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옥저 정벌 (1)
기원전 256년의 추수가 끝나고 계절이 늦가을에 접어들자 고조선 전역에서 시행된 징집 제비뽑기에서 빨간 제비를 뽑은 병사들이 왕검성의 병영에 모였다.
모든 병사가 연병장에 집합하자 고조선 왕실의 중대장들은 신병들의 체격과 특기를 고려해 병과 별로 나누어 혹독한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한부는 무명과 사마근을 데리고 신병 훈련을 시찰하면서 진나라 출신 장수들에게 감상을 물었다.
“무명 장군. 조선의 병사들을 처음 본 감상이 어떻소?”
“대체로 진나라의 병사들보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아서 놀랍습니다.”
“조선은 전국칠웅 중 어느 나라보다도 농법이 발달했기에 논밭에서 거두는 소출이 많고 평시에는 소출의 1할만 세금으로 거둬서 끼니 걱정을 하는 백성이 거의 없소. 잘 먹은 백성의 몸이 크게 자라는 건 당연하지 않겠소?”
“겨우 소출의 1할만을 세금으로 거둔다는 말씀입니까? 허허······. 조선의 백성들은 진나라 백성의 반의반 정도의 세금만 왕실에 바치고 사는 셈이군요. 그리고 신병 중에 무기를 다루는데 능숙한 자들이 적지 않는 것은 어찌 된 연유인지요?”
“조선에선 평시에도 병사를 징집해 병사들을 단련시키고 있는 데다가 매년 왕검성에서 천신 제전을 열어 백성들이 무예를 겨루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오. 제전의 시합에서 우승한 백성은 왕검께 큰 상을 받고 무관으로 임명될 기회가 주어진다오.”
“그게 조선이 짧은 기간 동안 강병을 육성하여 영토를 몇 배나 넓힐 수 있었던 비결이었군요. 다만 왕실 직할령과 제후들의 영지에서만 병사를 차출하기에 조선 연합의 인구에 비해 병사의 수가 적은 점은 아쉽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내년 원정이 시작되기 두세 달쯤 전에는 반도 남부의 한족
부족들이 보낸 병사들도 왕검성에 도착할 거요.”
“전하. 한족
출신 병사들도 조선의 예맥족
병사들처럼 강병이옵니까?”
“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오. 남부의 한족
출신 병사들은 조선 왕실의 병사들에 비하면 기량이 한참 떨어져서 ‘보조병’이라고 불리는 형편이라오.”
현재 고조선의 영토는 왕실 직접 다스리는 왕실령과 제후들이 통치하는 영지, 그리고 조선 연합에 가입한 남부의 한족
동맹 부족들,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분되었다.
고조선은 부족국가에서 중앙집권 국가로 변해가는 과도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중 남부의 한족
동맹 부족들은 외교권을 고조선 왕실에 맡기고 전시에 병력과 군량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만 다하면 폭넓은 자치권이 인정되었기에 평시에는 병사들의 훈련을 게을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부의 연합 정책 덕에 고조선은 과도한 행정력 소모 없이 한반도 거의 전역을 세력권에 두고 군대의 비약적인 양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조선 연합 병사들의 평균적인 질적 하락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무명은 이점을 간파하고 태자에게 해결책을 제안했다.
“전하. 현재 조선의 병사 훈련방식은 상당한 강병을 육성할 수 있지만 숙련된 병사 한 명을 길러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쓸만한 팽배수 한 명을 길러내는 데 보통 1년이 걸리고 궁수와 투석꾼, 그리고 등자를 사용하는 기병을 육성하는 데는 보통 3년쯤이 걸린다고 들었습니다.”
“경의 말대로요. 하지만 강병을 육성하려면 그 정도 노력과 시간은 들여야 하지 않겠소?”
“왕실 직할령과 제후들의 영지에는 4윤작법이나 우경법 같은 우수한 농법이 일찌감치 시행되고 있는 데다 저수지 같은 관개시설이 많습니다. 덕분에 백성들은 한집에 장정 한 명쯤 한해 내내 병역을 지더라도 생계에 별 지장이 없지요.”
“짧은 시간 동안 정확하게 조선의 현황을 파악했구려.”
