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매국노를 수족으로 삼다.
곽개는 계의 말을 듣고 호기심과 의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아편 가루를 바라보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흠······. 좋소. 다기를 가져올 테니 한번 차를 타보시오. 그 물건에 투자할지 말지는 차를 마셔보고 정하겠소.”
“그러시지요. 곽 대부님.”
“여봐라. 어서 다기와 데운 물을 응접실로 가져오너라.”
계는 곁에 있는 하인에게 지시하는 곽개를 보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그런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잠시 후 하인이 순은으로 만든 값비싼 다기를 가져오자 계는 작은 은제 주전자 안에 아편 가루를 털어 넣고 약효를 남김없이 우려낸 다음 작은 은잔에 따라 곽개에게 건네주었다.
“자. 한번 드셔 보시지요.”
그러나 곽개는 찻잔을 가져가서 몇 번 냄새를 맡아보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 뒤에 서 있는 장정 중 한 명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가? 신선차보다 고급품이라더니 불쾌한 냄새가 나는군. 네가 한번 마셔봐라. 난 식욕이 싹 사라져서 도저히 못 마시겠다.”
장정은 그 말을 듣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찻잔 속의 짙은 황갈색 액체를 조금 마시고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소리쳤다.
“어우! 써! 곽 대부님! 이건 도저히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음료가 아닙니다! 월왕 구천이 복수를 다짐하면서 씹었다는 쓸개의 즙도 이것보다는 달콤할 겁니다!”
계는 그 말을 듣고 급히 곽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원래 좋은 약일수록 입에 쓴 법입니다. 차는 그 효능을 보고 마시는 것이지 원래 맛과 향을 즐기려고 마시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음······. 틀린 말은 아니구려.”
전국시대에는 아직 다도 문화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 차는 귀한 약재로 여겨지면서 고가에 거래되었다.
그렇기에 곽개는 차의 맛과 향이 끔찍하다는 부하의 말에도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고 다시 그에게 지시했다.
“엄살 부리지 말고 마저 마셔보아라. 이 동이족
상인대로 그게 신선차보다 고급품이라면 그 차를 모두 마시고 두 시진쯤 후에는 꽤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장정은 주인이 재차 아편 차를 마시라고 명하자 울상을 지으면서 다시 찻잔을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그 후 약 한 시간이 흐르자 아편 차를 마신 장정은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곽개에게 말했다.
“곽 대부님의 말씀대로군요······. 마치 신선이 되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입니다······.”
“벌써?! 아직 차를 마신 지 반 시진도 안 지나지 않았느냐? 신선차는 넉넉히 한 시진은 지나야 효험이 느껴졌거늘!”
“한 잔만······. 딱 한 잔만 더 마셔봐도 될는지요?”
장정이 그렇게 물으면서 약 기운에 떨리는 손을 은제 주전자를 향해 천천히 뻗자 곽개가 잽싸게 그의 팔을 손바닥으로 쳐내면서 꾸짖었다.
“허락도 없이 내 물건에 손을 대려 하다니! 네가 실성한 게로구나? 천한 것이 귀한 약재를 한번 맛봤으면 됐지 욕심이 과하군. 뭣들 하느냐? 귀한 손님께 더는 추한 모습을 보일 수 없으니 어서 저 녀석을 데리고 나가라.”
“알겠습니다. 곽 대부님.”
주인이 명하자 다른 장정 세 명은 검을 허리춤의 검집에 집어넣은 다음 동료의 팔다리를 붙잡았고 아편 차를 마신 장정은 응접실 밖으로 끌려나가는 와중에도 발버둥 치면서 구슬픈 목소리로 소리쳤다.
“곽 대부님! 곽 대부님! 제발 한 잔만 더! 아니 한 모금만이라도! 곽개 이 쪼잔한 자식아!”
곽개는 수하가 난동을 부리는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헛기침을 하면서 계에게 말했다.
“크흠······. 면목 없습니다. 임계 공. 귀한 손님께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렸군요. 저자는 나중에 엄히 벌하겠습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곽 대부님. 상제차의 효능을 몸소 증명해준 고마운 자가 아닙니까? 부디 너무 심한 벌은 내리지 말아 주십시오.”
