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진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하다.
여불위의 명을 받은 이사는 즉시 진나라에서 가까운 조나라와 한나라의 왕을 알현하고 먼 초나라의 왕과 전국 사군자 중 한 명인 춘신군까지 만나 신릉군이 왕위에 오른 위나라를 공격하자고 부추겼다.
그러나 그런 이사의 노력이 결실을 본 나라는 1년 전 진나라군의 공격에 많은 국토를 빼앗겼기에 유난히 진나라를 두려워하는 한나라뿐이었다.
이사는 마지막으로 찾은 초나라의 수도 수춘의 성문을 힘없이 나서면서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한탄했다.
“위나라 정벌에는 전혀 관심 없다는 말이지······. 이 이사가 이것밖에 안 되는 인물이었단 말인가! 이래서야 무슨 낯으로 여 상방과 왕을 뵌단 말이냐!”
이사는 분명 원역사에서는 훗날 재상의 자리에 올라 진시황의 오른팔 노릇 할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지만, 아직은 너무 젊은 탓에 실무경험이 부족하여 새 위나라 왕을 노련한 외교술에 대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진나라의 장사 이사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로 함양의 궁궐로 돌아와 옥좌에 앉아있는 어린 왕 영정과 그의 오른편에 서 있는 상방 여불위에게 보고했다.
“송구스럽습니다. 폐하. 소신이 무능하여 조, 초, 한 세 나라의 왕 중 오직 한나라의 왕만 찬탈자 위무기를 벌하는데 병사를 보태도록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뭐라고? 그렇다면 조나라와 초나라도 찬탈자 위무기와 동맹을 맺었다는 말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폐하. 그나마 다행으로 조나라와 초나라는 이번에 위나라에서 일어난 내란에는 끼어들지 않겠다고 합니다.”
“흠······.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 진나라의 동맹은 전국칠웅 중에서 가장 약한 한나라뿐인데 위무기는 조선과 그 동맹국인 제나라와 흉노까지 제 편으로 삼고 있으니 적의 세력이 여전히 만만치 않구나. 중보. 이러다가는 소양왕께서 시작하신 정복사업에 큰 차질이 빚어지겠구려. 대체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부디 중보의 바다와 같은 지혜를 빌려주시구려.”
어린 진나라 왕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여불위에게 물었다.
원역사의 그는 거침없는 진나라의 막강한 군사력과 온갖 권모술수로 중원을 통일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강력한 군주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제 겨우 아홉 살에 불과하기에 아버지인 장양왕과 자신을 옥좌에 앉혀준 권신 여불위를 아버지에 버금가는 인물이라는 뜻인 중보(仲父)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국정을 일임하고 있었다.
여불위는 내심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외교 상황에 긴장하고 있었지만, 자신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어린 왕을 안심시키려고 애써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폐하. 제나라가 조선과 동맹을 맺었다고는 하나 제나라 왕의 소심한 성격을 고려하면 위무기를 돕겠다고 그리 많은 병력을 움직이지는 않으리라고 사료 되옵니다. 또한 흉노는 동호를 비롯한 주변의 유목민 부족을 정벌하며 나날이 세력을 기르고 있지만, 오히려 너무 빠른 확장 덕에 초원의 내정을 안정시키는 동안은 중원의 일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을 겁니다.”
“중보의 말에 일리가 있구려. 그럼 흉노의 선우가 초원의 여러 부족을 안정적으로 다스리기 시작하기 전에 찬탈자 위무기를 벌하고 짐에게 몸을 의탁해온 위나라 왕을 옥좌에 돌려놓는 게 최선일 터인데. 우리 진나라와 한나라의 연합군이 위나라와 조선의 연합군을 이길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폐하. 최근 조선의 동이족들이 기세를 떨치고 있다고는 하나 우리 진나라는 이미 폐하의 증조부이신 소양왕께서 나라를 다스리시던 시절부터 전국칠웅 중 다른 여섯 나라가 힘을 모아야 간신히 대적할 수 있을 만큼 강한 나라였습니다. 지금의 진나라는 그 어느 때보다 부강하니 전면전을 펼친다면 내전으로 피폐해진 위나라나 조선의 동이족
따위는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쉽사리 무너지고 말 겁니다.”
