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12화 (112/195)

[112화] 동호 정벌 (2)

마름쇠를 밟고 쓰러진 동료들을 보고 겁을 먹었던 동호의 기병들은 왕의 외침을 듣고 나서야 마음을 다잡았다.

“정말로 저쪽에는 함정이 없는 것 같은데?!”

“조금 전에 수레 뒤로 숨은 놈들이 바로 함정을 깐 놈들이었나 봐! 작업을 마치기도 전에 우리가 나타나니까 그렇게 허둥댔던 거 아니야?”

“말 귀한 줄 모르는 조선놈들! 전사의 싸움터에 짐승을 사냥하듯이 덫을 깔아놔?! 저놈들 머리를 잘라서 해골로 술잔을 만들자!”

동호의 왕 임묵은 부하들의 사기가 다시 오른 것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짓더니 대열의 선두에서 말의 옆구리를 걷어차며 적진으로 달려나갔다.

“동쪽 초원의 전사들이여! 동방의 왕 임묵의 뒤를 따르라! 말 한 필도 없는 조선의 겁쟁이들을 쓸어버린 다음 어리석고 무능한 선우가 다스리는 흉노를 정복하는 거다!”

금박으로 장식한 철제 미늘 갑옷을 입은 왕이 검을 앞을 내밀며 기세 좋게 달려나가자 유목민 기병들은 한 손에 든 활과 창을 움켜쥐고 그의 뒤를 따랐다.

“진정한 초원의 패자! 동방의 왕 임묵 만세!”

“모두 왕을 따르라! 비열한 남방인 침략자들을 쓸어버려라!”

상장군 무명은 가장 큰 우마차 위에서 동호의 기병 3만 기가 동쪽에서 일제히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쾌재를 부르면서 전군에 명령을 내렸다.

“이번에도 태자 전하의 계책이 맞아떨어졌구나! 모든 원거리 공격부대는 무기에 화살과 납탄을 장전하라! 기수를 잘 지켜보다가 신호가 떨어지면 적에게 일제사격을 가하는 거다!”

상장군이 명하자 마차 안에 숨어 있는 쇠뇌를 든 노궁수 2천 명과 각궁을 든 궁수 2천 명, 그리고 전투마차 방진 안쪽에서 무릿매를 들고 서 있는 투석꾼 부대가 사격 준비를 마쳤다.

무명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파도처럼 몰려오는 적군을 응시하다가 선두에선 적군이 약 150m 앞까지 다가오자 다시 한번 우레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군! 사격 개시!”

우마차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기수들은 상장군의 외침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깃발을 펄럭였고, 고조선군 진영에서 발사된 화살과 납탄이 동호 기병대를 향해 날아갔다.

동호의 왕 임묵은 고개를 들고 아군을 향해 날아오는 무수한 화살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면서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믿을 수가 없구나! 저렇게 먼 거리에서 쏜 화살이 여기까지 날아오다니!”

동호의 왕 임묵은 조나라나 연나라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적 진영의 노궁수와 궁수가 화살을 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조선군의 쇠뇌와 활은 조나라와 연나라의 그것보다 훨씬 사정거리가 길었기에 그는 휘하의 기병대에 회피기동을 명령할 시기를 잘못 잡아버리고 말았다.

결국 동호 기병대의 머리 위로 무수한 화살과 납탄이 비처럼 쏟아지자 가벼운 가죽 갑옷만 걸친 유목민들이 말과 함께 쓰러져갔다.

“흐어어억!”

“조선인들은 죄다 신궁이냐?! 어떻게 벌써 화살이 날아오느냐고! 크허억!”

동호의 왕 임묵은 작은 방패로 머리를 가리면서 수천 기의 아군이 푸른 초원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퇴각해야 하나? 아니지! 우리 전사들이 이대로 사방으로 흩어지면 또 함정이 깔린 곳에 발을 디디게 될지도 모른다. 차라리 이대로 전진해서 저 수레 방벽을 돌파하는 게 낫겠어!’

그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또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내린 다음 전군에 명령했다.

“이대로 도망쳐 봤자 등에 화살을 맞고 죽을 뿐이다! 전군 전진하라! 우리가 살길은 눈앞의 적을 쳐부수는 것뿐이다!”

