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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78화 (78/195)

[78화] 옥저 정벌 (2)

비왕은 무명에게 척후병을 보낸 후 바로 옆에 있는 중대장에게 코앞으로 다가온 산악부족의 위협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최후방의 수송부대를 행렬 중간으로 보내고 팽배수 3천 명을 둘로 나누어 태자께서 계신 행렬 중앙과 최후방에 배치해라. 언제 어디서 적습이 시작될지 모르니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

“알겠습니다. 비왕님.”

잠시 후 환도와 원형 방패로 무장한 팽배수 1,500명이 고조선군 행렬의 최후방에 막 도착해서 그리 넓지 않은 산길에 2열 횡대로 늘어서고 있을 때, 갑자기 그들의 오른편에 있는 산비탈 위에서 고막을 긁는 듯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크아아아아아아아!”

팽배수 부대를 지휘하던 중대장 세 명은 예상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적습을 당하자 다급한 목소리로 병사들 틈에 섞여있는 백인대장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적습이다! 서둘러 진형을 짜라!”

“방패를 들고 투창을 던질 준비를 하라!”

중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팽배수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왼손에 든 묵직한 방패를 가슴까지 들어 올리고 오른손에 든 투창을 곧 산비탈에 무성하게 자란 숲 속을 향해 겨누었다.

고조선군 병사들은 일전에 한반도 남부에서 벌어졌던 전투에서처럼 투창 공격으로 적의 기세를 꺾고 백병전을 벌일 계획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산악부족

병사들도 상대방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짱돌과 손도끼를 던져라!”

가장 먼저 숲 속에서 달려 나온 산악부족의 장군이 청동 창 촉이 달린 긴 창으로 전방을 가리키며 외치자 그의 뒤를 따르던 수천 명의 병사가 손에든 투척 무기를 힘껏 던졌다.

고조선의 팽배수 부대는 적군이 고지대를 차지한 이점을 살려서 투창의 사정거리 밖에서 돌과 돌도끼를 던지자 급히 몸을 숙이고 방패로 몸을 가렸다.

- 텅! 터덩! 터덩!

산비탈에서 날아온 돌창과 돌도끼가 두꺼운 나무 방패에 부딪히면서 둔탁한 소리가 터져 나오자 고조선군의 팽배수들은 더욱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튼튼한 갑옷을 입고 있어도 쏜살같이 날아온 성인 남자 주먹만 한 돌이나 돌도끼에 맞으면 치명상을 입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산악부족의 장군은 적군이 투창을 던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우레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돌격하라! 조선인 침략자들을 밀어붙여서 절벽 밑으로 떨어트려라!”

그러자 짐승 가죽을 몸에 두른 산악부족

병사 3천 명이 돌도끼와 돌창을 휘두르며 산사태처럼 몰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산악부족의 전사들은 전속력으로 산비탈을 달려 내려오다가 고조선군 팽배수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힘껏 뛰어오르면서 적군의 방패를 무기로 내리찍었다.

- 쾅! 콰광! 쾅!

투창을 던질 타이밍을 놓친 최후방의 팽배수 1,500명은 능숙하게 방패로 적의 공격을 막았지만, 두 배가 넘는 적의 압도적인 질량과 맹렬한 공격을 왼손에 든 방패와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물론 팽배수들도 눈앞에 있는 산악부족

병사가 빈틈을 보일 때 환도를 휘두르며 저항했지만, 적군이 죽음을 각오하고 덤벼드는 데다 방어와 공격 모두에 신경 써야 했기에 조금씩 벼랑 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비왕 무는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질끈 깨물며 분한 듯 중얼거렸다.

“눈앞의 동료가 환도에 베여 죽는 걸 보고도 계속 덤비다니! 아무래도 옥저의 저항세력이 우리가 백두산으로 행군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구나!”

백두산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민족과 만주족

등 여러 민족과 부족이 영산으로 여기며 숭상해왔다.

그렇기에 한반도 북동부에 자리 잡은 옥저의 몇몇 보수적인 대부족은 그런 백두산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고 부족의 영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강대국 고조선에 저항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1,500명이나 되는 고조선군의 정예병력이 깎아지른 낭떠러지로 몰리고 있을 때, 막 전장에 도착한 사마근의 목소외침이 비왕의 귓가에 스쳤다.

