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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03화 (103/195)

[103화] 이이제이(以夷制夷) (5)

신평군 염파가 이끄는 수십만 대군이 진양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은 전해지자 진나라군 병사들 사이에 공포가 전염병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이거 돌아버리겠네?! 염파는 하북에 발이 묶여있다면서!!”

“이러다가 오히려 우리가 포위당하는 거 아니야?!”

진나라군 장수들도 대부분 염파를 두려워했기에 총사령관인 몽오 장군 곁으로 몰려들어서 아우성쳤다.

“몽 장군님!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염파가 오고 있습니다! 여우를 잡으러 굴에 들어왔다가 등 뒤에 굶주린 호랑이가 나타난 셈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장군님! 지금이라도 진양을 포기하고 퇴각하셔야 합니다! 왕흘 장군의 참패가 남긴 교훈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왕흘은 몇 년 전만 해도 몽오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진나라의 장수였지만, 장편대전 직후 재상 범수의 농간으로 무안군 백기가 파면되면서 대신 진나라군을 이끌고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공격하다가 염파에게 크게 패한 뒤로 중요한 임무를 맡지 못하고 있었다.

몽오는 염파의 추격을 간신히 뿌리치고 함양에 돌아왔던 왕흘과 진나라군 패잔병들의 처참한 몰골을 머릿속에 떠올리자 아직 겨울이라 날이 찬데도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왕흘이 대왕과 여 승상께 큰 쓰임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솔직히 나보다 부족한 점이 없는 장수다. 그런 왕흘이 지휘하는 대군을 장평대전 직후의 열악한 상황에서 쳐부순 염파가 아군보다 많은 적군을 이끌고 북상하고 있어. 이대로 버티고 있다가는 앞뒤로 적을 상대해야 하니 일단 몸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는 퇴각을 결심한 다음 침착하게 대도시 진양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흐르는 얼어붙은 분하강을 바라보면서 머릿속에 진나라군의 퇴각로를 그렸다.

‘우리 군의 병사 중 3분의 1 정도는 분하강 서쪽에서 진양으로 통하는 보급로를 차단하고 있다. 조나라군은 아직 10리밖에 있다고 하니 강 건너에 있는 아군은 쉽게 퇴각할 수 있겠지. 마침 올해 겨울은 추운 편이라 아직 강이 얼어있으니 조심스럽게 걸으면서 분하강을 건너면 염파가 도착하기 전에 이곳에서 물러날 수 있겠지.’

몽오는 순식간에 퇴각 작전을 세운 후 가장 먼저 곁에 있는 아들 몽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지시를 내렸다.

“몽 아장. 당장 강을 건너서 분하강 서쪽에 진을 치고 있는 모든 부대의 부대장에게 국경지대까지 퇴각하라고 전해라.”

“장군께서도 소장과 함께 강을 건너시지요! 곧 적의 대군이 들이닥친다고 하지 않습니까!”

“본인은 분하강 동쪽에 남아서 도강 작업을 지휘하겠다.”

“장군님! 그러다 염파 그 늙은 호랑이에게 후방을 공격당하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우리나라는 군대의 기동성을 중시해서 병사 중에는 투구를 쓰거나 갑옷을 챙겨입은 자가 별로 없다. 하지만 조나라는 강한 쇠뇌를 즐겨 쓰는 우리 진나라군이나 궁기병이 많은 흉노와 자주 전쟁을 벌이다 보니 잡졸도 대부분 투구를 쓰거나 갑옷을 입은 경우가 많아서 행군속도가 느린 편이지. 그러니 침착하게 행동하면 병력을 온존하면서 함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장군님. 대신 반드시 무사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래. 약속하마.”

몽무는 짧게 대답하는 아버지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얼어붙은 분하강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몽오는 아들을 안전한 곳으로 보낸 다음 전군에 퇴각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염파의 군대가 도착하기 전에 강을 건너 퇴각한다! 전원 각자 사흘 동안 먹을 군량만 챙기고 공성 병기와 우마차는 버려두고 강가로 이동하라!”

분하강 동쪽의 진나라군 병사 약 15만 명은 장군의 명에 따라 서둘러 곡식과 육포 따위를 챙긴 다음 서쪽의 강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벽 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방난은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으면서 주변의 장수들에게 소리쳤다.

“진나라 놈들이 허둥거리면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니 벌써 지원군이 도착한 모양이구나! 본인이 직접 병사들을 보병 4만 3천 명과 기병 2천 기로 적군의 후방을 공격하겠다! 어서 출진 준비를 마쳐라!”