임묵이 그렇게 외치면서 선두에 서서 말을 달리자 수많은 동호의 장수와 병사들이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 덕에 약 2만 기의 기병이 화살비를 뚫고 전투마차 방진의 동쪽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본 우마차는 말을 타고 뛰어넘기엔 너무 높았기에 동호의 기병들은 말에서 내려서 허리춤에 찬 곡도를 뽑아들고 우마차 위로 기어오르려 했다.

고조선군의 장수들은 그런 적군의 모습을 보고 휘하의 보병들에게 반격을 명했다.

“적군이 우마차에 기어오르려 한다!”

“팽배수와 극병은 무기를 들고 일어나서 적을 물리쳐라!”

우마차 안에 웅크리고 있던 고조선군 보병들은 상관의 명령을 듣고 환도와 방패, 그리고 극을 들고 일어나서 밑에 있는 적군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우마차 차체에 매달려 있던 동호의 병사들은 높은 곳에서 찔러오는 검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팔과 목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그 사이 활과 쇠뇌에 화살을 장전한 궁수와 노궁수들도 아군 보병을 노리고 아래에서 위로 창을 찔러오는 적군에게 화살을 날려 적의 기세를 꺾었다.

그렇게 일방적인 전투가 십여 분 동안 계속되자 전투마차 방진 주변에는 무수한 유목민 전사자와 부상자가 뒤섞여서 푸른 초원을 덮었다.

동호의 왕 임묵은 2만 기 이상의 기병이 죽거나 다치고 나서야 미련을 버리고 침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퇴각 명령을 내렸다.

“허술해 보이는 방벽이 저토록 단단할 줄이야! 더 싸워봤자 개죽음을 당하고 말겠어! 우선 부락으로 돌아가서 전열을 가다듬겠다! 전군 퇴각하라!”

그는 퇴각 명령을 내리자마자 측근들과 함께 전장을 이탈했고 동호의 기병들도 왕을 따라 다시 말 등위에 오른 다음 말머리를 동쪽으로 돌렸다.

고조선군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덤비던 적군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유목민들이 도망친다! 우리가 이겼다!”

흉노의 공주 진서는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우마차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한부에게 달려오더니 환하게 웃으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감축드립니다! 전하! 정말로 동호의 대군을 물리치셨군요! 수백 년 동안 흉노의 어떤 대전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렇게 호되게 당하고도 적군이 그럭저럭 대열을 유지하면서 퇴각하는 걸 보니 아직 임묵 그 무례한 자의 목숨이 붙어있는 모양이니 말입니다.”

“도망치는 적을 쫓아가시려는 겁니까? 적이 탄 말이 지쳤다고는 해도 사람 다리보다는 빠를 테니 보병으로 추격하긴 어려울 겁니다.”

“적군은 우리 병사들이 초원에 깔아놓은 마름쇠를 의식해서 풀이 자라지 않은 강변을 따라 도망치고 있으니 어렵지 않게 도망치는 적군을 궤멸시킬 수 있을 겁니다. 믿기 어렵다면 저와 함께 가서 자칭 동방의 왕인 임묵이 죽는 모습을 보시지요.”

“어디까지 내다보시고 이번 싸움을 시작하셨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군요. 좋습니다. 전하의 뒤를 따르지요. 부디 탱리고도선우께 무례를 범한 오만한 임묵이 죽는 모습을 볼수 있길 바랍니다.”

한부는 진서 공주와의 대화를 마친 후 상장군 무명에게 다음 작전을 지시했다.

“상장군. 경이 직접 가벼운 무장을 갖춘 병사 1만 5천 명을 이끌고 도망치는 적을 추격하시오. 본인은 기병대장 석과 함께 기병 2천 기를 데리고 적군이 강변에서 멀리 떨어지지 못하도록 견제하겠소.”

“그리하겠습니다. 전하. 부디 다잡은 적장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확실히 붙들어 주십시오.”

“걱정할 것 없소. 적군이 탄 말은 이미 너무 지쳐서 숨이 넘어가기 직전일 테니 말이오.”

잠시 후 고조선군 병사들은 드디어 전투마차 방진에서 나와 도망치는 동호의 기병대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한부는 기병대장 석, 그리고 진서 공주와 함께 고조선군 기병대의 선두에서 말을 달리면서 지친 말을 타고 달리는 적의 뒤를 쫓으면서 외쳤다.

