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진나라군의 반격
“여 상방님! 기뻐하십시오! 진나라군 진영에서 큰 불길이 치솟고 있습니다!”
여불위는 길가다가 큰 금덩이를 발견한 사람처럼 잔뜩 흥분한 아장 노애의 보고를 듣자마자 잠자리에서 일어나 막사 밖으로 달려나오더니 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휘둥그레 뜬 그의 두 눈에 진나라군 진영 동쪽에 붙은 거대한 불꽃이 달도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 캄캄한 위수 강변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히는 모습이 보였다.
“허허허! 솔직히 자네가 자다가 꿈이라도 꾼 건 아닌지 의심했는데, 정말로 적진에 불이 났구먼!”
“너무하십니다! 여 상방님! 소장은 곧 태후의 보필이자 옹나라의 대부가 될 몸인데 어찌 조금 좋은 꿈을 꾸었다고 경거망동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튼, 진나라군 병사들이 불을 끄느라 정신없을 때를 노려서 적진을 공격하시지요!”
“조금만 더 기다려보게. 적장이 우리를 함정으로 유인하려고 수작을 부린 것일지도 모르니 우선 기병대를 보내 진나라군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봐도 늦지 않을 걸세.”
그 대답을 듣고 노애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순간, 이사가 막사 안으로 들어와 여불위에게 읍하면서 보고했다.
“여 상방님! 조금 전 동쪽에서 불길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급히 적진에 정찰대를 보냈는데,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기병들이 말하길 진나라군 병사와 서융의 병사가 무기를 들고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인가! 하늘이 우리를 도우셨구나! 서융의 병사는 진나라군 병사보다 수가 적으니 적진의 혼란은 그리 길게 가지 않을 걸세! 이 장사! 당장 전군에 출진 명령을 내리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여 상방님!”
조금 전까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던 노애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자마자 활짝 웃더니 여불위에게 말했다.
“여 상방님! 소장도 전장에 나서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반드시 적장 왕전의 목을 가져오겠습니다!”
“좋을 대로 하게. 노 아장. 다만 너무 공을 탐내서 무모한 일은 벌이지 말게나. 아, 그리고 병사들에게 이번 전투에서 얻은 적군의 수급을 가져오는 자는 사비를 들여서 평소보다 두 배 많은 포상금을 하사하겠다고 전하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여 상방님!”
이사와 노애는 상방에게 읍한 후 막사 밖으로 나갔고 여불위는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그렇지······. 이 여불위의 마지막 경력이 약소군의 재상 따위일 수는 없지. 이번 전투의 승리로 옹나라가 중원의 패자로 거듭날 발판을 마련하는 거다!”
여불위가 뜻밖의 횡재에 기뻐하고 있을 때 아서는 휘하의 병사들을 시켜 옹나라군 장수와 병사 전원을 연병장에 집합시켰다.
모든 장수와 병사가 모이자 노애는 그들 앞으로 나서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상방의 명을 전했다.
“보라! 옹나라의 신민들이여! 하늘이 옹나라 왕실을 아끼시어 진나라군이 동맹인 줄 알고 군영 안으로 받아들였던 서융의 야만인들과 싸우느라 자멸하고 있다! 여 상방님께서는 이 기회에 덕 없는 폭군 영정의 치세를 끝내시고자 이번 전투에서 적의 수급을 가져오는 자에게 평소보다 두 배나 많은 포상금을 내리신다고 말씀하셨다!”
해가 지기 전엔 점점 불어나는 적군을 보며 겁먹었던 옹나라군 병사들은 노애의 외침을 듣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우레같은 함성을 지르면서 전의를 불태웠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역시 여 상방님! 중원 제일의 부자답게 화끈하시구먼!”
잠시 후 옹나라군 장수들은 옹나라군 진영에 비병 1만 명만 남기고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한 병사들과 함께 진나라군의 불타는 진나라군 숙영지로 돌격했다.
공적이나 여불위가 약속한 많은 포상금에 눈이 먼 장수와 병사들은 앞을 다퉈 무작정 적진으로 달려갔는데, 그중 가장 기병 약 3백 기를 이끌고 가장 앞장서서 말을 달리는 자는 다름 아닌 아장 노애였다.
