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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82화 (82/195)

[82화] 대륙 진출 직전의 외교 (2)

한부는 한열 왕검에게 후승을 포섭할 자금지원을 약속받고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태자비의 침실로 향했다.

태자비 민은 몇 달 만에 돌아온 남편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기쁨의 눈물을 글썽이면서 한부를 맞이했다.

“전하! 무사하셨군요! 건강하신 모습을 뵈니 이제야 소첩의 마음이 놓입니다!”

“다녀왔소! 부인! 부인과 우리 준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를 거요!”

“소첩과 태손도 늘 전하께서 돌아오시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혹시 전쟁통에 상처를 입지는 않으셨는지요?”

“걱정하지 마시오. 용맹한 병사들이 밤낮으로 철통같이 경호해준 덕에 터럭 하나 다치지 않았소.”

“참으로 다행입니다. 전하. 그런데 이제 조선에는 용맹한 장수가 많으니 전하께서는 옥체를 아끼셔도 되지 않을는지요?”

“부인에겐 미안하지만, 앞으로도 종종 원정을 떠나야 할 일이 있을 거요. 왕족이 몸을 사리지 않고 전장에 서는 것만으로도 병사들의 사기가 오르니 말이오.”

“후······. 하는 수 없지요. 조선 땅에 전하를 존경하지 않는 백성은 없을 테니까요.”

“이해해줘서 고맙소. 부인. 그런데 준이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구려.”

“태손은 지금 크테시비우스 박사에게 수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뭐요?! 이제 다섯 살밖에 안 된 녀석이 벌써 수학을 배운단 말이오? 우선은 단군정음부터 배우는 게 좋지 않겠소?”

“전하. 조선 땅 곳곳의 사정에는 밝으신 분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소식에는 어두우시군요. 태자는 작년에 벌써 단군정음을 완전히 익혔습니다.”

“허허······ 우리 아들이 수재인 걸 아비인 나만 모르고 있었구려.”

“늘 산더미 같은 문서를 읽으시거나 무예를 닦으시니 그러실 수밖에요. 크테시비우스 박사의 말로는 지금 같은 속도로 학문을 익혀나가면 앞으로 4년 안에는 기하학이라는 서역의 학문도 익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제나라의 문자도 빠르게 익혀나가고 있다니 참으로 조선의 장래가 밝습니다. 전하.”

“엉?! 겨우 열 살짜리가 기하학을 배운단 말이오?!”

한부는 아내의 말을 듣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역사가 원래대로 흘러갔으면 준이는 기하학은커녕 구구단을 배울 일도 없었겠지. 다양한 나라의 학문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지적배경이 그 녀석의 감춰진 천재성을 자극했구나.’

한부는 아들이 학문적 재능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머릿속에 원역사의 세종대왕을 떠올렸다.

‘준이를 고대의 세종대왕으로 만들려면 나는 기원전의 광개토대왕쯤은 돼야 하는 건가? 내 대에 진나라를 확실하게 정리하려면 지금까지 세워둔 방법만으론 좀 부족할지도 모르겠는데.’

원역사에서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할 때쯤 진나라를 제외한 중원 대륙의 여섯 나라에 간신과 매국노가 들끓었던 것은 그저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진나라는 진시황이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진나라 왕실이 가진 넓은 인맥과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자국과 내통할 자들을 은밀히 다른 나라의 주요 관직을 차지하도록 손을 쓰거나 곽개나 후승의 경우처럼 탐욕스러운 타국의 재상을 뇌물로 매수해 왔다.

아직은 현명한 군왕후가 진나라를 잘 견제하고 있는 제나라를 제외한 다른 다섯 나라에는 이미 진나라의 간첩이나 다를 바 없는 매국노 무리가 득실거려 고조선이 외교로 성과를 내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미 중원 대륙이 대부분 진나라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을지도 모른단 말이지. 이렇게 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먼저 제나라부터 확실하게 우리 편으로 만들어 놓고 중원 대륙 밖의 쓸만한 세력들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지.’

그 후 한부는 아내와 몇 마디를 더 나눈 다음 궁궐의 서재 안에 들어간 다음 암부에 사람을 보내서 계를 불렀다.

