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위나라를 다루는 법 (1)
이목을 얻은 후 한부는 왕검성의 궁궐에 전령을 보내 그를 장군으로 임명해 줄 것을 요청했고 한열 왕검은 이를 흔쾌히 허락하고 특별히 신임 장군이 왕검을 알현하는 절차를 생략해 주었다.
왕검도 한반도와 압록강 너머 연변 지역 부족을 상대로 한 동화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선 중원 대륙의 적대 세력이 고조선에게 가장 큰 위협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부는 예정보다 빠르게 이목에게 병권과 조나라와의 접경지역의 수비와 통치를 맡겨 혼자 너무 넓은 지역을 지키고 있던 상장군 무명의 짐을 덜어주었다.
특히 이목은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능력도 뛰어났기에 천재적인 군사적 재능에 비하면 통치술은 형편없는 무명의 결점을 잘 보완했기에 고조선의 국방력은 나날이 발전해나갔다.
이런 소식은 고조선과 국경을 접한 조나라에 상주하는 진나라 첩자들을 통해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 있는 여불위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런······. 골치 아픈 일은 본래 한꺼번에 터지는 법이라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하필이면 이런 시국에 조선의 세력이 커지고 있단 말이지.”
기원전 247년 5월 중순 현재, 진나라는 겨우 며칠 전에 아직 30대 한창나이였던 장양왕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나라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그 때문에 여불위는 원 역사에서는 중원 대륙을 통일하고 진시황이 된 것으로 유명한 아홉 살 난 태자 정을 급히 옥좌에 앉혔다.
장양왕에게는 태자 정과는 어머니가 다른 두 살 아래인 성교라는 다른 아들이 한 명 더 있는데 원래 여불위의 첩이었지만 훗날 장양왕에게 바쳐져 왕후가 된 무희 출신의 조희가 낳은 정보다 지체 높은 제후의 딸이 낳은 성교를 진나라의 왕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제후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불위는 불측의 사태에 기민하게 대응하여 다시 진나라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지만, 어린 왕 대신 권력을 휘두르기 위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하려면 바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원 역사에서 음탕함으로 유명한 진시황의 어머니 왕후 조희가 남편이 죽자마자 전남편인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잠자리를 요구해오는 바람에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느라 여불위는 도저히 고조선을 견제하는 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그 멍청한 것! 곧 상방의 자리에 오를 내가 왕후인 저와 한 이불을 덮다가 어린 왕이 알면 어쩌려고 그런 망측한 요구를 해온단 말이냐! 이럴 때 진나라에 무안군 백기 같은 장수가 있어서 알아서 조선을 정벌해주면 얼마나 좋을꼬! 아니, 하다못해 몽오 정도 되는 장수만 있었어도 조선과 흉노의 연합군이 북쪽에서 내려올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그나저나 요즘 조선을 치기 위한 연횡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그는 심복 이사를 외교 업무를 관장하는 곽직인 장사(長史)로 승진시킨 다음 연횡책의 진행을 그에게 일임했었던 사실을 떠올리고 급히 저택 서재의 출입문 쪽에 서서 대기하고 있는 하인에게 지시했다.
“이 장사(長史)에게 급히 의논할 일이 있으니 어서 서재로 불러오너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여 승상님.”
하인은 여불위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후 저택 밖으로 나가서 함양의 밤거리를 달려 이사에게 승상의 명을 전했다.
그러자 이사는 잠자리에 들려다 말고 급히 옷을 입은 다음 여불위의 저택 서재에 찾아가서 두 손을 모아 읍했다.
“부르셨습니까? 여 승상님.”
“이 장사. 깊은 밤 중에 불러서 미안하네. 하지만 요즘 워낙 공사다망하다 보니 낮에는 자네를 부를 시간을 내기가 어렵구먼.”
“그런 말씀 마십시오. 여 승상님. 젊은 선왕께서 그리도 갑작스럽게 붕어하셨으니 얼마나 경황이 없으실 거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말도 말게. 아무리 아랫사람들에게 일을 나눠줘도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네. 그나저나 요즘 동이족을 중원에서 몰아낼 준비는 잘 진행되고 있나?”
