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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44화 (144/195)

[144화] 중원의 여덟 번째 나라

이사는 여불위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여 상방님. 그럼 허름한 옷으로 환복하신 후에 장안군의 저택으로 가시지요.”

“암행하자는 말인가? 하긴, 우리가 장안군의 집에 드나드는 모습을 창문군과 창평군이 부리는 자들이 봐서 좋을 건 없겠지. 그렇게 하세나.”

두 사람은 곧 여불위의 하인들이 입는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에 두건을 둘러쓴 다음 어두운 밤거리를 지나 장안군 영성교의 집으로 향했다.

진왕 영정의 배다른 동생인 영성교는 천한 무희에게서 태어난 영정이 후 자기보다 딱 한 살 더 많은 선왕의 장자라는 이유로 제후 가문의 귀부인이 낳은 자신을 제치고 왕위에 오른 것을 늘 불만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왕족으로서 함양의 궁궐에서 살 수 있음에도 진왕 영정이 옥좌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함양 시내에 구한 집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여불위가 장안군 영성교의 저택 앞에서자 이사가 대문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문을 열어주시오. 한나라에서 오신 귀인이 이 댁의 주인을 뵈러 찾아오셨소.”

그러자 집안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영성교의 하인이 대문을 조금 열고 고개를 내밀더니 손에든 등불로 이사의 얼굴을 비치면서 소리쳤다.

“너희는 뭐 하는 자들이기에 한밤중에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느냐? 이 저택의 주인이 누구신 줄이나 알고 무례를 저지르는 거냐?”

“장양왕의 정통 후손이신 장안군의 댁이 아닙니까?”

“허······! 너 같은 거렁뱅이가 그럴 어찌 알고 있지? 장안군께서는 별로 외출을 즐기시지 않는데?”

그러자 이사의 등 뒤에 서 있던 여불위가 대문 쪽으로 한 발짝 다가오더니 두건을 벗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러면 네 궁금증이 풀릴 것 같구나.”

“허······! 여······ 여 상방님 아니십니까?! 귀한 분을 알아뵙지 못하고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여 상방님!”

“고개를 들어라. 왕족을 모시는 시종이 선약도 잡지 않고 이런 차림새로 대군의 처소에 찾아온 수상한 자를 경계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그보다 급한 용무가 있으니 싶으니 어서 나와 이 장사를 장안군께 안내해다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여 상방님.”

하인은 두 사람을 저택 안으로 들여보낸 후 장안군 영성교의 침실로 안내한 다음 닫힌 침실 문을 두드리면서 잠자는 주인을 불렀다.

“전하. 깊은 밤에 단잠을 방해하여 죄송하오나 꼭 만나보셔야 할 귀한 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전하?”

그러자 방안에서 요란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갑자기 침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자그마한 발이 튀어나와 하인의 배를 앞으로 밀듯이 걷어찼다.

“하윽!”

하인은 갑작스럽게 배를 얻어맞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면서 뒷걸음질쳤고 키가 작은 한 소년이 침실에서 나와 그의 앞에 서면서 새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근평이 네 이놈! 천한 것이 감히 왕족의 잠을 깨우다니! 그렇지 않아도 모처럼 즉위식을 치르고 옥좌에 앉는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었건만! 네놈을 멍석말이해야 조금이나 분이 풀릴 것 같구나!”

여불위는 그런 어린 왕자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쯧쯧. 너무 어린 시절에 조실부모해서 본대 없이 자란 탓인가? 아직 수염도 안 난 녀석이 성질이 참으로 난폭하구나. 이래서 내가 이놈 대신 영정을 왕위에 앉힌 것이었거늘······.’

그는 그런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어찌 전하께 현실의 옥좌를 선물할 능력이 있는 자를 앞에 두고도 꿈속의 옥좌를 아까워하십니까?”

영성기는 그 말을 듣고 성난 표정을 지으면서 여불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여 상방? 내 집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

“조금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장양왕의 유일한 정통 후손이신 장안군을 왕으로 만들고자 찾아왔습니다.”