계는 태자의 부름을 받자마자 입궐하여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 태자에게 인사했다.

“암부장 계가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오랜만이구나. 계야. 그동안 왕검성에는 별일 없었느냐?”

“왕검께서 선정을 베풀고 계신 덕분에 호랑이 부족의 반란 이후로는 조선 땅에서 불온한 무리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다행이구나. 하지만 나라 밖에서는 조선을 적대할 수도 있는 무리가 언제 자라날지도 모르니 미리 손을 써야 한다. 그 시작으로 제나라에 가서 후승이라는 대신을 찾아낸 다음 뇌물을 먹여서 포섭하도록 해라. 그자는 훗날 어린 제나라 왕이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 될 것이다. 뇌물로 쓸 재물은 곧 준비할 것이다.”

“확실히 사신보다는 간자가 해야 할 일이군요. 전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늦어도 2년 안에 흉노의 말을 할 줄 아는 인재를 육성해 흉노족

중에서 세력이 가장 강한 부족을 알아내도록 해라.”

“혹시 왕검께서 흉노의 힘을 빌려 연나라를 칠 방법을 찾아보라고 명하셨는지요?”

“아니다. 그러면 흉노의 여러 부족과 비옥한 연나라의 영토를 나눠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 대신 흉노족

중 가장 부족과 미리 좋은 관계를 다져두고 연나라를 차지한 이후 다른 진나라를 비롯한 주변국이 조선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할 생각이다.”

“만약 흉노와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이 다른 중원의 나라들과는 척을 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특히 흉노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조나라와는 관계가 급격히 나빠지겠지요.”

“나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흉노의 유목 부족들은 오래전부터 조나라의 국경 마을을 집요하게 약탈해 왔지. 그러니 우선은 다른 나라들이 모르게 은밀히 흉노와의 관계를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다가 기회를 봐서 우리 조선이 중재자 노릇을 해 흉노와 조나라가 불가침 조약을 맺도록 한다면 진나라는 중원의 다른 나라를 공격하기가 어려워지겠지.”

“과연······. 조나라는 진나라가 서쪽 대륙의 다른 나라를 쉽게 침략할 수 없도록 하는 방파제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요.”

“그렇지. 특히 지금은 흉노를 견제하고 있는 조나라의 이목 장군이 본격적으로 진나라와의 전투에 투입되면 진나라군은 더욱 몸을 사릴 수밖에 없을 거고 말이야.”

“전하. 소신은 아직 조나라에 이목이라는 이름의 명장이 있다는 보고나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직 이목은 명성을 떨칠 기회가 없었을 뿐이야. 몇 년만 지나면 내 말이 맞았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전하의 말씀이라면 분명히 사실이겠지요. 앞으로는 그 이목이라는 장수의 정보도 수집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하마. 이번 임무는 무명 장군을 등용했을 때만큼 중요한 임무니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전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계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태자에게 읍한 후 서재 밖으로 나갔다.

이목은 무명으로 이름을 바꾼 백기와 마찬가지로 원역사에서 전국시대 4대 명장으로 유명한 장수이다.

원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목은 연도가 불분명한 시기에 무려 조나라로 쳐들어온 흉노의 기병 10만 명을 신기에 가까운 전략과 전술로 거의 몰살시켰는데, 그때 입은 피해가 어찌나 막대했던지 흉노족은 패전 후 10년 동안 조나라 국경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흉노를 제압한 이목은 그 후 본격적으로 진나라와의 전쟁에서 활약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전국시대 4대 명장 중 한 명인 왕전이 기원전 229년에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공격할 때도 진나라군을 격퇴하면서 백기와 함께 전국시대에 단 둘뿐인 불패의 명장으로 명성을 떨친다.

한부는 고조선과 조나라, 그리고 흉노가 삼자 동맹을 맺고 진나라에 대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원 통일을 막을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앙숙인 조나라와 흉노를 화해시키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겠지. 어쩌면 둘 다 조선을 적대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다른 세력도 끌어들일 궁리를 해봐야겠다.’

