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두 번째 명장을 얻다. (1)
약 상자를 받은 곽개는 계가 돌아가자마자 아편을 몇 번이나 피워서 금단증상을 가라앉힌 다음 그대로 침상에 쓰러져 곤히 잠들었다.
그리고 그는 다음 날 아침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아침 식사를 하기도 전에 먼저 곰방대의 연소통에 아편말을 욱여넣고 불을 붙이면서 한탄했다.
“후······. 어제 하도 피워댔더니 이번에 받은 약재도 이걸로 끝이로구나. 상제차 가루를 태운 연기를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으니 이거야 원······.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겠군.”
그는 아직도 계가 고조선의 태자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계가 곽개에게 요구한 세 가지 조건은 모두 신평군 염파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임계가 조선 왕실을 섬긴다면 염파를 싸고돌 리가 없지. 조선에게 조나라는 국경을 맞댄 데다 수십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는 위협적인 적국이니까. 적국의 장수를 지키려고 천금을 쓰는 왕실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이목을 제거하라는 것도 그 늙은 호랑이가 훗날 병권을 놓고 다툴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속셈일 거다. 이렇게 된 이상 여불위와 염파의 하수인인 동이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보는 수밖에.’
희대의 간신은 신평군 염파가 자기와 비슷한 부류의 인간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는 계가 내린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예복을 입고 한단의 궁궐로 향했다.
궁궐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왕실 근위병 두 명은 곽개가 가마를 타고 다가오자 황급히 허리를 90도로 숙이면서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곽 대부님! 요즘 저잣거리에 대부님께서 편찮으시다는 소문이 돌던데 드디어 쾌차하신 모양이군요!”
“말도 말게. 며칠 동안이나 심한 몸살을 앓다가 귀한 약을 쓰고 나서야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네.”
“곽 대부님께서 강녕하신 모습을 보니 마치 부모의 병이 나은 것처럼 마음이 놓입니다!”
“허허! 이 사람들 아부하는 솜씨 하나는 천하제일이군! 그래!”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하인을 시켜 동전이 가득 들어있는 주머니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그러자 두 병사는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으면서 곽개가 묻지도 않은 태자의 행방을 술술 털어놓았다.
“늘 감사합니다! 곽 대부님! 그런데 이를 어쩌지요? 어려운 걸음을 하셨는데 태자께서는 지금 외출 중이십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이 곽개를 빼놓고 다른 제후들과 사냥이라도 하러 가신 건가?”
“대부의 자제들이 입는 옷을 옥체에 걸치시고 호위 두 명만 데리고 궁 밖으로 나가셨으니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소인의 생각에는 태자께서 직접 민생을 살피시느라 암행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곽개는 병사의 말을 듣자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허! 태자가 한단의 백성들을 관찰하려고 암행? 그 머저리가 그런 기특한 짓을 할 리 만무하지. 분명히 또 대낮부터 기방에 틀어박혀서 주색잡기를 하고 있겠구나. 내 자식들이 그 모양이면 아주 속이 썩어들어가겠어.’
그는 정보를 알려준 병사에게 동전 몇 개를 더 준 다음 태자가 자주 가는 기방에 갔다.
곽개가 모습을 드러내자 기방의 주인은 허리를 숙여 인사한 다음 그를 태자가 주색잡기를 즐기고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기방 주인이 방문을 열자 두 사람의 눈에 양쪽에 어깨를 드러낸 고운 비단옷을 입은 기녀를 앉혀놓고 술병을 한 손에 든 채로 병나발을 부는 조나라의 태자 언의 모습이 비쳤다.
곽개는 그런 태자의 앞으로 다가가서 읍하면서 애써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전하! 전하의 호방한 자태를 보고 있자니 영웅호색이라는 성어가 절로 떠오르옵니다!”
태자 언은 그제야 술병을 탁자에 내려놓고 곽개를 게슴츠레 눈으로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곽 대부! 어쩐 일로 부르지도 않았는데 이 은밀한 곳까지 찾아왔소? 경도 평소에 이곳을 자주 찾으시오?”
“소신은 젊지 않아서 이제 기방을 찾을 기운은 없사옵니다. 전하. 그저 전하께 급히 말씀드려야 할 일이 있어서 궁인들에게 물어 전하를 찾아 나섰을 뿐입니다.”