“인제 와서 나를? 지금 나보고 그 말을 믿으란 말이오? 경이 대체 뭐가 부족해서 날 왕으로 옹립하려고 거사를 일으킨단 말이오? 아무래도 왕께서 기어이 옥좌를 빼앗긴 불쌍한 이복동생을 반역자로 몰아서 목을 가져오라고 명하신 모양이구려.”

“지금의 왕이 정말 그런 명령을 내렸다고 해도 그런 일에 이 여불위가 직접 나서겠습니까? 의심을 거두시지요. 전하. 요즘 세간에 도는 조 태후에 관한 소문을 알고 계시겠지요?”

“들었소. 아무리 조 태후께서 무희 출신이라도 생각이 있으면 왕이 어머니 되시는 분이 그런 어리석은 짓을 벌이시지는 않으셨을 테지요. 정말 백성의 우매함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라니까.”

“안타깝게도 그 소문은 사실입니다.”

“뭐······ 뭐요?”

“그리고 그게 제가 전하를 찾아온 이유지요. 자세한 말씀은 듣는 귀가 없는 곳에서 드려도 될는지요?”

영성교는 여불위는 미소 짓는 여불위의 얼굴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면서도 그가 던진 미끼를 물었다.

“좋소, 어디 한번 얘기나 들어봅시다.”

영성교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혼자 침실 안으로 들어갔고 여불위와 이사가 그 뒤를 따랐다.

그 후 영성교에게 배를 걷어차였던 하인이 침실의 문을 닫고 멀리 떨어지자 영성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어서 말해보시오. 여 상방. 조 태후의 추문과 그대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왕에게 반기를 들려고 한단 말이오?”

“조 태후가 과거 제가 아끼던 첩인 건 맞지만, 선왕께 조 태후를 바친 후에는 소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그분과 거리를 둬왔습니다.”

“생각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그리하겠지요.”

“하지만 지금의 왕은 의심이 많아서 조 태후가 천한 한량을 곁에 두고 추문을 일으키자 그게 제가 꾸민 음모라고 여기고 자기를 왕위에 앉힌 저를 은밀히 제거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여불위가 어디 가만히 앉아서 목이 날아가기만을 기다릴 자입니까?”

“흠······. 그럴듯하군. 갑자기 왕실의 정통 후손을 왕위에 앉히고 싶어졌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훨씬 신뢰 가는 이유로군요. 그래서 경의 권세로 본인을 진나라의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 이겨요?”

“언젠가는 그리할 생각이지만, 불행히도 소신에게는 당장 전하를 함양의 궁궐에서 즉위식을 치르도록 할 능력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진나라의 돈줄과 조정의 대신 대부분은 소신이 틀어쥐고 있어도 함양에 사는 무관 중에는 오직 왕실에만 충성하는 자가 더 많지 않습니까?”

“그럼 대체 뭐하러 날 찾아왔소?”

“당장 전하께 진나라를 통째로 바치긴 어려워도 조 태후가 노애와 함께 새살림을 차린 옹성 일대에 새 나라를 세우고 전하를 왕으로 옹립하는 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나라 이름은 옹 땅에 세운 나라이니 옹나라 정도가 좋겠군요.”

“흠······! 옹나라라! 그거 구미가 당기는군! 그런데 지금 옹성은 조 태후가 다스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지 않소? 조 태후가 과연 자기 친아들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모반을 일으키는 걸 도와주겠소?”

“조 태후의 성격상 노애에게 흠뻑 빠져있는 지금이라면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는 자는 아들이 아니라 부모라도 적으로 여길 게 분명합니다. 저와 전하가 둘 사이를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고 약속하면 기꺼이 전하와 저를 도와줄 겁니다.”

“하긴. 조 태후가 남자와의 정분보다 권세를 더 중요시했다면 절대로 함양을 떠나지 않았겠지.”

여불위는 영성교의 말을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놈도 영민한 장양왕의 아들이구나. 비록 성격은 거칠지만, 영정만큼은 아니라도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편이야. 함께 큰일을 도모하는 데 부족함은 없겠다.’

그는 이사의 머릿속에서 나온 계책을 영성교에게 알려주었다.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전하. 내일 해가 뜨면 주변에 조 태후를 문병 간다는 소문을 내고 가지고 계신 재물 중 가장 값진 것을 내고 옹 땅으로 떠나십시오.”

