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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80화 (80/195)

[80화] 옥저 정벌 (4)

거무죽죽해진 종이 갑옷을 입은 고조선의 보병 7천 명은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산 중턱의 요새를 향해 달려나갔다.

“조선을 위하여! 왕검 폐하를 위하여!”

몇 차례나 화살과 납탄 세례를 받고도 살아남은 옥저인 병사들은 마치 어촌을 덮치는 검은 해일처럼 가파른 산비탈을 검게 물들이는 적군을 보고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면서 비명과 고함을 질렀다.

“으이아아! 조선군의 보병대가 몰려 온다!”

“이런! 씨부럴! 어떻게든 해봐! 다들 시체처럼 자빠져있지 말고 통나무든 바위든 굴리라고!!”

한 옥저인 병사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치더니 토벽 위를 질주하자 몇몇 병사들이 용감한 동료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는 통나무와 바위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옥저인 병사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다시 한번 노궁에서 발사된 화살 1천 발이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렸고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던 병사들은 온몸에 화살을 맞으면서 단말마의 비명을 토해냈다.

“끄아아아악!”

“처······ 천신이시여! 흐어어억!”

대부분의 병사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쓰러졌지만, 맨 처음 토벽 위를 달렸던 병사는 등에 화살을 네 대나 맞고도 비틀거리면서 바위의 곁으로 다가가 돌도끼를 높이 들더니 비장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죽어라! 조선의 늑대들아!”

그는 입을 닫자마자 바위를 고정한 지지대의 밧줄을 돌도끼로 내려쳤고 지름이 사람 키만 한 둥근 바위가 나무 울타리 너머에 떨어졌다.

- 쾅! 쾅! 콰광!

임무를 완수한 병사는 굉음을 내면서 비탈길 아래로 굴러 내려가는 바위를 한번 바라보고 숨을 거두면서 벽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한편 무명 장군은 한부와 함께 전장 곳곳을 살펴보다가 거대한 바위가 보병 부대를 향해 굴러오는 모습을 보고 곁에 있는 병사에게 지시했다.

“낙석이다! 당장 뿔나팔로 신호를 보내라!”

장군의 명을 받은 병사는 대답을 생략하고 손에 들고 있던 뿔나팔을 입에 물고는 길게 두 번 불었다.

- 뿌우우우우우! 뿌우우우우우!

최전방에서 산비탈을 달리고 있는 백인대장들은 무명에게 훈련받을 때 지겹게 들었던 뿔나팔 신호를 알아듣고 전방에서 굴러오는 바위를 확인한 다음 짧게 외쳤다.

“낙석! 중앙! 좌우로 산개!”

전방에서 울려 퍼진 직속상관의 경고를 들은 병사들은 바로 같은 구호를 제창했고 곧 백두산의 산비탈이 고조선군 병사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낙석! 중앙! 좌우로 산개!”

그러자 고조선군 병사들로 이루어진 검은 물결이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순식간에 좌우로 물러나면서 거대한 바위가 지나갈 길을 텄다.

한부는 당대 최고 명장의 지휘 아래 고조선의 병사들이 하나의 생물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거 실화냐?! 내가 원하던 게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고! 기전파목(起翦頗牧)의 첫째 백기의 명성은 거품이 아니었구나!’

태자와 마찬가지로 몇몇 고조선의 노궁수와 궁수, 그리고 투석꾼들도 묘기에 가까운 전우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고 감탄하며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 방금 저거 봤어? 꼭 삵을 보자마자 흩어지는 참새떼 같았다고!”

“저런 장관을 보고 무슨 감상이 그따위야?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시위에 화살이나 걸어!”

“내 정신 좀 봐! 벌써 우리 부대 차례구나!”

거대한 바위를 희생자 없이 피하고 사기가 오른 고조선군 보병 부대는 아군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고 거침없이 나무 울타리를 뛰어넘고 토벽에 사다리를 걸었다.

살아남은 옥저인 병사들은 그 모습을 보고 완전히 토벽 사수를 포기하고 시가전을 치를 각오를 다지면서 마을로 내려갔다.

그리고 가장 먼저 토벽 위에 기어오른 고조선군 병사들은 퇴각하는 적군을 쫓는 대신 먼저 산비탈로 통하는 성문과 나무 울타리의 문을 열어 아군을 마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무명 장군은 그 모습을 보고 담담한 목소리로 태자에게 말했다.

“전하. 이제 반 시진 정도만 더 기다리시면 용맹한 조선의 병사들이 적을 섬멸할 겁니다.”

“섬멸? 설마 마을 사람들을 전부 죽일 생각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 무기를 들지 않은 자는 생포하라고 중대장들에게 미리 당부해 뒀으니 너머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한부는 가면을 쓴 장군의 말을 듣고 한동안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이게 뭔 소리야?! 결사항전을 외치면서 백두산까지 모여든 부족민들이잖아. 저 안에 무기를 들지 않은 성인 남자가 몇 명이나 되겠냐고. 이 아저씨가 요 몇 달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바람에 학살자 백기의 악명을 잊고 있었구만.’

