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83화 (83/195)

[83화] 외교를 다지고 연나라 정벌을 시작하다.

기원전 255년 8월 초, 고조선의 사절단장으로 임명된 박사 전은 어우락과 친교를 맺기 위해 2백여 명의 사절과 호위병, 그리고 을 이끌고 왕검성을 떠났다.

이틀 만에 서해안의 무역항에 도착한 고조선의 사절단은 과거 태자가 그랬던 것처럼 대만의 폴리네시아인 원주민들이 몰고 온 원거리 항해용 카누에 올랐다.

그 후 사절단은 약 한 달 만에 남중국해를 지나 현대에는 베트남 북부의 큰 항구도시인 하이퐁이 있는 자리에 들어선 어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촌 근해에서 작은 조각배를 타고 고대 베트남인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커다란 카누 스무 척이 어촌의 부둣가로 다가오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낚싯대와 그물을 던져버리고 마을 안으로 도망쳐 버렸다.

박사 전은 그 모습을 보고 마른침을 삼키면서 고조선인 호위병과 대만 원주민 선원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어우락의 백성들은 외지인의 방문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저들이 우리를 경계한다고 해서 우리도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면 큰 해를 입을 수 있으니 저들이 작정하고 덤벼들기 전까지는 무기를 손에 들거나 고함을 지르지 마라.”

“알겠습니다. 박사님.”

고조선의 병사들이 박사에게 대답하는 순간, 청동제 무기로 무장한 어우락의 수병을 수십 명씩 태운 돛단배 여러 척이 사절단의 카누 선단을 향해 다가와서 외지인을 항구로 들이지 않으려는 듯 일렬로 늘어서며 막았다.

그리고 어우락 해군 선단 중 한가운데에 있는 배의 선수에 선 한 해군 장교가 사람 발 모양을 닮은 청동 도끼를 박사 전이 타고 있는 카누를 가리키면서 고대 베트남어로 외쳤다.

“너희는 대체 뭐 하는 자들이기에 감히 우리나라의 어민들을 위협하느냐?! 피를 보고 싶지 않다면 썩 물러가라!”

고조선의 사절단원들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고함을 지르는 성난 장수를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부 박사님. 혹시 저게 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 아십니까?!”

“도통 모르겠구나! 서쪽 대륙이나 대만 원주민의 말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겠다!”

하지만 박사 전은 태자에게 미리 들은 말이 있었기에 침착하게 고대 중국어로 대답했다.

“우리는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먼 바닷길을 건너온 사절단이오! 어우락의 왕께서 허락하신다면 왕을 뵙고 조선과 어우락 사이의 친교를 다지고 싶소!”

그러자 이번에는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있던 고대 베트남의 병사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현재의 어우락에서 고대 중국어는 촉나라 출신인 지배계층만이 사용하는 언어인데, 왕족과 귀족만 사용하는 언어를 낯선 옷차림의 외국인이 유창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어우락의 수병들을 지휘하는 장수는 고대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일단 그 지역을 다스리는 관리에게 박사 전을 만나게 해줄 생각으로 손짓과 몸짓으로 의사소통하면서 고조선의 사절단을 어촌으로 안내했다.

고조선의 사절단이 항구에 카누를 대고 부둣가에 발을 디디자 말끔한 관복을 입은 어우락의 문관이 다가와서 박사 전에게 물었다.

“순찰을 나갔던 수병들에게 그대가 옛 촉나라의 말을 할 줄 안다고 들었소. 그대는 누구이기에 촉나라 말을 배우신 거요?”

“반갑습니다. 본인은 조선의 군주 왕검의 어명을 받들어 어우락의 왕을 알현하러 온 사절단의 단장인 박사 전이라고 합니다.”

“말을 알아들을 순 있지만, 촉나라의 억양은 아니군요!”

“조선은 제나라에서 가깝다 보니 본인도 제나라에서 온 학자에게 서쪽 대륙의 말을 배워서 그렇게 들리실 겁니다.”

“제나라는 이곳에서 몇천 리나 떨어져 있는 나라 아닙니까?! 그 먼 곳에서 오셨다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본인은 이 지역의 군위(郡尉) 홍반이라고 합니다.”

