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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04화 (104/195)

[104화] 기뻐하는 한부, 분노하는 여불위

몽무가 목청이 찢어질 듯이 절규하고 있을 때, 염파는 적군 수만 명이 강물 속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진형 후방의 궁수 부대에 사격명령을 내렸다.

“전 궁수 부대! 물에 빠진 적군에게 활을 쏴라! 증오스러운 진나라 놈들을 한 명도 살려 보내지 마라!”

노장의 우레같은 외침은 조나라군 장수와 병사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수만 발의 화살이 뼛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차가운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진나라군 병사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끄아아아악!”

“흐어어억!”

살아남기 위해 헤엄을 치던 장수와 병사들은 화살을 맞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고 그중에는 총사령관인 몽오도 있었다.

몽무는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를 구할 생각으로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분하강을 향해 말을 달리려 했지만, 곁에 있던 한 젊은 장수가 급히 그의 팔을 잡아끌면서 말렸다.

“가시면 안 됩니다! 몽 아장님!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는 곳에 가셔서 뭘 어쩌시려는 겁니까!”

“이거 놔라! 아버지께서 강물에 돌아가시기 직전인데 나보고 구경이나 하고 있으라는 거냐!”

“이런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어서 참담합니다만, 이미 늦었습니다! 아장님! 진정 부친이신 몽오 장군님을 위하신다면 그분께서 목숨을 바치신 덕에 강을 건넌 병사들을 무사히 진나라 땅까지 퇴각시키셔야 합니다!”

몽무가 부하 장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자 그의 눈동자에 아군이 몰살당하는 장면을 코앞에서 보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진나라군 병사들의 창백한 얼굴이 비쳤다.

몽무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을 질끈 감더니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면서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런 다음 몽무는 아군 병사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말머리를 돌리면서 부하 장수들과 기병들에게 명령했다.

“적군이 강을 건너서 추격해오기 전에 살아남은 병사들을 데리고 전장을 벗어난다! 반드시 살아서 함양으로 돌아가서 훗날 이 원수를 갚아주자!”

“알겠습니다! 몽 아장님!”

그 후 몽무는 다른 진나라군 장수들과 협력하면서 넋이 나간 진나라군 패잔병 7만여 명을 수습한 다음 남서쪽으로 퇴각했다.

조나라의 장군 경사는 강 건너의 적군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염파에게 보고했다.

“신평군. 살아남은 진나라의 패잔병이 도망치고 있습니다. 소장의 휘하의 기병대와 함께 강 건너의 패잔병 무리를 추격하여 섬멸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럴 여유가 없네. 얼음이 깨져서 당장 기병대를 강 건너로 보낼 방법도 얺는데다 저 많은 진나라놈들 시체를 강변에 내버려 두면 강물이 더러워져서 진양 주변 지역에 전염병이 돌지도 모르네. 지금은 전장을 정리하고 겁먹은 진양의 백성들을 안심시키세나.”

“저 증오스러운 놈들을 그냥 보낼 수밖에 없다니 치가 떨리는군요······. 알겠습니다. 신평군. 우선 전리품과 전사자의 시신을 수습하는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 * *

진나라의 21만 대군이 조나라를 침략했다가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는 소식은 바람 부는 날의 들불처럼 순식간에 중원 전체로 번져나가서 고조선의 태자가 임시 총독 노릇을 하는 하북의 북부에도 닿았다.

한부는 계의 왕궁에서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 심어둔 암부의 요원이 보낸 서신을 읽더니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으면서 곁에 있던 무명에게 말했다.

“상장군! 기뻐하시오! 신평군 염파가 진양을 공격하던 진나라군을 급습해서 20만 명이 넘는 적을 처치했다고 하오! 게다가 적장 몽오까지 전사했다고 하니 우리 병사들의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전 중원을 위협하는 진나라에 큰 타격을 줬구려!”

“호······. 그 몽오가 손쓸 틈도 없이 진나라군을 몰아치다니. 아직 늙은 호랑이의 발톱이 무디어지지 않았군요. 그러나 염파가 진양에서 죽였다고 보고한 적군의 수가 20만 명 정도였다면 실제로는 10만 명이 조금 넘는 정도일 겁니다.”