“그런 식으로 영정의 의심을 피할 수 있겠소? 내가 조 태후에게 좋은 감정이 없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어찌 됐든 조 태후는 전하의 양어머니이니 적어도 명분은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왕은 전하께서 숙청을 피하려고 자기 친모에게 공손하게 군다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흡족해할지도 모릅니다.”

“흠······. 얄미운 이복형이 흐뭇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상상하니 정말 아니꼽군. 하지만 본인이 진나라 왕이라도 분명 그렇게 생각하겠구려. 아직은 여 상방이 벌써 거사를 꾸미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을 테니 말이오.”

“그럴 겁니다. 전하께서 함양을 떠나시면 저는 전하를 따르는 제후와 대신들을 데리고 거사를 일으켜 궁궐을 공격하는 척하다가 함양성을 빠져나가서 옹 땅으로 향하겠습니다.”

“그대로 궁궐을 공격해서 점거하는 건 영 힘들겠소?”

“왕실 근위병은 대부분 영정의 명만을 듣는 데다 창문군과 창평군이 함양 수비대의 무관들을 꽉 잡고 있어서 십중팔구 실패할 겁니다. 반면 옹성을 지키는 무장들은 왕보다는 태후의 명을 더 중히 여기지요.”

“알겠소. 경이 함양성을 탈출하면 본인은 조 태후를 설득하여 옹성의 병사들을 보내 그대와 그대를 따르는 자들을 지키겠소. 옥좌에 앉을 수만 있다면 그 천한 여자에게 우선은 머리를 숙이는 수밖에.”

“그렇게 해주시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여기 이 장사를 데려가서 조 태후를 설득하게 하시지요. 함양의 논객 중에서 이 장사보다 말을 잘하는 자는 찾기 어려울 겁니다.”

* * *

여불위에게 설득당한 영성기는 다음날 해가 밝자마자 가지고 있는 패물 중 부피가 작고 값진 것만 챙긴 다음 몇 명 안 되는 측근과 하인 수십 명을 데리고 옹성을 향해 출발했다.

그동안 여불위는 미리 위조해 둔 진나라 왕의 옥새를 이용해 명령서를 발급하여 확실히 자기 사람인 무관에게 나눠주어 관군의 일부를 빼돌리고 모든 측근의 사병을 은밀히 함양 시내로 불러 모았다.

그 후 기원전 246년 11월 말 어느 날, 여불위는 창평군과 창문군이 주도하는 숙청이 시작되기 전에 드디어 먼저 난을 일으켰다.

원역사의 노애는 얼마 안 되는 병력과 유능하지 못한 무장들을 데리고 궁궐을 공격하려다가 함양의 거리에서 진압당했지만, 여불위는 반란군 중 일부로 궁궐을 공격하는 척하면서 함양성의 북문을 점거한 다음 자기를 따르는 제후와 대신들을 데리고 옹땅으로 도주했다.

그리고 함양 시내가 혼란한 틈을 타서 그곳에 잠입해 있던 고조선 암부의 요원들은 제지기술자와 화가들을 데리고 도시를 빠져나와서 무사히 하북의 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부는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형가에게 함양에서 일어난 일을 듣고 손뼉을 치면서 기뻐했다.

“하하하하하하! 여불위 그자가 난 놈은 난 놈이구나! 그저 함양 시내에서 분란을 일으켜서 국력을 소모하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아예 진나라를 두 동강 내 버리다니! 그래서 그 영성기가 새로 세운 나라 이름이 뭐라고?”

“옹나라라고 하옵니다. 전하. 옹성에 잠입해 있던 요원이 보낸 보고문에 의하면 이제 위수 북쪽의 땅은 대부분 옹나라의 영토가 됐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거의 위나라와 비슷한 영토를 차지한 새 나라 생긴 거 아니냐? 앞으로는 전국칠웅 대신 전국팔웅이라는 말을 써야겠군. 아무튼, 진나라와 옹나라가 서로 싸우는 동안은 마음 놓고 함곡관을 박살 낼 신무기를 개발할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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