“감사합니다. 전하. 그런데 반도 남부의 한족
부족들이 사는 지역은 대체로 관개시설이 부족하고 이제 선진농법이 충분히 전파되지 않아 아직 조선과 같은 병사 훈련법을 도입하고 싶어도 그러기 어려울 겁니다.”
“본인도 그 점이 참으로 안타깝소. 그러니 남부의 한족
출신 병사들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것이오.”
“그럼 이렇게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소장은 조선의 장수들처럼 소수정예의 강병을 육성해본 적이 없지만, 짧은 기간 동안 쓸만한 병사를 길러내는 데는 일가견이 있습니다. 남부의 한족
출신 병사들이 왕검성에 도착하면 소장이 훈련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면 그자들이 보조병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겨우 두세달 동안의 훈련만으로 쓸만한 병사를 육성할 수 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전하. 다만 그러기 위해선 진나라의 병장기를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나라의 병장기라? 부디 조선에서 만들 수 있는 물건이라면 좋겠구려. 어떤 무기가 필요한지 말해보시오”
“극과 쇠뇌입니다. 전하. 극은 만드는 법이 단순하니 문제 될 것이 없고 얼마 전 조선의 공인들이 상자노를 만드는 솜씨를 보니 진나라식 노궁도 능히 만들 수 있을 듯합니다.”
원역사의 진나라는 당대 최고 수준의 무기로 주변국을 압도했다고 전해진다.
‘극(戟)은 고대 중국의 일반적인 양날 창인 ‘피’와 장대에 갈고리를 달아둔 듯한 모양의 무기인 ‘과’를 합친 무기로 장대 끝에 창날과 갈고리가 함께 달린 것이 특징이었다.
이 극을 역사상 처음 사용한 나라가 바로 진나라였는데 극은 찌르고 베고 도끼처럼 찍는 공격이 모두 가능해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고 사용법을 배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검보다 훨씬 짧았다.
그리고 노궁은 진나라 특유의 쇠뇌로 활시위를 거의 60cm까지 당길 수 있어 같은 시기에 유럽에서 사용됐던 쇠뇌보다 훨씬 강한 위력과 400m에 달하는 긴 사정거리를 자랑했으며 활과 달리 불과 몇 주 동안만 훈련받으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노궁의 가장 큰 단점은 기계식 장비이다 보니 잔고장이 심하다는 것인데, 진나라는 부품을 규격화해서 노병들에게 늘 예비 부품을 충분히 가지고 다니게 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한부는 전생에 쌓은 역사 지식으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무명에게 대답했다.
“한번 해봅시다. 무명 장군. 경의 생각대로 반도 남부 출신 병사들이 쓸만한 전력이 됐으면 좋겠구려.”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전하.”
* * *
한부는 무명과의 대화를 마치자마자 한열 왕검에게 진나라식 무기와 전술을 고조선군에 도입하자고 건의했고 어렵지 않게 승낙을 받아냈다.
하지만 병조의 수장인 비왕은 무명의 머리에서 나온 무기 체계와 전술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태자에게 찾아와서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전하. 우리 조선의 군대는 지난 10여 년 동안 한 번도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습니다. 이미 검증된 무기와 전술을 포기하고 굳이 진나라의 무기와 전술을 도입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비왕, 왕검 폐하와 본인은 그동안 우리 조선이 발전시켜온 군사전통을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오. 왕실이 직접 징집한 병사들은 지금까지와 같은 무기를 사용하며 같은 훈련을 받고 오직 남부의 한족
출신 병사들에게만 새로운 훈련을 시킬 생각이라오.”
“음······. 그러시다면 소장이 반대할 이유는 없겠군요. 하지만 내년 옥저 원정에는 소장이 지휘할 보조병들은 진나라식 훈련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오? 기왕이면 더 많은 훈련을 받은 병사가 전력에 보탬이 되지 않겠소?”
“소장이 부리는 데 익숙하지 않은 병종을 원정군에 넣었다가 오히려 중요한 순간에 부대 간의 연계가 흐트러질까 걱정되옵니다.”
“그럼 비왕이 지휘할 군단과 동행할 남부 출신 부대 병사들에게는 따로 훈련을 시키지 않겠소.”
“소장의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그렇게 비왕과 무명이 각자 옥저 원정을 준비하는 동안 시간이 흘러 어느덧 기원전 255년의 봄이 찾아왔다.