“패잔병 무리가 북쪽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틀어막아라! 황하가 굽이치는 곳까지 적군을 몰아가는 거다!”

고조선군 기병들이 타고 있는 과하마는 북방 유목민족이 타는 말보다 덩치가 작고 최대속도가 느렸지만, 지구력 하나만큼은 다른 품종의 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기에 조금씩 따라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적기병대가 마상용 각궁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고조선의 궁기병들이 황하를 따라 달리는 적 기병에게 산발적으로 활을 쏘았다.

- 퉁! 퉁! 투둥!

사슴의 뿔을 깎아서 만든 각궁의 현에서 경쾌한 소리가 날 때마다 동호의 기병들은 등에 화살이 박히면서 쓰러져갔다.

동호의 왕 임묵은 어느새 아군의 왼편에서 나란히 말을 달리며 화살을 쏘아대는 고조선의 궁기병들을 보고 분통을 터뜨렸다.

“저런 쥐새끼만 한 말을 탄 놈들에게 따라잡혀서 이런 굴욕을 당하다니! 반드시 살아 돌아가서 오늘의 굴욕을 갚아주겠다!”

그런데 그의 고함이 강변에 울려 퍼지는 순간, 동호의 기병들 눈에 굽이치는 황하의 흙빛 물줄기가 비쳤다.

당황한 유목민 전사들은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왕에게 소리쳤다.

“왕이시여! 전방은 깊은 강으로 가로막혀서 도망칠 길이 없습니다!”

“이제 적 기병대를 물리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왕이시여!”

“적장의 교활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동쪽에 함정을 깔아놓지 않은 건 이 동방의 왕 임묵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기 위함이었단 말이냐! 모두 겁먹지 마라! 적의 기병대보다 우리의 수가 몇 배는 많다! 쥐새끼만 한 말을 탄 남방인들을 쫓아버려라!”

왕이 외치자 동호의 기병들은 너무 지쳐서 입에 흰 거품을 문 말의 옆구리를 걷어차며 고조선군 기병대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한부는 적장이 원하는 대로 난전을 벌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적 기병대와 엉겨 붙지 마라! 거리를 유지하면서 활을 쏴서 적군의 발목을 잡아라!”

고조선군 기병대는 태자의 명에 따라 편곤을 허리춤에 차고 대신 각궁을 들고 뒤로 물러나면서 적에게 화살을 쏘아댔다.

이에 동호의 기병대도 짧은 창과 곡도 대신 활을 들고 응사했지만, 이미 전투마차 방진에서 접전을 치러서 지친 병사들이 쏜 화살은 그리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다 보니 유목민 기병들은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점했음에도 점점 뒤로 물러나거나 대열에서 이탈해 패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상장군 무명이 이끄는 보병대가 서쪽에서 몰려와 활을 쏘고 극을 들이밀면서 압박해오자 동호의 기병대는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인 지형과 적군 사이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동호의 왕 임묵은 아군 병사들이 하나둘 화살에 맞고 적이 휘두른 검과 극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동호의 언어로 한탄했다.

“동쪽 초원의 왕 임묵의 말로가 이토록 비참할 수 있단 말이냐! 그것도 초원의 전사가 아닌 교활한 남방인의 손에 쓰러져야 한단 말인가!”

그 순간, 동호의 언어를 알아들은 한부는 한 손에 편곤을 움켜쥐고 금박으로 장식한 화려한 미늘 갑옷을 입은 적장을 향해 말을 달리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거기 있었구나! 임묵! 헛된 저항을 멈추고 순순히 목을 내놓아라!”

임묵은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적장을 바라더니 잽싸게 그의 겨드랑이를 노리고 곡도를 휘둘렀다.

그러나 한부는 강철 경번갑을 입고 있었기에 적의 칼날을 몸으로 받아냈다.

- 카앙!

동호의 왕 임묵은 자신이 휘두른 곡도가 적장의 갑옷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하고 튕겨 나오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한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을 향해 세차게 편곤을 휘둘렀다.

- 퍼억!

강철로 만든 추에 얼굴을 얻어맞은 임묵은 그대로 말에서 낙마하면서 목이 부러지면서 전사했다.

한부는 말에 내려 적장이 쥐고 있던 검을 들어 올리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나, 조선의 태자 한부가 적장 임묵을 처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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