* * *

계에게 후승 포섭 임무를 맡긴 다음 날 아침, 한부는 한열 왕검을 찾아가 앞으로의 외교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전한 다음 고조선의 외교를 담당하는 외조의 관청으로 향했다.

외조의 수장인 박사 전은 아침부터 태자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자 급히 집무실에서 나오면서 한부를 맞이했다.

“외조박사 전이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반갑소. 전 박사. 지금껏 한 번도 외조를 찾을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야 와보는구려.”

“전하께서는 늘 공사다망하시고 외조는 병조나 호조 같은 관청에 비하면 국가 운영에 덜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본인은 경의 견해에 동의하기 어렵소. 앞으로는 외조의 역할이 조선 왕실의 어떤 관청보다 막중한 역할을 맡게 될 테니 말이오.”

“왕검께서 제나라와 초나라 이외의 나라에 사절을 보내실 생각이신 모양이군요.”

“그렇소. 워낙 막중한 외교 임무라 경이 직접 사절단의 대표직을 맡아주었으면 좋겠소. 그런데 그 나라에 가려면 아무래도 대만에 사는 우호 부족에게 배를 몰아달라고 부탁해야 할 것 같소.”

“저······ 전하! 설마 소신을 마우리아에 보내시려는 건 아니시겠지요?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전하! 소신은 이미 쉰 살이 넘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항해를 했다가는 십중팔구 기력이 쇠해 배 위에서 죽고 말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이번에 왕검께서 사절단을 보내시려는 나라는 진나라에서는 남쪽, 그리고 대만을 기준으로는 서쪽에 있는 나라인 어우락이오. 배를 타면 아마 편도로 20일에서 한 달 정도면 갈 수 있을 거요.”

“진나라 근처에 어우락 왕국이란 나라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전하.”

“그럴 수밖에 없을 거요. 어우락은 아직 건국된 지 두세 해밖에 지나지 않은 신생국이니 말이오.”

“기꺼이 어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다만 그 나라의 왕과 대신들이 과연 소신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까 봐 두렵군요.”

“그것도 걱정할 것 없소. 그 나라의 왕족은 과거에 진나라가 멸망시킨 촉나라의 왕족

출신이라고 하니 분명히 서쪽 대륙의 말을 사용할 거요.”

“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전하. 그 궁벽한 곳의 사정까지 그토록 자세히 파악하고 계시군요”

한부가 말하는 어우락이라는 나라는 현대의 베트남 북부 지역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고대 왕국이다.

전설에 따르면 베트남 역사상 최초의 국가는 현대의 베트남 북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반랑국인데, 이 베트남 지역 토착민이 건국한 반랑국을 촉나라 유민들이 정복하고 세운 나라가 바로 어우락이다.

원역사의 어우락은 멸망할 때까지 철기제조법을 알아내지 못했지만, 고대 중국의 행정제도에 토착민의 문화를 융화시키면서 나름대로 국가의 틀을 갖추고 있었고 무엇보다 선조의 나라를 멸망시킨 원수 진나라에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어 고조선과 동맹을 맺으면 진나라를 견제하는 카드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한부는 어우락이 전국칠웅이나 고조선에는 없는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생에 읽었던 사료에는 고대 베트남 왕국들은 한나라와 싸울 때 전투코끼리를 적극 활용했다고 적혀있었지. 어우락은 건국한 지 50년도 안 지나서 망하는 바람에 기록이 남은 게 별로 없었지만, 이 시대에 벌써 전투 코끼리를 전쟁에 쓰고 있을지도 몰라.’

기원전 3세기에 코끼리를 전쟁에 사용하는 나라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흔한 편이었다.

한부는 중화사상에 물든 중국인들이 야만인 취급하는 고조선과 흉노, 그리고 고대 베트남 왕국이 힘을 합쳐 진나라의 대군과 맞서는 광경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조선의 궁수들이 짐독을 바른 편전을 쏴대서 진나라군이 정신을 못 차릴 때 어우락의 전투코끼리가 정면에서 돌진하고 흉노의 수만 기병대가 적 진영의 후방으로 돌진하면 진나라 장군이 무슨 표정을 지을지 정말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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