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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79화 (79/195)

[79화] 옥저 정벌 (3)

고조선 원정군의 병사들은 해가 뜨면 걷고 석양이 지면 숙영지를 지으면서 매일 행군해 기원전 255년의 5월이 가기 직전에 백두산의 산기슭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인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훨씬 전부터 지표를 뚫고 나온 용암이 차곡차곡 쌓이고 굳어져서 이루어진 화산은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만큼이나 거인의 발처럼 거대한 밑동 또한 대단한 장관이었다.

그러나 한부는 백두산 주변의 혹독한 자연환경을 견뎌내느라 도저히 한민족의 영산을 감상할 정신이 없었다.

‘으아······. 양력으로는 벌써 5월 말이나 6월 초일 텐데 대체 왜 이렇게 추운 거야?! 함령 산맥을 넘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백두산은 높은 위도와 고도 때문에 9월부터 다음 해 6월까지 겨울이 계속되는 혹한지이다.

게다가 백두산 주변 지역의 날씨는 맑은 날이 드물고 대신 강렬한 눈보라가 몰아치거나 코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기 일쑤였다.

다행히 고조선 원정군이 백두산에 도착한 날에는 폭설이 내리지 않았지만, 대신 면도날처럼 날카롭고 차가운 바람이 오랜 행군에 지친 병사들의 뺨과 코를 사정없이 할퀴고 지나갔다.

긴 겨울에 익숙한 북부 출신의 예맥족

병사들은 옷깃을 여미고 칼바람을 견뎌내면서 묵묵히 걸어나갔지만, 한반도 최남단이 고향인 한족

출신 병사들은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영하의 날씨에 혼이 반쯤 나갈 수밖에 없었다.

“으아······. 손가락이 얼어붙다 못해 떨어져 나갈 것 같구나······. 아무래도 백두산의 산신께서는 성미가 괴팍하신 모양이야.”

“내 말이······. 고향에는 지금쯤 봄 햇볕이 따사로울 텐데, 이 동네는 아직도 한겨울이군.”

“너무 춥고 배고파서 이제 한 걸음도 못 걷겠어!”

비왕 무는 아직 한족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지친 병사들의 표정과 몸짓을 보고 태자에게 찾아가서 제안했다.

“전하, 지금은 전방에서 불어오는 강한 맞바람 때문에 날씨가 매우 춥고 눈을 뜨기 어려워 지친 병사들이 많습니다. 우선 이 근처에 숙영지를 짓고 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겠구려. 한족

출신 병사들에게 계속 백두산을 오르라고 명령했다가는 탈영병이 속출할지도 모르오.”

태자가 허락을 받은 비왕은 곧 전군에 숙영지를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동안 행군을 하지 않는다는 중대장의 말을 들은 고조선군 병사들은 신이 나서 굳은 용암과 화산재로 이루어진 단단한 땅에 높은 나무 울타리를 세우기 시작했다.

잠시 후 숙영지가 완성되자 한부는 비왕 무와 무명 장군을 자기 막사로 불러서 회의를 열었다.

“이제 우리 군은 옥저의 마지막 저항세력이 모인 두 요새에 거의 도착했소. 강풍이 그치자마자 병력을 움직이려면 병사들을 숙영지에서 쉬게 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정찰부대를 보내 적의 동태를 파악하고 미리 공성전을 벌일 계획을 세워두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오?”

태자가 묻자 비왕 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전하. 몸놀림이 날랜 병사 서른 명을 선별해 저녁밥을 든든하게 먹이고 곧바로 정찰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무명도 이번만큼은 비왕의 뜻에 반대하지 않았다.

“정론이군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니 장수 된 자라면 항시 적군의 동태를 파악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다만 이 지역에 도착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전하.”

“말씀해 보시오. 무명 장군.”

“소장이 지금까지 지나온 반도의 북동부는 대부분 험준하고 척박한 산지였습니다. 왕검 폐하와 전하께서 소출이 적어 쓸모없는 땅을 정벌하시려는 이유는 조선인들이 백두산을 영산으로 여긴다는 점 하나뿐인지요?”

“물론 그것도 중요한 이유지만, 조선 반도 북부의 풍부한 지하 자원을 확보하는 것도 이번 원정의 목적 중 하나라오.”

“이 척박한 땅 밑에 그리 많은 자원이 묻혀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우리 조선 왕실에 일찌감치 복속한 옥저 남부의 부족민들에게 백두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대단한 규모의 철광산을 개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보고를 들은 적이 있소. 그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왕실은 천년을 써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을 막대한 철을 확보할 수 있을 거요.”

“이 험한 산지에 그리 많은 철광석이 묻혀있을 줄이야······. 확실히 연나라 정벌을 시작하려면 지금보다 몇 배나 많은 병력을 무장시킬 철이 필요하겠지요. 이제야 이번 원정의 진정한 목적을 알 것 같습니다.”