“참으로 관대한 분이시군요. 그나저나 이처럼 약효가 뛰어난 차가 시중에 풀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코뿔소 뿔이나 수은보다 더 귀한 약재로 자리매김하겠군요. 다만······.”
“아직도 상제차의 효능을 의심하고 계십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신선차에 비해 냄새와 맛이 역한 게 좀 아쉽군요.”
“그럼 차 대신 연기를 마셔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냄새야 여전하겠지만, 쓴맛은 좀 덜할 겁니다. 그리고 차로 마실 때보다 약효가 훨씬 빨리 온몸에 스며들지요.”
“사람이 연기를 마신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곽 대부님. 아직 제나라에도 알려지지 않은 이 약재를 즐기는 방법이지요. 곰방대라고 부르는 긴 대롱
끝에 약재를 개어 넣고 태워서 연기를 마시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늘을 나는 용이 구름을 삼키는 장면처럼 운치 있답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 하인에게 곰방대를 가져오라고 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궁금하군요.”
계는 곽개의 허락을 받고 응접실 밖으로 나가 그와 함께 온 부하에게 짐을 싣고 온 수레에서 청동과 질 좋은 대나무로 만든 긴 곰방대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하인으로 변장한 암부의 요원이 곰방대를 가져오자 계는 곰방대 끝에 달린 연소통에 흡연용으로 따로 제조한 아편말을 넣은 다음 곽개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자, 이제 곰방대의 이쪽 끝을 입에 무시고 제가 반대쪽에 불을 붙이면 조금씩 연기를 빨아들여 보시지요.”
“흠······.”
곽개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물건을 잠시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곧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곰방대의 끝을 물었다.
그런 다음 계가 연소통에 불을 붙이자 그는 조심스럽게 연기를 빨아들이다가 잠시 기침을 했지만, 곧 입에서 자욱한 연기를 입에서 내뿜으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아······. 상서로운 기운이 오장육부에 스며드는구나······.”
계는 중국 역사상 최악의 매국노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 * *
계는 곽개가 미끼를 물자 그에게 가지고 온 아편과 재물을 모두 선물하고 계의 궁궐로 돌아와 한부에게 임무에 성공했음을 알렸다.
“전하. 조나라의 간신 곽개가 약에 손을 댔습니다.”
“그자가 약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왔느냐?”
“그렇습니다. 전하. 곽개가 곰방대로 아편을 피우는 모습을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왔습니다.”
“정말 잘했다! 이제 앞으로 그놈에게 물건을 전해주다가 조금씩 약을 줄여나가라. 그러다 곽개가 완전히 약에 절여졌을 때 아예 약 공급을 끊어서 한 닷새 정도 금단증상에 시달리게 하면 앞으론 조선 왕실의 수족이 되겠지.”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계야?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게냐?”
“죄송합니다. 전하. 전하께서 다른 나라가 아니라 조선의 태자이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힘없는 백성에게는 더없이 관대하신 분이 적대국의 고위층에게는 참으로 가혹하시니 말입니다.”
“나도 이런 음습한 수단을 쓰는 게 마냥 즐겁지는 않다. 그렇지만 곽개 같은 악인 한 명을 폐인으로 만들어서 전쟁을 피하고 죄 없는 백성 수만 명의 목숨을 아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다.”
“전하께서 하시는 일에 언제나 대의가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곽개를 완전히 수족으로 삼으시고 나면 그자에게 어떤 지시를 내리실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건 그 간신에게 내릴 밀명을 정리한 쪽지다. 이 자리에서 모두 암기한 다음 내 침실을 나가기 전에 태워버려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계는 한부가 건네준 반으로 접은 한지 쪽지를 빠르게 읽고 나서 작은 청동화로에 던져 넣고 태자의 침실 밖으로 나왔다.
그로부터 약 두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 기원전 247년의 2월 초가 되었을 때, 이미 완전히 아편에 중독된 곽개는 갑자기 계가 약 공급을 중단하는 바람에 사흘째 극심한 금단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극심한 오한과 복통에 시달리면서 침상에 누어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저택의 하인들을 부르며 닦달했다.