박사 전은 홍반의 대답을 듣고 어우락이 어느 정도의 행정체계를 갖추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군위는 진나라에서 지방을 다스리는 군수를 보좌하는 관직이 아닌가. 촉나라는 진나라 바로 옆에 있는 나라였다고 하니 촉나라 왕족의 후예가 진나라의 제도를 배웠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겠지.’

중원 대륙의 어느 나라에서든 박사는 도위보다 높은 관직이지만, 박사 전은 여전히 공손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도위님. 부디 우리를 어우락의 도성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조선의 왕검께서는 천하의 평온을 위협하는 진나라를 견제하시기 위해서 여러 나라와 동맹을 맺길 원하십니다.”

“탐욕스러운 진나라의 도적놈들이 드디어 동쪽 끝에 있는 나라까지 위협하는 모양이군요! 알겠습니다. 깨끗한 숙소로 안내해 드릴 테니 그곳에서 며칠만 여독을 풀고 계시면 곧 파발을 보내 대왕께 조선의 사절단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알리겠습니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나자 어우락의 왕은 전령을 보내 박사 전에게 고조선의 사절단을 만나보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사절단이 머물고 있던 지역을 다스리는 군수는 어명을 받들어 길잡이와 호위병 2백 명에게 바다를 건너온 사절단을 어우락의 수도 꼬로아까지 안내하도록 지시했다.

고조선의 사절단은 현지 안내인을 따라 고대 베트남 지역을 지났는데, 여행 도중 고조선인들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현지인들이 가축으로 부리는 코끼리와 풍부한 청동기였다.

박사 전은 길을 걷다가 불그스름한 빛이 도는 주황색 금속으로 만들어진 낫으로 풀을 베는 농부를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다가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어우락인 안내인에게 물었다.

“이보게. 설마 저 농부가 지금 청동으로 만든 낫으로 풀을 베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박사님. 그런데 무엇을 보시고 그리 놀라시는지요?”

“저 귀한 청동으로 농기구를 만들어 쓰는데 어찌 놀랍지 않겠나?!”

“어우락은 구리와 주석이 흔해서 농기구는 물론이고 화살촉까지도 청동으로 만듭니다. 그럼 조선의 농부들은 무엇으로 만든 농기구를 쓰는지요?”

“우리 조선은 워낙 청동이 귀하다 보니 주로 철로 농기구를 만든다네.”

“네?! 그 귀한 철로 쟁기나 낫 따위를 만든다는 말씀입니까?! 허허허······.”

박사 전은 길잡이의 반응을 보고 머릿속에 어우락의 왕을 설득할 방법을 떠올렸다.

‘조선 땅에는 철이 넘쳐나고 어우락에는 청동이 흔하니 이 두 가지를 바꿔쓰면 서로 큰 이득을 볼 수 있겠구나. 그러려면 아직은 대만 원주민들의 도움이 필요하겠군.’

고조선의 사절단은 이국적인 풍경을 구경하면서 약 90km를 걸어 어우락의 수도 꼬로아성에 도착했다.

꼬로아성은 어우락의 왕 안즈엉브엉(안양왕)이 진나라의 침공을 막으려고 지은 성채도시로 시가지를 마치 달팽이의 껍질처럼 여러 겹의 성벽으로 감싼 도시이다.

박사 전은 다른 사절단원들과 함께 고대 중국과 베트남의 양식이 어우러진 화려한 궁궐의 알현실에 들어가 옥좌에 앉아있는 어우락의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했다.

“조선의 사절단장인 박사 전이 폐하께 인사드립니다.”

“어서 오시오. 박사. 이미 전령에게 대강의 소식은 전해 들었소. 그래. 조선의 왕검께서는 진나라를 견제할 합종책을 꾀하고 계신단 말이오?”

“그렇사옵니다. 폐하. 조선은 이미 연나라나 위나라, 조나라와 맞먹는 국력과 병사를 길렀고 제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초나라와도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촉나라 왕족의 후예이신 폐하께서 힘을 보태주신다면 조선과 어우락은 천하를 집어삼키려는 진나라의 야욕으로부터 종묘사직을 지켜낼 수 있을 겁니다.”

“솔깃한 말이긴 하나 짐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조차 겨우 며칠 전에 알았소. 그대의 말대로 조선이 전국칠웅에 속한 나라들과 견줄 만큼 부강한 나라라는 사실을 어찌 확인할 수 있겠소?”

