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합종군 vs 진나라군 (5)
“전군! 전투를 준비하라!”
한부가 외침을 들은 기수들이 커다란 깃발을 펄럭이자 고조선, 조, 위, 한 네 나라의 병사들이 미리 지시받은 진형을 갖추었다.
합종군은 맨 앞줄에 현산 전투에서 살아남은 제나라군 중 힘이 좋은 자들에게는 무거운 낭선을 들도록 하고 체격이 평범한 병사에게 좋은 갑옷과 무기를 갖추게 한 다음 전장에 배치했다.
그리고 제나라의 보병대 뒤에는 조나라군 보병대를, 조나라군 뒤에는 합종군의 보병대 중 정예병인 고조선군의 팽배수와 극병, 그리고 위나라의 무졸을 배치했다.
그리고 세로 변이 긴 직사각형 모양의 본대 오른편에는 정예기병인 고조선의 개마무사와 궁기병, 그리고 조나라의 궁기병대와 노궁수 부대를 배치하고 왼편에는 상대적으로 약한 위나라와 제나라의 기병대, 그리고 궁수와 투석꾼 부대와 함께 새로운 병종인 낙타 궁기병대를 배치했다.
강한 보병대를 뒷줄에 배치해 난전이 벌어졌을 때 주력 부대가 큰 피해를 당하는 것을 방지하고 강한 기병 전력을 양익에 골고루 배치해 진나라군 진영의 측면을 빠르게 돌파하기 위한 진형.
하지만 진나라군 장수들은 그런 한부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합종군 진영을 바라보면서 안심한 목소리로 동료와 대화를 나누었다.
“저기 좀 보게. 합종군이 좋은 무기와 갑옷을 입은 보병대를 본대 맨 앞에 배치했구먼. 이번에도 왕 장군님의 예측이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어.”
“역시 합종군은 중앙 돌파를 노리는 건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장군님께서 설명하신 전술은 워낙 난도가 높아서 서융의 병사들이 잘 해낼지 모르겠군.”
“반드시 해내야지. 못하면 우리 진나라는 끝장이야.”
왕전은 합종군 진영 중앙의 본대 최전선에 노궁수 부대를 배치하고 그 뒤에 약체인 서융의 보병대로 얇은 초승달 모양 진형을 짜서 잠시나마 적은 병사로 많은 병사와 맞설수 있도록 배치한 다음 그 뒤에 제대로 된 갑옷을 챙겨입은 진나라군의 극병과 철퇴를 든 부대를 배치했다.
또한 보병으로 이루어진 본대 오른편에는 진나라군 기병대를, 왼편에는 진나라인보다 기마 무술이 뛰어난 서융의 기병대를 배치했다.
양군의 전력을 비교하면 합종군은 보병 약 36만 명에 기병 약 4만 기이고 진나라와 서융의 연합군은 보병 약 25만 명에 기병이 약 5만 기.
병력의 수는 합종군이 많았지만, 유목민족
비중이 높은 서융의 여러 부족이 합류한 덕에 기병의 숫자는 진나라-서융 연합군 측이 더 많았다.
그리고 서융의 기병대는 많은 숫자 말고도 다른 강점을 갖추고 있었다.
한부는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우익의 기병대에 사람을 보내서 기병대장 석을 불렀다.
석은 급히 한부가 있는 본대 후방으로 말을 달려와서 말 등 위에서 내려 두 손을 모아 읍했다.
“전하. 부르셨습니까.”
“석아. 방금 적진의 배치를 살펴보니 네가 맡은 우익 쪽의 전투가 가장 치열할 것 같구나. 서융의 기병은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기병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할 것이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하. 우리 조선의 기병대는 흉노를 도와 철이 들자마자 말 타는 법을 배운다는 기마민족과도 싸워서 큰 어려움 없이 이기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적군이 제 발로 함정이 깔아둔 곳으로 들어와 전투를 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적 기병대가 조잡한 활이나 날붙이만 가지고 있어서 우리 개마무사대의 강철 경번갑과 마갑을 뚫지 못한 것도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였지.”
“이번 전투도 결국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는지요?”
“서융의 기병대는 편곤과 비슷한 타격무기를 즐겨 쓰니 우익의 기병전에선 경번갑이 몸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그러니 전군에 예전처럼 적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지 말고 피하라고 전하도록 해라.”