그는 평소 조 태후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자라는 평을 들어왔기 누구보다도 무공에 목말라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불타는 진나라군 숙영지에 도착하자 노애는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부하들을 바라보면서 명령했다.
“잡졸 1천 명을 베어봐야 장군 한 명을 잡는 것만 못하니 잔챙이는 겁 없이 덤벼드는 놈들만 처치하고 적장 왕전을 찾아보아라! 좋은 갑옷을 입은 젊은 장수는 별로 없을 테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노 아장님!”
그 후 노애는 휘하의 기병 3백 기와 함께 진나라군 숙영지의 남쪽 입구로 들어가서 아직 불이 붙지 않은 진나라군의 천막 사이를 거침없이 달렸다.
그러자 그곳에 남아있던 진나라군 병사 수백 명은 왕전이 사전에 지시한 대로 겁에 질린 시늉을 하며 숙영지 중심부에 있는 공터를 향해 도망쳤다.
“으아아아악! 옹나라군이 쳐들어왔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적습이라니! 어서 왕전 장군님께 알려야 해!”
가장 먼저 적진에 진입한 옹나라군 기병 중 한 명이 진나라군 병사들의 외침을 듣자마자 즉시 노애에게 알렸다.
“노 아장님! 저기 도망치는 병사들이 적장 왕전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뭐?! 그걸 네가 어찌 아느냐?!”
“우연히 저놈들이 도망치면서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늘이 이 노애를 도우시는구나! 모두 저놈들의 뒤를 쫓아라!”
노애는 그렇게 소리치면서 말의 옆구리를 걷어차면서 무작정 도망치는 진나라군 병사들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고 옹나라군 기병들은 그런 아장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노애가 병사용 천막으로 둘러싸인 공터에 막 들어서는 순간, 그가 탄 말이 진나라군이 미리 바닥에 뿌려놓은 쇠침을 밟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 앞으로 넘어졌다.
- 히히히히히히힝!
그와 동시에 노애는 쇠뇌에서 발사된 화살처럼 앞으로 날아가더니 바닥에 닿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악!”
그러자 아장의 넘어진 말에 노애의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오던 기병도 차례로 말의 다리가 걸려 넘어지기 시작하면서 쉰 기가 넘는 선두의 옹나라군 기병이 낙마하면서 쇠침이 널려있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흐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내 손! 내 손!”
아직 낙마하지 않은 옹나라군 기병들은 곳곳에서 손바닥이나 허벅지에 쇠침이 박힌 전우들의 비명을 듣고 급히 말머리를 돌려 그곳을 빠져나오려고 했다.
“함정이다! 진나라군이 파 놓은 함정이야!”
“어서 여 상방님께 알려야 해!”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우렁찬 뿔나팔 소리가 들려오더니 천막 안에서 숨죽이며 매복해있던 진나라군 병사들이 우렁찬 함성과 함께 튀어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옹나라의 반역자들을 처단하라!”
진나라군 병사들은 일제히 극을 휘둘러 창날 옆에 달린 날카로운 갈고리로 적 기병의 어깨를 찍어서 말 아래로 끌어내리기 시작했고 오히려 기습을 당한 옹나라군 기병들은 덫에 걸린 짐승처럼 저항다운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노애는 낙마하면서 오른팔과 두 다리가 부러져 흙바닥에 드러누운 채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아직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구슬픈 목소리로 소리쳤다.
“조 태후의 배필인 노애가 여기 있다! 어서 날 구하지 않고 거기서 뭣들 하는 거냐!”
그렇게 그가 몇 번 더 외치니 그 소리를 듣고 먼발치에서 달려온 기병대장 몽무가 검고 큰 말을 타고서 노애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노애는 고개를 돌려 그 장수를 올려다보면서 비굴한 목소리로 목숨을 구걸했다.
“이보시오! 무관님! 날 왕전 장군에게 데려다 주시오! 저항하지 않고 얌전히 포로가 되겠소! 날 옹나라로 무사히 돌려보내면 조 태후께서 몸값으로 천금을 내실 것이오!”
