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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53화 (153/195)

[153화] 왕전의 이른 등장

진왕 영정은 창평군과의 대화를 마치자마자 몽골 고원과 티베트 고원의 여러 지역에 있는 나라와 부족에 전령을 보내 옛 촉나라 땅을 할양할 테니 진나라와 동맹을 체결하는 한편 합종군을 막을 지원군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살아온 수많은 산악부족과 유목민 부족은 비옥한 농지와 목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진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서융의 보병과 기병이 속속 함양을 향해 출발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그 사실은 고조선 암부의 요원의 보고를 통해 거양성 부근에서 다시 진나라 원정을 떠날 보급품을 보충하고 있는 합종군 진영을 긴장케 했다.

한부도 함양에 잠입한 요원이 보내온 보고서를 읽고 내심 놀라면서 자신의 막사에 상장군 무명을 불러서 물었다.

“상장군. 이미 들었겠지만, 진나라 왕이 서융의 거의 모든 부족과 동맹을 맺었소. 경은 진나라에 있을 때 서융의 장수와 병사를 볼 기회가 많았을 터이니 앞으로 새 적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를 말씀해주시구려.”

“서융의 장수와 병사는 하나같이 거칠고 용맹해서 적장의 허를 찌르는 전략이나 전술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괜히 그 족속의 이름에 병장기 융(戎)자가 붙은 게 아니지요.”

“진나라는 그동안 잘도 그런 호전적인 부족들을 정복해 왔구려.”

“서융의 여러 부족과 국가는 오래전부터 서로 경쟁하기에 바빴기에 조직적이고 군율이 잘 잡혀있는 진나라군의 침략을 제대로 막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나라도 서융이 보낸 지원군 통솔하기 쉽지 않을 테니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소?”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과거 조나라의 노장 방난도 평생 책으로만 병법을 익히다가 예순이 넘은 나이에 처음 병사를 부려서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몽오의 20만 대군을 막아내지 않았습니까?”

“음······. 확실히 그건 놀라운 일이었지요.”

“늙은이의 노파심일지도 모르지만, 진나라와 서융의 동맹 소식을 듣는 순간 방난의 등장과 같은 사건이 진나라에서도 벌어질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경의 말에 일리가 있소. 아무래도 함양에 서융의 지원군이 몰려오기 전에 진나라 원정을 마쳐야겠소. 까다로운 적장이 나타나기 전에 지휘할 병사가 없으면 아무 걱정도 할 필요 없을 테니 말이오.”

* * *

한부가 새로운 적군의 등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함곡관 너머 함양의 상황을 주시하는 동안 진나라와 서융이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은 옹나라의 수도 옹성에도 전해졌다.

옹왕 영성기는 임시 궁궐로 삼은 옹성의 관청 서재에서 여불위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던 도중 진나라의 소식을 듣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여 상방! 정녕 영정이 서융의 여러 부족에게 촉 땅을 내주었단 말이오?!”

“참담한 일이지만, 사실이옵니다. 폐하.”

“영정 그 비천한 무희의 자식! 감히 그따위 짓을 저지르다니!”

“폐하! 목소리를 낮추시옵소서! 조 태후는 옹성 일대에 사는 제후와 유지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습니다! 부디 온 나라가 하나로 힘을 합쳐 진나라와 합종군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할 시기라는 점을 기억하시옵소서!”

“큭······. 그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영정 그자가 당연히 선왕의 적통인 짐이 다스려야 할 영토를 멋대로 야만인에게 넘겼다지 않소! 하루라도 빨리 함양을 탈환하고 영정을 참수하여 진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천하에 알려야 하오!”

여불위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쯧쯧······. 보는 사람을 질리게 하는 선민의식이구나. 제후 가문 출신 어머니에게 태어난 게 그토록 자랑스럽단 말인가? 한 나라의 왕이라는 자가 고작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큰 나라를 치려고 하다니.’

