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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15화 (115/195)

[115화] 흉노 사절단과 함께하는 귀국길 (2)

기원전 248년 7월 말, 한부는 무더운 여름날에 기병대장 석, 그리고 흉노의 사절단 겸 유학생들과 함께 1천 명의 호위병을 이끌고 왕검성을 향해 출발했다.

한부 일행이 계의 성문을 나선 후 육로로 약 보름 동안 남쪽으로 행군해 제나라의 수도 임치에 들어서자 수많은 행인이 북방 유목민과 동행하는 고조선의 태자를 바라보면서 수군거렸다.

“저기 좀 봐. 조선인들이 호복을 입은 유목민들하고 함께 다니고 있어.”

“얼마 전부터 조선이 흉노와 동맹을 맺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그게 전부 사실이었구먼.”

“자네가 저 유목민들이 흉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조선의 병사들이 끌고 가고 있는 짐승 중에 털빛이 푸른 말이 몇 마리 있잖아. 저건 흉노의 특산품이거든.”

한부는 제나라인들의 웅성거림이 귓가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게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 기쁜 소식을 알려라. 일부러 옛 연나라의 항구도시에서 배를 안 타고 제나라 땅을 지나길 잘했네.’

현재 진나라는 고조선과 그 동맹국인 제나라만을 상대할 생각으로 조, 위, 한 세 나라와의 연횡을 꾀하고 있는데, 여기에 흉노가 끼어들면 조나라는 연횡에 합류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조나라는 전국칠웅 중 고조선과 흉노 양국과 모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일한 나라라 한부와 선우가 한 전선에 양국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연합군을 투입하여 침략해오면 넓은 국경선에 병력을 분배할 수밖에 없는 조나라로서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부는 보란 듯이 흉노의 왕자와 함께 외국인 유학생이 많은 학문의 도시 임치의 시가지를 지나 전 중원에 고조선과 흉노가 동맹을 체결했다는 사실을 중원 널리 알린 것이다.

또 그 계책은 제나라 조정 안에서 진나라 조나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면 고조선과의 동맹을 깨야 한다고 주장하던 몇몇 제후와 대신의 입을 틀어막는 부수적인 효과도 발생시켰다.

그동안 고조선 조정에서 보낸 뇌물을 받아온 간신 후승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젊은 제나라 왕을 알현하면서 그에게 제안했다.

“폐하. 오늘 낮에 조선의 태자 한부가 흉노가 보낸 사절단과 함께 임치의 성문을 지났다는 소식을 접하셨는지요?”

“들었소. 상방. 흉노의 선우에게 선물 받은 진귀한 동물을 끌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띈다고 하더구려.”

“조선은 예전에도 연나라를 겨우 두세 달 만에 멸망시킬 만큼 만만치 않은 나라였는데 이제는 흉노까지 품에 안음으로써 진나라나 초나라에 비견할만한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조선의 태자가 임치를 떠나기 전에 궁궐로 초청해 연회를 베풀어 환심을 사면 어떻겠습니까?”

“흠······. 오랫동안 우리나라와 교역해온 조선인이라면 몰라도 야만스러운 북방 유목민을 짐의 거처에 들이는 건 썩 내키지 않는구려.”

“하오나 그 북녘땅의 야만인들은 장평에서의 비극이 일어나기 전의 초나라보다 강성했었던 조나라를 위협할 정도로 강하고 빠른 기병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제나라가 막강한 조선과 흉노의 동맹에 한발 걸치기만 하면 초나라의 관을 쓴 원숭이들도 우리 제나라를 침략하려 할 때마다 한 번 더 고민할 수밖에 없겠지요.”

“흠······.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책략으로 초나라를 위협해보자는 거구려. 좋소. 밑져야 본전이니 그렇게 합시다.”

제나라 왕은 상방 후승에 말에 따라 고조선의 태자 일행을 궁궐로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한부는 궁녀들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은 다음 잔칫상 맞은편에 앉아있는 제나라 왕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저 귀국길에 임치를 지나고 있었을 뿐임에도 이토록 융숭한 대접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그런 말씀 마시오. 조선의 태자여. 그대는 우리 제나라를 멸망의 위기에 몰아넣었던 연나라를 멸하여 전쟁통에 비참하게 살해당하신 짐의 조부 민왕의 원한을 갚아주었잖소? 짐은 그저 마침 짐의 궁궐 앞을 지나가는 은인에게 따듯한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싶었을 뿐이니 마음 편히 즐겨주시오.”

