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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05화 (105/195)

[105화] 외교전쟁의 시작

여불위는 진나라 왕을 알현한 후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심복인 낭관 이사를 불렀다.

이사는 진나라 궁궐의 알현실과 맞먹을 정도로 화려한 저택의 응접실에 들어서면서 탁자 앞에 앉아있는 여불위에게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부르셨습니다. 승상.”

“생각보다 일찍 왔구먼. 이 낭관. 마침 잘됐군. 이리 와서 차 좀 한잔 들게.”

“그런 귀한 물건을 소신이 마셔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이번 원정의 실패로 자네도 속이 타들어 가지 않나? 난 지금 차라도 마셔서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은 심정이라네.”

전국시대에는 아직 동아시아에 다도 문화가 널리 퍼지기 전이라 차는 주로 약재로 쓰이는 값비싼 물건이었다.

이사는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여불위의 앞자리에 앉은 후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잔을 두 손으로 들어서 그 안에 들어있는 녹차를 입안에 조금 흘려 넣었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향기 덕에 마음속의 근심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지는 것 같습니다. 승상. 이렇게 귀한 약재를 대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런 말 말게. 자네 나를 위해 애써준 것을 생각하면 차 한 잔 정도를 투자하는 건 조금도 아깝지 않다네. 오히려 이 차를 마시고 나서 맑은 정신으로 지금 맡길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남는 장사를 하는 셈이지.”

“말씀만 하십시오. 승상의 명이라면 곤륜산에라도 다녀오겠습니다.”

“허허! 이 사람! 아부와 눈치가 나날이 느는구먼! 내가 자네를 다른 나라에 보낼 생각인 걸 어떻게 알았나?”

“몽오 장군이 이번 조나라 원정에 실패하는 바람에 우리 진나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유능한 장수와 10만 명이 훨씬 넘는 병사를 잃었지만, 조나라는 25만이 되는 새로 얻은 병사를 온존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진(三晉)의 세 나라(위, 조, 한)가 동맹을 맺고 우리 진나라를 공격하면 곤란하니 승상께서는 외교와 책략으로 시간을 벌고 패전의 원흉인 조선을 견제하시려 할 거로 생각했습니다.”

“내 심중을 정확히 맞췄네! 자네 말대로 중원 곳곳에 뿌려둔 간자들을 교묘하게 부리고 적국의 왕을 설득해서 기세가 오른 늙은 호랑이 염파의 발톱을 피하고 가증스러운 조선을 멸할 생각일세. 그러려면 위, 조, 한 세 나라가 우리 진나라와 함께 조선을 치고 초나라는 조선의 동맹국인 제나라를 공격하도록 설득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텐데 혹시 좋은 생각이 있나?”

“가장 먼저 위나라에 신릉군을 음해하는 소문을 퍼뜨려서 조선을 합종군에 끌어들여서 우리 진나라를 치려고 할 게 뻔한 신릉군을 제거해야 합니다. 위나라 왕은 마음이 약하고 우유부단하지만, 예고 없이 돌아온 유능한 동생이 갑자기 강성해진 조나라의 힘을 빌려서 왕위를 찬탈하려고 한다는 소문을 내면 분명 신릉군을 죽이거나 적어도 유폐하겠지요.”

“바로 그걸세! 자네가 위나라 수도 대량에 가서 간자 무리를 지휘해 신릉군을 음해하는 임무를 수행해주게.”

“승상. 불안하신 마음은 백번 이해하오나 위나라에서의 일은 간자들에게 그대로 맡겨도 무리 없이 진행될 겁니다. 그보다 소신은 한단으로 가서 승상께서 천금을 쓰셔서 간자로 삼으신 대부 곽개를 움직여 조나라의 칼끝을 다시 조선으로 돌려보겠습니다.”

“흠······. 곽개 그 탐욕스럽고 교활한 자는 아직 조나라 조정에서 큰 쓰임을 받지 못하고 있네. 설익은 열매나 마찬가지인 자를 어떻게 쓸 셈인가?”

“승상의 말씀대로이지만, 곽개는 위나라에서는 유명한 거상이라 다양한 부류의 사람과 친분을 다져왔습니다. 그리고 이미 자기 아비보다도 어리석은 조나라 태자의 마음을 완전히 휘어잡지요. 곽개에게 다시 천금을 주셔서 그 중 5백금으로 조나라 조정의 여러 대신에게 뇌물로 주고 조선을 쳐야 한다고 주장하게 하고 나머지 5백금은 보수로 주시면 조나라가 다시 조선을 치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흠······. 과연 나의 꾀주머니 이사로군. 아직 조나라 왕의 신임을 얻지 못한 곽개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지금은 풋과일 맛이 떫다고 불평할 때가 아니지. 그리고 자네라면 그자가 제 역할을 하게 할 수 있으니 그런 제안을 한 거겠지?”

