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24화 (124/195)

[124화] 위나라를 다루는 법 (2)

위나라 왕은 명망 높은 이복동생을 해치기로 마음먹은 후 침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관을 불렀다.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 양 내관은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

내관은 왕의 명에 따라 침실문을 열고 들어와 읍하면서 대답했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당장 신릉군이 기거하고 있는 오두막까지 식량을 나르는 업무를 담당하는 관리를 불러와라. 짐의 동생이 요즘 식사를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폐하.”

왕의 명을 받은 내관은 즉시 궁궐 밖으로 나가서 신릉군이 유폐된 야산이 있는 지역에서 일하는 지방관을 불러왔다.

영문을 모르고 왕의 침실로 불려 온 관리는 지은 죄가 없는데도 지레 겁을 먹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 도위 이감이 대왕 폐하를 뵙습니다.”

“이 도위라고 했지? 왜 그리 바람 부는 날의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거냐?”

“소신이 무능하여 신릉군을 돌보는 데 부족함이 있어 폐하께서 이를 질책하시려고 부르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꽤 솔직한 성격이구나. 하지만 지금부터 짐이 하는 말은 이 침실 밖으로 나가면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 내 명을 충실히 따른다면 큰 상을 내릴 것이오. 감히 내 명을 거역한다면 반드시 삼족을 멸할 것이다.”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폐하.”

“앞으로 신릉군에게 보내는 곡식 포대에 모래나 톱밥을 채워서 보내도록 해라.”

“곡식과 모래를 섞은 곡식 포대를 보내란 말씀이신지요?”

“아니! 쌀이나 밀 같은 건 전부 빼버리고 모래와 톱밥만 채우란 말이다!”

도위 이감은 그 말을 듣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머니가 다르다고는 해도 형제는 형제이거늘······. 한 나라의 왕이라는 자가 어찌 온 천하에 군주로 알려진 죄 없는 신릉군을 이토록 치졸한 방법으로 죽이려 든단 말인가······.’

도위 이감은 신릉군의 측근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위나라 백성이 그렇듯 전국 사군자 중에서도 특히 명망 높은 신릉군을 존경하고 있었기에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는 듯한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그는 가족과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질투심과 의심암귀에 사로잡힌 왕에게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삼가 어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폐하.”

이감은 위나라 왕과의 대화를 마친 후 퇴궐하자 궁궐 대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하인이 말했다.

“이제 오십니까? 이 도위님. 무사히 퇴궐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너무 긴장해서 수명이 10년은 짧아진 것 같은 기분이구나. 궁궐에서의 볼일은 이걸로 끝났다. 이제 대량의 시장에서 톱밥과 모래를 최대한 많이 구해서 우리 고을로 돌아가자꾸나. 아! 그것들을 넣을 곡식 포대도 여기서 구해가는 게 좋겠구먼.”

“그렇게 많은 모래와 톱밥을 어디다 쓰시려는 지 여쭤봐도 될는지요?”

“궁금해하지 마라. 네가 그걸 알게 되면 너도나도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이야.”

이감의 하인은 사실 위장 잠입한 고조선 암부의 요원이었기에 위나라 왕이 순박한 지방관에게 무슨 명을 내렸는지를 단번에 눈치챘다.

‘위나라 왕이 마부가를 듣고 신릉군을 굶겨 죽이려는 모양이구나! 날붙이나 독으로 수를 쓰려고 했을 때보다는 쉽게 대응할 수 있겠군.’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일부러 겁먹은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감에게 대답했다.

“소인이 큰 실수를 할뻔했군요. 두 번 다시 이 일에 관해서 묻지 않겠습니다.”

* * *

위나라 왕의 신릉군을 해치려 한다는 정보는 반나절이 지나기 전에 대량에 잠입한 고조선 암부의 요원 전원에게 전해졌다.

그들 중 최고책임자인 요원은 계에 머무르고 있는 태자의 지시를 기다렸다가 행동에 나서면 이미 신릉군이 아사한 후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부하들에게 선조치 후보고를 명했다.

“신릉군은 산속 오두막에 유폐 당한 후에도 대량의 저택에 남아있는 자식들에게 그를 따르는 식객 수천 명을 계속 잘 대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자들에게 은밀히 정보를 흘려 대량의 민심을 흔드는 거다. 그사이에 얼마 후면 도착하는 유학자와 승려로 위장한 지원군이 신릉군을 구출하기로 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대장님. 그런데 대량에서 반란이 일어난 후에는 어떤 조치를 하실 겁니까?”

“수장께서 지원군을 직접 이끌고 오신다고 하니 후속 조치는 그때 여쭙겠다.”