한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무명의 모습을 보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철광석이 제일 중요하지만, 이 일대에는 다른 쓸모있는 자원도 엄청나게 많이 매장되어 있지.’

원역사의 현대에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자철광 산지는 다름 아닌 북한의 무산광산이다.

무산광산에는 17억 톤에서 30억 톤 정도로 추정되는 막대한 양의 철광석이 매장되어 있는데, 그 지역은 지표를 조금만 파면 철광석을 바로 캘 수 있기에 갱도를 건설할 필요 없는 노천 철광산을 개발하기에 유리하다.

또한 한반도에선 백두산에서만 채취할 수 있는 화산재는 고대 로마식 도로를 건설할 때와 대마 콘크리트보다 더 튼튼하고 수분에 강한 로만 콘크리트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원료여서 고조선의 발전을 위해선 반드시 함경북도 일대를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 후 태자와 두 장수는 병사들의 사기나 보급품 관리 상태 등에 대하여 더 대화를 나누다가 회의를 마치고 정찰병을 풀어 백두산 어딘가에 있을 적군의 요새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닷새가 흐르자 고조선군의 정찰병들은 옥저 저항세력의 마지막 보루를 찾아내 비왕 무와 무명 장군에게 위치를 보고했고 두 장수는 정찰병의 보고를 받자마자 한부의 막사에 찾아갔다.

이번에는 비왕보다 일찍 지휘관 막사에 도착한 무명이 먼저 태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전하. 적군의 요새는 각각 이곳을 기준으로 북서쪽으로 30리 떨어져 있는 곳과 북동쪽으로 40리쯤 떨어져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두 요새는 토벽과 나무 울타리를 섞어서 지은 조잡스러운 방어시설만을 갖추고 있고 수비병의 수도 각각 약 3천에서 4천 명 정도라 그리 어렵지 않게 점령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적의 요새는 경사가 가파른 산 중턱에 지어져 있고 적군도 단단히 대비하고 있을 테니 너무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오.”

태자가 말하자 비왕 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소장은 전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정찰병의 보고에 의하면 적군은 요새를 둘러싼 토벽 위에 굵은 통나무나 바위 따위를 올려놓고 우리 병사들이 다가오면 산비탈에 굴려서 요격할 준비를 마쳤다고 합니다.”

“이제 연나라와 원정이 6년밖에 안 남았으니 실전 경험을 쌓은 몇 안 되는 병력을 이런 곳에서 잃을 수는 없소. 아군의 희생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터인데······.”

“소장은 요새를 포위하고 병참로를 끊어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오게 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병사들의 피를 흘리지 않고 저항세력을 일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왕이 말을 마치자 무명이 갑자기 너털웃음을 웃으며 라이벌을 조롱했다.

“푸하하하하하! 비왕! 그야 그리하면 분명 아군 희생자 없이 적의 요새를 공략할 수 있긴 하겠지요! 한 해가 걸릴지 두 해가 걸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오!”

“만에 하나 적군이 요새 안에 많은 식량을 비축해 놓았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렇더라도 너무 많은 병사를 죽이면서 상처뿐인 승리를 얻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오.”

“사정을 모르는 장수가 들으면 우리가 진나라의 함곡관 같은 난공불락의 요새를 공략하려는 줄 알겠구려. 소장은 짐승 가죽을 뒤집어쓰고 석기를 휘두르는 야만인들이 지은 조잡한 요새 따위 늦어도 사흘이면 능히 점령할 수 있소.”

무명 장군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비왕 무는 굵은 눈썹을 사납게 꿈틀거리면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한부는 무명이 무모한 작전을 펼쳐서 애꿎은 고조선의 병사들을 희생시킬까 봐 걱정되면서도 드디어 그의 진가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백기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만능 무장이지만, 굳이 전문분야를 꼽으라고 하면 분명 공성전을 고르겠지. 이번 기회에 성 73개를 파죽지세로 점령한 솜씨를 확인해봐야겠다.’

비왕이 더는 참지 못하고 무명에게 소리치려는 찰나, 한부가 먼저 두 중년의 장수에게 말했다.

“애초에 두 사람은 누가 먼저 적의 요새를 점령하는 지로 경쟁하기로 하지 않았소?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전략과 전술로 선의의 경쟁을 펼쳐 보시오. 다만 너무 많은 아군 병사가 죽거나 다치면 곤란하니 한가지 규칙을 더 정하겠소. 이번 전투에서 아군 사상자가 2천 명이 넘는 장수는 이번 경쟁에서 패배한 것으로 간주하겠소.”

태자가 먼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하자 비왕은 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을 다물었고 무명은 다시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하. 소장이 지휘하는 병사들이 그렇게 많이 다칠 일은 없을 겁니다.”