“초나라 왕은 승상께서 제안하신 대로 연횡군이 조선을 치면 20만 병사를 일으켜서 조선의 동맹국인 제나라를 치기로 약조했습니다. 또한, 위나라 왕도 위험인물인 이복동생 신릉군을 위성 근처에 있는 깊은 산 속에 있는 오두막에 유폐한 뒤로는 연횡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로군! 그리고 조나라 왕은 뭐라고 하던가? 곽개 그 매국노가 일을 잘하고 있던가?”
“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자의 활약이 예상보다는 신통치 않습니다. 분명 곽개가 조나라 태자를 구워삶고 제후와 대신들 사이에 유언비어를 적절하게 퍼트려 조나라 조정은 전보다 더 조선을 경계하게 된 건 사실이지만, 최근 그자의 건강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는 데다 북부를 지키던 조나라 장군 이목이 자취를 감추면서 조나라 왕은 조나라군이 조선을 칠 때 흉노의 마적 떼가 국경선을 넘는 걸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몸속에 병을 품고 있던 닭에게 너무 많은 먹이를 먹였구나. 이거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구먼. 그래도 조나라가 제나라처럼 조선에 붙거나 하지는 않았겠지?”
“그렇습니다. 여 승상님. 그 겁쟁이 왕은 적극 연횡책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진, 위, 한 세 나라의 연횡군이 조선을 공격하러 갈 때 길을 빌려주고 군량을 보태겠다고 말했습니다.”
“흠······. 신평군의 힘을 빌리지 못하게 된 건 참으로 안타깝지만, 흉노만 잘 견제하면 세 나라가 힘을 합하면 동이족을 다시 좁아터진 동쪽의 반도로 몰아넣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걸세. 조나라는 신경 쓰지 말고 지금까지처럼 연횡책을 진행해주게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여 승상님.”
* * *
한편 여불위와 이사가 진나라의 외교력을 총동원하여 고조선을 압박할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한부는 암부의 수장 계를 자신의 침실로 불러서 진나라의 연횡책을 파훼할 계책을 궁리하고 있었다.
한부는 탁자 맞은편에 앉아있는 계에게 물었다.
“계야. 위나라의 도성에 잠입해 있는 요원이 보고서를 전해왔다고 들었다. 위나라 도성 대량에서 조선 왕실의 수족이 되어 줄 제후나 대신이 있다더냐?”
“안타깝지만 위나라 조정에서는 조나라의 곽개나 제나라의 후승 같은 인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럴 리가? 위나라의 제후와 대신들이 주변국의 신하들보다 더 청렴하단 말이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하. 대량에도 곽개나 후승만큼 탐욕스러운 인물이 적지 않았습니다만, 그 둘만큼 유능한 자들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후······. 일이 그렇게 된 거였구나. 하긴 나라 팔아먹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하긴, 전국칠웅 중 최약체인 한나라에도 저명한 법가의 학자 한비가 있는데 위나라 조정에 있는 인물 중에는 바로 떠오르는 유명인물이 없구나. 위나라 조정에는 여러 가지 의미로 인재가 부족한 모양이군.”
“그렇사옵니다. 전하. 위나라에는 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아 정국을 좌우할 수 있는 자가 없으니 제나라와 조나라와는 다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네 말이 맞다. 예전에 반역자 완을 처치하고 나서 호랑이 부족의 잔당을 제압했었던 책략이 생각나느냐?”
“영험한 무당과 그 제자들로 변장한 병사들을 반역자들의 도시에 잠입시켰던 작전 말씀입니까?”
“기억하고 있구나. 그 방법으로 대량에 난을 일으켜 보자꾸나. 다만 이번엔 무당이 아니라 제나라 출신의 유학자나 불교 승려로 위장한 암부의 요원과 병사들을 잠입시키는 게 좋겠다. 마침 두 나라는 국경을 접하고 있기도 하니까.”