그는 불필요한 학살을 막기로 마음먹고 무명 장군에게 대답했다.

“장군. 조선의 시조이신 단군왕검께서 탄강하신 영산에 너무 많은 피를 흘리고 싶지는 않소. 게다가 이미 우리 병사들이 토벽과 성문을 점거해 승리가 확실하니 굳이 궁지에 몰린 자들을 더욱 몰아붙여 목숨을 걸고 싸우게 하지 맙시다. 대신 적에게 살길을 열어주어 항복도록 권하는 편이 나을 것이오.”

“전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보병 부대에 잠시 시가전을 멈추고 일단 토벽과 성문을 점거해 적의 퇴로를 막는 데 집중하라고 명하겠습니다.”

“그게 좋겠소··· 그리고 우리도 요새 안으로 들어가서 흥분한 병사들이 무분별한 살육과 약탈을 벌이지 못하도록 합시다.”

“전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태자와 무명 장군은 아직 요새 밖에 남아있던 병사들을 이끌고 서둘러 산비탈을 올라 성문 안으로 들어섰다.

사마근은 막 요새의 토벽 전체와 모든 성문을 점거하고 시가전에 돌입하려다가 태자와 무명 장군이 요새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와 보고했다.

“극병 제1중대의 중대장 사마근이 무명 장군님께 보고드립니다! 방금 이 요새의 방어시설을 모두 점거했습니다! 곧 시가전에 돌입해 남은 적군을 섬멸하겠습니다!”

“태자 전하의 명에 따라 섬멸 작전을 중지한다. 대신 요새의 모든 성문을 철저히 봉쇄하고 거주지역을 포위하고 다음 명령을 기다려라.”

“장군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사마근은 무명에게 대답한 후 자기를 기다리는 병사들에게 돌아가 장군의 명을 전했다.

다른 부대에도 곧 무명의 명령이 전해지면서 고조선의 병사들은 요새 한복판의 공터로 몰려버린 옥저인 병사와 민간인들을 둥그렇게 감싸서 포위했다.

그러자 아직 살아남은 옥저의 병사들은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 같았던 수많은 적군이 동작을 멈추자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무기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수군거렸다.

“저놈들이 왜 공격해오질 않지?!”

“혹시 그 무시무시한 궁수들을 요새 안까지 데려와서 또 화살을 쏘려고 하는 거 아니야?!”

“개 같은 놈들! 자기들 피를 한 방울이라도 덜 흘리고 우릴 끝장내겠다는 속셈이구먼! 어차피 죽을 거면 조선놈을 한 명이라도 더 죽이고 죽자고!”

몇몇 옥저인 병사가 죽기를 각오하고 고조선군의 포위망에 달려들려는 찰나, 말을 탄 한부가 무명 장군과 함께 옥저인 병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외쳤다.

“나는 조선의 태자 한부다! 그대들에게 멸족의 비극을 피할 마지막 기회를 베풀려 하니 무기를 내려놓아라! 그대들의 등 뒤에 서 있는 아내와 자식들이 무사하길 바란다면 순순히 대화에 응하는 게 좋을 거다! ”

흉흉한 기세로 무기를 들고 덤벼들던 옥저인 병사들은 태자의 말을 듣자마자 움직임을 멈추고 갈등하기 시작했다.

“우릴 살려주겠다고?”

“속지 마라! 조선인들은 반항적인 부족

출신의 포로를 전부 노비로 삼는다고 들은 적이 있어!”

그런데 그때, 옥저인 민간인 무리에서 흰 수염이 배까지 내려온 한 노인이 걸어 나오더니 옥저인 병사들에게 말했다.

“일단은 검과 도끼를 거둬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건 조선인들의 말을 들어보고 해도 늦지 않을 거다.”

병사들은 그런 노인을 보자마자 허리를 숙여 인사하면서 대답했다.

“면목 없습니다. 녹 장로님······. 저희 전사들이 무능하여 백두산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게 어찌 자네들 탓이겠는가? 아무튼, 조선의 태자와는 내가 직접 이야기를 나눠볼 터이니 물러나 있거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장로님.”

녹 장로는 젊은 병사들을 진정시킨 후 지팡이를 짚으며 앞으로 걸어오더니 고개를 숙이며 한부에게 인사했다.

“이 요새에 모인 다섯 부족의 대표 장로 녹이 조선의 태자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본인의 소개를 다시 할 필요는 없을 듯하구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대신 입을 옷과 비축해둔 식량만 가지고 남서쪽 땅으로 떠나시오. 그럼 그대들의 안전을 보장하겠소.”

