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30화 (130/195)

[130화] 안읍 전투 (2)

위나라 왕은 한부의 제안을 듣자마자 곁에 있는 부장에게 물었다.

“우리 진영의 병사 중에서 안읍에서 징집된 자가 몇 명이나 되는가?”

“당장 정확한 숫자를 말씀드리기는 어렵사오나 4천 명에서 5천 명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폐하.”

“그중에서 모병관이 병사를 모을 때 가장 먼저 자원한 병사 3백 명을 선별해서 연병장에 집합시켜라. 그자들에게 시킬 일이 있다.”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위나라의 장수는 왕에게 읍한 후 막사 밖으로 나가서 곧 안읍 출신 병사 1백 명을 뽑아 한곳에 모았고 위나라 왕은 온몸에 갑옷을 두른 채로 그들의 앞에 나서서 단상 위에 올랐다.

병사들은 전국 사군자 중 한 명으로서 많은 존경을 받아온 왕이 눈앞에 나타나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하나같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경의를 표했다.

“대왕 폐하께서 우리 같은 천것들에게 용안을 보여주시다니······.”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면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겼군. 그래.”

위나라 왕은 그런 병사들의 면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안읍을 지키던 장수들이 말하길 너희가 안읍 땅에 사는 백성 중 가장 먼저 징집을 알리는 깃발 밑에 모여 병졸이 되기를 자처했다더구나. 짐에게 그 이유를 말해보아라.”

왕이 뜻밖의 질문을 던지자 당황한 병사들은 옆에 있는 동료들의 얼굴을 흘끗 바라보다가 쭈뼛거리면서 대답했다.

“우리나라를 넘보는 진나라의 침략자들로부터 고향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폐하.”

“천하에 명성을 떨치신 폐하께서 몸소 안읍 땅을 지키러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서둘러 모병관의 징집에 응했습니다. 폐하.”

위나라 무기 왕은 병사들의 대답을 듣고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의 말이 참으로 듣기 좋구나. 물론 그 말도 거짓은 아니겠지만, 분명 이번 전쟁에서 전공을 세워 무졸이 되고 싶은 동기도 없지는 않으렷다. 지금부터 너희에게 밀명을 내릴 것인데,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자는 특별히 무졸로 삼겠다.”

왕의 질문에 1백 명의 병사들이 들뜬 목소리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벌써 무졸이 될 기회를 잡다니!”

“안읍에 계신 부모님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전란의 시대에 가난하고 배운 것이 별로 없는 위나라 백성 중에는 위나라 왕실의 직속 상비군인 무졸이 되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여기는 자가 많았다.

무졸이 되면 혹독한 훈련을 견뎌야 하긴 하지만, 고향에서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지고 재직 중에 많은 급여를 받는 데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도 죽을 때까지 온 가족이 의식주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후한 연금을 받기 때문이다.

위나라 왕은 예상대로 병사들이 흥분하는 모습을 모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 임무는 탈영병으로 위장하고 목앵부를 써서 임진의 강을 건넌 다음 진나라의 적장에게 안읍의 방비가 형편없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다. 적군을 아군의 영역으로 유인하여 일망타진하려는 것이니 너희의 가족이 위험해질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니라. 부디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왕이 명령하자 1백 명의 병사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좋다. 그러면 너희가 진나라군 진영으로 끌려갔을 때 적장이 물어볼 만한 예상질문과 이상적인 답변을 알려주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연스럽게 대답해 적장을 속여넘겨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테니 잘 기억해 두어라.”

* * *

한부가 진나라군을 속일 계책을 내놓은 다음 날 밤, 왕의 밀명을 받은 위나라군 병사 1백 명은 등에 말뚝과 공구, 그리고 널빤지와 밧줄이 들어있는 큰 나무 항아리를 지고 임진의 강을 따라 포판의 북쪽으로 행군했다.

그들은 맨눈으로 고조선군과 위나라군의 진영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동하다가 등에 진 나무 항아리에서 널빤지와 밧줄을 꺼낸 다음 빈 항아리들을 밧줄로 굴비처럼 한 줄로 묶었다.