“본인도 그리 생각하오. 중원에는 승장이 전공을 어느 정도 부풀려서 조정에 보고하는 게 관습이 있다지요? 진나라군 전사자는 아마 많아야 12만에서 14만 명 정도일 것 같소.”

“전하께서도 이미 잘 아시겠지만, 진나라는 중원의 인구 중 3분의 1이 살고 초, 제, 조, 위, 한 다섯 나라의 재정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부유한 강대국입니다. 그러니 10만 명이 조금 넘는 병사를 잃은 정도의 피해는 아마 두세 해 정도면 회복하겠지요. 다만 몽오같은 범장을 잃은 것도 지금의 진나라에는 꽤 뼈아픈 손실일 겁니다.”

“경은 신평군 염파 이외의 다른 나라 장수를 대부분 졸장이라고 부르는데 몽오만은 범장이라고 부르는구려. 그것만으로도 이번 전투에서 진나라가 얼마나 큰 손해를 봤는지 잘 알겠소.”

무명은 한부의 대답을 듣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몽오는 미래인의 지식이 있는 한부가 역사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바로 다음 해부터 원정 중 전사하게 되는 기원전 240년까지 위, 조, 한 세 나라를 거침없이 공격하여 수십 개의 성을 점령하고 벼슬이 진나라의 재상 중 하나인 상경(上卿)에 이르렀을 일류장수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전사했으니 진나라는 불패의 명장 백기가 조선으로 망명한 후 아직은 어린 진나라의 다음 세대 전설적인 명장인 왕전, 그리고 일류장수인 몽오의 손자 몽염과 이신 등이 자랄 때까지 나라를 지탱해야 할 대들보 중 하나를 잃고 만 것이다.

이제 진나라에 남은 이름있는 장수는 이미 염파에게 쓰디쓴 패배를 맛봤던 왕흘과 이렇다 할 활약이 드물어서 원역사에 기록을 별로 남기지 못한 표공 정도이니 진나라는 한동안은 노익장 염파가 버티고 있는 조나라와 명장이자 일류 정치가인 왕의 동생 신릉군이 귀국한 위나라를 침략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한부는 중원 최강대국 진나라가 막강한 군사력 이외에도 자국에 굴욕을 안겨준 고조선과 조나라를 뒤흔들 수단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여불위는 지금쯤 나하고 염파가 짜고선 진나라군을 사지로 유인했다는 걸 눈치챘겠지. 내가 진나라 승상이라면 예전에 외교력을 총동원해서 연횡책으로 고조선을 무너뜨리려고 했을 거야. 앞으로는 진나라가 어떻게 나올지를 주시하다가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놔야겠네. 그리고 흉노의 유력부족하고도 얼른 동맹을 맺어야겠다.’

* * *

한부와 무명이 계에서 염파의 승전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던 바로 그때, 함양의 궁궐에서는 옥좌에 앉은 진나라 왕이 승상 여불위를 질책하고 있었다.

“여 승상!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시오! 겨울철에 무리한 원정을 하다가 많은 병사를 잃고 나라의 대들보나 마찬가지인 몽오 장군을 허무하게 잃고 말았소! 이제 소양왕께서 시작하신 중원 통일의 꿈이 몇 년은 늦어지게 생겼으니 이 손해를 만회할 방법을 말해보란 말이오!”

“면목없습니다. 폐하.”

여불위는 진나라 왕에게 약간 고개를 숙이면서도 비굴하지 않은 말투로 대답했다.

훗날 장양왕이라는 시호로 불리게 되는 34세의 젊은 왕은 오랜 기간 조나라에서 볼모로 가 있느라 아버지의 관심과 제왕학 교육을 받지 못해 지식은 적었다.

하지만 장양왕은 볼모 생활 중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한 여불위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손을 잡을 만큼 야심만만했고 그가 준 돈으로 조나라의 유력인사들을 포섭하여 장평대전 이후 자기를 죽이려 들던 조나라 왕의 위협을 피해 진나라로 도망칠 정도의 수완이 있어 만만히 볼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여불위는 젊은 왕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현재 공석으로 남아있는 진나라 최고의 관직인 상방에 오르는 대신 우선은 바로 아래의 벼슬인 승상 자리에 머무르면서 아직 정치력이 부족한 왕의 대리인 자격으로 실권을 휘두르는데 만족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진나라 왕에게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는 것인데 이번 조나라 원정의 실패로 왕의 신임에 금이 가고 만 것이다.