“알겠습니다.”

그 후 암부의 요원들은 제나라 백성의 옷을 입고 2인 1조로 신릉군의 저택을 드나드는 식객 무리 주변을 맴돌면서 일부러 그들의 귀에도 들리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네 그 얘기 들었는가? 왕께서 앞으로는 신릉군께 보내는 곡식 포대에 쌀과 밀 대신 모래와 톱밥을 채우라고 명하셨다는구먼!”

“뭐?! 말조심해! 이 사람아! 자네 근거도 없이 그런 소리를 떠들고 다니다 잘못되면 온가족이 저잣거리에 목이 걸리는 수가 있어! 그리고 대왕께서 신릉군을 해치려 하셨다면 진작에 날카로운 비수 한 자루를 하사하셨겠지. 뭐하러 그런 번거로운 방법을 쓰신단 말인가?”

“그러니까 더 기가 막힌 거 아니겠나? 아직도 신릉군을 따르는 식객이 수천 명이나 되고 신릉군을 흠모하는 제후와 대신도 적지 않으니까 남의 눈을 의식해서 그런 방법을 쓰시려는 거겠지.”

며칠 후 미끼를 문 신릉군의 식객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신릉군의 저택으로 돌아와 시내를 거닐다 들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금 전 저잣거리에 죽간을 사러 갔다가 상인 두 명이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는데, 글쎄 왕께서 지방의 관리에게 신릉군을 굶겨 죽이라 명하셨다 소리를 하지 뭡니까? 아무리 시정잡배들이라도 그렇지 그따위 망측한 소리를 지껄이다니. 말세입니다. 말세.”

“엄 공께서도 그런 소문을 들으셨습니까? 실은 본인도 저택 근처에서 산책하다가 같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허허! 괴이한 망언이 대량 거리마다 역병처럼 번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글쎄요······. 단순히 헛소문으로 치불할수 있을는지······. 우리 둘 말고도 그런 소문을 들었다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그리고 신릉군께 곡식을 가져다주는 지방의 관리가 톱밥과 모래가 가득 담긴 곡식 포대를 대량의 시장에서 잔뜩 산 다음 부임지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들리더군요.”

“그토록 구체적인 말이 돌고 있다면 정말로 헛소문이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당장 저택에 남아있는 동지들과 함께 왕께 이 소문이 진실인지 여쭈어야 합니다!”

신릉군이 산속에 유폐되기 전에 그를 따르던 식객은 약 3천 명, 그리고 지금도 약 2천5백 명의 식객이 대량에 거주하며 신릉군을 구하기 위해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 중 마침 저택에 남아있던 약 1천 명의 식객이 대량의 궁궐 앞으로 몰려가서 대문 앞에 엎드리며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대왕 폐하! 근래에 저잣거리에 폐하께서 신릉군에게 쌀과 밀 대신 모래와 톱밥을 주어 아사시키려 하신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폐하! 소인들에게 진실을 알려주시옵소서! 부디 우매한 백성들 앞에 나서시어 저잣거리에서 돌고 있는 소문이 거짓임을 밝혀주시옵소서!”

신릉군을 따르는 식객들의 외침은 궁궐의 담장을 넘어 알현실에서 여러 제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위나라 왕의 귀에도 들어갔다.

위나라 왕은 내관이 소식을 전하자마자 얼굴이 삶은 문어처럼 벌겋게 물들면서 노성을 질렀다.

“이런 발칙한 자들을 봤나! 제 놈들이 감히 짐의 궁궐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서 그따위 헛소문을 퍼트리고 있단 말이냐! 여봐라! 당장 그자들을 모두 잡아들여서 옥에 가둬라! 조만간 그자들을 문초하여 소란을 일으킨 배후세력을 밝혀낼 것이다!”

그말을 들은 위나라의 제후들은 하나같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그런 왕을 말리려 했다.

“폐하! 궁궐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들의 행태가 괘씸하기는 하나 저들을 험하게 다루면 민심이 어지러워질까 봐 두렵습니다!”

“왕 대부의 말이 옳습니다. 폐하. 신릉군이 데리고 있는 식객 중에는 학문과 무예가 출중하고 성품이 어질어 현사(賢士)라고 불리며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1천 명이나 되는 선비를 죄인처럼 다루면 많은 인재가 우리 위나라를 등지고 다른 나라로 떠날 것이옵니다.”

“차라리 저들의 말대로 폐하께서 우매한 백성들 앞에 나서시어 혈육인 신릉군을 해치려 하신 적이 없음을 당당히 밝히시면 나라 안에 역병처럼 떠돌고 있는 망측한 소문이 잠잠해질 것이옵니다.”

