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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14화 (114/195)

[114화] 흉노 사절단과 함께하는 귀국길 (1)

한부는 피비린내 나는 숙청으로 그가 선우의 부마이자 후계자가 되는 데 반대하는 흉노의 귀족

세력을 일소했지만, 곧바로 진서 공주와 혼례식을 올리지는 않았다.

그가 아무리 하북의 북동부와 요동, 그리고 요서 지방을 다스리며 왕이나 다를 바 없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고 고조선 조정이 흉노와의 혼인 동맹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해도 아버지인 왕검의 승인을 받는 절차를 무시하고 외국의 공주와 결혼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고조선의 태자와 흉노 공주의 혼례식은 한열 왕검이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한 후에 치를 수밖에 없었는데, 오윤 선우는 그 사정을 이해하면서도 한부에게 아쉬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마음 같아서는 오늘 바로 그대를 사위로 삼고 싶은데 참으로 안타깝구려. 마음 같아서는 본인도 가족들과 함께 왕검성에 가서 왕검께서 그대와 진서의 혼인을 허락하시자마자 두 사람의 혼례식을 올리고 싶소.”

“저를 그리도 마음에 들어 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임묵이 죽은 지금이야말로 선우께서 흉노의 전사들을 이끌고 동쪽의 반항적인 마적 떼를 정벌하실 절호의 기회입니다.”

“본인도 그걸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소. 조선의 태자여. 그저 아쉬운 마음에 넋두리를 늘어놓은 것뿐이오. 그건 그렇고, 혼인 건과는 별개로 그대가 꼭 들어주었으면 하는 청이 있소.”

“말씀만 하십시오. 선우시여. 제가 능력을 벗어나지 않은 일이라면 뭐든 하겠습니다.”

“왕검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흉노의 젊은 전사 스무 명과 활 장인 쉰 명, 그리고 그자들을 시중들 하인 3백 명을 데리고 가줄 수 있겠소?”

“젊은이와 활 장인을 말입니까?”

“그렇소. 본인의 장녀 진서와 그 녀석을 호위했던 장수들은 입을 모아 그대가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묘한 전술로 동방의 마적 떼를 물리쳤다고 말했소. 또 어제 연회장에서 조선의 궁수들이 거의 2백 보 밖에서 활을 쏴서 불온한 무리를 사살하는 걸 보고 많은 전사가 크게 감탄했다오.”

“아······. 선우께선 젊은 전사들에게 조선의 병법과 궁술을 배우게 하고 활 장인들에게는 조선식 각궁을 만드는 법을 익히게 하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그렇소. 특히 이번 기회에 본인의 어리숙한 장남 두만이 조금이나마 전장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구려.”

“두만 왕자는 아직 전사가 되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흉노의 소년들은 보통 일곱 살에서 여덟 살 정도가 되면 양을 타고 다니면서 작은 새나 쥐를 활로 쏴서 잡아 구워 먹으며 논다오. 그런데 우리 장남은 열 살도 넘은 녀석이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는 실력이 영 형편없으니 위대한 전사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소.”

“선우께서 우려하실만하군요.”

“본인이나 연지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오. 심지어 쓰기 쉬운 전용 등자를 만들어주어도 영 나아지질 않으니······. 그래서 그 녀석에게 병법이라도 철저하게 가르쳐서 전장의 일선에 서는 장수로서 활약하기 어렵다면 군략가로서 부족에 헌신할 길을 찾아주려는 것이오.”

얼마 전 한부는 이목이 이끄는 조나라군 궁수가 쏜 화살에 맞아 죽은 흉노의 말 등위의 안장에 모두 등자가 장착된 모습을 보았다.

현대의 역사학자 중에는 등자가 기원전 4세기경에 북방 유목민, 그중에서도 흉노가 개발한 것으로 추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는 흉노 사회에선 승마가 생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술로 여겨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열 살이 넘었는데도 기마 궁술에 미숙한 소년이 훌륭한 인재로 여겨질 리 만무했다.

그리고 한부는 그런 두만이 자기가 발전시킨 고조선의 여러 지식을 습득해서 능력 있는 군주감으로 자라나 장차 자기가 차지하게 될 흉노의 선우 자리를 넘보게 되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장래의 장인어른인 오윤 선우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하기는 어려웠고 무엇보다 흉노에서 온 유학생들을 통해 고조선이 얻을 수 있는 이익도 적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북방의 여러 유목민족을 동화시켜나갈 생각이었는데. 흉노 유력자의 자제들이 선진문물에 푹 빠져서 고향으로 돌아가면 몽골초원하고 내몽골에 조선의 문화를 전파하는 데 꽤 도움이 될 거란 말이지. 아무래도 두만 왕자를 일단 왕검성에 데리고 간 다음 병법이나 정치 말고 다른 분야에 관심을 두도록 유도하는 수밖에 없겠다.’