몽무는 그런 그를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다가 말없이 고삐를 힘차게 당겼다.
- 히히히히히히힝!
그러자 검은 말은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면서 뒷발로 일어서면서 앞발을 하늘 높이 들었고 노애는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주절거렸다.
“지······ 지금 무슨! 내가 누구인 줄 알고······!”
몽무의 검은 말은 비굴한 적장이 말을 마치기 전에 앞발의 발굽으로 그의 입을 힘차게 내리찍었다.
- 퍼억!
소름끼치는 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노애가 즉사하자 몽무는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이렇게 편히 죽어도 될 놈이 아닌데 홧김에 저질러 버렸군. 워낙에 더러운 소리를 지껄여대니 참을 수가 있어야지. 퉤!”
그는 죽은 노애의 얼굴에 침을 한번 뱉고는 말머리를 서쪽으로 돌리면서 뒤따라온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아직 많은 적이 등불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숙영지 안으로 들이닥치고 있다! 방심한 역적 놈들 본대의 측면을 후벼 파라!”
몽무가 커다란 철퇴를 앞으로 내밀면서 앞으로 달려나가자 진나라군 기병대도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대장의 뒤를 따랐다.
“와아아아아아아!”
“대왕 폐하를 위하여!”
그와 동시에 왕전이 직접 지휘하는 진나라군 보병대도 아직 불길이 번지지 않는 숙영지 동쪽의 천막 안에서 뛰쳐나와 적군을 향해 돌격했다.
무작정 적진을 향해 달려오던 옹나라군은 내분이 일어난 줄 알았던 적군이 갑자기 숙영지의 남쪽 입구로 달려 나와 일제히 공격해오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외쳤다.
“보······ 복병이다!”
“이런 시발! 다들 무기를 들어라!”
몇몇 대범한 옹나라군 장수가 급히 임전 태세를 갖추려 했지만, 옹나라군 병사들은 동료보다 더 많은 적군의 수급을 취할 생각으로 앞다투어 달려오느라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었기에 제대로 된 방어 진형을 갖출 수가 없었다.
왕전은 말을 타고 숙영지에서 나오면서 그 모습을 보고 빙긋 웃더니 뒤를 돌아보면서 소리쳤다.
“노궁수 부대! 전방의 적을 향해 사격 개시!”
장군의 외침이 전장에 울려 퍼지자 진나라가 자랑하는 쇠뇌 1만 5천 대가 차례로 화살을 발사했다.
- 투웅! 투웅! 투웅!
쇠뇌의 현을 떠난화살은 큰 포물선을 그리면서 진나라군 보병대의 머리 위를 지나 소나기처럼 적진에 쏟아져 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우왕좌왕하던 옹나라군 병사들은 바로 옆의 전우들이 화살에 맞고 하나둘 쓰러지는 데다 어느새 전장에 나타난 몽무의 기병대가 본대의 좌측면을 공격하자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후퇴! 후퇴하라!”
온몸에 전우와 자신의 피가 묻은 채로 살기 위해 본진을 향해 달려가는 옹나라군 패잔병과 그런 그들을 먹잇감을 노리는 늑대 무리처럼 추격하는 진나라군 병사들.
여불위는 아군이 승리를 거두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망루 위에 올랐다가 적군이 들불처럼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아······! 새파랗게 어린 적장은 이 여불위를 속이려고 숙영지에 일부러 불을 질렀다는 말인가! 왕전······! 진나라에서 재상 노릇을 하는 동안에 왜 그놈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천추의 한이로구나!”
그때, 망루의 계단을 달려 올라온 옹나라군 부장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면서 여불위에게 말했다.
“여······ 여 상방님!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급히 위수에 목앵부를 놓았으니 강변으로 가시지요! 적군이 들이닥치기 전에 남은 병사를 데리고 위수 너머로 후퇴해야 합니다!”
여불위는 부장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대답했다.
“이 여불위의 꼴이 참으로 우스워졌구먼······. 이제 옹나라의 존망은 오롯이 합종군의 활약에 달리고 말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