마십시오. 신평군. 그 낙타 궁기병대를 포함한 우익의 기병대 전원을 지휘하신 분이 바로 경이시지 않습니까? 그쪽의 진나라군 기병대가 개전 초기에 패퇴한 덕분에 승기가 일찌감치 우리 쪽으로 넘어왔습니다. 신평군께서는 좀 더 이번 전투에서 세운 공적을 자랑스러워 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글쎄요. 월왕구천검을 든 검사가 나무막대기를 든 호적수를 이겼다고 자랑하고 다니면 세상 사람들이 못난 놈이라는 욕하지 않을는지요? 그건 그렇고 이제 전장의 정리도 얼추 끝났으니 함양성을 공략할 일만 남았군요. 어서 포로의 처분방법을 결정한 다음 함양을 포위합시다.”

그 말에 위왕 위무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신평군의 말씀대로 우선 포로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정해야겠군요. 그냥 풀어주면 함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우리 병사들에게 쇠뇌를 쏘아댈지도 모르는 일이고. 끌고 다니자니 저 많은 입을 먹일 군량이 부족하니 말입니다.”

그때 상장군 무명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꺼림칙한 일이긴 하지만, 포로의 목숨을 거두어 후환을 없애는 게 상책입니다. 지금 가진 군량으로는 우리 병사들만 먹여도 간신히 내년 봄까지 버틸 정도이고 겨울이 찾아와 강이 얼고 현산의 산길에 눈이 쌓이면 더는 군량을 운반하기 어려워 질 테니 말입니다.”

한부는 무명의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가면을 쓰고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요즘 성격이 좀 둥글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 쉽게 안 변하는구나. 아니면 진나라에 대한 복수심이 아직도 강렬해서 그런 건가? 아무튼, 저 많은 사람을 다 죽이고 싶지는 않은데······.’

그는 진나라 포로를 죽이지 않으면서도 먹일 입을 줄일 방법을 고민하다가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아! 그 방법이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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