그러나 그는 영성기가 전쟁을 일으키려는 동기에 실망했을 뿐 어린 왕의 의견에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폐하. 소신이 선왕이신 장양왕을 모시던 시절부터 데리고 있던 간자 중 한 명이 함양에서 소식을 전해왔는데 함곡관을 지키던 진나라군 병사 중 멀쩡히 살아 돌아온 자는 네 명 중 한 명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직은 서융의 여러 부족에서 진나라에 보낸 지원군이 대부분 함양에 도착하려면 족히 서너 달은 더 걸리겠지요.”

“그러니 영정과 창평군이 서융의 병사들을 모두 모으기 전에 함양을 치자 이 말이로군요!”

“폐하. 진나라는 함곡관에서 많은 병력을 허무하게 잃었지만, 여전히 서융의 도움 없이도 곧바로 20만 대군을 징집할 수 있을 겁니다. 옹나라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도 그 정도가 전부이니 아무래도 우리의 힘만으로는 당장 함양을 치는 것은 힘들겠지요.”

“그럼 어찌하는 게 좋겠소? 진나라군의 주력이 합종군과 회전을 벌이는 동안 수비병력이 적은 위수 이남의 성이라도 몇 개라도 빼앗는 게 좋겠소?”

“무리하게 공성전을 벌이는 것보다는 그편이 현명하겠지요. 또한, 조선의 태자에게 은밀히 전령을 보내 우리 옹나라도 합종책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뭐요?! 여 상방. 지금 그 말씀 진심이오?”

“조선이 주도하는 합종책에 합류하는 게 꺼려지시는지요?”

“짐은 관계없소. 물론 겉으로나마 동이족의 나라를 맹주로 여기는 척 해야한다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영정 그 천한 놈을 진나라의 옥좌에서 끌어내릴 수만 있으면 그 정도 굴욕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으니. 하지만 경은 조선의 태자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소신이 안읍의 전장에서 한부 그자에게 농락당했던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적의 적은 동지라는 말이 있듯 지금은 우리나라의 목젖에 칼을 겨누고 있는 진나라를 먼저 물리쳐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합종책에 합류해야만 진나라가 멸망한 뒤에 다섯 나라의 연합군이 옹나라를 공격할 명분을 없앨 수 있을 겁니다.”

“과연 대단하시오.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원한을 잠시 가슴에 묻기로 한 거구려. 경과 같은 충신이 몇 명만 더 있어도 옹나라의 장래가 밝을 터인데······.”

여불위는 ‘일단 너부터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원한을 잊는 법을 배워라.’라는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지만, 어린 왕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대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두 손을 모아 읍했다.

“과찬이십니다. 폐하.”

* * *

옹왕 영성기를 설득한 여불위는 20만 대군을 징집한 후 여러 부대로 나누어 접경지역에 있는 진나라의 마을과 작은 성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는 한편 장돌뱅이 상인으로 위장한 전령에게 함곡관으로 가서 옹나라도 합종책에 합류하고 싶다는 내용이 적힌 서신을 전달하도록 명령했다.

진나라가 아직 서융족의 지원군이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남과 북으로 적국의 침략을 당하게 되자 급히 함양의 궁궐에 모여든 진나라의 제후와 대신들은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뉘어 왕의 앞에서 논쟁을 벌여댔다.

“폐하! 참으로 원통한 일이지만, 지금은 조선을 필두로 한 다섯 나라에 잠시 고개를 숙이고 후일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다고 사료되옵니다!”

“그 무슨 불충한 말씀이시오! 양 대부! 어떻게 대왕께 천한 동이족

태자와 역모로 형제를 쫓아내고 옥좌에 앉은 위나라 왕에게 고개를 숙이라는 말을 입에 담으실 수가 있소?!”

“그럼 어쩌자는 것이오? 일시적으로나마 촉 땅을 서융에게 내주면 앞으로 몇 해 동안은 군량으로 쓸 곡식을 걷기가 힘들 터인데 여불위가 이끄는 군대가 위수를 건너와 남은 농경지마저 약탈하고 있지 않습니까? 합종군을 요격할 병력도 부족한 마당에 역적의 군대까지 날뛰고 있으니 우선은 합종군에 항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진왕 영정은 양측의 대화를 모두 귀담아들은 다음 양미간을 찌푸리면서 창평군에게 물었다.

