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58화 (158/195)

[158화] 합종군 vs 진나라군 (1)

합종군의 병사들이 막 좁은 산길에 막 들어섰을 때, 진나라의 장군 왕전은 현산의 서쪽 산기슭에 군영을 설치하고 한창 산악행군 중인 적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산속으로 정찰부대를 보냈다.

그로부터 닷새 후 산비탈의 울창한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진나라군 장수가 옷이 피와 땀에 젖은 병사 수십 명과 함께 진나라군 군영에 돌아와서 왕전에게 보고했다.

“왕 장군님. 합종군은 이미 현산의 산길에 발을 들였습니다······.”

“자네들의 몰골을 보니 그런 것 같군. 적군과 교전을 벌여 패한 건가?”

“며······ 면목없습니다. 장군님.”

“병사 한 명이 아쉬운 때에 3백 명이 가서 겨우 쉰 명이 돌아오다니······. 분명히 합종군 행렬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 말고 적군의 위치와 행군속도, 그리고 대략적인 규모 정도만 파악하면 바로 군영으로 돌아오라고 명하지 않았는가?”

“소장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만 막 합종군 행렬의 위치를 확인하고 본대에 복귀하는 도중에 조선군과 한나라군의 척후 부대로 보이는 적군과 울창한 숲속에서 마주치는 바람에 원치 않은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군 척후 부대와 전투를 벌인 지점과 합종군 본대와 거리는 얼마나 되나?”

“약 십 리 정도였습니다.”

“그렇군. 수고했네. 자네 숙소로 돌아가서 상처에 붕대를 감고 푹 쉬게.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서 자기 일을 하도록.”

젊은 장군이 말하자 진나라군 정찰부대를 이끈 장수는 자상을 입은 팔을 들어 힘겹게 읍한 후 휘하의 병사들과 함께 지휘관 막사 밖으로 나갔고 왕전은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흠······. 이거 골치 아파졌군. 아무래도 조선의 태자는 듣던 것보다 더 신중하고 빈틈없는 자인 모양이구나. 합종군이 산을 넘기 전에 적군의 수를 줄여두지 못하면 진나라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나 마찬가지인데······.”

현재 함양을 향해 진군하고 있는 합종군 병사는 약 46만 명.

반면 진나라 조정이 추산한 서융의 여러 부족이 보내올 지원군 규모가 약 10만 명쯤이고 진나라군 병사가 20만 명이니 서융의 지원군이 모두 함양에 도착한다고 해도 왕전이 거느릴 병사의 수는 30만 명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그렇기에 왕전은 진나라군이 무사히 서융의 지원군과 합류한다고 해도 수적으로 우세하고 여러 명장이 거느리는 합종군과 회전을 벌이게 된다면 십중팔구 큰 패배를 면치 못할 거로 판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진나라군이 반격의 실마리를 잡으려면 합종군이 좁은 산길을 지날 때 적군 병사의 수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수밖에 없는데, 한부가 다른 나라 장군들에게 행군속도를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진로를 철저하게 정찰한 다음 부대를 움직이라고 신신당부한 탓에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왕전은 선 채로 팔짱을 끼면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합종군에게 피해를 줄 방법을 고심했고 막 지휘관 막사 밖으로 나가던 기병대장 몽무는 그런 그를 흘끗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야생동물을 잡을 때처럼 미끼를 써서 함정에 빠트릴 수도 없고 이를 어찌하면 좋을지······.”

그런데 그때, 왕전이 몽무의 혼잣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손뼉을 한번 크게 치면서 그에게 외쳤다.

“미끼를 던진단 말이지! 몽 형님! 그 방법이 있었네요!”

몽무는 왕전이 몇몇 다른 장수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친근하게 부르자 크게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왕 장군님! 진정하십시오! 사사로운 정 때문에 군율을 가볍게 여기시면 안 됩니다!”

“아······. 내가 실수했군. 아무튼, 경의 혼잣말을 들은 덕분에 합종군에 반격할 방법이 떠올랐소! 참으로 고맙구려!”

“혼잣말? 아, 미끼 얘기 말씀하시는 모양이군요. 하지만 합종군을 지휘하는 조선의 태자는 간교하기 이를 데 없다고 소문난 자인데 어지간한 미끼에 걸려들지 의문입니다.”