“전하께서는 마지막으로 우리 옥저인들을 조롱하려고 전투를 멈추셨습니까? 남서쪽 땅은 조선 왕실이 다스리는 지역이니 우리 부족민 전원을 조선에 데려가 노비로 삼겠다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본인은 그대들이 오늘의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소. 그러니 이번만은 특별히 그대들이 왕검 폐하께 충성을 맹세한다면 남서쪽의 평야 지대로 이주해 새 농지를 개간하면서 살 기회를 주려고 하오”

“우리에게 살 땅을 하사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우리 옥저의 부족들과 조선은 조금 전까지 서로 죽고 죽이던 사이인데 어떻게 전하의 말씀을 곧이 고대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천신께 맹세코 그대와의 약속을 지키겠소. 본인이 이 약속을 어긴다면 천신께서 조선에 천벌을 내리실 거요.”

장로 녹이 한부의 말을 듣고 입을 다물더니 생각에 잠겼다.

예맥족들 사이에서 천신에게 한 맹세는 절대적이었고 이는 불교를 국교로 정한 고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로 녹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대신 제가 백두산 정상에서 천신께 제사를 지낼 테니 그 자리에서 방금 하신 약속을 다시 천신께 맹세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장면을 이 일대에 모인 모든 옥저의 부족장과 장로, 그리고 조선의 장수들에게 보여주십시오. 제 청을 들어주신다면 이 자리에 모인 옥저인들은 기꺼이 요새와 재산을 버리고 남서쪽으로 떠날 겁니다.”

“약속하겠소. 그럼 그대가 서쪽에 있는 요새의 동족들에게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고 설득해주시오.”

“그리하겠습니다. 전하.”

* * *

태자와 무명 장군은 단 하루 만에 백두산 중턱의 요새를 점령한 후 항복한 옥저인 수천 명을 데리고 비왕 무가 포위하고 있는 요새로 향했다.

비왕은 먼발치에서 아군이 옥저인 포로들을 데리고 오는 모습을 보고 즉시 호위기병 몇 기와 함께 그쪽으로 달려와 태자와 무명 장군을 환영했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아무래도 무명 장군이 호언장담했던 대로 요새 공략에 성공한 모양입니다!”

“그렇소. 비왕. 무명 장군은 그런데 무명 장군과 내기에서 지고도 기쁜 모양이구려.”

“조선의 군대가 부족의 영산 백두산에 들어선 적의 요새를 차지한 것은 나라의 경사입니다. 그러니 어찌 개인 간의 사사로운 내기에서 졌다고 불쾌해할 수 있겠습니까?”

비왕 무는 태자에게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무명 장군을 바라보면서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무명 장군. 조선의 상장군 자리에 오르시게 된 걸 축하하오! 명성대로 군사를 부리는 실력이 대단한 모양이구려!”

무명은 분한 표정을 짓는 비왕에게 거들먹거릴 생각이었기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축하의 말을 건네는 라이벌에게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고맙소.”

그리고 잠시 후 옥저의 장로 녹은 요새 안으로 들어가 한부가 한 약속과 고조선군의 막강함을 설명하면서 동족들을 설득했다.

어느새 두 배로 불어난 고조선군을 보고 겁먹었던 옥저인 병사들은 여러 부족에게 신뢰받는 장로가 설득하자 마침내 성문을 열고 고조선 왕실에 복속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고조선 왕실은 백두산 일대의 마지막 대규모 저항세력을 정벌하고 사실상 한반도 전체를 세력권으로 삼게 되었다.

옥저 정벌을 완수한 다음 날, 태자는 장로 녹과 약속한 대로 고조선 원정군의 장수 전원과 호위병을 이끌고 투항한 옥저의 귀족들과 함께 백두산을 올랐다.

태자 일행이 며칠 동안 주변을 맴도는 맹수를 쫓아내면서 험한 산길을 지난 끝에 백두산 정상에 도착하자 상상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한부의 눈앞에 펼쳐졌다.

‘어우! 깜짝이야! 호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용암탕이 있잖아! 그러고 보니까 아직 백두산에 천지가 있을 시대가 아니구나!’

원역사의 백두산 천지는 서기 10세기에 발생한 밀레니엄 대폭발이 발생한 이후에 생겼으니 백두산 정상에서 거대한 호수를 보려면 앞으로 약 1,200년은 더 기다려야 했다.

장로 녹은 흰 염소 한 마리를 잡아 천신에게 제사를 올린 다음 죽은 염소를 저 아래에서 용암이 펄펄 끓는 깊은 분화구에 던져 넣고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외쳤다.

“천신이시여! 이제 저희 마지막 옥저인들은 조선인들이 저희와 저희의 자손을 해치지 않는 한 조선 왕실에 충성을 바치기로 맹세합니다! 조선인과 옥저인 중 먼저 맹약을 깬 자는 당신의 분노가 서린 번개로 벌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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