“창평군. 대체 어찌하는 편이 좋겠소? 주전파의 말을 따르자니 그렇지 않아도 적은 병력을 나누어 합종군과 옹나라군을 동시에 막게 해봐야 각개격파 당할 뿐일 테니 역시 항복하는 편이 낫겠소?”

“폐하. 만약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합종군에게 항복했다가 우리 진나라가 초나라처럼 여러 갈래로 찢겨나가게 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 조선의 태자는 분명히 폐하께 옹나라의 독립을 인정하라고 요구할 것이고 어쩌면 옛 촉나라의 왕족을 찾아내서 촉나라를 재건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촉 땅에 다시 하나의 조정이 통치하는 거대한 적대국이 들어서는 일 만큼은 막아야 하오. 그렇다면 어떻게든 옹나라와 평화협정을 맺고 합종군을 막는 수밖에 없겠구려······.”

“역적 영성기는 속이 좁은 자라 결코 평화협정에 응하지 않을 겁니다. 일전에 말씀드렸던 장래가 촉망되는 장수 왕전을 불러서 의견을 물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직 수염도 나지 않은 짐이 할 말은 아니나, 왕전은 이제 갓 스무 살이 넘은 젊고 경험이 부족한 장수가 아니오? 그저 병법서를 달달 외운 장수가 장평에서 무안군 백기에게 패했던 조나라의 졸장 조괄보다 나은 점이 있을지 의문이오.”

“함곡관에서 살아남은 병력을 수습해 성공적으로 퇴각시킨 장수가 바로 왕전이었다고 합니다. 폐하. 그 소식을 듣고 소신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왕전은 젊은이다운 대범함과 나이에 걸맞지 않은 신중함을 두루 갖춘 인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그자의 입에서 나온 말 중에서 참고할만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흠······. 창평군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한번 불러보겠소.”

영정은 곁에 있는 내관에게 왕전을 데리고 오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키나 덩치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동작에 절도가 있고 차분한 인상이 돋보이는 젊은 장수가 알현실에 들어와 옥좌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왕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장(牙將) 왕전이 폐하를 뵙습니다.”

“잘 왔다. 창평군이 평소 네가 장래가 촉망되는 장수라면서 칭찬을 많이 하더군. 불바다로 변한 함곡관에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 나온 걸 보면 그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구나.”

“한탄 패잔병에게 과분한 칭찬을 들려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폐하.”

“짐의 말이 과찬인지 아닌지는 차차 알아보면 되겠지. 현재 우리 진나라는 동쪽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합종군과 마치 흉노의 마적 떼처럼 접경지역에서 농경지를 불태우고 도시와 마을을 약탈하는 옹나라군에게 공격당할 처지에 놓였다.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겠는가?”

“먼저 옹나라군을 무찌르시고 현산의 좁은 산길에 복병을 배치하여 합종군의 행군속도를 늦추시면 서융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왕전이 내놓은 계책은 지나치게 단순한 것이었기에 진왕 영정은 그 말을 듣자마자 코웃음 쳤다.

“허! 말은 쉽지! 왕 아장. 역적 영성기와 여불위는 온 나라의 장정을 끌어모아 20만 대군을 동원하여 위수 이남의 여러 지역을 동시에 약탈하고 있다. 그 발칙한 것들을 일망타진하려면 비슷한 규모의 병력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잖은가?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많은 병상을 징집하려면 함양성을 지키는 수비병력과 왕실근위대까지 동원해야 할 터인데?”

“소장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폐하. 나라의 운명이 촌각에 달린 상황이니 서둘러 온 나라의 병력을 동원해 우리나라의 농경지를 약탈하고 있는 옹나라군을 먼저 쳐서 흩어버리시는 것이 상책이라고 사료 되옵니다.”

“허! 그러다가 우리 군이 옹나라군에게 패하기로 하면 올해 여름이 가기 전에 진나라가 멸망할 터인데?”

“만약 소장에게 병사 20만을 맡겨주시면 우리 진나라군이 여불위가 지휘하는 군대에 패할 일을 만에 하나라도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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