그런 다음 강의 동쪽에 말뚝을 박아 밧줄에 묶인 나무 항아리 행렬의 한쪽 끝을 연결하고 수영을 잘하는 병사 몇 명이 허리에 항아리 행렬의 반대쪽 끝 부분을 묶은 다음 강 건너편으로 헤엄쳐 건너가서 그쪽에도 말뚝을 이용해서 항아리에 연결된 밧줄을 고정했다.

그렇게 나무 항아리와 밧줄로 만든 징검다리가 완성되지 강 동쪽에 남아있던 병사들은 강에 떠 있는 항아리 위에 널빤지를 올려서 다리를 만들어 원역사의 한신이 썼던 목앵부를 완성했다.

그 후 위나라군 병사 1백 명은 순식간에 목앵부 위를 지나 강을 건너서 일부러 진나라군 진영 근처를 지나 함곡관으로 향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고 곧 그 주변을 순찰하던 진나라 기병대에게 발각되었다.

1백기의 기병을 거느린 진나라군의 기병대장은 수상한 무리를 발견하자마자 부하들과 함께 말을 달려와서 위나라군 병사들을 위협했다.

“멈춰라! 너희는 뭐 하는 자들이기에 군영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느냐!”

그러자 위나라군 병사들은 미리 생각해두었던 대사를 읊으며 진나라군 기병대장에게 하소연했다.

“살려주십시오! 무관님! 저희는 본래 안읍의 백성이었는데 찬탈자 위무기에게 병사로 징집되었다가 간신히 진나라 땅으로 도망쳐오는 길입니다!”

“진나라는 왕실에 충성하는 백성이라면 야만인인 서융족도 받아들인다고 들었습니다! 제발 갈 곳 없어 강을 건너온 저희를 해치지 말아주십시오!”

“위나라군의 탈영병이라······. 확실히 피갑을 입은 자가 제법 섞여 있군. 일단 너희를 우리 군의 진영으로 데려가겠다. 이동하는 도중 도망치는 자는 곧바로 사살할 테니 허튼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무관님!”

무졸이 될 꿈에 부푼 위나라 병사들은 자신도 놀랄 만큼 자연스러운 연기로 진나라 장수를 속여서 진나라군 진영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위나라 병사들을 데려온 진나라의 기병대장은 즉시 지휘관 막사에서 군사회의를 하고 있던 상방 여불위와 장군 왕흘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기병대장이 보고를 마치자 왕흘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여불위에게 말했다.

“하하하하하! ! 아직 전투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우리 군의 위세에 겁을 먹은 위나라군 병사들이 탈영했다. 이거지! 여 상방님! 드디어 하늘이 우리 진나라가 가증스러운 조선의 동이족과 조나라 정벌을 방해했었던 찬탈자 위무기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시려나 봅니다!”

“방심하지 마시오. 왕 장군. 조선의 태자 한부나 찬탈자 위무기는 모두 머리가 잘 돌아가는 자라고 들었소. 그 위나라군 탈영병들도 모두 위무기에게 밀명을 받은 세작들일지 어찌 알겠소?”

“상방님. 위무기가 말씀하신 것 같은 계책을 쓸 생각이었으면 병사 수백 명보다는 차라리 이름있는 장수 한두 명을 거짓 투항시키지 않았겠습니까? 우리 진영을 혼란에 빠트리려면 거짓 군사기밀을 알려야 할 텐데 잡졸이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을 리 없으니 말입니다.”

“흠······. 그 말에도 일리가 있구려. 우선 그자들을 직접 만나보고 판단해봐야겠소. 기병대장. 투항한 병사 중 몇 명을 이곳으로 데려와라. 내가 직접 그자들을 심문하겠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여 상방님.”

잠시 후 거짓 투항한 위나라군 병사 중 열다섯 명이 진나라군 병사들에게 지휘관 막사로 끌려오자 여불위는 그들을 자기 앞에 꿇려 앉힌 후에 질문했다.

“기병대장이 말하길 너희가 찬탈자 위무기의 폭거를 피해 진나라 땅으로 도망쳐 왔다는데 사실이냐?”

“그······ 그렇사옵니다! 상방님!”