제나라 왕은 한부에게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한 다음 궁중 악사들에게 한 손을 들어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두 손에 사슴뿔을 깎아서 만든 작은 망치 각퇴(角槌)를 악사 세 명과 끝을 청동으로 감싼 긴 나무 봉을 든 악사 한 명이 고대 중국의 전통악기 편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비단 옷을 입은 네 명의 악사는 절도있는 동작으로 걸어 다니면서 가로 길이가 11m에 높이 2.2m의 3층 나무 걸개에 걸린 크고 작은 65개의 청동제 종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궁중 연회장을 청아하고 느긋한 음색이 가득 메웠다.

그러자 한부와 제나라 왕은 대화를 멈추고 음악을 감상했고 흉노의 젊은 장수들은 곡조에 맞춰 미풍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춤추는 무희들을 넋 놓고 바라보면서 푸짐한 음식과 향기로운 술을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만 왕자는 다른 동포들과는 달리 주눅이 든 표정을 지으면서 음식에 별로 손을 대지 않았다.

그때, 흉노의 장수 중 한 명이 어린 왕자에게 말을 걸었다.

“왕자님! 저기 좀 보십시오! 곧 왕자님의 매형이 되실 조선의 태자께서는 흉노의 말도 유창하게 하시더니 제나라 말도 정말 잘하시는군요! 어? 왕자님? 혹시 이 나라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 표정이 너무 어두워 보입니다.”

“아······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많이 먹고 마셔라.”

“아무것도 아니시긴요. 처음으로 마상 궁술 연습을 하시다가 여러 사람 앞에서 낙마하셨을 때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계시잖습니까?”

“호록고 너 이 녀석! 평소에는 맹하면서 이럴 때는 귀신같이 눈치가 빠르구나!”

“역시 뭔가 있군요. 여러 사람 앞에서 말씀하시기 조금 그런 내용이라면 소장에게만 작은 목소리로 알려주십시오. 절대로 다른 사람들한테는 알려주지 않겠습니다.”

“정말이냐?”

“물론이지요! 위대하신 천신께 맹세코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제나라 왕의 신하들이 가끔 이쪽을 흘끗거리면서 바라볼 때의 표정과 눈빛이 마음에 걸려서 음식이 목구멍에 잘 넘어가질 않는구나.”

“남방인 놈들이 말입니까?”

두만 왕자에게 호록고라고 불린 젊은 장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자 흰 수염이 배까지 늘어진 한 제나라 제후가 짢은 눈빛으로 흉노인들이 앉아있는 쪽을 흘끗 바라보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늙은 제나라 대신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시선을 거두었고 호록고는 얼굴이 삶은 문어처럼 빨개지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저 노인네가 감히 대 흉노의 왕자님을 째려봐?! 수염을 확 잡아 뽑아버릴라!”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중 흉노인을 제외하면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통역사 한 명을 제외하면 한부 뿐이었지만, 많은 제나라인 대신이 호록고의 표정과 태도를 보고 격분하면서 소리쳤다.

“저자가 벌써 만취한 건가?!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언성을 높이는 거지?!”

“쯧쯧쯧! 누가 야만인 아니랄까 봐. 초나라인이 관을 쓴 원숭이라면 북방의 유목민들은 털모자를 쓴 미친개로구나!”

“왕실 근위병들은 뭣들하고 있느냐? 저 야만인이 대왕께서 계신 자리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잖느냐?! 어서 저자를 밖으로 끌어내라!”

한부가 갑작스럽게 연회장의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을 보고 나서려는 찰나, 제나라의 상방 후승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상황을 정리했다.

“모두 진정들 하시오. 저분들은 모두 대왕께서 연회에 초대하신 나라의 손님이오. 제나라의 녹을 먹는 우리가 왕실의 손님께 언성을 높이는 건 예에 어긋나는 일이오.”

“상방님! 하지만 저 야만인 장수가 먼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고함을 질렀습니다!”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다가 우연히 봤는데, 저기 앉아 계신 임 대부가 북쪽에서 오신 손님들이 모여있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더군요. 흉노의 손님이 그 모습을 보고 뭔가 오해를 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임 대부?”

후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동시에 두만 왕자를 흘끗거리면서 바라보던 제후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그는 제나라에선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후승이 연회를 망칠뻔한 자신을 책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통역사를 통하여 두만 왕자에게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사과했다.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 전하. 그저 흉노의 복식에서 이국적인 매력을 느껴 쳐다보았을 뿐인데 제 시선이 저 젊은 장수의 심기를 거슬렀던 모양입니다.”

두만 왕자는 아직 어려도 혐오의 눈빛과 호기심 어린 눈빛을 구분할 줄 알았지만, 한부를 곤란하게 만들까 봐 그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괘념치 마시오. 흉노와 조선, 그리고 제나라가 우호를 다지는 자리이니 서로의 작은 흠을 따지지 맙시다.”