그 말을 듣고 한 조나라군 장수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방난에게 물었다.

“방 장군님! 그럼 진양성에는 수비병력이 겨우 5천 명밖에 남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 적장이 우리를 성 밖으로 꾀어내려고 수작을 부리는 거라면 봉변을 당하시게 될 겁니다.”

“걱정할 것 없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병법을 연구하면서 모은 정보에 따르면 적장 몽오는 일류라 부를만한 장수이지만, 견실한 정공법을 선호하고 창의적인 전술로 적을 기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렇게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출전할 준비를 해라. 진나라놈들을 한 명이라도 더 처치해서 장평에서 죽어간 동포들의 넋을 달래야 할 것 아니냐?”

“장군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진양을 지키고 있는 조나라군 장수들은 노장의 말을 듣고 결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난은 그런 부하 장수들의 얼굴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본 다음 이번엔 성벽 아래로 내려가 병사들을 독려했다.

“드디어 한단에 계신 대왕께서 지원군을 보내주셨다! 지금 진나라군은 앞뒤로 공격을 받게 될까 봐 군량과 공성 병기도 내버려 두고 꽁지가 빠지도록 도망치는 중이다! 증오스러운 진나라 놈들이 강을 건너기 전에 적군의 등에 복수의 창날을 박아 넣어라! 분하강의 얼음을 진나라놈들의 피로 붉게 물들이는 거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진나라놈들을 죽여라!”

11년 전 장평에서 돌아오지 않은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창과 활을 높이 들고 목청껏 함성을 질렀다.

몽오는 성안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폭포가 쏟아지는 소리 같은 우렁찬 함성을 듣고 뒤를 돌아보면서 혀를 찼다.

“쯧! 역시 진양을 지키는 적장은 만만치 않은 자로구나! 염파가 보낸 전령이 성안에 도착했을 리가 없는 데 우리 군의 움직임만 보고 후방을 치러오겠단 말이지? 후방의 병사 1만 명으로 적의 기습에 대비하라! 곧 진양을 지키는 적장이 곧 성문을 열고 별동대를 내보내 우리 발목을 잡으려 할 것이다!”

장군이 명하자 대열 후방에 있던 진나라군 장수들은 말을 타고 병사들을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방어태세를 갖추게 했다.

“노궁수는 쇠뇌에 화살을 장전하고 보병은 백병전을 벌일 준비를 해라! 적의 별동대를 최대한 빨리 처치하고 본대와 합류해야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자 후방의 진나라군 병사들은 장수들의 명을 듣고 불안한 눈빛으로 진양성의 남문을 바라보면서 쇠뇌를 겨누고 극을 내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굳게 닫혀있던 진양의 성문이 활짝 열리면서 호복을 입은 궁기병 2천 기가 달려 나왔고 그 뒤를 이어 창을 든 보병 4만 3천 명이 전투의 함성을 지르면서 따르면서 쏟아져나왔다.

“와아아아아아!”

몽오와 후방의 진나라군 장수들은 아직 전황을 확실히 파악하지 못한 적장이 소규모 별동대만을 내보낼 거로 예상했기에 진양성의 수비병 거의 전원이 밀물처럼 몰려오자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얘지면서 노궁수 부대에 사격명령을 내렸다.

“사격 개시! 사격 개시!”

진나라군의 노궁수 3천 명은 장수들의 지시에 따라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으면서 마치 소총을 쏘는 듯한 자세로 맨 앞줄에서 달려오는 적군에게 화살을 쏘았다.

- 투웅!

진나라군의 쇠뇌에서 발사된 화살 3천 발은 거의 직선으로 날아가서 적지 않은 수의 조나라군 병사를 쓰러뜨렸지만, 4만 5천 명이나 되는 적군의 돌진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그사이 장군 방난 휘하의 조나라군 궁기병 2천 기는 두 무리로 나뉘어서 후방에 남는 진나라군 진영의 좌익과 우익으로 달려가 전직의 측면에 화살을 퍼부었고 후방의 진나라군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으아악! 노궁수 부대! 적군의 궁기병대와 화살을 쏴라!”

“하지만 정면에서도 엄청난 수의 적 보병대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결국 진나라군의 후방 부대 1만 명은 진양 수비군의 총공세 앞에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방난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직접 말을 타고 병사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다음 공격을 지시했다.

“이 정도 성과에 만족하지 마라! 아직 분하강변에는 증오스러운 진나라인들이 득실대고 있다! 이제 적 본대의 뒤통수를 쳐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해줘라!”

