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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68화 (68/195)

[68화] 신혼생활과 연나라 침공을 위한 마지막 준비

한부는 영혼 없는 표정으로 시작했던 혼례식을 웃으면서 마친 후 해가 지자마자 신부와 함께 궁궐 안에 마련된 신방으로 들어갔다.

내관이 방문을 닫은 후 조금 전에 부부의 연을 맺은 아내가 먼저 이부자리 위에 앉는 것을 보고 한부도 신부의 맞은편에 앉은 다음 먼저 입을 열었다.

“부인. 워낙 급하게 혼례식을 준비하다 보니 아직 부인의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구려.”

“민이라고 하옵니다. 전하.”

“옥돌을 뜻하는 아름다운 돌 민(玟) 자를 이름으로 삼았나 보구려. 그대의 미모에 잘 어울리는 좋은 이름이오.”

“미모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소첩은 언니처럼 얼굴이 보름달처럼 통통하고 복스럽지도 않고 허리가 절구통처럼 튼실하지도 않은걸요.”

“앞으론 다른 사람들의 따위는 괘념치 마시오. 내 눈에 비친 그대는 서시보다도 더 아름다우니 말이오.”

“전하······.”

그 후 태자 부부는 등불을 끈 다음 꿈같은 신혼 첫날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한부는 오랜만에 동이 튼 다음 잠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시를 단정하게 하고 아내와 함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갔다.

태자와 태자비는 왕검의 침실에 들어가서 방석 위에 앉아있는 한열 왕검과 모후 연에게 절하며 인사를 올렸다.

“아버지. 어머니. 간밤에 평안하셨습니까?”

“태자비 민이 아버님과 어머님께 인사드립니다.”

한열 왕검은 그런 장남과 맏며느리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그럼. 평안했고말고. 간밤에 신방 앞을 지킨 궁녀가 말하길 너희 부부의 금실이 매우 좋았다고 하더구나. 그 말을 듣고 어찌나 마음이 편안하던지.”

“아버지! 그럼 밤새도록 신방 밖 복도를 궁녀가 지키고 있었던 겁니까?!”

“당연한 일이지 않느냐? 다른 왕자도 아니고 태자가 후사를 남기는 일이니 짐도 당연히 합방이 잘 되고 있는지 알아야지.”

왕검의 말을 듣고 태자비 민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고개를 숙였다.

한부도 그 말을 듣자마자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한 이유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하긴, 조선 시대에는 왕이 중전이나 후궁하고 합방할 때마다 궁녀 여덟 명이 주변을 둘러싸고는 왕한테 훈수를 뒀다고 했지. 거기에 비하면 궁녀 한 명이 그냥 상황 파악만 한 건 별것도 아니긴 한데······. 그래도 침실 밖에 항상 도청꾼이 있는데 어떻게 맘 편히 신혼을 즐기겠냐고.’

그는 간곡한 목소리로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아버지. 소자는 침실 밖에서 누군가가 엿듣고 있으면 아내와 맘 편히 합방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저희의 침실 앞에서 궁녀를 물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흠······. 태자비가 태손을 낳을 때까지는 그리하는 것이 궁중의 법도이거늘.”

그때, 부자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모후 연이 한열 왕검에게 말했다.

“폐하. 태자의 청을 들어주시지요. 우리 며느리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인 듯하고 간밤에 신방을 지킨 궁녀도 태자에게는 따로 가르칠 게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버려 두어도 알아서 잘할 겁니다.”

“궁녀의 말이 아직 믿기질 않아서 말이오. 어려서 여색을 밝힌 적도 없었던 태자에게 따로 가르칠 게 없다니?”

“제나라의 말과 글도 따로 배운 적이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깨치지 않았습니까? 이번 경우도 아마 그와 비슷하겠지요.”

“음······. 부인의 말에도 일리가 있구려. 그럼 그렇게 하리다.”

한부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고맙기는. 대신 앞으로는 나랏일을 줄이고 태자비가 회임할 때까지는 태손을 생산하는 데 몰두하도록 해라. 왕족의 임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후사를 남기는 것이니 말이다.”