“전하. 호랑이 부족의 잔당은 주민이 수천 명 정도인 작은 마을에서 농성했기에 그 방법으로 쉽게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량은 적어도 10만 명의 백성이 사는 대도시입니다. 겨우 몇백 명의 요원과 병사로 대량의 조정과 궁궐을 장악하려 하는 것은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입니다.”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대량성 안에서 조력자를 구할 수 있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음······. 전하. 아마 진‧위‧한 세 나라는 머지않아 연횡군을 구성하고 조나라의 영토를 지나 하북을 공격해올 겁니다. 반면 대량성의 궁궐과 관청을 점거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위나라인 조력자를 모으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데다 장기간 작전을 수행하는 도중 정보가 샐 수도 있으니 그 계책이 과연 효용성이 있을는지요?”
“듣자 하니 신릉군의 식객이었던 자 중 대다수가 여전히 옛 주군을 잊지 못하고 그를 구하고 싶어 한다더구나. 그자들과 어리석은 위나라 왕을 함께 자득해서 위나를 흔들어보자.”
“이미 생각해두신 계책이 있는 모양이군요. 전하.”
“물론이지. 지금부터 노래 한 곡을 들려줄 테니 대량에 사는 아이들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서 부르고 다니게 해라.”
“노래 말씀입니까?”
“그래. 위나라 왕이 내 예상대로의 인물이라면 이 노래를 들으면 다시 한번 의심암귀에 사로잡혀 큰 실책을 저지를 거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전하의 계책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 * *
계는 한부가 가르쳐 준 노래를 기억했다가 퇴궐한 후 가장 신뢰하는 요원 다섯 명을 자기 집으로 불러서 알려준 다음 지시를 내렸다.
“이 노래를 받아적지 말고 운율과 가사를 완벽하게 암기해라. 그리고 내가 이곳에서 대량성에 보낼 요원과 병사들을 준비하는 동안 너희는 이미 그곳에 잠입해 있는 요원들을 만나서 이 노래를 가르쳐서 퍼트리라고 전해다.”
“수장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로부터 약 열흘 후 태자의 명이 대량에 잠입해 있는 암부의 요원들에게 전해졌고 그들에게 과자나 대만산 설탕 따위를 받은 위나라인 어린아이들이 한부가 지은 노래를 부르면서 놀았다.
“거침없이 나아가던 군자가 몸져누우니 어리석은 마부가 날뛰어 집안을 망치네! 군자가 병을 떨쳐내면 주제 모르는 마부를 매질하리라! 다시 일어난 군자가 망해가는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그러자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그 의미를 알아차린 위나라의 백성 중 어리석은 왕을 싫어하던 자들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퍼트렸고 마침내 위나라 왕의 귀에도 들어가게되었다.
“거침없이 나아가던 군자란 음흉한 내 동생 신릉군이고 마부는 나를 의미하는 게 분명하다! 대체 어떤 자가 이런 발칙한 노래를 퍼트리고 다닌단 말인가!”
신릉군의 이름은 위무기(魏無忌)로 성 뒤에 붙은 이름인 무기(無忌)는 ‘서슴지 않다.’나 ‘거침없다.’라는 뜻의 단어이기도 했다.
그리고 분개하는 위나라 왕의 본명은 위어(魏圉)로 성 뒤에 마부 어(圉)자를 붙인 것이다.
위니라 왕은 어린 시절부터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월등한 이복동생 신릉군 위무기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렇기에 한부가 퍼트리는 노래를 듣자마자 자기를 깔보는 무리가 신릉군을 흠모하는 세력이 군주의 자질이 부족한 자신을 옥좌에서 끌어내리고 산속에 유폐된 이복동생을 왕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의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절대로 건방진 이복동생에게 놀아나지 않을 것이야! 내 손에 혈육의 피를 묻히는 한이 있어도 진나라에 볼모로 가 있는 태자에게 왕위를 물려줄 테다!”
그러나 위나라 왕은 신릉군을 산속 오두막에 유폐한 정도로도 민심이 흉흉해진 마당에 그를 살해하면 수많은 제후와 대신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심지어 위나라 곳곳에서 반란이 터질 것을 염려했다.
그는 한참을 혼자 침실에 틀어박혀서 고민하다가 무릎을 치면서 소리쳤다.
“그래! 굳이 신릉군을 참수하지 않아도 식량을 안 보내면 저절로 굶어 죽겠구나! 아직도 그놈을 따르는 괘씸한 무리에게는 그놈이 병에 걸려 죽었다고 말하면 제 놈들이 뭘 어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