여불위는 자식뻘인 진나라 왕의 호통을 듣고 속으로 이를 갈았다.

‘작년만 해도 어리어리하던 것이 머리가 많이 굵어졌구나. 내가 준 돈이 없었으면 진작에 조나라 왕에게 죽임을 당했을 녀석이 은혜도 모르는군. 지금의 세력이라면 내가 옥좌를 차지해버리는 것도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다지 남는 장사는 아니겠지. 그나저나 이 여불위가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게 전부 조선의 동이족

태자에게 놀아난 탓이란 말이지······.’

여불위는 왕의 부름을 받고 입궐하기 직전에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 심어둔 첩자가 보낸 서신을 읽고 진나라군을 격파한 염파가 조국에서 구국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서신에는 조선을 정벌하던 염파가 진나라군이 조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조선의 태자와 담판을 지어 포로가 된 경사와 빼앗긴 군량을 돌려받아 위기를 모면한 다음 진양으로 강행군해 몽오의 군대를 격파했다고 적혀 있었지만, 여불위는 그 보고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염파는 병법에 통달한 자이지만 정치나 외교에는 미숙한 자다. 그 늙은 호랑이에게 조나라군을 궁지에 몰아넣은 적장을 설득할 언변이 있을 리 없어. 분명 연나라를 몇 달 만에 멸망시킨 수완가인 조선의 태자가 우리 진나라를 견제하려고 부린 수작일 게다.’

그렇지 않아도 여불위는 연나라의 옛 땅에 한반도까지 손에 넣은 고조선이 몇 년만 지나면 과거의 제나라처럼 강력한 라이벌로 급부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경계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고조선을 진나라의 중원 통일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나라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는 한부의 예상대로 진나라의 외교력과 첩보능력을 총동원하여 고조선이 하북과 요서, 그리고 요동의 내정을 완전히 다지기 전에 중원대륙에서 몰아내기로 마음먹고 진나라 왕에게 말했다.

“폐하. 소신이 한단에 심어둔 심복의 말에 따르면 이번 패전의 원인은 조선의 동이족이 부린 농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합니다.”

“조선이? 우리 진나라와 조선은 국경을 맞대고 있지도 않고 서로 적대한 적도 없지 않소?”

“과거 소양왕께서도 진나라와 제나라가 자주 싸우던 사이가 아님에도 제나라의 세력이 나날이 강성해지는 것을 경계하시어 연횡책으로 조, 위, 한, 연 네 나라를 끌어들여 제나라를 공격하신 일이 있습니다. 지금 옛 연나라 땅을 다스리고 있는 조선의 태자도 그 계책을 흉내 내서 조나라의 힘을 빌려 우리 진나라를 견제한 것으로 사료 되옵니다.”

“그럼 동이족

따위가 감히 중원 전체를 넘보고 있단 말이오?! 고얀 것들! 여 승상! 그 오만방자한 야만인들을 어찌해야 벌할 수 있겠소?!”

“우수한 장수와 많은 병사를 잃고 조선을 치려면 조나라 땅을 지나야 하니 이번엔 우리 진나라가 조, 위, 한, 초 네 나라가 서로 동맹을 맺고 조선과 그 동맹국인 제나라를 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신릉군이 귀국한 위나라가 우리 진나라를 놔두고 조선을 치는 데 동의하겠소?”

“물론 먼저 염파보다 더 눈엣가시 같은 신릉군을 제거해야겠지요. 위나라로 돌아간 신릉군이 다시 다른 나라들을 끌어들여서 합종군을 구성해 함곡관을 넘으려고 들면 나라가 위태로워 질 겁니다.”

“신릉군은 항상 많은 추종자와 식객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자객을 보내도 암살하기 어렵다고 들었소만.”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폐하. 신릉군은 장차 자객이 아니라 자기 친형인 어리석고 의심많은 위나라 왕의 손에 죽게 될 겁니다.”

젊은 왕은 승상의 대답을 듣고 놀란 눈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여불위는 그와 눈을 마주치면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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