“합종군은 조선의 태자 혼자 지휘하지 않소. 그리고 우리 정찰부대가 마주친 적군은 한나라 출신이었다고 말했으니 합종군 행렬의 선두에는 한나라군이 배치되어있다고 봐도 될 거요.”

“한나라의 상장군은 이궐이라는 자라고 듣긴 했습니다만, 이름 두자 외에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자입니다. 왕 장군께서는 미증유의 적장에 관한 정보를 이미 확보하셨는지요?”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못하오. 그러나 지금까지 적장의 성향을 알아보고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오. 몽 기병대장. 막사 밖으로 나가서 정찰 부대를 지휘하는 장수들에게 산길을 지나는 합종군의 본대를 꾸준히 습격하라고 전해주시오.”

“조금 전 군영에 돌아온 우리 정찰 부대처럼 득은 적고 실은 많을까 두렵습니다.”

“분명 우리 병사들의 피해가 만만치는 않겠지요. 하지만 한나라군을 지휘하는 상장군에게 몇 번 작은 승리를 맛보여주면 공적을 탐내기 시작할지도 모르오.”

“적군이 더 많은 피를 흘리도록 하려고 아군 병사를 사지에 몰아넣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까······.”

“본인도 그 점이 마음에 걸리지만, 이 방법을 말고는 아군의 피를 덜 흘리면서 적군의 수를 줄일 방법은 없소.”

“후······. 알겠습니다. 장군님.”

* * *

젊은 장군의 명을 받은 진나라군 정찰부대의 장수들은 한 부대에 5백 명에서 1천 명 정도의 병사로 구성된 별동대를 이끌고 산길을 지나는 합종군에 기습을 시도했다.

그러나 진나라군 별동대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언제나 한나라군의 척후 부대가 본대에 적습이 임박했음을 알린 덕에 합종군은 진나라군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오히려 적군에 큰 피해를 줄 때가 많았다.

그런 상황은 합종군의 행렬이 현산의 산길을 절반쯤 지날 때까지 계속되었고 한나라의 장군 이궐은 나날이 진나라군과 적장 왕전을 과소평가하게 되었다.

“또 진나라군의 별동대가 무모하게 우리 척후 부대를 기습하다가 도망쳤단 말이냐? 이번에 취한 적군의 수급은 모두 몇 개나 되느냐?”

이궐이 묻자 작은 전투에서 승리한 한나라군 장수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뻐하십시오. 이 장군님. 이번 전투에서 융적의 수급 3백 개를 취했사옵니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 한나라군이 죽인 적군의 수는 3천 명이 조금 넘는군.”

“그렇습니다. 장군님.”

이궐은 장수의 대답을 듣고 기쁨과 아쉬움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일곱 번째 승리인가. 하지만 우리 병사들이 죽인 진나라인의 수급이 너무 적다. 이대로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또 조선의 태자나 신평군 염파만 천하에 무명을 날리겠지.’

전국시대 중원 여러 나라의 장수들은 조정에 승전보를 올릴 때 함께 보낸 적군 머리의 숫자로 공적을 평가받았다.

그러다 보니 이궐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나라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진나라군을 상대로 휘하의 장수와 병사만 부려 진나라군을 물리침으로써 한나라 왕의 관심을 받게 되었지만, 아직 중원 전역에서 유명한 무장이 되려면 갈 길이 멀었던 것이다.

그는 막사 밖으로 나가 부하들이 진나라군을 물리치고 가져온 많지 않은 전리품을 둘러보면서 두 주먹을 쥐었다.

‘슬슬 어린 적장이 무모한 도박을 시도할 때가 되었는데······. 그자도 이대로 46만 명이나 되는 합종군이 현산을 넘으면 진나라는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 이렇게 무모하고 성급한 기습작전을 꾸준히 시도해왔던 것일 테니까.’

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돌려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바라보자 한 장수가 이궐에게 달려오더니 숨이 턱까지 찬 채로 보고했다.

“이 장군님! 진나라군이 약 20리 앞에 있는 산길 양옆의 산비탈에 통나무와 바위 따위를 마련해서 아군이 길을 지날 때 굴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네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느냐?!”