* * *

태자와 두 장수가 두 번째 군사회의를 마친 다음 날, 고조선 원정군은 비왕 무가 이끄는 제1군단과 무명 장군이 지휘하는 제2군단으로 나뉘어서 적의 요새를 향해 행군했다.

한부는 두 장수 중 속전속결로 요새를 공략하려 하는 무명을 따라나섰다.

그렇게 고조선의 병사들이 다시 산악행군을 시작한 후 이틀이 지나자 드디어 넓고 가파른 산길 위에 들어선 옥저의 요새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 약 3m쯤 되는 토벽의 주변에 성인 남자 키 높이의 나무 울타리로 한 번 더 두른 요새는 그동안 한부가 보아왔던 청동기 시대 부족이 지은 방어시설 중에서는 가장 견고해 보였다.

그러나 무명 장군은 옥저인들이 지은 요새를 보고 피식 웃더니 옆에 있는 태자에게 말했다.

“전하. 야만인들이 지은 성벽의 문제점을 아시겠습니까?”

“흙을 대충 쌓아서 만든 토벽이 그리 단단해 보이지는 않는구려. 물론 나무 울타리보다는 낫겠지만 말이오.”

“그 말씀도 맞지만, 소장은 저들이 쌓은 토벽 위에 요철이 없는 게 가장 치명적인 허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듣고 보니!”

“옥저인들도 예맥족이라 그런지 박달나무로 만든 활을 잘 다룬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렇게 엄폐물도 없는 토벽 위에선 개인의 궁술이 아무리 뛰어난들 성능이 월등하고 수가 많은 우리 군의 원거리공격 부대를 당해낼 수는 없을 겁니다.”

“이제야 장군이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이유를 알았소! 한족

출신 병사들이 진나라식 노궁을 잔뜩 챙겨와서 그랬던 거였구려!”

“그렇습니다. 전하. 옥저인들이 아무리 궁술에 자신 있어도 목재로만 만든 활로 쏜 화살은 5척(약 112.5m)을 넘어서 날아오기 어렵지요. 이제부터 고조선의 궁수와 투석꾼이 진나라식 노궁수와 연계하면 얼마나 막강한 위력을 낼 수 있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무명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중대장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노궁수 3천 명을 요새에서 1장 2척(약 270m) 떨어진 곳에 배치하고 1열 횡대로 배치하고 1장(약 225m) 떨어진 곳에 궁수 5백 명과 투석꾼 5백 명을 산개하여 배치하라!”

장군의 명이 떨어지자 3인 1조로 구성된 진나라식의 커다란 쇠뇌를 든 노궁수들과 각궁과 편전, 그리고 무릿매와 납탄이 가득 담긴 주머니를 지닌 투석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진형을 짰다.

토벽 위에 위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고조선군 진영을 내려다보고 있던 옥저의 보초병들은 그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수군거렸다.

“저놈들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거지?”

“저렇게 먼 거리에서 활을 쏴 봐야 화살만 버리는 거 아니냐?”

그때, 사격 담당 노궁수들이 길고 굵은 화살이 걸린 노궁을 토벽 위에 조준하고 방아쇠 역할을 하는 쇠뇌틀을 당겼다.

- 투웅!

팽팽하게 당겨진 현이 튕기는 소리가 백두산의 차가운 공기 속에 스며들자 노궁을 떠난 1천 개의 큰 포물선을 그리면서 거의 3백 미터 앞에 있는 토벽 위를 향해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본 옥저인들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급히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려 했지만, 적지 않은 병사들이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에 맞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으아아아악!”

“크어억!”

“말도 안 돼! 저 먼 거리에서 쏜 화살이 여기까지 날아오다니!”

화살을 발사한 노궁수는 즉시 바로 뒤에 대기하고 있는 장전 담당 병사에게 무기를 넘겼다.

노궁을 받은 병사는 화살 운반 담당 병사가 건네준 화살을 현에 걸고 현을 발로 밟아서 잡아당겨 장전한 다음 다시 사격 담당 병사에게 건네주었다.

노궁수 부대가 화살을 장전하는 동안 고조선군의 궁수와 투석꾼들은 토벽 위에 설치된 통나무와 바위 근처에 있는 병사들에게 조준사격을 가하며 적군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렇게 화살과 투석의 파상공세가 반복되면서 토벽 위의 적들이 완전히 혼란에 빠지자 무명 장군이 보병 부대에 돌격 명령을 내렸다.

“전군 돌격하라! 가장 먼저 토벽 위에 오르는 병사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다!”

그러자 묵직한 강철 경번갑 대신 가벼운 지갑(紙甲)을 입은 팽배수 부대와 극병 부대가 우레같은 함성을 요새를 향해 돌진했다.

“와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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