한부는 그렇게 마음먹은 다음 밝은 미소를 지으며 오윤 선우에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선우시여. 두만 왕자를 비롯한 흉노의 젊은이들을 안전하게 왕검성으로 호위하겠습니다.”

“참으로 고맙소! 조선의 태자여! 본인이 우두머리를 잃은 동방의 마적 떼를 토벌하는 동안 왕검성에서도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리겠소. 아, 그리고 조선의 왕검께 드릴 선물을 준비할 테니 며칠만 더 우리 부락에 머물러 주시구려.”

“그리하겠습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선우시여.”

오윤 선우는 한부가 자기 부탁을 들어주자 크게 기뻐하며 이목이 이끄는 조나라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우도기왕의 후임자에게 고조선에 선물로 보낼 흉노의 특산물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우도기왕은 약 열흘 만에 한반도나 중원 대륙에서는 보기 힘든 가축을 구해왔고 고조선의 병사들은 선우의 마구간에 모인 진귀한 짐승들을 보면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원 세상에! 저기 있는 말 좀 봐! 태자 전하와 석 기병대장이 타고 다니는 서역의 명마보다 더 덩치가 크잖아?!”

“흉노의 짐승들은 모두 덩치가 큰 모양이구먼! 나귀도 조선에서 보던 녀석들보다 몸집이 커!”

“그건 그렇고 저 등에 혹이 난 커다란 녀석은 뭐라고 부르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짐승이라 모르겠어. 그나저나 정말 못생긴 녀석들일세.”

그때 한부도 휘하의 장수들과 함께 선우의 마구간을 돌아보면서 크게 기뻐하면서 기병대장 석에게 말했다.

“석아! 저길 좀 봐라! 나귀 1천 마리에 한혈마가 5백 마리, 그리고 진귀한 낙타와 푸른 말도 각각 쉰마리나 있구나! 선우께서 정말 귀한 선물을 주셨어!”

“전하와 함께 서역을 여행할 때 이집트에서 봤었던 짐승이군요. 그런데 서역의 낙타와 흉노의 낙타는 생김새가 조금 다른 듯합니다.”

“서역에서는 등에 혹이 하나만 나 있는 낙타를 많이 기르지만, 흉노의 낙타는 대부분 혹이 두 개지. 아무튼, 한혈마도 한혈마지만 낙타 무리를 조선에 데려가서 번식시키면 여러모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거다.”

낙타는 말보다 최대 속력이 느리지만, 대신 체격이 좋은 녀석은 한 번에 400kg이 넘는 짐을 나를 수 있고 짐을 적게 실으면 이틀에 약 300km 이상의 거리를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좋았다.

또한 중동에 주로 서식하는 낙타와 달리 동북아시아의 사막이나 초원에 주로 서식하는 쌍봉낙타는 털이 길어서 추운 사막의 밤에도 잘 버티고 가시가 난 선인장도 통째로 씹어먹을 수 있을 정도로 아무 식물이나 잘 먹어서 먹이를 구하기도 쉬웠다.

기원전 3세기의 고대인들은 이런 낙타를 주로 짐을 나르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지만, 한부는 다가올 진나라의 전쟁에서 위협적인 무기로 활약하는 낙타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

‘조선의 잠부라크 부대를 만들어서 전장에 내보내면 진나라 병사들이 기겁하게 하겠지? 물론 화약이 없으니 대포 대신 상자노 같은 대형 쇠뇌를 싣고 다녀야겠지만.’

잠부라크는 원역사의 근대에 인도와 이란에서 낙타 등에 소형 대포를 싣고 다니던 포병 부대이다.

전국시대의 크고 무거운 대형 쇠뇌는 주로 성벽 위에 설치해 요새를 지키는 데 사용하거나 반대로 공성전에 주로 사용했지만, 낙타를 이용하면 야전에서도 대형 쇠뇌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커다란 덩치와 지독한 냄새로 적군의 말을 겁주면서 전장을 돌아다니다 말뚝만 한 화살을 쏘아대는 낙타 쇠뇌부대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구나.’