“중보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놓이는구려. 부디 부끄러움을 모르는 위나라의 찬탈자와 동이족
야만인을 중원에서 몰아내 주시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폐하. 늦어도 내년 봄에는 소신이 왕흘 장군과 함께 온 나라의 병사를 이끌고 온 천하에 진나라의 위세를 떨쳐 보이겠습니다.”
* * *
기원전 247년 10월 중순, 진나라의 상방 여불위가 위나라 정벌에 필요한 물자를 수도 함양으로 나르며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 때, 한부는 상장군 무명과 장군 극신, 그리고 가장 최근에 합류한 장군 이목을 계의 궁궐로 불러서 새 왕이 다스리는 위나라를 진나라의 침략으로부터 구원할 방안을 논의했다.
세 장군은 궁궐의 알현실에 차례로 들어서면서 옥좌에 앉아있는 한부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상장군 무명이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장군 극신이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장군 이목이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한부는 세 사람의 장군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을 눈에 담자 흐뭇한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벌써 천자문에 나온 기전파목 중 두 명이 조선 왕실을 섬기는구나! 그리고 극신도 진나라의 몽오가 죽고 없는 지금이라면 조나라를 빼면 어느 나라에 내놔도 상장군 자리를 꿰찰 장수지. 진나라에 대항하는 합종책을 완성하고 이 세 장군이 힘을 합쳐서 진나라를 정벌하면 중원을 영원히 유럽 대륙 같은 판도로 갈라놓을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한부의 만족감에 찬물을 끼얹듯 세 장군은 이목이 무명에게 핀잔을 주면서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상장군. 오늘 처음 뵙는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한 나라의 태자를 뵙는 자리에 그처럼 기괴하게 생긴 철가면을 쓰고 나오시다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흰머리가 지긋하신 걸 보니 너무 젊어서 예를 모르시는 것도 아니실 터인데. 혹시 초나라의 묘족
출신이십니까?”
무명은 이목의 비아냥을 듣자마자 도끼눈을 뜨고 그를 노려보았지만, 간신히 분을 억누르며 입을 열지 않았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진나라 억양의 고대 중국어가 튀어나와서 이목에게 자신이 진평에서 조나라의 장정 수십만 명을 갱살한 무안군 백기임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무명과 함께 전장에 서면서 친분을 다진 극신이 이목에게 호통쳤다.
“이목 장군! 아직 장군에 임명된 지 한 해도 지나지 않은 사람이 상급자이신 상장군께 그토록 무례한 언행을 일삼다니! 당장 상장군께 사과드리시오!”
“극신 장군. 지위의 고하를 떠나 주군에게 예를 다하지 않는 신하가 있으면 잘못을 지적하여 행동을 고치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장군께서 태자 전하를 뵙는 자리에 광대나 쓸법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계시는데 어찌 저런 기행을 두둔하십니까?”
“아니! 저자가 그래도!”
한부는 그 모습을 보고 엄한 목소리로 두 장수를 꾸짖었다.
“극신 장군! 이목 장군! 둘 다 그만하시오! 본인은 국정을 논하려고 이 자리를 마련했지 저잣거리에서나 볼법한 말싸움을 구경하려고 경들을 부른 게 아니오!”
그제야 두 장군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면서 한부에게 읍하면서 사죄했다.
“이 늙은이가 한순간의 분을 참지 못하고 전하를 뵙는 자리에서 경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소장 또한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혔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전하.”
“경들이 바로 잘못을 시인했으니 더는 이 일에 대하여 추궁하지 않겠소. 그리고 이목 장군. 상장군은 일신상의 이유로 늘 가면을 쓰고 다닐 수밖에 없어서 본인을 만달 때도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을 허락했소. 이 일에 관해서는 더는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전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세 장군은 겉으로나마 화해시키고 한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 이목은 나이가 젊은 데도 무명이나 극신보다 더 고지식한 성격이구나. 아무래도 이목은 두 사람하고 같은 전장에 내보내면 안 되겠다. 사이가 나빠지는 건 둘째치고 무명이 백기라는 사실을 들키면 큰일이니까.’
그는 그렇게 마음먹으면서 드디어 군사회의를 시작했다.
“자, 그럼 한나라를 포섭한 진나라의 대군을 물리칠 방도를 논의해봅시다. 진나라와 한나라는 내년에 어느 정도의 병력을 동원할 것 같소?”