“소자가 국상부를 1년이나 비워서 업무가 많이 쌓여있을 터인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이제 8조의 모든 관청이 자리를 잡아가고 웅 국상을 보좌할 이룡도 출신 관리가 많이 늘었으니 괜찮을 거다.”

“그렇다면 걱정 없겠군요.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아침 문안 인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왕검의 침실 밖으로 나오면서 한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싸! 그럼 한동안은 신혼 휴가를 보내면 되겠구나! 앞으론 내정을 다지고 연나라 침공을 준비하느라 바빠질 테니까 짬이 날 때 충분히 즐겨 둬야지!’

그 뒤로 태자 부부는 하루 중 대부분을 배우자와 함께하면서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4주가 지나던 날, 한부와 함께 궁궐의 정원을 거닐던 태자비 민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헛구역질을 했다.

“우웁!”

한부는 그 모습을 보고 황급히 비틀거리는 아내를 부축하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부인! 괜찮으시오?”

“전하. 갑자기 속이 불편해지면서 자꾸만 구역질이 납니다······. 우웁!”

그러자 태자 부부의 시중을 들던 궁녀가 환하게 웃으면서 한부에게 말했다.

“태자 전하! 아무래도 태자비께서 태손을 회임하신 것 같습니다!”

“설마? 아직 첫날밤을 치른 지 한 달도 안 지나지 않았느냐?”

“빠르면 합방 후 한 달이 조금 안 지나도 입덧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궁중 약사에게 맥을 짚어보게 하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좋겠구나! 부인은 내가 직접 침실로 데리고 갈 테니 넌 어서 궁중 약사를 불러와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한부는 궁녀에게 지시를 내리자마자 아내를 부축해서 침실로 데려가 침상에 눕혔다.

그리고 잠시 후 태자의 침실에 도착한 궁중 약사 천은 태자비의 맥을 짚어보더니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감축드리옵니다! 태자비께서는 태손을 회임하신 게 분명합니다!”

“그게 정말인가?! 전하! 기뻐하십시오! 제가 전하의 아이를 가졌습니다!”

한부는 감격의 눈물을 글썽이는 아내의 말을 듣고 기쁜 나머지 현대의 단어를 써가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부인! 참으로 기쁘구려! 설마 부인이 허니문 베이비를 가졌을 줄이야!”

“허니문 베이비? 전하. 소첩이 무지하여 허니문 베이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어······. 나도 모르게 서역에서 배워온 말을 읊었구려. 왕족의 자손을 그렇게 부르는 나라가 있었소.”

“왠지 어감이 귀여운 단어네요. 아이가 태어나면 아명을 허니라고 짓겠어요.”

태자는 한순간의 실수로 첫째 자식의 아명이 영어로 지어져 버리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후······. 아무리 아명이라도 고조선인 이름이 허니라니······. 너무 안 어울리잖아.’

* * *

태자비 민이 임신한 후 한부는 4주 동안의 휴가를 마치고 다시 연나라 침공을 준비하기 위한 마지막 내실 다지기에 들어갔다.

그는 국상부 업무에 복귀하고 가장 먼저 오랫동안 기획해온 전국시대 최고의 명장 백기 등용 임무를 맡기기 위해 사람을 보내서 암부의 수장인 계를 불렀다.

계는 부름을 받자마자 한달음에 궁궐 안에 있는 국상부 건물로 달려와서 태자에게 인사했다.

“혼례식 이후 처음 뵙습니다. 태자 전하.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그럼.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 그런데 너는 조금 피곤해 보이는구나.”

“근래에는 서해 너머의 대륙에 심어둔 간자들이 물어온 정보를 검토하느라 제법 바빴습니다. 특히 전하께서 반도 남부를 정벌하시는 동안 진나라의 장군 백기가 장평에서 조나라의 병사를 수십만 명이나 죽인 후로는 한시도 서쪽에서 눈을 뗄 수가 없는 지경입니다.”

“음······. 결국 장평대전이 터졌구나.”

장평대전은 작년인 기원전 260년에 진나라가 당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조나라의 군대를 물리친 전투로 고대 동아시아사에서 가장 끔찍한 학살이 벌어졌던 전투이기도 하다.