그렇게 소동은 일단락되었지만, 연회장의 뒤숭숭해진 분위기가 한순간에 다시 화기애애해질 리는 없었다.

그렇게 연회가 끝나고 나서 한부는 임치의 궁궐을 나오면서 두만 왕자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왕자님께서 뜻하지 않게 불쾌한 일을 겪으셔서 저도 마음이 좋지 않군요. 너무 유념치 마십시오. 중원 대륙에 사는 사람 중에는 다른 인종이나 부족의 사람을 천시하는 자가 적지 않습니다만, 앞으로 조선과 흉노의 동맹이 공고해지면 천하의 그 누구도 양국의 백성을 모욕할 수 없을 겁니다.”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전하. 남방인들이 초원의 자손들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우리 흉노와 엮일 일이 없었던 제나라인조차 우리를 이렇게 싫어할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흉노와는 사돈의 나라가 될 조선에서는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두만 왕자는 한부에게 대답하면서 고개를 돌려 대로변에 있는 한 민가를 바라보자 집안에서 아이를 업고 다니던 젊은 여자가 맹수라도 본 듯 화들짝 놀라면서 창문을 닫았다.

한부는 그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조선은 여러 인종과 부족의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나라라 외지인에게 우호적이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 *

임치에서의 연회가 끝난 후 후승은 자금줄인 조선의 태자를 대접하는 자리를 망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사비를 털어서 한부 일행이 고조선까지 타고 갈 큰 범선 여러 척 구해주었다.

한부는 후승의 호의를 받아들여서 그가 일러준 데로 일행과 함께 제나라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인 즉묵으로 출발해 여드레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러자 평생을 몽골 초원의 벌판에서 살아온 두만 왕자와 흉노의 젊은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와아아아아! 세상에 이렇게 큰 호수가 다 있었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왕자님! 우리 흉노의 영토에 있는 호수의 물을 전부 한곳에 모아도 이 호수보다는 작을 것 같습니다!”

한부는 그 모습을 보고 미소 지으면서 두만 왕자에게 말했다.

“왕자님. 여긴 호수가 아니라 바다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아! 여기가 말로만 듣던 바다로군요! 선우께서 잡아 오신 조나라인 노예에게 그런 곳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바닷물은 민물과 달리 소금기를 머금고 있어서 짠맛이 난다지요?”

“그렇습니다. 마침 제나라는 소금의 생산지로 유명하니 바닷가에서 가까워지면 염전을 구경하실 수 있겠군요.”

“염전? 그 귀한 소금을 밭에서 캐낸단 말입니까? 그럼 어서 바닷가로 가시지요! 초원으로 돌아가기 전에 바닷물로 소금을 만드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그러시죠. 왕자님. 마침 어린 시절에 즉묵에 와본 적이 있어서 이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쪽으로 가면 염전이 나올 겁니다.”

한부가 그렇게 말하면서 염전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자 두만 왕자가 해맑게 웃으면서 그의 옆에 서서 길을 따라 걸어갔다.

한부는 고개를 돌려서 그런 흉노 왕자의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원역사에선 자기 친아들도 죽이려고 했던 피도 눈물도 없는 선우가 어린 시절에는 이렇게 천진난만했구나. 이 녀석은 피비린내 나는 정치판에 뛰어들지 말았으면 좋겠네.’

그런데 그때, 두만 왕자가 고개를 돌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안색이 하얘지면서 소란을 떨었다.

“으아아아아! 저것들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왕자님. 대체 무슨 일로 그렇게들 놀라십니까?”

“후······. 저길 좀 보십시오. 제나라인들이 굉장히 징그럽게 생긴 벌레를 먹고 있습니다. 어우! 소름 끼쳐!”

두만 왕자는 미간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인상을 찌푸리면서 손가락으로 손님이 북적이는 한 노점을 가리켰다.

한부는 그 노점의 손님들이 삶은 새우의 껍질을 벗겨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간신히 웃음을 참으면서 흉노의 어린 왕자에게 대답했다.

“왕자님. 저건 벌레가 아니라 새우라고 부르는 바다에서 잡히는 동물입니다.”

“다리가 저렇게 많이 달렸는데 벌레가 아니라요?! 전하! 네 개가 넘는 다리가 달려있고 움직이는 게 바로 벌레입니다!”

그 말을 듣자 한부의 머릿속에 잊고 있었던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러고 보니까 21세기에도 몽골사람들은 새우를 벌레 취급해서 절대로 안 먹는다고 했지. 왕검성에 도착하면 흉노인들이 새로운 걸 더 많이 보게 될 텐데. 다들 그때 무슨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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