“조선 말고 다른 나라에도 편곤을 쓸 줄 아는 기병이 있을 줄은 몰랐군요······.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원 역사에서 조선과 명나라의 병사들이 애용했던 편곤은 원래 서융의 전통 타격무기가 동아시아에 전해지면서 각국의 환경에 맞게 변한 것이었다.
한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합종군의 기병 중 서융의 기병대와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는 개마무사대를 전부 우익에 배치한 것이다.
그는 양군의 수십만 대군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평야를 바라보면서 앞으로 펼쳐질 전황을 머릿속에 그렸다.
‘아무리 약한 제나라군 보병대를 앞세웠어도 본대 싸움에서는 우리 군이 적을 밀어낼 거다. 다만 너무 빨리 밀어내면 오히려 진나라군은 중앙 부분이 오목한 진형을 완성해 적은 병사로 많은 병사를 포위하는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까 속도를 조절해야 해. 그리고 양익의 기병 싸움은 최대한 빨리 이겨야 하고.’
왕전의 생각도 한부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흉노만큼 용맹하기로 유명한 서융의 기병대가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기만을 바라면서 장수들에게 말했다.
“이번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역시 좌익이다. 극병 부대는 본대의 전황이 좋아지면 즉시 좌익의 아군을 지원하러 가야 함을 잊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왕 장군님.”
그렇게 양군이 할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치자 진나라군 진영에서 먼저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우렁찬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뿌우우우우우우!
그러자 진나라가 자랑하는 3인 1조의 노궁수 부대 약 4만 명이 익숙한 동작으로 커다란 쇠뇌에 화살을 장전하여 합종군 본대를 향해 일제히 발사했다.
- 퉁! 투둥! 퉁! 퉁!
쇠뇌의 시위를 떠난 1만 개가 넘는 굵은 화살이 무지개처럼 큰 포물선을 그리면서 아군을 향해 날아오자, 제나라군 장수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휘하의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거······ 겁먹지 마라! 방패를 든 병사들은 앞으로 나서서 낭선을 든 전우를 보호하라!”
“자세를 숙이고 가슴과 몸통을 가리도록 방패를 들어라!”
제나라 병사들은 상관의 명에 따라 앞으로 나서면서 근처의 낭선병과 자신을 방패로 보호했지만, 충분한 훈련을 받지 못했거나 힘과 체력이 유독 약한 몇몇 병사들은 방패를 충분히 높이 들지 못해서 애꿎은 낭선병과 함께 화살에 맞고 쓰러졌다.
“크어억!”
“으아악!”
그러자 한부도 아군 양익에 배치한 원거리 부대에 적군 본대를 향해 사격 명령을 내렸고 곧 무수한 진나라군 진영에도 무수한 화살과 납탄이 쏟아져 적잖은 진나라군의 노궁수와 서융 출신 병사를 쓰러뜨렸다.
양군은 그렇게 원거리 공격으로 서로의 실력을 먼저 가늠한 다음 드디어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하는 두 마리의 맹수처럼 상대방을 향해 천천히 한 발짝씩 다가왔다.
그리고 마침내 양군의 거리가 10m쯤으로 좁혀졌을 때, 피를 봐서 흥분한 서융 출신 보병들이 각자 손에 맞은 다양한 병장기를 들고 합종군 진영을 향해 돌진했다.
“와아아아아아아!”
“적을 무찌르고 파촉의 비옥한 땅을 차지하자!”
많은 서융의 병사들은 무작정 적을 향해 돌격하다가 귀한 맹독 대신 퇴비를 바른 낭선의 칼날에 팔과 다리를 긁히면서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끄아악!”
“모두 조심하라! 저 괴상한 대나무 가지에 작은 칼날이 달려있다!”
“투창! 투창을 던져!”
서융의 병사 중 투창을 가지고 있던 자들은 먼저 그것을 던져 제나라군의 진영을 흩트린 다음 돌진하는 방법을 불리한 전세를 뒤집어보려 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일 뿐 더 좋은 장비와 더 많은 병력을 갖춘 합종군에게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그때 합종군의 우익에서는 한부와 왕전이 예상했던 대로 이번 전투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막 시작되었다.
“돌격하라! 눈앞의 적 기병대를 분쇄하라!”
석이 우레같은 함성을 지르면서 긴 창인 마삭을 높이 들고 말을 구보로 몰며 다가오자 몽무도 휘하의 서융족
기병대를 독려하면서 외쳤다.
