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함곡관 공략을 위한 신무기
형가는 태자의 말에 조금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전하. 함곡관을 공격하시는 것보다는 차라리 흉노의 영토를 지나 북쪽에서 옹나라를 먼저 쳐서 멸한 다음 진나라를 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진나라 원정은 되도록 위, 조, 한 삼진의 세 나라와 합종군을 꾸려서 진행할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초나라까지 끌어들일 생각이지. 그런데 이 네 나라는 원정 일정이 예상보다 길어져서 군량 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을 원치 않을 거다. 사실 우리 조선으로서도 병참선이 너무 길어지는 건 그다지 달가운 상황이 아니긴 하고.”
“음······. 소신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러나 과거 책사 소진이 전국칠웅 중 진나라를 제외한 6국의 왕을 설득해 동맹을 성사시키고 그 여섯 나라의 재상이 되어서 진나라를 공격했을 때도 결국 함곡관은 넘지 못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형가야. 바쁜 와중에도 역사 공부를 열심히 했구나. 네 말대로 위나라나 조나라인 중에선 함곡관을 한 명이 지키면 만 명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천하제일의 험관이라고 부르는 자가 많았다. 확실히 정공법으로 함곡관을 공격했다가는 많은 병사를 잃을 수밖에 없겠지.”
함곡관은 중원과 현대의 산서성 일대인 관중을 오갈 때 반드시 지나야 하는 관문이다.
이 진나라의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인 이 관문은 평야 지대 한복판에 우뚝 솟은 구릉으로 이어진 좁은 길을 가로막고 있는데 남쪽은 산세가 험한 효산으로 막혀있어 침략자가 많은 병사나 공성 병기를 배치할 수 없고 북쪽은 황하와 바로 맞닿아 있어서 폭이 좁은 다리를 건너거나 배를 타지 않으면 성벽에 접근하기 어렵다.
또한 동쪽의 낙양 방향에서 함곡관에 접근하려면 황하와 구릉의 절벽 사이에 낀 길을 지날 수밖에 없는데 이 길의 너비가 겨우 우마차 한 대가 지날 정도여서 토목기술이 발전하지 못한 고대에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래서 한부는 함곡관의 성벽 위를 지키는 진나라군 병사를 혼란에 빠트려서 고조선과 합종군의 병사들이 좁은 험로를 지날 시간을 벌 수 있는 신무기를 만들 생각이었다.
“아무리 함곡관이 천하제일 험관이라고 해도 하늘을 날아오는 공격을 막지는 못하지 않겠느냐?”
“전하. 혹시 안읍성 전투에서처럼 짐새를 쓰실 생각이십니까?”
“귀한 짐새를 그런 식으로 낭비할 수는 없지. 하늘을 나는 물건을 만들어서 성벽 위를 지키는 병사들을 놀라게 할 생각이다.”
“하늘을 나는 물건이라니······. 소신의 식견으로는 전하의 지혜를 가늠하기 어렵사옵니다. 커다란 연이라도 만드실 생각이신지요?”
“아니. 공기를 덥혀서 그 힘으로 하늘을 나는 열기구라는 물건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허허허······. 정말로 사람의 힘으로 그런 물건을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지금까지 내가 한 번이라도 헛소리하는 한 적이 있느냐? 곧 왕검성에 사람을 보내서 이 물건을 발명할 박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올 것이다. 계성에 박사의 작업장을 차려서 금방 신무기를 전장에 공급할 생각이거든. 너는 암부의 본부로 돌아가서 이 사실을 계에게 전하거라.”
“전하. 지금까지 조선 왕실은 다른 나라에 기술이 유출되는 사태를 막으려고 반도에서만 강철과 신무기를 만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물건의 기술이 진나라에 유출되면 전하의 계책이 허사가 되어버리지 않겠습니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열기구를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 중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종이거든.”
“아······! 춘화집 사건 이후로는 진나라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의 선비들까지 종이를 천한 물건으로 여기면서 멀리하고 있지요!”