“물론입니다. 승상. 곽개가 조나라 왕을 구워삶는 모습을 소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진나라에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이는군. 조나라와 위나라만 연횡군에 끌어들이면 한나라와 초나라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뜻에 따르게 될 걸게. 자네의 어깨에 진나라의 운명이 걸려있으니 온 힘을 다해주게.”

“승상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 * *

여불위는 이사와의 대화를 마치자마자 진나라 첩자 무리의 수장을 불러서 위나라에 신릉군을 음해하는 소문을 퍼트리라고 명했다.

그의 명령은 보름이 지나기 전에 위나라의 수도 대량에 잠복해 있는 수백 명의 첩자에게 전해졌고 기원전 248년의 봄이 시작되기 전에 위나라 왕의 귀에 신릉군이 모반을 꾀하고 있다는 헛소문이 전해졌다.

소심하고 의심이 많은 위나라 왕은 그 소문을 듣고 나서 며칠 동안 끙끙 앓다가 왕실 근위병 대부분을 궁궐 알현실에 불러 모아 놓고는 동생 신릉군에게 전령을 보내 입궐을 명했다.

신릉군의 저택에서 지내고 있는 식객 중 수백 명이 어명에 따라 예복을 입고 궁궐로 향하는 주군을 대문까지 따라 나오면서 말렸다.

“신릉군!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입궐하시는 것은 마치 굶주린 호랑이의 입에 스스로 머리를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신릉군!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지금 왕께서는 부정한 자들이 저잣거리에 퍼트린 헛소문을 굳게 믿고 계신다고 합니다! 어서 예복을 허름한 평민의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다시 조나라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왕께서 의심을 푸실 때까지는 위나라를 떠나시는 것만이 살길입니다!”

그러나 신릉군은 추종자들의 조언을 듣고도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더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그대들이 이 몸의 안위를 그리도 걱정해주니 진심으로 고맙소. 그러나 왕께서 본인이 조나라 왕과 모의하여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계신 지금 조나라로 도망쳐버리면 전국 사군자라고 불리던 이 신릉군이 왕위를 탐내서 형제를 죽이려다 실패한 반역자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오. 그런 불명예를 안고 목숨을 부지하느니 차라리 왕께서 하사하신 단검으로 스스로 목을 찌르는 게 낫소.”

그 대답을 들은 식객들은 깊이 한탄했고 신릉군의 식객 중 약 5분의 1이 주군의 결정에 실망한 후 또 다른 전국 사군자인 춘신군을 섬기려고 초나라를 향한 여행길에 올랐다.

죽음을 각오한 신릉군은 입궐하여 위나라 왕에게 찾아갔다.

그는 내관의 안내에 따라 알현실 안에 들어서서 철제 미늘 갑옷과 간 창으로 무장하고 옥좌로 향하는 길의 양쪽에 늘어선 수백 명의 왕실 근위병들 사이를 지나 형에게 허리를 숙이면서 담담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우 신릉군이 폐하를 뵙습니다.”

위나라 왕은 그런 동생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아우야! 차라리 네가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고 조나라로 도망쳤으면 내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르겠구나! 이제 너를 믿을 수도 없고 믿지 않을 수도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폐하. 어찌 저잣거리의 사특한 무리의 말을 믿으시면서 같은 부모를 둔 아우의 충심은 믿지 않으십니까? 이 신릉군, 하늘에 맹세코 폐하의 옥좌를 넘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짐이 왜 네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몰라서 묻는 것이냐?! 몇 년 전 너는 짐의 애첩을 꾀어서 병부를 훔쳐낸 것도 모자라서 짐이 아끼는 장수인 진비 장군까지 철퇴로 때려죽이고 어명을 사칭해 8만 명이나 되는 병사를 움직였다! 그것도 우리 위나라도 아닌 조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말이지!”

“폐하! 조나라는 중원 대륙의 다른 나라를 탐욕스러운 진나라의 침략으로부터 막아내는 방파제와 같은 나라입니다! 특히 조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리 위나라는 조나라가 망하면 곧바로 진나라의 다음 공격 목표가 되고 말 겁니다!”