그 질문에 입을 다물고 있던 무명이 먼저 대답했다.
“진나라는 40만 명 이상의 보병에 3만 이상의 기병, 그리고 전차 4천 승은 동원할 거로 생각됩니다. 전하.”
“진나라가 위나라의 폐주 어를 다시 왕위에 앉히려고 43만이 넘는 대군을 동원할 거라는 말이오?”
“물론 진나라가 어리석은 폐주를 위해서 많은 병력과 물자를 동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진나라의 상방 여불위는 소양왕 시절의 간악한 재상 범수와 비견할만한 교활한 자라고 하니 필시 폐주 어를 아직도 그를 아끼는 위나라 제후들의 협력을 얻는 데 이용하고 위나라 정벌을 마치고 나면 토사구팽하겠지요.”
“흠······. 그럴 수 있겠구려. 그럼 그 많은 병력을 막아내려면 우린 어떤 준비를 해야겠소?”
“진나라군은 전국칠웅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극단적으로 군대의 기동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병사들은 전원 투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전차병을 제외하면 갑옷을 입지 않은 자가 대부분이지요. 하지만 조선과 위나라는 두꺼운 갑옷으로 전신을 가린 중무장 보병을 주력으로 삼으니 분명 진나라군은 중장갑에 효과적인 무기를 들고 나올 겁니다.”
“위나라에도 조선의 팽배수같은 중장갑을 입은 보병이 있단 말이오?”“그렇습니다. 전하. 위나라는 위문후 시절부터 무졸(武卒)이라는 강병을 육성해 왔습니다. 위씨의 무졸들은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하나같이 상체와 허벅지, 장딴지를 가리는 삼중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며 무거운 쇠뇌와 검, 창을 능숙하게 다룹니다. 또 앞서 말한 모든 병장기에 삼일 치 식량을 짊어지고 한나절에 백 리를 달릴 수 있다고 합니다.”
“허······. 진나라나 조나라보다 병사가 적다고 우습게 볼 게 아니구려.”
“그렇습니다. 전하. 조선의 팽배수나 위나라의 무졸은 활이나 쇠뇌로 죽이기 어려우니 소장이 진나라의 장수라면 몸놀림이 날쌔고 갑옷을 입지 않은 병사들에게 철퇴나 도끼를 쥐여주어 상대하게 했을 겁니다.”
“그러면 그 병사들도 무사하지는 못하지 않겠소?”
“그렇긴 합니다만, 경보병은 중장보병보다 육성하는데 드는 비용과 시간이 훨씬 적지 않습니까? 그리고 진나라는 인구가 많으니 어느 정도 병력 손실을 감내할 수 있습니다.”
한부는 무명의 말을 듣자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무리 강철 경번갑을 입은 병사라도 둔기로 두들겨 패면 다칠 수밖에 없을 거요. 진나라가 상장군이 말한 대로 물량공세로 나오면 우린 어떻게 대응해야겠소?”
태자의 질문에 이번에는 이목이 대답했다.
“조선에는 우수한 노궁수와 궁수, 그리고 투석꾼이 많습니다. 그러니 기병으로 진나라의 노궁수 부대를 혼란에 빠트리는 사이에 갑옷이 부실한 진나라군 보병들에게 화살과 돌을 퍼부어 물리치는 건 어떻겠습니까?”
“흠······. 좋은 방법이지만, 진나라는 우리보다 두세 배쯤 많은 기병을 보유하고 있으니 우리 기병이 적의 기병대를 상대하는 사이에 팽배수 부대의 피해가 커질 수도 있소. 그렇게 된다면 전투에서 이기더라도 상처뿐인 승리를 얻게 될 수도 있을 터인데······.”
한부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잠시 고민하다가 갑자기 무릎을 치면서 소리쳤다.
“그렇지! 그 방법이 있었지! 상장군!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가지가 달려있는 대나무와 비수보다 조금 작은 자루가 없는 칼날을 최대한 많이 구해 주시오!”
“대나무와 작은 칼날 말씀입니까? 그것들을 어디에 쓰실 생각이신지 여쭤봐도 될는지요?”
“머릿수만 믿고 덤벼들 진나라군을 물리칠 새로운 무기를 만들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