“흠······. 나중에 합시다. 곽 대부. 내 경을 몹시 아끼지만, 양손에 든 꽃을 따기 전에는 경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구려.”
“소신이 부리는 믿을만한 정보원의 말에 따르면 대왕께 병부를 받은 장군 중에서 모반을 꾀하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나중에 말씀드리는 편이 낫겠습니까?”
곽개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자 취기에 반쯤 넋이 나가 있던 젊은 태자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게 정말이오?! 정말로 우리 조나라의 장수 중에 반역자가 있다는 말이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대체 그 간악한 자의 이름이 뭐요!”
“전하. 여기는 듣는 귀가 너무 많습니다. 우선은 자리를 옮기시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음······. 본인의 생각이 짧았소. 그대의 집이 여기서 멀지 않으니 그리로 갑시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그 후 곽개는 술이 깬 태자를 기방에서 데리고 나와 자기 저택의 밀실로 안내한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전하. 간악한 반역자의 정체는 바로 대 땅을 지키고 있는 이목 장군입니다.”
“뭐라고?! 그럴 리가! 난 당연히 경이 신평군이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말할 줄 알았소!”
“신평군은 늙고 고집이 세지만, 조나라 왕실을 배반할 인물은 아닙니다.”
“그건 이목도 마찬가지 아니오? 그자는 북방에서 흉노를 잘 막아내고 있는 충신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이목은 벌써 몇 년째 대 땅의 민심을 한몸에 얻고 왕처럼 행세하면서 가만히 병사를 길러 벌써 10만이 넘는 군대를 휘하에 두고 있지만, 흉노를 토벌하기는커녕 유목민 마적 떼가 국경 마을을 휩쓸어도 백성을 성안으로 대피시키고 좀처럼 싸우지 않습니다. 이는 병사의 목숨을 아꼈다가 기회를 봐서 반역을 일으키려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몇 달 전에는 국경을 넘어온 흉노의 수만 기병을 기묘한 진법을 펼쳐서 물리쳤다고 들었소.”
“바로 그 일이 이목이 모반을 꾀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전하.”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그날 이목과 함께 전장에 섰던 많은 장수가 말하길 이목은 흉노의 선우와 5만 기가 넘는 마적 떼를 궤멸시킬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1만기 정도만 죽인 다음 일부러 포위망을 풀어서 야만인들을 놓아줬다고 합니다.”
“그런 발칙한! 대체 이목 그자가 왜 그런 짓을 한 거요!”
“그 전투에서 흉노 장정의 씨가 완전히 말라버리면 흉노의 위협이 사라지면 대왕께서 그자를 한단으로 불러 진나라나 조선의 접경지역을 지키게 하실까 봐 두려웠겠지요. 그럼 이목은 그동안 북방에 닦아놓은 기반과 조나라로부터 대 땅을 빼앗아 자기 왕국을 세운다는 야욕을 버릴 수밖에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거 대낮부터 술이나 마시고 있을 때가 아니었구려! 곽 대부!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그렇지 않아도 우리 조나라는 이미 진나라에 많은 영토를 빼앗겼는데 북방의 영토까지 잃으면 한나라보다도 못한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말 거요!”
전국시대의 중원 대륙에서 변방을 지키는 장군은 군사지휘관 겸 그 지역을 다스리는 지방관을 겸하는 때가 많았는데, 이목은 전설적인 명장인 동시에 뛰어난 행정가였다.
덕분에 그가 다스리는 지역은 진나라나 연나라의 침략에 자주 시달렸던 조나라의 다른 지역보다는 전란의 피해를 적게 입어 비교적 많은 세금이 걷혔고 이는 조나라 왕실의 주요한 수입원 중 하나였다.
아무리 나라 걱정은 뒷전인 방탕하고 어리석은 태자라도 이목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조나라가 입게 될 피해를 모를 수 없었던 것이다.
곽개는 자신의 농간에 속아 안절부절못하는 태자를 온화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하. 소신에게 좋은 계책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어서 말해주시오! 곽 대부!”
“대왕께 말씀드려서 얼마 전 이목이 흉노의 마적 떼를 물리친 일을 치하하고 더 높은 관직을 수여한다는 명목으로 이목과 그자의 측근들을 한단에 부르는 겁니다. 그리고 반역자 무리가 한단의 성문을 지나면 곧바로 붙잡아서 참수하는 겁니다.”