노장이 명령하자 사기가 오른 조나라군 병사들이 얼어붙은 강으로 진군하던 진나라군 본대의 후방을 거세게 몰아쳤다.

행군을 서두르던 진나라군 본대는 갑자기 등 뒤로 몰려온 적군을 향해 급히 몸을 돌리다가 조나라군 병사들이 내지른 창에 찔리면서 단말마의 비명과 고함을 질렀다.

“크어억!”

“으아아아! 등 뒤에서 적군이 몰려온다! 후방을 지키던 아군이 전멸했다!”

몽오는 행렬의 중간 지점에서 퇴각 작전을 지휘하고 있다가 방난의 군대가 길게 늘어선 진나라군의 행군대열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뜨면서 소리쳤다.

“신평군 염파만 경계하다가 진양의 적장을 과소평가했구나! 아군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우리의 발을 묶어두겠다는 심산이렷다!”

몽오가 한탄하자 그의 곁에 있던 부관 중 한 명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장군님!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우선 자네가 이곳보다 전방에 있는 병사들을 지휘하면서 강을 건너라! 아무리 급해도 한 번에 많은 병사가 얼음을 밝게 하면 안 된다! 나는 후방의 병사들을 지휘하면서 적의 공세를 막아보겠다!”

“무운을 빕니다! 장군!”

그 후 몽오는 침착하게 후방에 남은 병사 약 6만 명을 지휘하면서 적군의 공세에 대응해나갔고 방난의 조나라군을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몽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양군이 접전을 벌이는 동안 드디어 염파가 이끄는 25만 대군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염파는 대열의 선두에서 경사와 함께 말을 몰아가다가 진양성에서 몰려나온 아군이 진나라군의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호탕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크하하하하하!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경사! 저길 좀 보게! 진양성주에게 저런 배짱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네!”

“신평군! 이 기회에 진나라 놈들을 쓸어버려야 합니다! 어서 명을 내려주십시오!”

“이런 상황이면 복잡한 수작을 부릴 것 없지! 자네는 궁기병 4천 기를 이끌고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적진의 좌익을 공격하게! 난 이대로 본대를 이끌고 전진해서 적진의 우익을 치겠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신평군.”

경사는 염파에게 읍한 후 궁기병대를 이끌고 전속력으로 전장으로 달려가 방난이 이끄는 아군의 후방을 지나친 다음 방향을 틀어서 진나라군 진영 좌측에 화살을 퍼부었다.

갑작스럽게 왼쪽에서 수천 발의 화살이 날아들자 자연스럽게 진나라군 병사들은 다시 혼란에 빠지면서 우측으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염파는 오른쪽이 볼록한 모양으로 변한 적진을 노려보면서 전군에 공격 명령을 내렸다.

“전군 돌격하라! 진나라놈들이 강을 건너게 내버려 두지 마라!”

노장이 우레같은 목소리로 외치며 선두에 서서 말을 달리자 25만 명의 병사가 지축을 울리며 돌격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신평군을 따르라!”

염파의 군대가 해일처럼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 몇몇 진나군 장수가 몽오의 곁으로 몰려가서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몽 장군님! 이미 염파의 군대가 전장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저희가 막을 테니 장군님께서는 어서 몸을 피하십시오!”

“그럴 수는 없다! 자네들과 병사들을 두고 나만 도망치란 말이냐?!”

“이미 강을 건넌 병사들을 무사히 진나라까지 퇴각시키려면 장군님께서 꼭 살아계셔야 하지 않습니까!”

“큭······. 미안하고 고맙네. 그럼 무운을 빌겠네.”

“무운을 빌겠습니다! 장군!”

몽오는 부장들과 대화를 마치고 강변을 향해 말을 달리다 강변에 도착하고 나서는 말발굽에 강의 얼음이 깨질 것을 걱정해 말에선 내린 다음 병사들 틈에 섞여서 도보로 분하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강 건너편에서 초조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찾던 몽무는 얼어붙은 강을 반쯤 건넌 아버지의 갑옷을 알아보고 기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늘이시여! 감사합니다! 아버지! 여깁니다! 소자 여기 있습니다!”

몽오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두 부자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염파가 이끄는 조나라군이 마침내 진나라군을 분하강으로 밀어내면서 얼어붙은 강은 수만 병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면서 박살 나버리고 말았다.

- 쩌저적!

몽오는 자신과 눈이 마주쳤던 아버지가 차가운 강물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절규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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