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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89화 (89/195)

[89화] 난하(灤河) 전투 (3)

기원전 249년 6월 첫째 날 밤, 아군이 양동작전을 펼치는 동안 고조선군 병사 3천 명은 숲에서 가까운 난하강변으로 이동했다.

태자에게 뗏목 제작의 임무를 받은 병사들이 반나절 만에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 부대의 군단장은 주변을 둘러본 다음 옆에 있던 중대장에게 지시했다.

“사흘 동안 밤낮으로 숲에서 도끼질하고 강가에서 통나무를 엮어 뗏목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모습을 인근 주민이 보고 적군 진영에 알리면 곤란하겠지. 이 주변의 마을과 민가에 연나라인 백성이 있는지를 확인해라. 아직 남아있는 자들이 있다면 붙잡아서 이곳으로 데려오고 만에 하나 생포가 어려울 때는 반드시 사살해야 한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군단장님.”

군단장의 명을 받은 중대장은 휘하의 다섯 백인대를 사방으로 풀어 주변을 철저하게 수색하며 극비임무를 목격할 수 있는 연나라의 민간인들을 잡아들였다.

그들에게는 다행히도 곧 자기 마을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는 소문을 들은 연나라의 백성들은 대부분 피난길에 올랐기에 그때까지 숲 근처에 남아있던 수십 명은 대부분 늙고 병약한 노인이나 부모 없는 어린 고아였다.

군단장은 연나라 백성들이 휘하의 병사들에게 잡혀 오자 통역사에게 그들을 안심시키도록 지시했다.

“앞으로 사나흘 뒤에 벌어질 전투가 끝나면 너희는 모두 풀어줄 테니 너무 겁먹을 것 없다. 그때까지 얌전히 우리 옆에서 지내면 밥도 주고 너희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도 없을 거다.”

잔뜩 겁먹었던 연나라의 포로들은 통역사에게 군단장의 말을 듣고 조금이나마 표정이 밝아졌다.

벌목과 뗏목 제작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이틀 후 군단장의 지시를 받은 병사 다섯 명이 한부의 막사에 찾아와 임무 수행 경과를 보고했다.

“십인대장 벽이 태자 전하께 보고드립니다. 현재 뗏목다리 제작작업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며 앞으로 이틀 후면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음······. 내 예상보다는 하루 정도 늦군. 그래도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너희는 뗏목 제작 부대에 복귀하지 말고 숙영지에 남아서 잘 먹고 쉬다가 내일 밤에 우리를 그쪽으로 안내해라.”

“전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한부는 먼 길을 달려온 병사들에게 술과 염소 고기를 하사하고 군단장급 장수들에게 다음 작전을 지시했다.

“드디어 극신과의 결판을 낼 때가 왔다. 내일 밤에 중대장 네 명이 지휘하는 보병 2천 명이 마지막 양동작전을 펼치는 동안 나머지 병사를 모두 이끌고 적군 몰래 숙영지를 버리고 강을 건넌다.”

태자가 말하자 기병대장 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전하. 소장의 기병대는 이번 작전에 투입하지 않으려는지요?”

“석 기병대장에겐 더 중요한 역할을 맡길 생각이다. 우리 군이 난하를 건너면 기병 1천 기를 전부 데리고 근처의 숲이나 갈대밭에 숨어있다가 뿔나팔 소리가 들리면 강을 건너는 연나라군 보병들의 측면을 쳐라.”

“소장의 성격에 딱 맞는 역할이군요! 이번에야말로 늙은 적장의 수급을 전하께 바치겠습니다!”

“음······. 가능하면 극신은 생포했으면 좋겠구나. 그럴 수만 있으면 그자를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거다.”

“연나라 왕에게 적장의 몸값을 받아내실 생각이십니까?”

“일이 내 생각대로 풀리기만 하면 아마 재물보다 더 좋은 걸 얻어낼 수 있겠지.”

* * *

고조선군이 태자의 지시에 따라 도강작전을 준비하는 동안 극신도 밤마다 아군 진영 주변을 맴돌며 편전을 쏘아대는 적군을 물리칠 계책을 짜느라 여념이 없었다.

기원전 249년 6월 2일 밤, 극신은 연나라군 주둔지 한복판에 모인 덩치 큰 소 5백 마리를 바라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세상일이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로구나. 설마 연나라의 상장군인 내가 가증스러운 전단의 계책을 쓰는 날이 올 줄이야.”

전단은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연나라에게 성 두 개만을 남기고 모든 국토를 빼앗긴 조국 제나라를 구한 명장이다.