태자 언은 곽개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기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수가 있었구려! 좋소! 곽대부! 대왕께서는 아직 이목의 본 모습을 모르시지만, 내 단식을 해서라도 대왕을 설득하겠소!”
“소신의 충의를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 * *
곽개는 조나라 태자 언을 구워삶아 이목을 제거하는 계획에 끌어들이고 그가 궁궐로 돌아가자마자 자기 저택에 묵으면서 그의 하인으로 위장하고 있는 계의 부하인 암부 요원을 불러 상황을 보고했다.
“태자께서 내 침실에서 나가는 걸 봤지? 그분의 힘을 빌려서 조만간 이목은 반역자로 몰아 이목을 주살할 거다. 임계 공에게 시키는 대로 하고 있으니 어서 상제차 가루를 보내 달라고 연락해다오.”
“임계 공께서 그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으실 거라고 여기는 겁니까?”
“그럼 나더러 뭘 더 어쩌란 말이냐?! 태자 전하를 임계 공이 있는 곳으로 모시고 가서 만남을 주선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거냐?!”
“그러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그저 조나라 왕실의 옥새가 찍힌 이목을 주살하라는 명령서 한 장만 주시면 임계 공께서도 곽 대부님의 말씀을 믿으시고 약재를 보내실 겁니다.”
“하! 이거 아주 미칠 노릇이구나! 겉으로는 우직해 보이는 염파가 어떻게 이토록 교활한 승냥이를 길러냈을꼬!”
“말씀을 조심하십시오, 곽 대부님. 제가 그 말씀을 임계 공께 전하면 앞으로 두세 달쯤은 상제차 가루를 구경하지 못하실 겁니다.”
“으······. 내가 감정이 격해져서 실수했구나. 방금 한 말은 임계 공께 전하지 말아다오.”
“이번에는 그리하지요. 곽 대부님. 하지만 두 번째는 없습니다.”
“알았다. 조만간 태자께 부탁드려서 이목을 붙잡을 병사들을 지휘할 장수들에게 전해질 명령서 중 하나를 빼돌려서 전해주겠다. 그러니 우선 며칠 분이라도 약재를 보내 달라고 임계 공께 전해 다오! 저번에 받은 상제차 가루는 이미 바닥났단 말이다!”
“알겠습니다. 곽대부님. 우선은 제 재량으로 지금 가지고 있는 엿새 치의 약재를 드리지요. 그걸 다 피우시기 전까지는 대왕의 옥새가 찍힌 명령서를 구하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뭐야! 네 이놈 내 집안에 엿새 치나 되는 약재를 숨겨놨던 거냐?!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어떻게 일개 하인까지 이토록 교활할 수가 있단 말이냐!”
계의 부하는 분통을 터뜨리는 곽개를 뒤로하고 침실 밖으로 나와서 가지고 있는 면종이에 한글로 보고서를 작성해서 저택 밖에서 상주하는 다른 요원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보고서를 받은 요원이 밤낮으로 말을 달려 나흘 만에 계의 궁궐에 곽개가 이목을 음해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한부는 암부의 수장 계에게 자신의 책략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말했다.
“계야! 네 활약 덕분에 이번에도 조선 왕실이 큰 걱정을 덜게 되었구나! 넌 무명 상장군이나 크테시비우스 박사 못지않은 귀중한 인재다!”
“조선 최고의 명장과 천재 공학자와 소신을 비교하시다니요. 과찬이십니다. 전하.”
“과찬이라니! 절대 그렇지 않아! 이번 작전의 성공으로 얼마나 많은 백성의 목숨을 아낄 수 있겠느냐?”
“분명 흉노의 선우는 흉노의 목에 칼을 겨누던 이목이 사라지면 한시름 놓겠군요.”
“그게 다가 아니지. 이번 기회에 이목을 우리 사람으로 삼아보자.”
“진심이십니까?! 전하. 이목은 서쪽 대륙 사람 중에서도 가장 흉노를 증오하는 인물입니다. 아무리 조나라 왕에게 토사구팽당할 위기에 처했다고 해도 무명 상장군처럼 순순히 조선에 귀화하지는 않을 겁니다.”
“글쎄······. 내 생각엔 이목이 신평군 염파처럼 조국을 진심으로 아낀다면 오히려 조선에 귀화할 가능성이 더 클 것 같구나.”
계는 태자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