위나라 왕은 마지막으로 입을 연 제후의 말을 듣고 넋이 나간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지금 뭐라 하셨소? 조 대부? 신릉군의 식객 말고도 저런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 자들이 더 있단 말이오?”

“유감스럽지만, 그렇사옵니다. 폐하.”

위나라 왕은 그의 대답을 듣고 더욱 초조함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오른손의 엄지손톱을 깨물었다.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도위 놈이 온 나라에 밀명을 퍼트리고 다닌 게 분명하다! 입이 무겁고 겁이 많은 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천하에 믿을 놈이 하나 없구나! 이렇게 된 이상 하루라도 빨리 얄미운 신릉군을 처치해야겠다!’

위나라 왕은 그렇게 마음먹은 후 옥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살기등등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조용히 하시오! 백주대낮에, 그것도 궁궐 앞에서 짐을 음해하는 무리를 곱게 보내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뭣들 하느냐! 당장 궁궐 대문 앞에 엎어져 있는 불경한 무리를 모두 잡아들여 옥에 가둬라! 그리고 자기가 거둔 식객들을 이용해 모반을 꾀한 신릉군에게 욍실근위병 1백 명을 보내서 당장 참수하도록 하라!”

그 자리에 있던 제후들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지르는 위나라 왕의 모습을 보고 땅이 꺼질세라 한숨을 쉬었다.

* * *

위나라 왕의 명을 받은 왕실 근위병들은 서둘러 갑옷과 무기를 챙긴 다음 궁궐 밖으로 나와 신릉군이 유폐되어있는 산을 향해 말을 달렸다.

그로부터 이틀 후 험한 산밑에서 말에서 내린 위나라 병사들은 한참 동안 숲이 우거진 가파른 산비탈을 올라가 신릉군이 사는 오두막의 싸리문을 걷어차 부수고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신릉군의 시중을 들고 있던 남자 하인이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병사들에게 물었다.

“뉘······ 뉘시오?! 차림새를 보아하니 산적은 아닌 것 같은데 어찌 왕족의 거처에 허락도 없이 발을 들이는 것이오!”

그 말을 듣고 근위대장이 허리춤에서 철검을 뽑아 검끝으로 하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어명을 받들어 반역자 위무기를 참수하러 왔다. 위무기는 안에 있느냐?”

“아······ 안 계시오! 지금은 주변의 산길에서 산책하시는 중이오!”

그때, 오두막의 미닫이문이 열리면서 많이 수척해졌음에도 여전히 위엄있는 모습의 신릉군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입을 열었다.

“한효야. 물러서거라. 그러다가는 너까지 화를 면치 못한다.”

“신릉군! 천하에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이 산에서 나가신 적도 없고 저 말고는 다른 사람을 만나신 적도 없는데 모반을 꾀하셨다니요?”

“어쩌겠느냐? 혈육의 본성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제 발로 위나라에 돌아온 내 불찰이다. 죽는 건 억울하지 않으나 내가 사라지고 나면 위나라의 운명도 위태로워질 터이니 오직 그게 걱정이다.”

그런데 그때, 울창한 숲속에서 수백 발의 화살이 날아오더니 오두막을 덮친 위나라 병사들의 갑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목과 허벅지에 박히기 시작했다.

“크억!”

“으아악!”

위나라의 왕실 근위대장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당황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외쳤다.

“복병이다! 모두 적의 기습에 대비하라!”

위나라 병사들은 허둥거리며 진형을 짜려 했지만, 그전에 숲속에서 몰려나온 유학자 차림의 고조선군 병사 수백 명이 몰려나와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손에 든 강철 환도를 휘둘렀다.

“우와아아아아!”

“신릉군을 보호하라!”

위나라군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기습을 당한 데다 고조선의 병사들 수가 월등히 많았기에 순식간에 궤멸당하고 말았다.

신릉군은 그 모습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중얼거렸다.

“대체 누가 이 몸을 구하러 왔단 말인가? 내 사병은 왕께서 진작에 흩어버리셨을 터인데?”

그런 그의 앞에 고조선 암부의 수장 계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대답했다.

“우리는 조선 왕실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신릉군. 우리는 왕검 폐하를 대신해 옛 연나라 땅을 다스리시는 태자 전하의 명을 받들어 공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왔는데,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제시간에 맞춘 모양이군요.”

“그런······. 조선의 태자께서 왜 이 몸의 목숨을 구하려 하신단 말이오?”

“태자께서는 어리석은 위왕을 폐위하고 어질고 현명하신 신릉군이야말로 위나라 왕으로 추대하실 생각입니다.”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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