“그만! 그 이야기는 이미 네가 9년 전 조나라로 망명하기 전에 그만하라고 명한 것을 잊었느냐?! 강대국인 진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고 조나라를 함께 공격하면 오히려 상서와 하북의 비옥한 땅을 나눠 가질 수도 있었다! 네가 짐의 병부를 훔쳐서 조나라군과 함께 진나라군을 박살 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폐하! 제발 좀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진나라 왕과 승상 여불위는 야심만만하고 탐욕스러운 자들입니다! 그자들은 중원의 땅을 단 한 뼘도 다른 나라와 나눠 가질 마음이 없단 말입니다!”

“시끄럽다! 세상 사람들이 너를 군자라고 불러 주니 마치 뭐든 아는 듯이 얘기하는구나! 네가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물증은 잡지 못했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너를 의심하고 있으니 짐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다. 대량 밖의 경치 좋은 산속에 아담한 집 한 채를 마련해 놨으니 네 역모 혐의가 완전히 벗겨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라. 짐의 허락 없이 한 발짝이라도 그곳을 벗어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신릉군은 청천벽력같은 형의 말을 듣고 바닥에 엎드리더니 머리를 조아리면서 소리쳤다.

“폐하! 제발 다시 한번 생각해주십시오! 소신은 결코 역모를 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위나라 왕은 동생의 간절한 부탁에 대답도 하지 않고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왕실 근위병들에게 호통쳤다.

“뭣들 하느냐! 당장 신릉군을 궁궐에서 끌어내 새 거처로 데리고 가라!”

“어······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왕이 엄명을 내리자 신릉군의 양옆에 늘어서 있던 병사들은 마지못해 그의 두 팔을 붙잡고 알현실에서 끌어냈다.

신릉군은 병사들에게 끌려나가면서도 고개를 돌려 형을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폐하! 절대로 진나라를 믿으시면 안 됩니다! 부디 이 아우의 말씀을 기억하시어 150년을 이어온 위나라의 종묘사직을 지키소서!”

* * *

한편 위나라 왕의 명으로 신릉군이 귀양길에 오르고 있을 때, 진나라의 낭관 이사는 여불위와 같은 한나라 출신 상인으로 위장한 후 금은보화가 가득 실린 우마차 여러 대를 끌고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 있는 곽개의 저택에 도착한 후 대문을 두드렸다.

곽개의 하인은 대문을 조금 열고 고개를 내밀더니 값비싼 비단옷을 입고 있는 이사의 모습을 보고는 급히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나리.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한나라에서 온 상인인 대부 이곽이다. 사업상의 일로 위나라의 거상으로 유명하신 곽 대부님을 뵙고 싶어서 찾아왔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 대부님! 곽 대부님께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금방 알려드리고 오겠습니다!”

하인은 다시 한번 허리를 90도로 숙여서 이사에게 인사한 후 저택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직접 손님을 맞으러 나온 곽개가 이사에게 읍을 하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 대부님. 제가 바로 조나라의 대부 곽개입니다.”

이사는 그런 곽개의 모습을 훑어보면서 속으로 여불위의 사람 보는 안목에 혀를 내둘렀다.

‘큰 사기꾼은 모두 선량하게 생겼다더니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후덕한 중년의 선비처럼 보이고 목소리도 진중하구나. 여 승상께서는 어떻게 이 자의 마음속에서 끝을 알 수 없는 탐욕을 읽어내셨을까?’

원역사의 곽개는 긴 중국 역사상 최악의 간신이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간신인 한나라 말기의 십상시나 남송의 재상 진회는 부정부패와 폭정을 일삼았을지언정 나라가 망하는 것을 바란 적은 없었지만 곽개는 일찌감치 진나라로부터 뇌물을 받고 나라를 적국에 팔아먹었기 때문이다.

원역사의 그는 기원전 244년에 즉위한 조나라 도양왕에게 신임을 얻은 높은 관직에 오른 후 명장 염파를 모함해 해임하고 그의 뒤를 이어 진나라군과 싸울 때마다 이긴 전설적인 명장 이목과 일류장수인 사마상을 대역죄인으로 몰아 사형시켜서 조나라의 멸망은 몇십 년쯤 앞당긴 희대의 매국노이다.

이사는 그런 곽개에게 읍하면서 일부러 진나라의 억양이 조금 묻어나는 말씨로 인사했다.

“분에 넘치는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곽 대부님. 사업상 긴히 말씀 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곽개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사의 등 뒤에 있는 금은보화가 실린 우마차 여러 대를 흘끗 보더니 두 눈을 초승달처럼 뜨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참으로 귀한 손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이 대부님. 아무도 대화를 엿들을 수 없는 조용한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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