“그렇지. 그럼 난 계성에 제지소를 짓는다는 소식을 전국에 알릴 테니 넌 계에게 암부의 요원을 풀어서 주변국에 제지소 건설 목적이 앞으로 조보를 발행하는 쓸 종이를 만드는 거라는 소문을 퍼트리라고 전하거라. 그러면 그 소식은 여러 나라에 잠입해 있는 진나라나 옹나라 첩자들의 귀에도 들어가겠지. 그자들은 아마 내가 하늘을 나는 물건을 만들려고 종이 생산량을 늘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거야.”
“기밀을 감추는 대신 허위 정보로 덮어 적국이 오판을 내리게 하는 계책이로군요. 전하의 심원한 지혜에 다시 한번 감탄했습니다.”
* * *
한부는 형가와의 대화를 마친 후 그해 겨울이 지나가고 기원전 245년의 봄이 찾아오자 왕검성에 사람을 보내 크테시비우스 박사를 계로 데려오도록 지시했다.
크테시비우스 박사는 태자가 보낸 서신을 읽자마자 가장 실력이 좋은 제자 몇 명을 데리고 서해를 건너 계성으로 향했다.
그가 계성의 궁궐 알현실에 도착하자 한부는 기병대장 석, 그리고 계와 함께 이집트 출신 박사를 두 팔을 벌려 환영했다.
“크테시비우스 박사! 계성에 잘 오셨소!”
“전하.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이렇게 네 사람이 한자리 모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석이 추억에 잠기면서 아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서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훨씬 넘었군요······.”
그러자 계가 석의 말을 듣고 미소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우리 모두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도 전하의 창의력은 젊은 시절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듯합니다. 하늘을 나는 물건이라니······. 전하가 아닌 천하의 그 누가 그런 기상천외한 것을 만들 생각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계는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크테시비우스는 기대 반 걱정 반인 눈빛으로 한부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전하. 혹시 소신의 조상이 살던 서역의 신화에 나오는 인물 중 이카루스라는 자를 아십니까?”
“물론이오. 크테시비우스 박사. 새의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붙여 만든 날개를 양팔에 달고 날아다니다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는 바람에 밀랍이 녹아 추락사했다는 자가 아니오?”
“정확히 아시는군요. 아직 전하께서 어떤 물건을 만드시려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공중을 떠다니는 물건에 사람을 태우는 건 지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아무리 기상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고 해도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조금 바뀌는 것만으로도 그 물건에 탄 사람이 죽을지도 모릅니다.”
“걱정하시오. 박사. 본태자도 아직은 새로 만들 물건에 사람을 태울 생각은 없다오. 우선은 그저 성벽 위를 지키는 적군의 머리 위에 불붙은 뜨거운 유황이나 기름을 부을 수 있으면 좋을 듯한데. 우선 자리를 옮겨서 내 얘기를 좀 들어보시구려.”
한부는 세 사람과 함께 계성 궁궐의 서재로 자리를 옮긴 다음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크테시비우스 박사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열기구의 원리를 설명해주었다.
“박사. 불로 가열한 공기에 공중으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지요?”
“물론입니다. 전하. 공기압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바로 소신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방금 말씀하신 내용은 필부라도 연기가 하늘로 올라는 것만 관찰해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아래가 뚫려있는 종이와 헝겊으로 만든 거대한 구체의 밑에 장작이나 짚을 태워서 계속 구체 안에 더운 공기를 공급할 수 있다면 그 구체는 어떻게 되겠소?”
“아······! 분명 공중으로 떠오르겠지요! 한지는 질기면서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단순한 방법으로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있을 줄이야!”
사실 열기구가 떠오르는 정확한 원리는 열기구의 구피 안의 공기를 가열하면 공기 분자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분자들 사이의 거리가 넓어져서 공기의 밀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밀도가 낮은 물질은 밀도가 큰 물질보다 위로 올라가게 되기 때문이다.
전생에 문과 출신이었던 한부나 아직 분자의 개념을 모르는 크테시비우스 박사는 그런 원리까지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건 원 역사에서 최초로 열기구를 발명했던 프랑스인 제지업자 몽골피에 형제도 마찬가지였기에 두 사람의 착오가 신무기 개발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한부의 설명을 듣고 오랜만에 탐구심에 불이 붙은 크테시비우스 박사는 우선 계성 일대에 한지 제지소를 건설하고 하북 곳곳에 한지의 재료인 닥나무를 심는 작업을 직접 지휘했다.