“흐어······. 뱃속에서 야생마가 날뛰는 것처럼 아프구나! 상제차를 가지고 내 집에 드나들던 임계의 하인은 아직도 코빼기도 보이질 않느냐?!”
“그······ 그렇습니다. 곽 대부님.”
“그럼 국경 너머에 사람을 보내서라도 그 자식을 찾아봐야 할 것 아니냐! 내가 이러다 제명에 죽질 못하겠다!”
“곽 대부님! 그 넓은 조선 땅에서 그자가 어디에 숨어있는 줄 알고 찾아낸단 말입니까!”
“재물은 얼마든지 써도 좋으니 당장 조선에 사람을 풀어서 임계를 찾아내란 말이다!”
그런데 그때, 침실 입구에서 들려온 담담한 목소리가 식은땀이 흥건한 곽개의 귓가를 스쳤다.
“곽 대부님. 그리 하인을 닦달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임계가 대부님을 뵈러 찾아왔으니 말입니다.”
다 죽어가던 곽개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오뚝이처럼 급히 몸을 일으키면서 고개를 돌려 계를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임계 공!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대체 왜 열흘 동안이나 상제차를 보내지 않았느냐는 말이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곽 대부님께 귀한 약재의 홍보를 부탁드리면서 적잖은 성의를 보였는데 물건을 보내는 족족
혼자 피워버리시지 않았습니까?”
“그······ 그걸 어떻게······.”
“제가 그 귀한 상품을 맡기면서 대부님 주변에 눈과 귀를 심어두지 않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본인이 잘못했소! 앞으로는 뭐든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제발 상제차를 구해 주시구려!”
“뭐든지 말씀입니까?”
“그렇소! 뭐든 말해보시오! 내 아들 세 명 중 한 명을 달라고 해도 기꺼이 그대의 양자로 보내겠소!”
“호? 흥미로운 제안이군요. 곽 대부님과 이 문제에 관해서 단둘이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곽개는 계의 말을 듣자마자 파리를 쫓든 손을 흔들어서 하인을 침실 밖으로 쫓아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임계 공! 이제 어서 말해보시오! 대체 원하는 게 뭐요!”
“음······. 우선 곽대부님께서 조나라 조정이 더는 조선을 적대하지 않도록 손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그 무슨······. 난 조나라의 제후이지 왕이나 재상이 아니오!”
“하지만 조나라의 태자께서 가장 신임하시는 분이시잖습니까? 그리고 한단의 궁궐에서 일하는 수많은 궁인이 곽 대부님을 주인으로 여기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너······ 너 이 자식! 대체 정체가 뭐냐?!”
“그게 중요합니까? 곽 대부님께서는 그저 제가 당신이 애타게 찾는 물건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크윽······. 알겠소. 그대의 뜻대로 하겠소.”
“아! 그리고 신평군 염파를 음해하는 건 그만둬 주십시오. 조나라의 제후가 틈만 나면 여러 사람 앞에서 나라의 대들보나 마찬가지인 명장의 험담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제야 감이 잡히는구먼! 설마 그대가 염파의 심복이었을 줄이야! 염파 그 오만하고 꽉 막힌 늙은이에게 이토록 교활한 면이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제 말 아직 안 끝났습니다. 곽 대부님. 아직 드려야 할 청이 하나 더 남았거든요.”
“내게 뭘 더 원하는 거요!”
“오랜 세월 동안 대 땅의 병권을 차지하고도 흉노를 토벌하지 못한 이목을 해임하는 일을 도와주십시오. 믿을만한 정보통의 말에 따르면 그 겁 많은 장수가 머뭇거리는 동안 흉노는 동호를 정벌하고 초원을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더군요.”
“음······. 그건 내게 해가 될 건 없는 일이군. 좋소.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할 테니 제발 상제차를 구해주시오!”
“우선 이틀 동안 피우실 양을 가져왔습니다. 나머지 물건은 곽 대부님께서 먼저 성의를 보이시면 늘 댁에 약재를 배달하던 사람을 통해서 보내겠습니다.”
계가 그렇게 대답하면서 아편말이 들어있는 작은 나무 상자를 건네주자 곽개가 급히 손을 뻗어 상자를 낚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