“폐하. 저희가 조선에서 가져온 물건을 보시면 소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허락하신다면 왕검께서 양국 간의 우호를 다지기 위해 폐하께 보내신 선물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흠······. 좋소. 어디 한번 봅시다.”

왕이 말하자 왕실 근위병들이 조선의 사절단이 가져온 나무 상자 열 개를 알현실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병사들이 그 상자 중 하나를 열자 안에 들어있는 강철 환도 수십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우락의 왕은 도신이 가늘고 회색빛이 감도는 외날검을 보고 놀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건 철로 만든 검이 아닌가? 조선에는 철을 제련할 수 있는 시설과 공인이 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폐하. 조선에는 가장 지위가 낮은 병사까지도 철로 만든 검이나 창으로 무장할 정도로 철이 흔합니다. 게다가 조선의 철은 천하에서 가장 단단하고 강해 강철로 불리지요.”

어우락의 왕은 박사의 대답을 듣고 곁에 있던 왕실 근위병에게 말했다.

“저 철검 한 자루를 짐에게 가져오너라. 저 사신의 말이 사실인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구나.”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병사는 곧 상자에 들어있는 환도 중 한 자루를 가지고 돌아와서 왕에게 건네주었다.

어우락의 왕은 오른손으로 환도를 높이 들더니 옥석을 깎아서 만든 옥좌를 힘껏 내리쳤다.

- 탕!

그러자 둔탁한 소리가 알현실에 울려 퍼지면서 강철 환도의 날이 옥좌의 팔받침을 조금 파고들었다.

어우락의 왕은 그 모습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허허허······. 과연 강철이라는 오만한 이름으로 불릴 만 하구나. 보통의 철검이었으면 도신이 부러져야 마땅할 텐데 날도 상하지 않다니.”

그는 다시 병사에게 환도를 건네준 다음 박사 전에게 물었다.

“조선과 동맹을 맺는다면 강철 제련법을 알려줄 수 있겠소?”

“왕검께서는 모든 대소신료에게 강철 제련술을 기밀이라 절대 다른 나라에 전파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셨습니다. 대신 조선과 우호 관계를 맺은 나라에는 강철로 만든 무기를 팔고 있습니다.”

“하긴, 반대의 상황이라면 짐도 그렇게 조치했을 거요. 좋소. 조선의 왕검께서 강철 무기의 교역을 허락해주신다면 우리 어우락도 진나라에 대항하는 합종에 참여하겠소. 중원 대륙의 합종군이 진나라 군대의 발을 묶어놓으면 짐이 직접 전투코끼리를 몰고 원수들의 등 뒤로 돌진할 것이오.”

“감사합니다. 폐하. 부디 조선과 어우락 양국의 우호 관계가 천년을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 * *

한부의 지식과 노력 덕에 어우락과의 동맹 체결과 제나라의 간신 후승의 포섭, 그리고 흉노 부족

간의 세력 구도를 파악하는 작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연나라 점령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외교 관계를 다져놓은 고조선 왕실은 이제 왕검성과 압록강까지 고대 로마식 포장도로를 깔고 은밀히 연나라 정벌군을 육성하며 병장기와 공성 무기를 제작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그렇게 6년의 세월이 흘러 기원전 249년의 4월이 되자 드디어 중원 대륙에서 한부가 원하던 소식이 들려왔다.

“전하! 전하께서 예견하신 대로 약 열흘 전에 연나라가 대군을 일으켜 조나라를 침공했다고 합니다!”

급히 입궐한 계가 숨을 헐떡이면서 보고하자 한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왔구나! 그래서 연나라군을 이끌고 있는 장수는 누구고 병력 규모는 얼마나 되느냐?”

“연나라 왕실이 흘린 정보에 의하면 상방 율복이 40만 대군을, 그리고 장군 경진이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조나라 국경을 넘었다고 합니다. 다만 이는 조나라를 겁주려고 부풀린 숫자임이 확실하고 실제 병력 규모는 그 절반 이하일듯합니다.”

모든 상황이 한부가 예측했던 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한부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연나라가 전국의 병력을 영끌해서 조나라로 쳐들어가고 있구나! 딱 제나라와의 국경선을 지킬 정도의 군대만 남기고 말이지! 지금부터는 신나는 빈집털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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