이번 원정에 동원된 병사는 고조선 왕실이 징집한 2개 군단의 병사 1만 1천 명과 조선 연합에 소속된 남부 부족들이 보낸 병사 약 1만 명으로 총 2만 1천 명, 연나라에게 요동을 빼앗긴 이후 고조선이 동원한 가장 큰 규모의 병력이었다.
기원전 255년 3월 10일, 한부는 두 중년의 장군과 함께 대군을 이끌고 백두산을 향해 북동쪽으로 진군했다.
현대 기준으로 함경남도 남부 지역은 이미 고조선의 기세에 눌린 부족들이 왕실에 복속하며 왕실 직할령이 되었기에 문제없이 지나갔지만, 함경남도 북부의 산악지대에 들어서자 옥저의 반항적인 부족들이 간헐적으로 행군하는 고조선군을 습격할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비왕 무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산악 부족의 매복이나 기습에 대비해 가벼운 무장을 갖춘 척후병 수백 명을 사방에 풀어 적의 매복과 기습에 대비했다.
그리고 고조선의 원정군이 왕검성을 떠난 지 한 달쯤이 흘러 함경산맥의 산길을 지나고 있던 어느 날, 온몸이 땀으로 젖은 척후병 몇 명이 고조선군 행렬의 후방에 있는 비왕 무에게 달려와 보고했다.
“십인대장 국이 비왕께 보고드립니다! 현재 우리 군이 지나고 있는 산길 오른편에 있는 산비탈에서 가벼운 차림의 보병 약 3천 명이 숲에 몸을 숨기고 은밀히 우리 군을 따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뭐라고?! 우리가 지날 때까지만 해도 인기척이 없었는데 적군이 땅에서 솟아나기라도 했단 말이냐?”
“분명하진 않사오나 깊은 산 중에 사는 몇몇 반항적인 산악 부족들이 연합해서 우리 군의 행렬을 기습하려고 따라붙은 모양입니다.”
“혹시 그자들이 짐을 많이 가지고 있더냐?”
“손에 든 돌창이나 석검을 제외하면 하나같인 작은 보따리를 하나씩 어깨에 둘러메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기껏해야 사흘 치 식량쯤을 가지고 있겠구나. 조만간 습격이 시작된다는 뜻이겠지. 어서 태자 전하와 무명 장군에게 이 사실을 전해라! 태자 전하는 행렬 중간에 계시고 무명 장군은 선두에 있다!”
“알겠습니다! 비왕님!”
비왕의 명을 받은 척후병 분대의 십인 대장은 쉴 틈 없이 전우들을 밀치고 앞으로 나아가서 한부에게 적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린 다음 선두의 무명에게도 같은 보고를 했다.
무명 장군은 척후병이 말을 마치자 그에게 물었다.
“정말 태자 전하가 아니라 무 비왕이 본인에게 그 사실을 전하라고 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장군님.”
“알았다. 이만 본대로 복귀하거라.”
척후병은 장군이 명하자 그에게 읍한 후 다시 행렬 후방을 향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명의 옆에 있던 사마근이 그 병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장군에게 고대 중국어로 말했다.
“장군님. 그 비왕이라는 자가 그저 입만 산 장수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게 말일세. 참으로 부끄럽구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장군님께서도 이미 사방에 척후병을 풀어서 적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무 비왕에게는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지. 적군은 분명 행렬의 후방을 먼저 공격할 거고 그렇게 되면 난 이번 경쟁에서 손쉽게 이기게 될 테니 말일세.”
“아······.”
“진나라에서 하도 범수같은 인간말종들에게 중상모략을 당하면서 살아왔더니 나도 모르게 마음에 때가 묻은 모양일세. 사적인 이익 때문에 아군을 희생시키는 자에게 명장이라 불릴 자격은 없을 텐데 말이지. 사마근 중대장. 어서 극병 1천 명과 함께 후방으로 가게. 고지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상대하기에는 검보다 극이 유리할 걸세.”
“알겠습니다! 장군님!”
사마근은 장군의 명을 받자마자 한족의 말을 할 줄 아는 통역관과 함께 병사들을 이끌고 후방으로 향했다.
무명은 그런 부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착각하지 마라. 무. 내가 지키고자 하는 건 네 목숨이 아니라 내 자존심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