생산단가나 생산속도는 한지보다 중세 유럽식 종이인 면종이가 나았지만, 한지는 갑옷을 만드는 데 쓰일 정도로 내구도가 뛰어나 열기구를 만드는데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계절이 초여름에 들어서자 계성의 일대에 지어진 제지소의 제지기술자들이 한반도에서 수입한 닥나무로 한지를 만들어냈다.
그러자 크테시비우스 박사는 드디어 그 한지와 여러 천을 섞어서 열기구의 풍선 부분인 구피를 만들고 구피의 바로 밑에 설치할 화로를 제작했다.
그리고 기원전 245년의 7월 중순, 크테시비우스 박사는 마침내 최초의 열기구 시제품을 완성한 다음 들뜬 표정을 숨기지 못하면서 한부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알렸다.
“전하! 드디어 첫 번째 열기구 시제품이 완성됐습니다!”
“이렇게 빨리 말이오? 박사의 작업장에 한지가 들어온 지 아직 보름 정도밖에 안 지나지 않았소?”
“열기구의 구조가 워낙 단순하고 전하께서 충분한 인력과 재원을 지원해 주신 덕분에 예정보다 일찍 시제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소신과 함께 작업장에 가셔서 열기구 시제품을 구경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좋소. 어서 가봅시다.”
두 사람은 새 장난감을 선물 받은 어린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 크테시비우스 박사의 작업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한부는 잠시 후 급히 만드느라 색을 칠하지 않은 새하얀 열기구의 구피와 그 아래에 버너 역할을 할 조잡한 모양의 도기로 만든 화로를 보고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저렇게 조잡해 보이는 물건이 정말 공중에 뜨려나? 뭐······. 인류 역사상 최초로 비행물체를 발명하는 큰 사업이니까 한 번에 실험이 성공하기는 어렵겠지.’
한부는 노골적으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크테시비우스 박사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여전히 태자의 기분을 눈치채지 못하고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전하! 내일 해가 뜨면 바로 이 열기구 시제품을 인적이 드문 공터로 가져가서 시험 비행을 해보겠습니다! 부디 전하께서도 소신과 함께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봐 주십시오!”
“음······. 알겠소. 크테시비우스 박사. 혹시 시험 비행이 실패해도 너무 실망하지는 마시오.”
“한 번의 실패에 실망하는 자에게 발명가라고 불릴 자격이 있겠습니까? 이제 전하께서 말리셔도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열기구를 만들 때까지 시험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한부는 슬슬 이마가 넓어지기 시작하는 중년의 발명가가 젊은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한부와 크테시비우스 박사는 보안을 위해 박사의 제자 몇 명과 호위병 수십 명 정도만 데리고 계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인적이 드문 벌판으로 향했다.
마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자 한부가 크테시비우스 박사에게 말했다.
“박사. 이 일대는 늑대 무리가 사는 숲이 가까워서 사람이 별로 지나다니지 않는 곳이라고 하오. 여기서 시험 비행을 해봅시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크테시비우스 박사는 제자들을 시켜 지름이 5m쯤 되는 구피와 철로 만든 화로를 우마차의 짐칸에서 꺼낸 다음 구피와 화로를 밧줄로 연결하고 화로에 연료로 쓸 나무와 밀짚을 담았다.
그 후 박사의 제자들이 열기구의 화로에 불을 붙이자 쭈그러져 있던 흰 한지로 만든 구피가 서서히 부풀어 오르다가 마침내 둥근 구체 모양이 되더니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부와 크테시비우스 박사는 그 모습을 체면도 잊고 서로 얼싸안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첫 실험부터 성공했다!! 설마 처음부터 성공할 줄이야!”
한부는 모는 사실이지만, 원 역사에서 평범한 제지업자였던 몽골피에 형제도 처음 시험 비행을 시작한 지 불과 약 한 달 만에 열기구를 2km 높이까지 띄우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 공기역학의 대가이자 베테랑 발명가인 크테시비우스 박사가 첫 시험 비행에 열기구를 띄우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한부는 어느새 축구공만큼 작아진 열기구를 올려다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열기구를 원하는 위치에 떨어트리는 방법만 연구하면 되겠네! 함곡관의 하늘에 불붙은 기름이 쏟아지는 장면이 벌써 눈에 선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