“그렇습니다! 적군은 나름대로 은밀히 움직이고 있고 우리 본대와의 거리도 제법 멀었지만, 몇몇 서툰 진나라군 병사가 요란스럽게 도끼질을 해댄 덕에 운 좋게 이 사실을 일찍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바위와 통나무라! 그런 물건을 준비하려면 분명 꽤 많은 병사를 동원해야 할 터!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행군하다가 적군이 함정을 파놓은 지점에 가까워지면 우리도 별동대를 보내 산비탈의 숲속에 숨어있는 적군의 등 뒤를 치겠다. 전 부대에 이 사실을 전해두도록.”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장군님!”

그로부터 이틀 후 합종군 행렬이 진나라군이 바위와 통나무를 숨겨둔 지점에 도착하자 이궐은 미리 준비해둔 별동대 1만 명을 두 부대로 나눠 산길 양옆 산비탈의 숲속에 숨어있는 진나라군 병사들을 급습했다.

“와아아아아아!”

“쥐새끼처럼 숨어있는 융적들을 처치하라!”

짧은 검이나 손도끼 따위를 든 한나라군 병사들은 산이 떠나가도록 큰 함성을 지르면서 함정을 작동할 준비를 마친 적군의 등을 향해 달려가자 매복해 있던 진나라군 병사들이 놀란 듯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적군에 매복이 발각됐다!”

“모두 본대를 향해 퇴각하라!”

얼굴이 사색이 된 1만 명이 넘는 진나라군 병사들은 산비탈을 뛰어 내려와 장애물이 없는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이궐은 크게 기뻐했다.

“저렇게 많은 적군이 숲속에 숨어있었다는 말인가! 드디어 하늘이 이 이궐의 이름을 천하에 알릴 기회를 주시는구나! 전군! 도망치는 융적을 쫓아라!”

장군의 명이 떨어지자 한나라군 병사들은 산길을 달리면서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는 진나라군을 추격했다.

그러면서 다리가 느린 적군이 하나둘 아군 병사가 휘두른 무기를 등에 맞고 쓰러지자 한나라군 장수와 병사들은 전투가 끝난 후 받게 될 관직과 전리품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전속력으로 진나라군의 뒤를 쫓았다.

그러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포상이 아닌 또 다른 진나라군의 함정이었다.

직접 전장에 나온 왕전은 산길을 따라 부리나케 도망치는 아군과 그 뒤를 사냥감을 쫓는 늑대무리처럼 추격하는 한나라군 병사들을 보면서 산비탈에 숨어있는 병사 수천 명에게 수신호로 함정을 작동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앞서 발각된 함정은 미끼였을 뿐 그곳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따로 준비해둔 통나무와 바위가 진짜 함정이었던 것이다.

왕전은 미끼 역을 맡은 마지막 아군 병사가 함정지대를 빠져나가 직접 허리춤에 차고 있던 뿔나팔을 손에 들고 힘차게 불었다.

- 뿌우우우우우우우!

우렁찬 뿔나팔 소리에 놀란 산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자 그와 동시에 진나라군 병사들이 함정을 고정해둔 지지대의 밧줄을 도끼로 내리쳤고 곧 커다란 바위와 통나무가 산비탈을 굴러 내려가면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펴졌다.

- 쾅! 콰광! 쾅!

승리의 달콤함에 취해있던 한나라군 병사들은 그제야 죽음이 눈앞에 닥쳤음을 깨닫고 혼비백산하며 사방으로 도망치려 했다.

“바······ 바위가 굴러 내려온다!!”

“함정이다! 진나라군의 함정이다!”

그러나 성인남자 서너 명이 어깨를 맞대면 가득 차 버리는 좁은 산길에서 도망칠 곳이 있을 턱이 없었고 한나라군 병사들은 꼼짝없이 집채만 한 바위와 대들보 같은 통나무에 깔리면서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악!”

“살려줘!!”

왕전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전군에 명령을 내렸다.

“조선의 등 뒤에 숨어 호가호위(狐假虎威)하던 한나라군 잔당을 전부 처치해라! 그다음엔 멍청히 승전보를 기다리면서 행군하고 있을 합종군의 후속부대를 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