“비왕님! 무사하십니까!?”

“사마근 중대장? 여긴 어쩐 일인가?”

“무명 장군의 명을 받아 극병 1천 명을 이끌고 비왕님을 지원하러 왔습니다! 어서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무명 장군에게 빚을 졌구먼! 어서 저기 보이는 팽배수 중대의 후방을 받쳐주게!”

“알겠습니다! 비왕님!”

비왕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사마근은 한반도 남부 부족

출신의 극병 1천 명과 함께 팽배수 부대 뒤쪽의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1열 횡대로 늘어섰다.

비왕 무는 사마근의 극병 부대가 진형을 짜자마자 직접 팽배수 부대의 중대장들을 찾아다니면서 명령을 내렸다.

“후방에 극을 든 아군이 있다! 병사들이 구호에 맞춰 일제히 자세를 낮추고 바로 서기를 반복하게 해라! 자세를 낮추면 극병이 적군을 공격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비왕님!”

비왕의 명령이 최후방의 팽배수 3개 중대에 모두 전해지자, 중대장 세 명은 이미 쉬어버린 목청을 쥐어짜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숙여라!”

중대장들의 비명 같은 고함이 울려 퍼지자 팽배수들이 일제히 자세를 낮췄고, 극병들은 기합을 지르며 아군의 머리 위로 힘껏 극을 찔렀다.

“흐읍!”

그러자 산악부족의 병사들은 코앞의 적군이 들고 있던 환도에만 정신이 팔려있다가 갑자기 찔러오는 창촉과 갈고리에 찔리고 베이면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끄아아아악!”

“크어어어억!”

순식간에 최전방의 아군들이 얼굴과 목에서 피를 흘리며 낫에 베인 볏짚처럼 쓰러지자, 전열 뒤쪽에 있던 산악부족

병사들은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조심해! 칼 든 놈들 뒤에 이상하게 생긴 창을 든 놈들이 있다!”

“창을 들고 있는 적군은 갑옷이 빈약하다! 저놈들부터 죽여!”

아군의 피를 보고 눈이 뒤집힌 산악부족

병사들은 극병들을 공격하려 했지만, 그 순간 다시 팽배수들의 귓가에 중대장의 구호가 스쳤다.

“서라!”

팽배수들은 일어섬과 동시에 방패로 적의 공격을 막은 훈련해왔던 대로 방패로 적의 몸통을 세차게 밀치고 자세가 흐트러진 적을 향해 환도를 휘둘렀다.

봄날의 햇볕을 머금은 강철 환도의 날이 한번 번뜩일 때마다 짐승 가죽을 뒤집어쓴 병사들이 팔과 가슴팍에 치명상을 입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다.

그 후 고조선군이 몇 번 더 같은 전술로 적군을 도륙하면서 전선을 앞으로 밀어내자 산악부족의 장군은 분한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퇴각명령을 내렸다.

“참으로 악귀 같은 놈들이구나! 전군 퇴각하라! 이대로 계속 싸워봐야 개죽음당할 뿐이다! 북쪽에 있는 큰 부족의 마을에 합류해 부족의 영산 백두산을 사수하는 거다!”

장군의 명이 떨어지자 산악부족의 병사들은 분한 표정으로 고조선군 진영을 한번 노려본 다음 다시 숲속으로 도망쳤고 고조선군 병사들은 각자의 언어로 퇴각하는 적군을 보면서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왕검 폐하 만세! 조선 연합 만세!”

비왕 무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사마근에게 감사의 말을 건넸다.

“후······. 정말 고맙네. 사마근 중대장. 자네가 제때 전장에 도착하지 않았으면 귀중한 정예부대를 잃을 뻔했구먼. 아주 큰 공을 세웠어.”

“일국의 장수로서 소임을 다했을 뿐입니다.”

“직속상관하고는 다르게 대단히 겸손하구먼. 무명 장군에게도 본인이 지원군을 보내줘서 고맙다고 전해주게.”