그는 연나라의 유능한 정복군주 소양왕이 전쟁 중에 병사하고 그의 아들 혜왕이 뒤를 잇자 먼저 적국에 간첩을 풀어서 연나라의 명장 악의를 모함해 장군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그 후 연나라 혜왕은 어리석기로 유명한 기겁이라는 장수에게 병권을 맡겼는데 전단은 제나라의 운명이 끝났다고 여기고 방심하는 기겁에게 반격을 가해 크게 물리쳤다.

그 제나라의 운명이 걸린 전투에서 전단은 뿔에 칼을 매달고 꼬리에 불을 붙인 소 1천여 마리를 연나라군 주둔지에 돌격시켜 적진을 혼란에 빠트린 다음 기습해 큰 승리를 거뒀는데, 극신은 바로 그 화우지계(火牛之計)를 따라 해 갈대숲에 매복해 있을 고조선군을 물리칠 생각이었다.

그는 곁에 있는 연나라군 장수들에게 결전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교활한 조선의 태자 녀석은 분명 갈대숲에 적어도 복병 1만 명쯤은 감춰 뒀겠지. 그놈들을 피해 없이 일망타진하면 근처의 요새에서 보낼 지원군과 함께 조선군 잔당을 궤멸시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해가 뜨기 전에 결판을 낼 생각이니 어서 저 소 떼의 뿔에 날붙이를 매달고 꼬리에 마른 지푸라기를 묶어라.”

“상장군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상장군의 명이 전군에 전파되자 연나라군 병사들은 지난 며칠 동안 고조선군에게 당한 괴롭힘을 갚아줄 생각에 일사천리로 화우지계를 시행할 준비를 해나갔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난 후 한 연나라군 병사가 막 마지막 소의 꼬리에 끈으로 지푸라기를 묶었을 때, 연나라군 진영 근처의 갈대숲에서 우레같은 고조선군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돌격하라!”

망루 위의 병사들은 편전에 맞을까 봐 자세를 낮추면서 함성이 들려온 쪽을 바라보고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아래에 있는 전우들에게 소리쳤다.

“북쪽 갈대밭 쪽에서 적의 대군이 나타났다!”

“최소한 1만 명은 될 것 같아!”

극신은 초병들의 외침을 듣고 지휘관 막사에서 뛰쳐나와 갈대숲 쪽에서 일렁이는 수많은 횃불을 보면서 화통하게 웃으면서 소리쳤다.

“하하하하하! 마침 동이족

야만인들도 오늘 밤에 승부수를 던졌구나! 보이는 횃불이 저 정도면 갈대숲에는 얼마나 많은 복병이 숨어있겠나! 전군 소 떼를 끌고 출격하라!”

상장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연나라군 장수와 병사들은 우렁찬 함성을 지르면서 주둔지 밖으로 나와서 갈대밭으로 다가간 다음 일제히 소꼬리의 대만 지푸라기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5백 마리의 소 떼가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면서 전방의 갈대밭을 향해 지축을 울리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 음메!!!

소 떼가 갈대밭을 덮치자 그 근처에 있던 횃불들이 차례로 쓰러졌고 연나라군 병사들은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보고 기뻐 날뛰었다.

“하하하하! 동이족

야만인들이 소뿔에 치여서 볏짚처럼 쓰러지고 있어!”

“아주 속이 다 후련하구먼!”

그러나 극신은 소 떼가 갈대밭을 휘젓는 모습을 보자마자 석연치 않은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이런······. 이건 뭔가 잘못됐어. 소 떼가 날뛰면 적군이 든 횃불도 매에게 쫓기는 참새 떼처럼 어지럽게 움직여야 할 텐데 그저 가만히 있잖은가! 기병대장! 당장 기병대를 전부 이끌고 전방의 갈대밭을 살펴보고 와라!”

“알겠습니다! 상장군님!”

연나라군의 기병대장은 서둘러 기병 1천 기를 이끌고 갈대밭 쪽으로 달려간 다음 금방 본대로 돌아오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극신에게 보고했다.

“상장군님! 갈대밭에는 이미 적군이 없습니다! 저 횃불을 모두 사람 키 높이의 장대에 매달아 둔 것이었습니다!”

“뭐라고! 적장이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런 장난질을 쳤단 말이냐!”

“혹시 우리 군이 갈대밭 쪽으로 이동한 사이에 어둠을 틈타 군량을 보관 중인 주둔지를 공격하려는 속셈이 아닐는지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주변의 전군 서둘러 주둔지로 돌아가라! 그리고 기병대장은 기병을 전부 데리고 주변을 정찰하고 조선군의 요새의 동태를 살펴라!”