여러 사료에 따르면 진나라의 명장 백기는 이 전투에서 이론적인 조나라의 45만 대군을 좁은 계곡으로 유인한 후 그중 5만 명을 사살하고 40만 명을 포로로 잡았는데, 이 많은 포로를 살려 보내면 훗날 다시 진나라를 위협할 수 있다면 모두 죽여서 땅에 묻어버렸다고 전해진다.

원역사에선 백기가 정말로 전투 한 번에 45만 명이나 되는 조나라 병사를 죽였는지를 정확히 밝힐 수 있는 자료가 없지만, 적어도 십만 단위의 젊은이가 장평에서 죽임을 당한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한다.

이렇게 끔찍한 장평대전이 끝난 이후 조나라는 진나라와 버금가던 국력을 전투 한 번에 잃어버리고 이류국가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이에 따라 대륙의 정세가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한부는 오래전부터 바로 이 장평대전이 일으킨 파도에 올라타 고조선을 전국칠웅의 일각으로 만들 계획을 머릿속에 그려왔다.

‘지금쯤 백기는 정적인 진나라 재상 범수가 학살자라고 모함하는 바람에 시골구석으로 귀양 가서 죽을 날 만 기다리고 있겠지. 그리고 원역사 대로라면 연나라는 조나라가 곤경에 빠진 틈을 타서 공격하려다가 역공을 당할 거고.’

원역사의 연나라는 장평대전 이후 끊임없이 조나라를 괴롭히다가 마침내 기원전 249년에 대군을 일으켜 대대적인 조나라 침공을 시작한다.

신뢰도가 조금 떨어지는 전한 시대의 사료인 전국책에 따르면 이때 연나라는 60만 대군에 전차 2천 승을 동원하여 조나라를 공격했지만, 오히려 전국시대 4대 명장 중 하나인 염파가 이끄는 군대에게 연나라의 침략군이 궤멸당하고 수도인 계가 포위당하는 위기를 겪게 된다.

한부는 바로 그때가 고조선이 압록강을 넘어 연나라를 정벌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연나라가 조나라를 치는데 60만이나 되는 대군을 동원했다는 기록은 믿을 수 없지만, 적어도 그 3분의 1이나 4분의 1 정도는 염파한테 갈려 나갔겠지. 그때가 바로 신나는 빈집털이를 시작할 타이밍이다.’

그는 앞으로 10년 동안 고조선이 연나라 침공의 골든타임을 잡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정리한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계야. 이제 서쪽 대륙의 말을 완전히 익혔느냐?”

“아직 발음이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의사소통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전하.”

“그럼 슬슬 부유한 상인으로 변장하고 진나라에 잠입해서 백기에게 접근해라.”

“일전에는 앞으로 2년 후에야 백기가 위기에 처할 거라고 말씀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사람이 고조선에 귀화하자고 설득해도 백기쯤 되는 인물이 선뜻 따라나서지는 않을 것 같구나.”

“아! 백기와 미리 친분을 쌓아두시라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네게 천금을 줄 테니 백기가 귀양 간 곳을 찾아내라. 그리고 처음에는 가지고 간 재물을 그곳 주민에게 베풀면서 백기 주변인들의 환심부터 사도록 하고.”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태자의 명을 받은 계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부의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한부는 그런 부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나도 슬슬 외국에 가볼 준비를 해야겠구만. 연나라가 뒤통수를 맞을 걱정을 안 하고 조나라를 공격하게 하려면 화전 양면전술을 펼 필요가 있겠지. 연나라에 공물을 보내고 화친을 맺는 게 제일이겠어.”

그는 그의 업무를 마친 후 해가 지기 전에 왕검을 찾아가서 연나라에 사신과 공물을 보내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한열 왕검은 태자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태자야. 꼭 연나라에 머리를 숙여야만 하겠느냐? 짐은 아직도 연나라군에게 함락된 불타는 도성에서 도망쳐 나오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뇌리에 생생하다.”

“아버지. 그러니 오히려 완벽한 복수를 위해서 지금은 연나라 왕에게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복수하기 위해 감내했던 수모를 기억해 주십시오.”

“크흠······. 확실히 그에 비하면 공물을 보내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긴 하구나. 좋다. 대신 연나라가 우리 조선에서 금과 은이 많이 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곤란하니 공물에서 금제품과 은제품은 빼도록 해라.”

“소자의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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