“그리하겠습니다. 비왕님. 무명 장군님께서도 소장과 비슷한 대답을 하실 듯합니다.”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무명 공이라면 아마 이런 일로 일일이 고마워하지 말라는 투로 대답할 것 같구먼.”

사마근은 비왕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고 그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급히 지원군을 이끌고 오느라 태자 전하께는 극병 부대를 후방에 배치했었다는 보고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소장은 이만 본대로 복귀하면서 태자 전하께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그게 좋겠구먼. 분명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해하실 터이니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바로 태자 전하께 보고를 드리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비왕님.”

사마근은 비왕 무와의 대화를 마치고 이번 전투에서 아군과 적군이 입은 손실을 파악한 다음 행렬 중간 부분에 있는 태자에게 보고했다.

한부는 사마근의 말을 듣고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군 사상자는 스무 명도 안 되는 데 적군 전사자는 2백 명이나 된단 말이지. 두 사람이 사적인 감정을 제쳐놓고 잘 협력해 줬구먼. 무명 장군에게 앞으로도 백두산에 도착할 때까지 비왕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적습을 경계하라고 전해주게.”

“전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사마근은 태자에게 인사하고 극병 부대를 이끌고 전방으로 걸어갔다.

한부는 그런 진나라 출신 장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분위기가 쭉 이어지다 보면 두 사람이 서로 통수를 노리는 사이가 되지는 않겠지. 고조선의 혐성은 나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 * *

한번 대규모 습격이 실패도 돌아가자 고조선에 적대적인 부족들은 고조선 원정군의 앞길 막는 대신 백두산 산기슭에 세운 요새에서의 결사항전으로 전략을 바꿨다.

그러나 청동기 시대의 부족은 조직적인 명령체계를 갖추지 못했고 군략에 밝지 못해 고조선의 행군 경로에 있는 촌락과 농경지를 남겨놓은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덕분에 고조선 원정군은 행군 도중 마주친 빈 마을을 약탈해 군량과 보급품을 충당할 수 있었고 아군 병참 부대를 기다릴 필요 없이 거침없이 북동쪽으로 진군했다.

그 덕에 한부는 왕검성을 떠난 지 겨우 두 달 만인 기원전 255년 5월 중순에 전생에도 가보지 못했던 백두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2만 1천 명이 조금 넘는 고조선의 장수와 병사들은 하나같이 감탄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으로 백두산을 바라보면서 수군거렸다.

“와······. 저게 바로 말로만 듣던 백두산이구먼. 태어나서 저렇게 높고 웅장한 산은 처음 보는구먼. 그래.”

“그러게 말일세. 괜히 단군왕검께서 탄강(誕降)하신 산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어.”

“그런데 백두산 정상에서 왜 연기가 올라오고 있지? 산꼭대기에 산불이라도 났나?”

“봄에는 산불이 자주 나는 편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아니면 백두산 꼭대기의 호수에 산다는 괴물이 입에서 내뿜는다는 연기일 수도 있고.”

순박한 고조선의 병사들은 먼발치에 보이는 백두산을 바라보면서 즐겁게 떠들어댔지만, 한부는 산꼭대기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자마자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맞다! 백두산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화산이었지! 설마 전투를 치르는 도중에 갑자기 폭발하거나 하지는 않겠지?!’

원역사에서 기원후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던 화산은 바로 백두산이었다.

고려왕조실록에 따르면 백두산은 서기 946년 고려 초기에 대폭발을 일으켜 약 8만 명이 사망했는데,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그 위력은 로마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였던 베수비오 화산 폭발보다도 최소 수십 배나 강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고려 시대의 밀레니엄 대폭발 이후에도 백두산은 서기 20세기까지도 한 세기에 한 번은 꾸준히 분출해왔으니 화산이 더 젊은 기원전 3세기에 분출한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것은 없었다.

‘백두산 인근을 정복하면 화산재랑 시멘트 골재를 채취할 광산을 지으려고 했는데, 대피 시설을 꼭 같이 지어야겠구만. 아무튼, 이번 원정을 빨리 마치고 빨리 여기서 멀리 떨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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