“상장군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당황한 연나라군은 서둘러 다시 주둔지로 돌아와 주둔지 경계를 강화했지만, 동쪽 지평선에서 해가 고개를 내밀 때까지도 고조선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뜬눈으로 밤을 새운 연나라군 병사들은 자꾸 감기려는 눈을 비비면서 투덜거렸다.

“이게 뭐야······. 오늘에야말로 조선놈들을 쳐부술 줄 알았더니 괜히 잠만 못잖잖아.”

“그러게 말이야. 괜히 아까운 소만 잃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이게 무슨 헛짓거리냐고.”

그런데 그때, 망루 위에서 경계 근무를 서던 한 연나라군 병사가 귀신이라도 본 듯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가······ 강 건너에 적군이 나타났다! 강 건너에 적군이 나타났다!”

연나라군 장수들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강변 쪽으로 달려가서 난하 너머에서 유유히 행군하는 고조선군 수만 명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나! 대체 언제 저 많은 적군이 강을 건넜단 말인가!”

“상장군님!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명을 내려 주십시오! 상장군님!”

극신은 너무 놀란 나머지 부하 장수들의 재촉에도 멍한 눈빛으로 강 건너를 바라볼 뿐이었다.

고조선군은 이미 강가에서 1km쯤 떨어져 있었지만, 한부는 연나라군 장수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강가로 말을 달려와서는 고대 중국어로 외쳤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제 여러분이 군량으로 쓸 가을밀이 익어가는 밭에 불을 지르러 떠납니다!”

극신은 그 소리를 듣고 퍼뜩 정신을 차리면서 전군에 명령을 내렸다.

“전군 강을 건너서 적군을 추격하라! 하북의 농경지가 불타버리면 온 나라의 백성들이 굶주리게 된다!”

그 말을 듣고 한 장수가 극신에게 물었다.

“상장군님! 무턱대고 강을 건너다가 적군이 돌아와서 우리 병사들을 공격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될 겁니다!”

“이곳은 걸어서 난하를 건널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잖느냐! 적군은 이미 강가에서 꽤 멀리 떨어져 고 강폭이 좁으니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강을 건널 수 있을 거다!”

연나라군 장수들은 급히 전군에 출격 명령을 내렸고 밤을 새워 지친 병사들은 급히 창과 활을 손에 쥐고 강물에 몸을 담갔다.

한부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옆구리에 차고 있던 뿔나팔을 손에 들고 힘차게 불었다.

- 뿌우우우우우우우

우렁찬 뿔나팔 소리가 강변에 울려 퍼지자 기병대와 함께 강 건너의 숲에 숨어있던 석이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돌격하라! 적진의 측면을 무너뜨리는 거다!”

그러자 1천 기의 고조선군 기병대가 편곤과 활을 높이 들고 우렁찬 함성을 지르면서 강을 건너는 연나라군 병사들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달려나갔다.

“왕검 폐하를 위하여!”

연나라군 병사들은 강을 걸어서 건너다가 적 기병대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급히 창을 들고 저항하려고 했다.

그러나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속에서 보병이 체고가 높은 기병에게 제대로 저항할 수 있을 리 없었고 고조선군의 기병들이 편곤을 휘두르고 활을 쏠 때마다 연나라군 병사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악!”

“흐어어억!”

강을 건너는 연나라군 보병대가 혼란에 빠지자 남쪽으로 행군하던 고조선군 본대도 잽싸게 뒤돌아서 강가로 돌아오더니 강물 속의 적군에게 활과 쇠뇌를 쏘고 무릿매로 납탄을 던져댔다.

말을 타고 난하를 건너던 극신은 자기 주변에서 속절없이 쓰러져가는 휘하의 장수와 병사들을 보고 허무한 표정을 짓다가 옆에서 납탄에 맞아 쓰러진 병사의 창을 집더니 적군 기병대를 노려보면서 말을 달렸다.

“무장 극신의 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구나! 하다못해 동이족

야만인을 한 놈이라도 더 저승길에 데리고 가겠다!”

그러나 그가 탄 말은 고조선군 기병대가 활약하고 있는 곳에 도착하기 전에 강변의 궁수들이 쏜 화살에 맞고 쓰러졌고 극신은 낙마하면서 강바닥에 처박히면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풍덩!

그러자 기병대장 석이 그쪽으로 다가가서 말에서 내리더니 강에서 죽은 생선을 건지듯 적장을 들어 올려 말 등위에 실은 다음 큰소리로 외쳤다.

“적장 극신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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