“그런데 난 도저히 너희의 말을 믿을 수가 없구나. 위무기는 위나라 백성들 사이에서 제법 존경받고 있다고 들었는데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탈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자연스러운 일이야. 이실직고하면 목숨만은 살려줄 테니 진실을 말해보아라. 누구의 명을 받고 임진의 강을 넘어왔느냐?”

여불위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병사들을 노려보면서 물었지만, 병사들은 무졸이 되어 돌아온 자기를 보고 기뻐할 가족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침착하게 대답했다.

“정말로 저희는 그저 살기 위해 진나라 땅으로 도망치려 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상방님! 이대로 진나라의 대군과 싸우면 이렇다 할 저항도 못해보고 고향을 잃을 게 뻔하니 차라리 가족들을 다른 나라로 피신시키고 저희도 탈영해서 살아남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위나라군은 강 건너에 단단한 방어 진형을 짜고 있는데 고향을 잃다니?”

“어리석은 위무기는 저희의 고향 안읍을 지키던 병사까지 모두 끌고 나와서 포판쪽 강변에만 진을 쳤으니 어찌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임진의 강은 깊긴 하지만 포판에서 조금만 북쪽으로 올라가면 강폭이 그리 넓지 않아서 저희 같은 천것들도 쉽게 넘나드는데 위나라 장수들은 그걸 모르고 안읍과 북쪽 강변을 지키지 않아서 고향의 가족들이 다칠까 봐 늘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임진의 강은 물살이 빨라서 수영에 아주 능숙한 자가 아니면 헤엄쳐서 건너기 쉽지 않을 터인데. 대체 어떻게 위나라군에게 정찰대에게 발각되지 않고 1백 명이나 되는 탈영병이 배를 준비해서 강을 넘었느냐?”

“배가 아니라 목앵부를 이용해서 강을 건넜습니다. 상방님.”

“목앵부? 그건 뭐에 쓰는 물건이지?”

위나라 병사들은 그의 질문에 목앵부를 만드는 법과 설치법을 자세히 알려주었고 여불위는 병사들을 설명을 모두 들은 후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과연! 그런 방법이면 많은 사람이 짧은 시간에 강을 건널 수 있겠구나! 위나라 조정이 강마다 다리를 놓고 나루터를 지을 여력이 없다 보니 불편함을 느낀 백성들이 고육지책으로 그런 물건을 만들 생각을 해낸 모양이군!”

장군 왕흘도 상방의 말에 맞장구쳤다.

“여 상방님. 이 자들이 말한 물건을 많이 만들면 10만이 넘는 병사도 금방 임진의 강을 건널 수 있을 듯합니다. 병력을 둘로 나눠서 이곳에 남은 병사들에게는 배를 징집하게 하여 포판을 직접 공격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적의 발을 묶어두고 별동대를 꾸려 방비가 부실한 안읍을 직접 치는 게 어떻겠습니까?”

“본인도 방금 왕 장군과 같은 생각을 했소. 다만 조선의 태자와 위무기도 바보는 아닐 테니 그 작전이 성공하려면 우리 군영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강을 건너야 할 거요.”

“얼마 전에 점령한 하양성 안에서 목앵부를 만들 물자를 준비하면 적장은 우리군의 작전을 간파하기 어려울 겁니다. 또 하양 근처의 강줄기는 폭이 좁으니 목앵부를 써서 도강하기에 이상적인 곳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게 좋겠소. 경에게 보병 20만 명에 기병 1만기를 맡길 터이니 하양에서 은밀히 강을 건너 안읍을 급습하시오. 그곳만 점령하면 포판에 주둔한 적군은 병참선이 끊겨 저절로 궤멸하게 될 것이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여 상방님. 그럼 소장은 해가 뜨기 전에 병사들을 이끌고 하양으로 출발하겠습니다.”

왕흘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여불위에게 읍한 후 지휘관 막사에서 나갔다.

여불위는 그의 넓은 등을 바라보면서 음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동이족

태자의 목을 제물로 바쳐서 허무하게 죽어간 몽오 장군의 넋을 달랠 때가 왔구나. 며칠 후가 참으로 기대되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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