그 후 흉노의 부족민들이 고조선군 병사들이 계로 돌아가는 동안 먹을 군량과 가축이 먹을 마초를 준비하자 한부도 오랜만의 귀향길에 오를 채비를 마쳤다.

오윤 선우와 그의 연지는 부락의 입구까지 배웅나와서 처음으로 고향과 부모 곁을 떠나는 왕자 두만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두만아. 몸 건강히 잘 다녀오너라. 그리고 조선에 가면 아비와 어미가 없다고 놀지만 말고 열심히 병법을 익혀라 네가 다시 고향 땅을 밟을 때는 훌륭한 군략가가 돼 있으면 좋겠구나.”

“초원 제일의 전사이신 탱리고도선우시여. 반드시 제 열 사람 몫을 할 수 있는 인재가 돼서 돌아오겠습니다.”

두만 왕자가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선우의 연지도 아들의 붉은 뺨을 어루만지면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도 식사를 거르지 말아라. 그리고 외출할 때는 꼭 호위할 시종들을 데리고 다니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자 더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칠 만한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두만 왕자가 부모와 인사를 나누는 동안 진서 공주는 한부의 얼굴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전하. 행여나 왕검 폐하께서 흉노와 조선이 사돈의 연을 맺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까 봐 걱정되옵니다.”

“공주님. 조선과 흉노의 혼인 동맹은 양국 모두의 국익에 도움이 되고 왕검께서는 본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시는 편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하께서 소녀를 데리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부디 소녀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랏일 때문에 직접 공주님을 모시러 오긴 어렵겠지만, 왕검께서 우리 두 사람의 혼인을 허락하시면 곧바로 화려한 마차와 호위병을 보내 그대를 본인의 곁으로 데려올 겁니다.”

“꼭 소녀와의 약속을 지키셔야 합니다. 전하.”

한부는 자신을 소장이라고 부르던 공주가 자기 앞에서는 ‘소녀’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보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 일가와의 작별 인사를 마친 한부는 드디어 흉노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휘하의 장수와 병사들을 이끌고 몇 달 만에 계에 돌아왔다.

고된 원정과 행군을 이겨내고 돌아온 고조선군 병사들은 계에 도착하고 해산식이 끝나자마자 웃는 얼굴로 가족이 기다리는 집이나 병영의 숙소로 돌아갔다.

하지만 한부는 고조선과 흉노의 혼인 동맹 체결을 서두르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두만 왕자를 데리고 왕검성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왕검성으로 떠나기 전에 무명과 함께 계의 궁궐에 도착하자마자 박사 악간을 불러서 두 사람이 계를 떠나있는 동안의 국제정세를 물었다.

“악 박사. 혹시 본인이 흉노의 선우를 만나는 동안 우리를 공격하려고 군대를 움직인 나라가 있었소?”

“없었습니다. 전하. 또한 제나라와 초나라의 접경지역에서 양국 사이에 소규모 충돌 있었을 뿐 진, 조, 위, 한 네 나라는 병사들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흠······. 신평군 염파에게 호되게 당했다고는 해도 아직 진나라에는 전국칠웅 중 가장 약한 한나라를 침략할 여력은 남아있을 터인데, 요 몇 달간 중원이 조용했단 말이지······. 아무래도 진나라가 삼진의 세 나라와 물밑에서 협상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군.”

“소신의 생각도 전하와 같습니다. 특히 아무리 지난 전투에서 염파에게 호되게 당했다고는 해도 진나라에는 전국칠웅 중 가장 약한 한나라를 공격할 여유는 있습니다. 아마 진나라는 우리 조선을 치려고 한나라까지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그럼 더욱 빨리 왕검성에 다녀와야겠군. 상장군. 본인이 또 왕검성에 가 있는 동안 이걸 맡아서 계와 하북 일대를 지켜주시오”

한부는 품속에서 왕검이 자가에게 하사한 군권의 상징인 병부를 꺼내 건네주면서 무명에게 말했다.

그러자 무명은 한쪽 무릎을 꿇고 태자가 준 병부를 두 손으로 받으면서 의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하께서 계를 떠나 계시는 동안 외적이 쳐들어오면 조선 땅에 발을 들인 적군 중 단 한 명도 살아 돌아가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참으로 믿음직스럽구려. 그럼 본인은 왕검께 흉노 공주와의 혼인을 허락받고 진나라의 연횡책을 깰 방도를 마련한 다음 돌아오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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