“조선의 개마 뭐시기 하는 기병대가 강하다는 과장된 소문이 전 중원에 퍼졌지만, 결국 시간 날 때마다 말을 타는 정주민족의 반쪽짜리 기병일 뿐이다! 기마민족의 자존심을 걸고 반드시 적을 물리쳐라!”
“와아아아아아아!”
양군의 수만 기병대는 서로를 노려보면서 말과 함께 천천히 다가오다가 서로 간의 거리가 50m쯤으로 줄어드는 순간, 마삭을 든 선두의 개마무사대 5천 기가 먼저 랜스차징을 시작했다.
- 두두두두두두두두!
끝이 뾰족한 쐐기 진형으로 돌진해오는 길이가 5m가 넘는 창을 앞세우고 파도처럼 돌진해오는 중장기병대.
그러나 몽두도 왕전에게 고조선군의 전술에 대해 미리 들은 것이 있어 당황하지 않고 재빨리 양옆으로 기병을 흩어 막을 수 없는 적의 공격을 피하려 했다.
- 콰가가가각!
결국 개마무사대의 맹령한 돌격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어 약 1천 기의 서융 기병대만이 마삭에 꿰뚫리며 전사했고 전투는 난전으로 접어들었다.
“난전에서 긴 창은 쓸모없다! 마삭을 버리고 편곤과 활을 들어라!”
기병대장 석의 외침에 개마무사대는 허리춤에 찬 편곤을 오른손에 들고 비슷한 무기를 휘두르는 적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양군의 궁기병대는 그 주변을 맴돌며 서로에게 활을 쏘아대거나 아군을 지원했다.
여기까지는 양군의 전투가 팽팽하게 진행되는 상황.
하지만 초조함에 시달리는 쪽은 진나라군을 지휘하는 왕전이었다.
“이런······! 뜻밖에도 합종군 보병대가 우리군 본대를 밀어내는 속도가 느리지 않은가! 이러면 내가 구상한 포위진이 완성하기 어려운데! 거기에 믿었던 서융의 기병대도 적보다 수가 많음에도 접전을 벌이고 있으니!”
그런데 그때, 어깨에 화살 한 대가 박힌 진나라군 기병 한 기가 왕전에게 말을 달여오더니 굴러떨어지듯 말에서 내리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장군님! 우익의 궁기병대가 적군의 공세에 괴멸 직전입니다! 어서 지원군을 보내주십시오!”
“뭐라고?! 그럴 리가! 우리 진나라의 궁기병대가 위나라나 제나라의 궁기병대에게 밀렸단 말이냐!”
“그 두 나라의 궁기병대가 아니라 조선의 낙타 기병 5백 여기 때문에 전세가 기울어졌습니다!”
“겨우 5백기 때문에?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구나!”
“동이족들은 낙타의 등에 작은 탑을 올려놓고 그 위에 병사를 두 명 태웠는데, 한 명은 탑에 고정된 상자노를 쏘고 한 명은 가까이 다가오는 우리 기병에게 창을 휘두릅니다! 그리고 낙타가 가까이 오면 말이 겁에 질려 도망치려 하니 궁기병으로는 막을 방도가 없습니다!”
“하······! 교활한 조선의 태자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비장의 수를 숨겨두고 있었구나!”
낙타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황소보다도 힘이 훨씬 세고 지구력 또한 강한 동물이라 등에 병사 두명을 태우고 무거운 무기를 올릴 수 있었다.
또한 그 동물 특유의 고약한 냄새와 큰 덩치에 조랑말과 비슷한 덩치인 중원의 말들이 겁을 먹고 날뛰니 진나라군 궁기병대는 제대로 싸울 수 없었던 것이다.
잠시후 고조선의 낙타 기병대는 눈앞의 진나라군 기병대를 모두 쫓아버리고 말이 낙타의 냄새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받은 위, 제나라의 궁기병대와 함께 왕전이 아껴둔 진나라군 본대 후방의 정에 극병 부대에 화살을 날려댔다.
전방의 적 보병부대와 결전을 벌일 각오를 다지고 있던 진나라군 보병들은 갑자기 후방에 나타난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기괴한 짐승의 등에 탄 적군이 말뚝만 한 화살을 쏘아대자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한부는 그 모습을 보고 호탕하게 웃은 다음 곁에 있는 부장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군 돌격하라! 지금부터 전력을 다해 적을 몰아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